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 17권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李 通玄 장순용 번역
15) 십주품(十住品) ㅡ 2
자기 마음의 자심근본무명분별(自心根本無明分別)의 종자(種)로서 문득 부동지불(不動智佛)을 이루고,
법계의 체용을 ‘믿음으로 나아가 깨달아 들어가는 신진오입(信進悟入)의 문(門)'으로 삼기 때문에,
믿음으로 신지위(信地位)에 들어가 닦아 나가는 것에서부터, 나아가 10주ㆍ10행ㆍ10회향ㆍ10지ㆍ11지를 거치기가지에 총체적으로 근본부동지불을 여의지 않는 것이고,
일시(一時)ㆍ일념(一念)ㆍ일법(一法)ㆍ일행(一行)을 여의지 않는 것이나,
무변무량(無邊無量)하고, 불가설불가설(不可說不可說)인 법계와 허공계의 미진수 법문(法門)이 있는 것이다.
왜냐 하면 법계와 근본부동지로부터 믿음으로 나아가서j 깨달아 들어가게 되는 까닭에 법이 마땅히 그한 것이다.
가령 용녀가 찰나에 성불한 것과 선재동자가 일생에 불과를 취한 것은, 법계의 무성무생(無性無生, 성품 없음과 낳음이 없음)이 일생이 되는 것일 뿐, 늦고 빠름의 연촉생(生)이 아니다.
즉 법계의 체(體)에는 정견(情見)으로 헤아리는, 늦고 빠름의 연촉(延促)이나, 길고 짧음의 장단(長短)이나,
과거ㆍ현재ㆍ미래가 없기 때문이니, 바라건대 믿음이 있는 자는 반드시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는 것이다.
바로 지금의 성불이 과거와 미래의 일체 모든 부처님과 더불어 일시에 성불하는 것이니,
법계의 지체(智體)에는 별다른 시(時)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한 방울의 물이 큰 바다에 들어가면, 문득 큰 바다와 같아져서 새로이 들어간 물과 있던 옛 물의 구별이 없어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정(情)을 버려야 비로소 볼 수 있는 것이며, 식심(識心)으로 알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3승에서는 10주 보살은 오히려 삼계의 분단생사(分段生死)를 받기 때문에 부분적으로는 생공관(生空觀)을 배워 천제(闡提, 부처가 될 바탕이 전혀 없는 사람)의 믿지 않는 장애를 대치하며,
10행 보살은 부분적으로 법공관(法空觀)을 지어 자리이타의 행을 닦아서 성문의 자리(自利)의 장애만을 대치하며,
10회향 보살은 법공관(法空觀)을 지어서 대자비의 원력을 일으켜 성취하고 형상을 6도(六道)에 드리워 중생을 교화함으로써 독각의 자도(自度, 스스로의 제도)의 장애에 대치하나니,
이는 3승(三乘) 중 3심(三心)의 보살이 지(地) 이전의 세 가지 장애의 삼종장(三種障)에 대치하는 것으로, 다만 정사(正使)만을 없앨 수 있을 뿐, 습기는 없애지 못하는 것을 밝힌 것으로, 10지 보살이라야 그 나머지 습기를 끊는 것이다.
초지(初地) 보살은 자신의 진여불성(眞如佛性)을 보기 때문에 명칭이 견도위(見道位)이며,
2지(二地)부터 7지(七地)까지는 수도위(修道位)이니, 여전히 유공용(有功用)으로 그 행을 닦으며,
8지(八地)부터 10지(十地)까지는 명칭이 구경위(究竟位)이니, 공용을 빌리지 않고 운(運)에 맡겨 불과에 이르기 때문이다.
또 3승(三乘)에서의 12주지(十二住地)는
1주지(一住地) 종성주(種性住)이니 열 가지 해행(解行)이 이에 해당되며,
2주지(二住地), 해행주(解行住)이니 10회향이 이에 해당되며,
3주지(三住地), 셋째 환희주(歡喜住)이니 초지(初地)가 이에 해당되며,
4주지(四住地), 증상계주(增上戒住)이니 2지(二地)가 이에 해당되며,
5주지(五住地), 증상혜주(增上慧住)이니 3지(三地)가 이에 해당되며,
6주지(六住地), 도품상응증상혜주(道品相應增上慧住)이니 4지(四地)가 이에 해당되며,
7주지(七住地), 제상응증상혜주(諦相應增上慧住)이니 5지(五地)가 이에 해당되며,
8주지(八住地), 연기상응증상혜주(緣起相應增上慧住)이니 6지(六地)가 이에 해당되며,
9주지(九住地), 유행유개발무상주(有行有開發無相住)이니 7지가 이에 해당되며,
10주지(十住地), 무행무개발무상주(無行無開發無相住)이니 8지가 이에 해당되며,
11주지(十一住地), 무애혜주(無碍慧住)이니 9지가 이에 해당되며,
12주지(十二住地), 최상보리주(最上菩提住)이니 10지가 이에 해당된다.
