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經卷第二十 十行品第二十一之一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 三藏沙門(삼장사문) 實叉難陀 譯(실차난타 역)
21. 십행품(十行品) ① ㅡ 9 ㅡ 제팔(第八) 난득행(難得行)
ㅡ제팔(第八), 얻기 어려운 난득행(難得行)은 원(願) 바라밀을 체(體)로 삼는다.
ㅡ이 지위에서의 10선근을 밝힌 분(分)
佛子(불자) 何等(하등) 爲菩薩摩訶薩(위보살마하살) 難得行(난득행)
此菩薩(차보살) 成就難得善根(성취난득선근) 難伏善根(난복선근) 最勝善根(최승선근)
不可壞善根(불가괴선근) 無能過善根(무능가과선근) 不思議善根(불사의선근)
無盡善根(무진선근) 自在力善根(자재력선근) 大威德善根(대위덕선근)
與一切佛(여일체불) 同一性善根(동일성
불자들이여, 어떠한 것을 보살마하살의 얻기 어려운 난득행(難得行)이라 하는가?
이 보살이 얻기 어려운 난득(難得)의 선근(善根)과 조복하기 어려운 난복(難伏)의 선근(善根)과
가장 수승한 최승(最勝)의 선근과 깨뜨릴 수 없는 불가괴(不可壞)의 선근과
보다 나을 이가 없는 무능과(無能過)의 선근과 상상할 수 없는 불사의(不思議)의 선근과
무진(無盡)의 선근과 힘이 자유자재한 자재력(自在力)의 선근과 대위덕(大威德)의 선근 등을
모두 성취(成就)하여서, 모든 부처님들과 더불어 성품이 같은 동일성(同一性)이 되는 것입니다.
ㅡ괴로움에 처하면서도 싫어함이 없는 선근수행(善根修行)으로 이익을 얻음을 밝힌 분
此菩薩(차보살) 修諸行時(수제행시) 於佛法中(어불법중) 得最勝解(득최승해)
於佛菩提(어불보리) 得廣大解(득광대해) 於菩薩願(어보살원) 未曾休息(미증휴식)
盡一切劫(진일체겁) 心無疲倦(심무피권) 於一切苦(어일체고) 不生厭離(불생염리)
一切衆魔(일체중마) 所不能動(소불능동) 一切諸佛(일체제불) 之所護念(지소호념)
具行一切(구행일체) 菩薩苦行(보살고행) 修菩薩行(수보살행) 精勤匪懈(정근비해)
於大乘願(어대승원) 恒不退轉(항불퇴전)
이 보살이 여러 제행(諸行)을 닦을 때, 불법 가운데에서, 가장 수승한 이해의 최승해(最勝解)를 얻으며,
불보리(佛菩提)에서 광대해(廣大解)를 얻으며, 보살의 서원에서 일찍이 잠시도 쉬지 않고
일체의 겁이 다하도록 마음으로 피로(疲)하다거나 싫증(倦)을 내지 않으며,
일체의 모든 고통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자 하는 생각을 내지 않으며,
일체의 모든 중마(衆魔, 마군들, 탐 진 치)들이 능히 움직일 수가 없으며,
모든 부처님들께서 호념(護念)하여 주시며, 일체의 모든 보살의 고행(苦行)을 갖추어 행하며,
보살행을 닦음에 있어서 꾸준하여서, 나태하여 게으르지 않으며,
대승원(大乘願, 대승의 서원)에서 항상 물러나지 않는 불퇴전(不退轉)인 것입니다.
