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 17권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李 通玄 장순용 번역
15) 십주품(十住品) ㅡ 2
다섯째,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하는 수문석의(隨文釋義)를 여섯 단락으로 장과(長科)하면, .
첫째, “이때 법혜보살” 이하부터 “보살의 주(住)를 내가 지금 설하리니”에 이르기까지의 19행 반의 경문은,
법혜보살이 선정에 들어가자 모든 부처님께서 가지(加持)하심을 밝힌 분(分)이며,
둘째, “선정에서 나옴”부터 이후는 열 가지 주(住)의 명목을 바르게 설한 분(分)을 밝힌 것이며,
셋째, 10 가지의 십법(十法)이 있는 것은 발심의 인(因)을 올바르게 설함을 밝힌 분(分)이며,
넷째, 10 가지의 십법(十法)이 있는 것은 초발심의 소연(所緣)인 여래의 열 가지 뛰어난 지혜의 승지(勝智)를 밝힌 분(分)이며,
다섯째, 가르침을 설하니, 위의(威儀)가 감응하면서 대지가 진동함을 밝힌 분(分)이며,
여섯째, 게송으로 법을 찬탄함을 밝힌 분(分)이다.
첫 번째의 “법혜보살이 선정에 들어가니 모든 부처님께서 가지(加持)하는” 분(分)에 10 가지의 대의가 있으니,
하나, 보살의 명칭을 해석하는 석보살명(釋菩薩名)이며,
둘, 삼매에 들어가는 입삼매(入三昧)의 뜻을 밝히는 것이며,
셋, 삼매의 힘을 밝히는 것이며,
넷, 시방의 부처님들께서 그 앞에 오시어 법혜와 더불어 명호가 같음을 밝히는 것이며,
다섯, 시방의 부처님들께서 힘을 주어 함께 가(加)함을 밝히는 것이며,
여섯, 비로자나여래의 과거 원력으로 그러하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며,
일곱, 법혜보살 스스로의 자선근력(自善根力)으로 능히 삼매에 들어감을 밝히는 것이며,
여덟, 선정에 들어가는 인연을 밝히는 것이며,
아홉, 시방의 모든 부처님들께서 지(智, 지혜)를 주는 것을 밝히는 것이며,
열, 법혜가 선정에서 나와 열 가지 십종주문(十種住門)을 연설함을 밝히는 것이다.
첫째, 보살의 명칭을 해석하는 석보살명(釋菩薩名)을 설명하면,
10신위(十信位) 중의 보살들 이름의 아랫 글이 모두 같은 수(首)인 것은,
신심이 믿음으로 으뜸을 삼는 신위수(信爲首)를 밝힌 것이지만,
이 10주위에서는 이미 모든 부처님 지혜의 불지혜가(佛智慧家)에 태어났기 때문에 이름의 아래 글자가 모두 똑같은 혜(慧)가 되는 것이니,
이는 성법(聖法)의 흐름 속에 들어가 부처님 지혜를 얻었으니, 부처님의 지견과 같아져서 정사(正邪)를 잘 가려서 정법에 계합하기 때문에 법혜(法慧)라 칭함을 밝히는 것이고,
자기 스스로가 능히 모든 부처님의 지혜지견(智慧知見)과 같지 못하다면, 스스로의 삿됨도 밝히지 못할 것이거늘, 어찌 능히 남의 사견(邪見)을 가려낼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 지위에서는 능히 일체 모든 부처님의 지견과 같기 때문에 모든 무처님의 이름이 같은 법혜불(法慧佛)이며, 그 앞에 나타나는 것으로 인신(印信)을 삼아 그 언어의 표현을 정하는 것이니, 이는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더불어 지혜가 같기 때문이다.
