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經卷第二十 十行品第二十一之一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 三藏沙門(삼장사문) 實叉難陀 譯(실차난타 역)
21. 십행품(十行品) ① ㅡ 15
ㅡ제팔(第八) 난득행(難得行) ㅡ 원(願) 바라밀
安住甚深大法海(안주심심대법해) 善能印定一切法(선능인정일체법)
了法無相眞實門(요법무상진실문) 此見實者所行道(차견실자소행도)
깊고 깊은, 심오한 대법해(大法海)에 안주하여
능히 일체법을 선능인정(善能印定)하여 스스로 잘 깨달았으며,
법이 무상(無相)하고 진실문(眞實門)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아시나니,
이는 실상을 보시는 견실자(見實者)께서 행하시는 도(道)로다.
一一佛土皆往詣(일일불토개왕예) 盡於無量無邊劫(진어무량무변겁)
觀察思惟靡暫停(관찰사유미잠정) 此匪懈者所行道(차비해자소행도)
낱낱의 불국토(세계)에 모두 나아가, 무량하고 무변한 겁(세월)이 다하도록
관찰하고 사유하기를 잠시도 쉬지 않나니
이는 게으르지 않은 비해자(匪懈者)께서 행하시는 도(道)로다.
無量無數諸如來(무량무수제여래) 種種名號各不同(종종명호각부동)
於一毛端悉明見(어일모단실명견) 此淨福者所行道(차정복자소행도)
무량하고 무수한 모든 여래의 종종(種種, 갖가지) 명호가 각각 부동(不同)하거늘
일모단(一毛端, 하나의 털 끝)에서 모두 다 밝게 보아 아시나니,
이는 깨끗한 복을 가지신 정복자(淨福者)께서 행하시는 도(道)로다.
ㅡ정복자(淨福者),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세상은 조금도 바뀌거나 달라지지 않은, 똑 같은 세상인데 내가 긍정적으로 보고, 안타깝게 보고 불쌍하게 보아야지, 거기에 부정적인 마음으로 탓을 하는 것은 박복한 사람의 소견입니다. 하나의 털 끝에서 모두 다 밝게 보는 것은 어떤 경계에서도 간에 부처님으로 보는 마음가짐입니다.ㅡ무비스님
一毛端處見諸佛(일모단처견제불) 其數無量不可說(기수무량불가설)
一切法界悉亦然(일체법계실역연) 彼諸佛子行斯道(피제불자행사도)
일모단(一毛端, 하나의 털 끝)에서 그 수효가 무량하고 불가설한 모든 부처님을 보며,
일체의 법계에도 역시 그러하게 모두를 보나니,
이는 저 모든 불자(佛子)들이 행하는 도(道)이로다.
(하나의 털 끝에서 불가설한 부처님을 볼 수 있는 것이 불자의 안목이로다)
無量無邊無數劫(무량무변무수겁) 於一念中悉明見(어일념중실명견)
知其修促無定相(지기수촉무정상) 此解脫行所行道(차해탈행소행도)
무량하고 무변한 무수겁(無數劫)을 일념(一念, 한 찰나)에 모두 명견(明見)하여 밝게 보고서
그 길고 짧음의 수촉(修促)과 일정한 모양이 없는 무정상(無定相)이라는 것을 아나니
이는 해탈행을 행하는 해탈행자(解脫行者)가 행하는 도(道)이로다.
能令見者無空過(능령견자무공과) 皆於佛法種因緣(개어불법종인연)
而於所作心無着(이어소작심무착) 彼諸最勝所行道(피제최승소행도)
보는 이로 하여금 무공과(無空過)하여 헛되이 지나지 않게 하여서
불법에 좋은 인연을 심지만, 그 하는 바의 소작(小作)에 마음으로 집착함이 없나니
이는 모든 수승한 최승자(最勝者)들이 행하는 소행도(所行道)이로다.
ㅡ무비 스님의 일화;
예전에 일타스님의 상좌이신 성진스님은 기차로 장거리 여행을 할 때마다, ㅡ 그 때만 해도 바늘하나가 귀할 때입니다.ㅡ 좋은 바늘을 많이 사서, 기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하나씩 선물하면, 어떤 종교인이든 간에 전부 받더라고요. 사실 좀 창피해서 제가 물었더니, “이 사람아, 이렇게 같은 차를 타고 같이 여행할 때, 이런 작은 인연이라도 인연을 심어 놔야지.” 하더라고요. 크게 하늘을 꿰고 바다를 움직이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바늘 하나로라도 인연을 심어주는 사람이 가장 수승한 사람인 것입니다.