ㅡ불법 가운데에서 최승해(最勝解)를 얻어야 되는데, 공부를 안 했으면 탐 진 치 시키는 대로 그냥하면 되겠는데, 탐 진 치가 계속 발동을 하면, 그래도 들은 것은 있고 배운 것이 있어서 갈등하는 겁니다. 갈등하는 사람은 그런대로 괜찮은 사람이지만, 아예 갈등도 없이 그냥 탐 진 치 쪽으로 엎어져버리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거든요.ㅡ무비스님
是菩薩(시보살) 安住(안주) 此難得行已(차난득행이) 於念念中(어념념중)
能轉(능전) 阿僧祗劫生死(아승지겁생사) 而不捨(이불사) 菩薩大願(보살대원)
若有衆生(약유중생) 承事供養(승사공양) 乃至見聞(내지견문)
皆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개어아뇩다라삼먁삼보리) 得不退轉(득불퇴전)
이 보살이 이 얻기 어려운 난득행(難得行)에 편안히 안주하여서는,
염념(念念, 매 순간)마다 능히 아승기겁의 생사(生死)에서 구르면서도 보살의 대원을 버리지 않나니,
만약 어떤 중생이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거나, 견문(見聞, 보고 듣기)만을 할지라도
그 모두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퇴전하지 않는 불퇴전(不退轉)을 얻을 수 있게 합니다.
ㅡ중생계를 버리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음을 밝힌 분.
此菩薩(차보살) 雖了衆生非有(수요중생비유) 而不捨(이불사) 一切衆生界(일체중생계)
譬如船師(비여선사) 不住此岸(부주차안) 不住彼岸(부주피안) 不住中流(불주중류)
而能運度(이능운도) 此岸衆生(차안중생) 至於彼岸(지어피안) 以往返無休息故(이왕반무휴식고)
이 보살이 비록 중생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닌 중생비유(衆生非有)라는 것을 알지만,
일체의 모든 중생계(衆生界)를 버리지 않나니,
비유하자면, 마치 뱃사공이 차안(此岸, 이 언덕)에 머물지도 않고, 피안(彼岸, 저 언덕)에 머물지도 않고,
중류(中流)에 머물지도 않지만,
차안(此岸, 이 언덕)의 중생들을 피안(彼岸, 저 언덕)으로 건너서 이를 수 있게 하는 것은,
갔다가 돌아오는 왕반(往返)을 쉬지 않고 계속하는 까닭입니다.
ㅡ중생비유(衆生非有), 공관(空觀)인 것으로, 공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고,
‘아직 중생은 탐 진 치 3독으로 가득찬 중생일 뿐이라고 보는, 거짓된 것으로 보는 것은 가관(假觀)이고,
그래도 중생은 불성을 가진 본래 부처이고, 금이 아직 제련되 않았을지라도 금으로, 보는 것은 진관(眞觀)입니다.
즉, 가관(假觀)은 모든 현상은 여러 인연의 일시적인 화합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공(空)한 것이라서 실재(實在)하는 것이 아닌, 임시적인 가(假)의 존재라는 것이고,
공관(空觀)은 만유와 현상이 마치 거울에 나타난 허상과 같은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ㅡ용수(龍樹, 나가르주나)보살이 확립한 공관(空觀)ㆍ가관(假觀)ㆍ중관(中觀) 삼관법(三觀法)이 중국으로 전해져서 수나라 때 천태대사(538년∼597년) 지의(智顗-智者)가 세운 천태삼관(天台三觀)의 모태가 됐다. 천태삼관(天台三觀)을 ‘일심삼관(一心三觀)’이라 일컫는데, 즉, 공관(空觀)ㆍ가관(假觀)ㆍ중관(中觀)을 말한다. 이러한 삼관은 차차 관(觀)이 깊어지는 단계를 말하는데, 공(空)ㆍ가(假)ㆍ중(中) 세 가지 진리를 한마음 가운데서 원만하게 체득하는 것을 일심삼관이라 한다.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亦復如是(역부여시) 不住生死(불주생사) 不住涅槃(부주열반)