둘째, 삼매에 들어가는 입삼매(入三昧)의 뜻을 밝히는 것을 설명하면,
10신위(十信位, 십신)에서는 생멸심을 통하여 자기의 마음에 있는 비롯됨이 없는 무명의 분별하는 마음이 그대로 자기 마음의 근본부동지불이라는 것을 믿으면서도, 아직은 방편 삼매로 그 체용에 합하지 못하고 있다.
으러므로 10신위 중 10 개의 세계 모두가 그 명칭이 색(色)인 것은,
10신에서는 법성(法性)의 흐름에 들지 못하고 생멸심(生滅心)으로 신해(信解, 믿고 이해함)하기 때문에 10 세계의 명칭이 색(色)이 되는 것이지만,
이 10주위에서는 방편 삼매의 혼침(昏沈, 침체됨)이나 도거(掉擧, 들뜸)가 없는 마음으로 능히 자체의 생멸이 없는 무생멸지혜(無生滅智慧)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체의 모든 수도자(修道者)는 처음에는 문해(聞解, 배워서 이해함)을 통하여 믿어 들어가고,
다음에는 사념이 없는 무사(無思)로 계합하여 본무작용(本無作用)의 본지혜(本智慧, 근본지혜)를 의지하는 까닭에 반드시 삼매에 들어가 반연된 오염의 습기를 정화하는 데 힘써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작위가 없는 무작(無作)의 진지(眞智, 참지혜)가 비로소 밝게 나타나는 것이니, 이 때문에 반드시 삼매에 드는 것이다.
삼매(三昧)의 삼(三)이란 정(正)을 말하는 것이며,
매(昧)란 정(定)을 말하는 것이니,
총체적으로는 올바른 선정의 정정(正定)을 말하는 것이며,
정정(正定)이란 것은 혼침(昏沈)이나 도거(掉擧)가 없으며,
사념(思念)으로 깨우치는 경계가 없으며,
거두어 지니거나 조복해서 소멸시키는 마음도 없으며,
기뻐하거나 싫어함도 없이, 성무사(性無思, 성품의 사념 없음)에 맡기고 이불작(理不作, 이의 작위 없음)에 맡겨서,
지혜가 스스로 밝은, 지자명(智自明)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 명칭이 방편(方便)이고 그 명칭이 무량(無量)인 것이니,
무량한 망상을 정화하기 때문에 정(情)이나 사념의 헤아림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그 명칭이 무량방편삼매(無量方便三昧)인 것이니,
삼(三)은 정(正)이고 매(昧)는 정(定)으로서 정식(情識)이 가라 앉으면서 바른 지혜가 스스로 밝아지는 것을 밝힌 것이다.
이를테면, 색계와 무색계의 삼매는 모두 息想慮(식상려, 상념을 쉬는 것)로서 얻는 것이고,
성문과 연각의 삼매는 염환관(厭患觀, 세간을 싫어해 떠나는 관법)을 닦아 대치함으로써 공관(空觀)을 즐기고,
비지(悲智, 자비의 지혜)를 소멸시켜 적멸로써 즐거움을 삼고,
권교(權教)의 보살은 공(空)을 관하는 것을 즐기고, 6바라밀을 행하여서 고통의 뿌리를 여의어서 정국(淨國, 청정 국토)에 태어나는데, 설령 이 세계에 머무는 자가 있다 할지라도 미혹에 머물러 중생을 교화한다고 말하는 까닭에 모두가 ‘법이 응당리 그러하다는 법이합연(法爾合然)으로 출몰(出沒)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이런 뜻이 있기 때문에, 이 방편삼매(方便三昧)라는 것은, 법계의 체용을 미혹하여 5욕(五欲)의 정(情)을 낳는 일체 중생을 위하여, 조작이 없는 마음으로 본지(本智, 근본지혜)를 나타내기 때문에 문득 근본 선정의 체(體)로써 망정을 정화시키는 것을 방편(方便)이라 칭하는 것일 뿐, 별다르게 진(眞)의 밖에서 임시로 안립하는 선정이 별도로 있는 것을 방편으로 칭하는 것이 아니다.