那由他劫常遇佛(나유타겁상우불) 終不一念生疲厭(종불일념생피염)
其心歡喜轉更增(기심환희전갱증) 此不空見所行道(차불공견소행도)
나유타겁(那由他劫, 아주 오랜 세월) 동안 항상 부처님을 만나 뵙되,
일념(一念, 잠깐)도 싫어하거나 피곤하다는 마음을 내지 않고,
그 마음이 더욱 환희롭게 증장하여서 (더욱 더 신심을 내어서)
헛되이 보지 않는 불공견자(不空見者)가 행하는 소행도(所行道)로다.
盡於無量無邊劫(진어무량무변겁) 觀察一切衆生界(관찰일체중생계)
未曾見有一衆生(미증견유일중생) 此堅固士所行道(차견고사소행도)
무량하고 무변한 겁(劫, 세월)이 다할 때까지, 일체의 모든 중생계(衆生界)를 관찰하지만
일찍이 어떤 한 중생도 본 적이 없나니
이는 견고사(堅固士, 견고한 선비, 즉 보살)들이 행하시는 소행도(所行道)로다.
ㅡ미증견유일중생(未曾見有一衆生)은 금강경의 무량하고 무수한 중생을 제도하되 실로 한 중생도 멸도를 얻은 사람이 없다고 한 것과 같은 뜻으로, 본래가 부처라서 이미 완벽한 존재인 까닭에 한 중생도 멸도를 얻은 사람이 없는, 즉 이미 멸도 되어있는 중생이기 때문에 멸도된 중생이 없다는 뜻입니다.
ㅡ제구(第九) 선법행(善法行) ㅡ 역(力) 바라밀
修習無邊福智藏(수습무변복지장) 普作淸凉功德池(보작청량공덕지)
利益一切諸群生(이익일체제군생) 彼第一人行此道(피제일인행차도) 凉 서늘한 량
무변한 복과 지혜의 복지장(福智藏)을 닦아 익혀서,
청량공덕지(淸凉功德池, 청량한 공덕의 연못)를 널리 만들어서
일체의 모든 군생(群生, 중생)들에게 이익이 되게 하나니
이는 첫째가는 제일인자(第一人者)가 행하는 소행도(所行道)로다.
法界所有諸品類(법게서유제품류) 普遍虛空無數量(보편허공무수량)
了彼皆依言說住(료피개의언설주) 此師子吼所行道(차사자후소행도)
법계에 있는 여러 종류의 모든 품류(品類, 중생)들이 널리 허공에 두루 가득하여 무량하거늘,
그 모두가 언설(言說, 말, 표현)을 의지하여 머물고 있다는 것을 아나니
이는 사자후(師子吼)를 하시는 이가 행하시는 소행도(所行道)로다.
ㅡ제품류(諸品類), 금강경에서는 ‘9류중생(九類衆生)’을 제시한다. 즉, 일체중생의 종류를,
난생(卵生, 알에서 태어나는 것), 태생(胎生, 모태에서 태어나는 것), 습생(濕生, 물고기와 모기 등과 같은 곤충류),
화생(化生, 변화하여 태어나는 것으로 나비, 도깨비나 신), 유색(有色, 형태를 가진 모든 생물),
무색(無色, 형상이 없는 귀신), 유상(有想, 오관의 지각을 가진 존재),
무상(無想, 오관의 지각을 갖지 않는 천상의 존재들), 비유상 비무상(非有想非無想, 신神) 들을 말한다.
이러한 구류중생의 의미를 분석해보면 ‘살아있는 모든 것’을 일컬으며, 생물 중에서도 주로 동물만을 지칭하는데, 우리말의 짐승이 바로 중생에서 전이된 것이다.
일본의 일련종(日蓮宗)에서 초목성불을 강력히 주장했으며, 심지어 천태대사 지의(智顗, 538~597)에 의해서 개창된 천태종에서는 초목과 와력(瓦礫)에도 불성이 있다고 했다.
초기불교에서 초목에 불성이 없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초목에 불성이 있다는 것에는 대승불교적 가치관이 자리 잡고 있다.
첫째는 유 ․ 무정물을 망라한 모든 것이 무상(無常) ․ 고(苦) ․ 무아(無我)이기 때문에 삼라만상 모두가 공성(空性)을 지닌다는 입장이다.
둘째는 세상의 모든 것이 그물의 코와 같이 상의상관(相依相關)으로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유정 ․ 무정에 관계없이 자신과 관계 맺고 있는 이 세상 모든 대상이 연기이고 공성이고 중도임을 일이관지(一以貫之)하기 때문이다. ㅡ수선님
能於一一三昧中(능어일일삼매중) 普入無數諸三昧(보입무수제삼매)
悉至法門幽奧處(실지법문유오처) 此論月者行斯道(차논월자해사도)
하나하나의 삼매에 들어감으로서 능히 무수한 모든 삼매에 두루 들어가며,
모든 법문의 유오처(幽奧處, 심오한 곳)에 이를 수 있나니
이는 의론의 달인이신 논월자(論月者)가 행하는 소행도(所行道)로다.