또 3승(三乘) 중에서 지(地) 이전의 3현(三賢) 보살은 복인(伏忍)을 얻고,
10지와 불지(佛地)는 적멸인(寂滅忍)을 얻으며,
또 승만경(勝鬘經)을 보면, 나한(羅漢)과 벽지불과 정토보살은 모두 복인(伏忍)이라서 공관(空觀)을 통해 현행의 10사(十使)를 조복하여 일어나지 않게 하나니, 이는 무명주지(無明住地)의 번뇌를 알지 못하기 때문인 것이니 ‘알지 못한다’고 이름붙였는데 어찌 ‘번뇌를 끊었다’고 이름을 붙일 수 있겠는가!
다만 현행을 조복하여 일어나지 않게 하여서 세 가지 삼종의생신(三種意生身)을 얻음으로써, 삼계 밖의 변역생사(變易生死)를 받는 것이니, 이와 같은 보살은 6바라밀을 행하여 6신통을 얻어 복덕과 신통이 모두 인천(人天)보다 뛰어나지만, 오로지 불과의 법계문을 닦지 않기 때문에 문 밖의 삼거(三車, 세 수레)가 초암(草庵)에 있는 것이다.
즉 성문과 벽지불과 3승 보살의 그 덕(德)이 같지 않으나, 삼계를 벗어나 6신통을 행하는 명칭은 서로 비슷하지만 6바라밀의 공덕 과보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3승의 6통 보살 등이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에 대해서 듣지도 못하고 믿지도 못하나니,
이 경전에서 “설령 어떤 보살이 무량한 나유타겁이 지나도록 6바라밀을 닦아 6신통을 얻었다 할지라도, 만약 여전히 이 화엄경전을 듣지 못한 까닭에 오히려 그 명칭이 가명(假名)의 보살이요 진(眞) 보살이 아니며,
설령 다시 들었을 때일지라도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하였으니 법화경이 바로 그러한 경우이다.
3승 중, 세 가지의 삼종의생신(三種意生身)이란,
첫째 1ㆍ2ㆍ3지(地)는 그 이름이 삼마발제락법의생신(三摩跋提樂法意生身)이며,
둘째 4ㆍ5ㆍ6지는 그 이름이 각법자성의생신(覺法自性意生身)이며,
셋째 7ㆍ8ㆍ9ㆍ10지는 그 이름이 종류구생무행작의생신(種類俱生無行作意生身)이니,
자세히 인용하여 말하고 싶지만, 3승의 가르침에서 자세히 밝히고 있으니 대략 이와 같이 대치하여 회통한다.
이와 같이 1승의 가르침에는 도무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3승의 지취(旨趣)가 없으며,
근본무명주지의 번뇌로서 문득 일체 모든 부처님의 부동지를 삼는 것이니,
일체 중생이 모두 스스로 갖추고 있건만, 단지 지체(智諦)가 자체성이 없는 무성(無性)이고 의지함이 없는 무의(無依)라서,
능히 스스로 요달하지 못하고 연( 緣)을 만나야 비로소 요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무엇을 만나는 회연(會緣)이라 하는 것인가? 세 가지 삼종연(三種緣)이 있으니,
첫째, 고통스러운 인연의 고연(苦緣)으로, 괴로움을 만나서 비로소 능히 발심하는 우고방능발심(遇苦方能發心)이며,
둘째 즐거움의 낙연(樂緣)으로 오래도록 인천(人天)에 처하여 내심으로 슬기를 밝히면서도 세간의 낙과(樂果)의 생사(生死)가 무상하다는 것을 요달해서 비로소 진(眞)을 구하는 것이며,
셋째 부처님과 1승 보살을 보고 능히 발심하여 부처님의 종지(種智)를 구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의 삼연(三緣)을 만나 바르고 착한 선지우(善知友)를 가까이 함으로써, 무명이 본래 부처의 지혜라는 것을 능히 자각하는 것이니, 3승도 마찬가지이지만 의락(意樂)의 깊고 얕음이 제각각으로 다른 것이다.
그리하여 본지(本智, 근본지)로 인하여 신심을 내고, 본지(本智, 근본지)에 근거하여 오입(悟入)하여 깨달아 들어감으로써,
본지(本智, 근본지)를 여의지 않기 때문에 초발심주(住)에서 곧바로 5위 모두가 두루하게 되는 것이니,
비록 10주ㆍ10행ㆍ10회향ㆍ10지ㆍ11지의 행위(行位)의 법문과 닦아 나아가는 진수궤도(進修軌度)를 열거하고 있을지라도, 마치 왕의 보인(寶印)이 한 번 인(印)을 치면 차별이 없는 것과 같아서,
일심대지(一心大智, 한 마음 대지혜)의 인(印)으로 비롯됨이 없는 삼세 모두가 일시(一時)에 있음을 인(印)치고 무변한 제법들을 지인(智印)하면서 두루하는 것이다.