비유하자면 수정보(水精寶)로 능히 탁한 물을 맑히는 것은 구슬의 청정한 연(緣)으로 근본의 청정한 물을 나타내는 것이지, 구슬이 능히 청정한 물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닌 것과 같은 것으로,
방편삼매(方便三昧)도 이와 마찬가지로, 만법의 작위 없는 무작(無作)의 본자정(本自淨, 본래 스스로의 청정)한 연(緣)으로써, 본래 스스로의 작위 없는 본자무작지혜력(本自無作智慧力)을 나타내는 까닭에 그 이름이 방편인 것이다.
다만 인천(人天)과 외도와 3승이 소유한 인과는 모두 작위하는 바가 있는 유소작(有所作)이기 때문에 낳는 것이 모두 처소가 있어서 모두 과보의 광협(廣狹, 넓고 좁음), 정예(淨穢, 깨끗하고 더러움)의 차별들이 있는 것에 반해,
이 부처님의 화엄일승(華嚴一乘) 법문은 머묾도 없는 무주(無住)이고, 작위도 없는 무작(無作)의 성품에 맡긴 법문으로서, 그 낳는 바가 무의지(無依智, 의지함이 없는 지혜)에 맡겨서, 의지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지생신(智生身)이 참법계에 부합하는 것을 근거로 하여 일체 중생 앞에 색신(色身)을 대현(對現)하지만, 그 체상(體相)은 가고 옴이 없는 것이며, 또한 신통변화도 짓지 않는 것이다.
ㅡ지생신(智生身), 중생신(衆生身)과 반대되는 말. 3승은 의생신(意生身)이 되고 1승은 지생신(智生身)이 된다.
**법성생신(法性生身), 즉 의생신(意生身)이란, 인연화합에 의한 모든 현상과 작용의 맨 처음 본바탕인 청정(淸淨)함이라는 한결같은 몸으로 태어나는 것. 유위(有爲)의 오중(五衆)인 색온(色蘊) 수온(受蘊) 상온(想蘊) 행온(行蘊) 식온(識蘊)이 청정하게 무위(無爲)의 오중인 계중(戒衆) 정중(定衆) 혜중(慧衆) 해탈중(解脫衆) 해탈지견중(解脫知見衆)으로 바뀌게 되는 것으로, 오종(五種)의 의생신이 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삼세의 일체 업과(業果)가 찰나 속에 있음을 널리 나타내면서도 또한 삼세의 멀고 가까움이나 찰나의 견(見)에 머물지 않으니, 이 경전에서 짓는 삼매의 지혜와 일체의 원행(願行)은 모두 이 이지(理智)의 운행에 맡기는 것일 뿐, 닦음이 있는 흔염(欣厭,좋고 싫어함)의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셋째, 삼매력(三昧力, 삼매의 힘)을 밝힌다는 것을 설명하면, 이 삼매력에 5 가지가 있으니,
하나, 선정의 정체(定體)가 능히 욕망을 정화해서 두루하는 힘의 정욕변주력(淨欲遍周力)이요,
둘, 선정이 능히 지혜를 드러내어 부처님과 동등한 힘의 지혜동불력(智慧同佛力)이 되는 것이요,
셋, 선정이 능히 부처 신상(身相)와 명호가 현전하는 것과 동등한 힘의 동불신상명호현전력(同佛身相名號現前力)이요,
넷, 선정이 능히 부처님의 지견에 계합하여 모든 부처님들께서 모두 가지(加持)하여 주시는 제불공소가지력(諸佛共所加持力)이요,
다섯, 선정이 능히 여래 집안에 태어나 참된 불자(佛子)가 되어서 부처의 지혜에 머무는 힘의 주불지혜가력(住佛智慧家力)이다.