忍力勤修到彼岸(인력근수도피안) 能忍最勝寂滅法(능인최승적멸법)
其心平等不動搖(기심평등부동요) 此無邊智所行道(차무변지소행도)
인력(忍力, 인욕의 힘)을 부지런히 닦아서 피안(彼岸)에 이르러며,
가장 수승한 최승(最勝)의 적멸법(寂滅法)을 능히 참아내어서 (능히 깨달아서)
그 마음이 평등하여 동요하지 않나니
이는 그지없는 지혜의 무변지자(無邊智者)가 행하시는 소행도(所行道)로다.
ㅡ참을 인(忍) 자는 칼 도(刀)자 밑에 마음심(心)자가 놓여 있는 것으로, 가슴에 칼을 얹고 있다는 뜻이다.
가만히 누워있는데, 시퍼런 칼이 내 가슴위에 놓여 있는 상황이니, 누가 와서 짜증나게 건드린다고 뿌리칠 수 있겠는가?
아니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 있겠는가? 움직여봤자 나만 상하게 된다.
화나는 일이 생겨도 감정이 밀어닥쳐도, 죽은 듯이 가만히 기다려야 한다.
이렇듯 참을 인(忍)자는 참지 못하는 자에게 가장 먼저 피해가 일어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자기평정을 잘 유지할 줄 아는 것이 인내이다.
참을 인(忍)자에는 또 다른 가르침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때로는 죽순처럼 솟아오르는 온갖 미움, 증오, 분노, 배타심 그리고 탐욕들이 있다.
이런 것이 싹틀 때마다 마음속에 담겨있는 칼로 잘라버리라는 것이다.
이렇듯 인내에는 아픔이 필요하고 결단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인고의 삶을 터득하는 사람에게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인격이 주어질 것이다.ㅡ 사즐모
於一世界一坐處(어일세계일좌처) 其身不動(기신부동항적연)
而於一切普現身(이어일체보현신) 彼無邊身行此道(피무변신행차도)
한 세계의 한 자리 앉아 있으니, 그 몸이 항상 고요한 항적연(恒寂然)하여 부동(不動)이지만
일체의 모든 곳에 그 몸을 두루 나타내나니
이는 그지없는 몸을 가진 무변신자(無邊身者) 행하는 소행도(所行道)로다.
無量無邊諸國土(무량무변제국토) 悉令共入一塵中(실령공입일진중)
普得包容無障碍(보득포용무장애) 彼無邊思行此道(피무변사행차도)
무량하고 무변한 모든 국토들을 일진(一塵, 하나의 티끌) 속에 모두 들어가게 하며,
널리 두루 그 모두를 포용함에 장애가 없나니
이는 그지없이 생각하는 무변사자(無邊思者)가 행하는 소행도(所行道)로다.
ㅡNagarjuna's Treatise on the Middle way, 용수보살의 중도론(中道論) 4 권
1 Ignorance, 무명(無明) ㅡ 무명연행(無明緣行)
*Obscured by ignorance, existence recurs
From performing any of the three kinds
Of formative actions through which
One goes on to another rebirth.
衆生癡所覆(중생치소복)
爲後起三行(위후기삼행)
以起是行故(이기시행고)
隨行墮六趣(수행타육도)
중생은 치(癡, 무명, 무지)에 덮여 있어서
후생(後生, 다음 생)을 위하여 3행(三行)을 행하나니,
이러한 삼행(三行)을 일으킨 까닭에
그 행을 따라서 6취(六趣)에 떨어지는도다.
(중생은 무명에 가려져서 삼행을 일으켜서 삼행을 행하는 행함으로써
다음의 후생을 형성하여서, 육취 중의 하나를 받는 다른 생으로 이어집니다.)
'화엄경(華嚴經)'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화엄경(華嚴經) 제20권 십행품(十行品) ① 16 (0) | 2026.06.17 |
|---|---|
| 이통현(李通玄)장자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17 권 4. 십주품(十住品) (0) | 2026.06.16 |
| 화엄경(華嚴經) 제20권 십행품(十行品) ① 14 (1) | 2026.06.15 |
| 화엄경(華嚴經) 제20권 십행품(十行品) ① 13 (0) | 2026.06.14 |
| 이통현(李通玄)장자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17 권 3. 십주품(十住品) (1) | 2026.06.1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