이는 지혜가 모든 부처님과 같은 지등제불(智等諸佛)이기 때문이며,
지혜가 중생의 마음과 같은 지등중생심(智等衆生心)이기 때문이며,
지혜가 모든 법과 같은, 지등제법(智等諸法)이기 때문이며,
지혜가 중심과 변두리, 안과 밖, 삼세, 길고 짧음, 가깝고 멂이 없기 때문이며(智無中邊表裏三世長短近遠故),
지혜가 허공의 양을 초월하는 지과허공량(智過虛空量)이기 때문이다.
가령 세간의 허공은 요달하여 알 수가 없지만, 무분별지(無分別智)의 허공일념(虛空一念)은 능히 허공을 초월하는 법문을 분별하나니, 이러한 까닭으로 경전에서 “일체의 허공은 오히려 헤아릴 수 있지만 모든 부처님의 겨예는 말로 설명할 수 없다(一切虛空猶可量,諸佛境界不可說)”고 한 것이다.
이러한 뜻이 있기 때문에 자기 마음의 자심근본무명(自心根本無明)의 체용(體用)으로써의 부동지(不動智)가
일체 모든 부처님 및 일체 중생과 더불어 같은 동일체성(同一體性)이며,
같은 동일경계(同一境界)이며, 같은 동일지해(同一智海)라는 것을 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발심한 시초부터 부처님의 불종지가(佛種智家)에 머물기 때문에, 겨우 발심할 때일지라도 즉각 시방으로 몸을 나타내면서 성불할 수 있는 것이니, 초발심공덕품(初發心功德品)에서 자세히 밝히고 있다.
이런 뜻으로, 이 10주위 중에 초발심주에 드는 자는 일체 모든 부처님의 지혜와 대자비해(海)의 경계 가운데의 주처(住處)에 머물러, 그대로 5위를 전부 닦음으로써 초주와 10지가 일불지혜(一佛智慧)의 경계(境界)를 여의지 않기 때문이나,
다만 생소하고 익숙한 관습의 우열을 밝히고자 주(住)와 지(地)의 명칭을 세운 것일 뿐이니,
지체(智諦)에서는 삼세의 정(情)으로는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용녀가 1찰나에 이미 3생(三生)을 갖추어서 보현행이 원만하고 불과도 성취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
가령 문수사리보살의 게송에서는
“일념으로 널리 무량한 겁을 관(觀)하니,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고 또한 머무는 것도 없으며,
(一念普觀無量劫,無去無來亦無住)
이렇게 삼세의 일을 요달해 알아서 모든 방편을 초월해 10력(力)을 성취했다
(如是了知三世事,超諸方便成十力)”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분명히 알아야 하나니,
삼승이 3기(三祈)에야 세간을 벗어나 성불한다는 것은 방편의 가르침인 권방편교(權方便教)일 뿐이며,
이 가르침은 실다운 실법(實法)에 근거한 것이므로 원력(願力)으로 성불하는 등과 같은 일은 설하지 않는 것이다.
설사 원력으로 행을 성취한다 할지더라도, 역시 실다움을 잡아 성불하기 때문에 원력으로 잠시 성취하는 것은 설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알아야 하나니, 10주에서 처음의 지위에 들어가는 초입위(初入位)의 보살은 그대로 5위 모두를 닦는 것이니, 10주의 행상(行相)에 공통으로 10행ㆍ10회향ㆍ10지 등의 법문이 있는 것은 이러한 때문이다.
그러므로, 10주 중 7주ㆍ8주에서는 자비와 지혜를 닦고,
9주에서는 법사위(法師位)가 되며,
10주 안에서는 자비와 지혜가 원만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오위(五位)의 행상(行相)이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선재동자의 10주에서의 선지식은 하나하나의 지혜 경계가 모두 무극(無極)이며서도 다만 법신의 대지혜와 대자비에서 다함이 무진(無盡)의 법(法)이 갖추어져 있는 것을 근거로 하여서, 반드시 오위의 행문을 세우는 것이니,
총체적으로는 하나의 마음(一心)ㆍ하나의 지혜(一智)ㆍ하나의 때(一時)의 지혜가 평등하고 변만한 소행(所行)의 도(道)인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을 일으켜서 닦아 나아가는 신진수행자(起信進修行)는 대지혜의 경계에서 삼세나 멀고 가까움이나,
늦고 빠름 등의 견해를 짓지 말아야 하나니,
이는 지혜의 경계를 어기기 때문이며,
근본대지혜의 경계를 잃어서 정식(情識)을 쫓는 것이기 때문이며,
상(相)을 따라 굴러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서 제4의 미혹을 끊는 단계를 회통하여 마치나니,
이같은 5위의 미혹을 끊는 단계는 마치 허공과 같이 시(時, 정해진 때)가 없는 것이며,
마치 원경(圓鏡, 거울)이 바로 비추어내는 것과 같으며,
마치 마니 보배가 능히 온갖 색을 따라 나타낼 수 있는 것과 같으며,
한 방울의 물이 대해(大海)에 들어가면, 동등하여지면서 둘이 없는 것과 같은 것으며,
마치 대지혜의 원경(圓鏡, 거울)으로 널리 모든 작위에 인(印)을 쳐서 무작용(無作用)의 대용(大用)을 모두 성취하기 때문이니,
삼세가 없는 일시(一時)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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