첫 번째의 선정의 체(體)가 능히 욕망을 정화해서 두루하는 힘의 정욕변주력(淨欲遍周力)이란,
작위가 없는 선정의 무작체(無作體)로써 능히 모든 욕망을 정화시켜 몸과 마음을 잊어버림이 마치 허공이 안과 밖이 없는 것과 같이 됨으로써 허공과 법계에 두루한 것이다.
두 번째의 선정이 능히 지혜를 드러내어 부처님과 동등한 힘의 지혜동불력(智慧同佛力)이 되는 것이란,
무작용(無作用)의 선정으로 능히 작용이 없는 무작용자연혜(無作用自然慧)를 드러내는 것이니,
일체 중생이 모두 여래의 자연지혜(自然智慧)를 구족하고 있으면서도 경계에 미혹하여 정(情)이 일어남으로써 5욕(五欲)에 반연하는 마음이 장애가 되는 것이니, 무작정(無作定, 작위 없는 선정)을 닦는 것을 방편으로 삼아야 불지(佛智)와 자연지(自然智)가 문득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세 번째의 선정이 능히 부처 신상(身相)와 명호가 현전하는 것과 동등한 힘의 동불신상명호현전력(同佛身相名號現前力)이란,
작위 없는 선정의 무작정(無作定)을 통하여 스스로의 자법신지신(自法身智身)의 무작(無作)의 순백 청정하고 더러움이 없는 것을 드러내어서 일체의 모든 부처님의 법신지혜(法身智慧)와 더불어 합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시방에서 각각 천불찰(千佛剎) 미진수의 모든 부처님들께서 동명의 법혜(法慧)로서 그 앞에 나타나는 것이니,
지혜로써 계합하여 부처님의 지견과 동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의 명호가 자기와 더불어 같은 동명의 법혜(法慧)가 되는 것이니,
‘시방 각각의 천불찰의 미진으로 수량을 삼는다’고 말하는 것은 지위에 따라 닦아 나아가는 진수지혜(進修智慧)의 두루함과 승강(昇降, 오르고 내림)의 수(數)로서,
백만불찰미진이라 말하는 것은 지혜의 승진을 드러내는 것이니,
미혹을 말한다면 바로 불가설찰진(不可說刹塵)의 번뇌가 되지만,
깨달음을 대하면 바로 불가설찰진의 불국토와 부처님 불지혜(佛智慧)가 되는 것이다.
네 번째의 선정이 능히 부처님의 지견에 계합하여 모든 부처님들께서 모두 가지(加持)하여 주시는 제불공소가지력(諸佛共所加持力)이란,
모든 부처님의 불가지(佛加持)에는 7 가지가 있으니,
1. 명호가 같은 동명호가지(同名號加持)이니, 하여금 의심하지 않게 하는 것이요,
2. 언설로 찬탄하는 언찬가지(言讚加持)이니, 하여금 지위에 들어간 입위자(入位者)의 마음을 안은하게 하기 위한 것이요,
3. 비로자나 스승과 제자의 비로자나사제가지(毘盧遮那師弟加持)이니, 본원(本願)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요,
4. 신력가지(神力加持)이니, 본사(本師)와 더불어 근본의 신령스런 지혜에 회동(會同)하기 때문이요,
5. 자기 선근력의 자선근력가지(自善根力加持)이니,
스스로 닦은 방편의 선정으로 본지혜(本智慧, 근본지혜)를 나타내기 때문이요,
6. 시방의 명호가 같은 부처님들께서 함께 열 가지를 주는 여십종지력가지(與十種智力加持)이니,
법을 설함이 모든 여래와 같아서 변설에 걸림 없기 때문이다.
7. 시방의 동명호의 모든 부처님들께서 손으로 정수리를 어루만지는 마기정가지(摩其頂加持)이니,
부처님 지견의 정상에 이르러서 오류가 없다는 것을 허가하는 것을 밝힌 것이기 때문이다.
이상으로 일곱 가지의 칠종가지(七種加持)가 있다.
다섯 번째의 선정이 능히 여래 집안에 태어나 참된 불자(佛子)가 되어서 부처의 지혜에 머무는 힘의 주불지혜가력(住佛智慧家力)이란, 작위 없는 선정의 무작정(無作定)의 체(體)로써 본지혜(本智慧, 근본지혜)를 드러냄으로써 모든 여래의 해탈 지혜와 같아지기 때문이다.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하는 것을 여섯 단락으로 장과(長科)한 에서의 두 번째, 선정에서 나온 후부터는 열 가지의 십종주(十種住)의 명목을 바르게 설한 분(分)이란,
이 분(分)의 뜻을 세 단락으로 나누면,
1. 열 가지의 십법(十法)이 있는 것은 발심인(發心因)이 곧 부처님의 색신(色身, 몸)의 단아함을 보는 것이라고 바르게 설하는 것을 밝히는 것이니, 교계(敎誡, 가르침과 훈계)등을 듣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2. 열 가지의 십법(十法)이 있는 것은, 초발심주의 소연(所緣)이 되는 여래의 십종승지(十種勝智, 열 가지 뛰어난 지혜)와 함께 이 지위의 십법(十法)을 취함으로써, 나중의 10주(十住)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모두 200 개의 법문, 모두가 10주(十住)의 지위를 이루는 것이니, 각각의 주(住)에 모두 20개의 법문이 있어서,
십법(十法)으로 해당되는 지위의 문(門)을 이루고,
십법(十法)을 승진의 행으로 삼음을 밝힌 것이다.
3. 경문에 자세히 밝히고 있어서 세 번째는 다시 번거롭게 해석하지 않겠으니,
대략 분제(分劑)를 알아서 행으로써 행하여 할 것이다.
ㅡ제4 과(科)의 내용이 빠졌습니다.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하는 것을 6 단락으로 장과(長科)한 에서의 다섯 번째, 가르침을 설하니, 위의(威儀)가 감응하면서 대지가 진동함을 밝힌 분(分)의 단락에서부터 과(科)를 7 단락으로 나누겠으니,
1. 대지가 6종(六種)과 18상(十八相)으로 움직임(動)을 밝히는 것이며,
2. 천(天)이 10 가지의 십종공양(十種供養)을 비내리듯 내리는 것을 밝히는 것이고,
3. 시방이 똑같이 설하는 것을 총체적으로 매듭 지음을 밝히는 것이며,
4. 시방에 감응하는 위의의 멀고 가까운, 원근(遠近)을 밝히는 것이며,
5. 시방으로부터 명호가 같은 동호보살(同號菩薩)들이 모두 와서 증명하는 것을 밝히는 것이며,
6. 시방불과(十方佛果)의 명칭이 묘법(妙法)이라는 것이니, 이는 묘혜(妙慧)로서 법을 설함을 밝힌 것이며,
7. 법혜(法慧) 보살이 위의를 이어 받아 게송을 설함을 밝힌 것이다.
여섯 번째의 위의를 이어받아 게송을 설하는 것을 설명하면,
이 단락 가운데에 모두 200 행의 게송이 있는 것은, 10주위 중 2백 개의 법문을 찬탄한 것으로, 경문에 자세히 밝히고 있어서 번거롭게 다시 해석하지 않겠다.
관정주(灌頂住)라는 것은 청정한 물을 정수리에 부어서 몸 전체에 흘러 내리게 하는 것과 같은데,
이 지위의 보살이 법계지(法界智)가 중심이나 변두리가 없는 체(體)로서, 허공계와 동등하여 일체 중생에 맞추어 응현(應現)하여 몸을 대현(對現)하면서도 일시에 평등하게 법우(法雨, 법의 가르침)을 내려 관주(灌注)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그 명칭이 관정주(灌頂住)인 것이며,
또한 이 지위에 오를 때, 시방의 모든 부처님들께서 손으로 그 정수리에 관(灌)한 까닭에 그 명칭이 관정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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