亦復不住(역부불주) 生死中流(생사중류) 而能運度(이능운도) 此岸衆生(차안중생)
置於彼岸(치어피안) 安穩無畏無憂惱處(안온무외무우뇌처)
亦不於衆生數(역불어중생수) 而有所着(이유소착) 不捨一衆生(불사일중생)
着多衆生(착다중생) 不捨多衆生(불사다중생) 着一衆生(착일중생)
不增衆生界(부증중생계) 不減衆生界(불감중생계) 不生衆生界(불생중생계)
不滅衆生界(불감중생계) 不盡衆生界(불진중생계) 不長衆生界(불장중생계)
不分別衆生界(불분별중생계) 不二衆生界(불이중생계)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이 생사에 머물지도 않고, 열반에 머물지도 않고, 생사의 흐름 가운데에도 머물지 않으며,
차안(此岸, 이 언덕)의 중생을 안온하고 두려움이 없고 근심과 번뇌가 없는 피안(彼岸, 저 언덕)으로 건네어 주지만
(건네어 준) 중생수(衆生數)에 집착하지도 않으며, 한 중생을 버리고 여러 중생에 집착하지도 않으며,
여러 중생을 버리고 한 중생에 집착하지도 않으며, 중생계를 늘리지도 않는 부증(不增)이며,
중생계를 감하지도 않는 불감(不減)이며, 중생계가 생기게 하지도 않는 불생(不生)이며,
중생계를 멸하게 하지도 않는 불멸(不滅)이며, 중생계가 다하지도 않는 불진(不盡)이며,
중생계가 더욱 자라지도 않는 불장(不長)이며, 중생계를 분별하지도 않는 불분별(不分別)하며,
중생계를 둘로 나누지도 않는 불이(不二)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ㅡ보살이 중생계에 들어가서 무집착으로 항상 세간에서 중생을 제도함을 폐하지 않음을 밝힌 분
何以故(하이고) 菩薩(보살) 深入衆生界如法界(심입중생계여법계)
衆生界法界(중생계법계) 無有二(무유이) 無二法中(무이법중) 無增無減(무증무감)
無生無滅(무생무멸) 無有無無(무유무무) 無取無依(무취무의) 無着無二(무착무이)
何以故(하이고) 菩薩(보살) 了一切法(료일체법) 法界無二故(법계무이고)
왜냐하면, 보살은 중생계에 깊이 들어가기를 마치 법계와 같이 하나니,
중생계와 법계가 둘이 아닌, 무유이(無有二)한 것이요,
둘이 없는 법 무이법(無二法)에는 더함이 없는 무증(無增)이요, 감함도 없는 무감(無減)이요,
무생(無生)이요, 무멸(無滅)이요, 있음도 없고 없음도 없는 무유무무(無有無無)요,
취함도 없는 무취(無取)요, 의지함도 없는 무의(無依)요,
집착함도 없는 무착(無着)이요, 둘이 아닌 무이(無二)이기 때문이니,
왜냐 하면 보살은 일체법이 법계인 것으로, 무이(無二)라는 것을 요지하여 잘 알기 때문입니다.
菩薩(보살) 如是以善方便(여시이선방편) 入深法界(입심법계) 住於無相(주어무상)
以淸淨相(이청정상) 莊嚴其身(장엄기신) 了法無性(료법무성)
而能分別(이능분별) 一切法相(일체법상) 不取衆生(불취중생) 而能了知(이능료지)
衆生之數(중생지수) 不着世界(불착세계) 而現身佛刹(이현신불찰)
不分別法(불분별법) 而善入佛法(이선입불법) 深達義理(심달의리) 而廣演言敎(이광연언교)
了一切法(요일체법) 離欲眞際(이욕진제) 而不斷菩薩道(이부단보살도)
不退菩薩行(불퇴보살행) 常勤修習(상근수습) 無盡之行(무진지행)
自在入(자재입) 於淸淨法界(어청정법계)
보살은 이와 같은 훌륭한 선방편(善方便)으로 법계에 깊이 들어가서는,
모양이 없는 무상(無相)에 머물러 청정상(淸淨相, 훌륭한 모습)으로 그 몸을 장엄하며,
법에는 성품이 없어서 무성(無性)이라는 것을 알지만 일체법의 상(相)을 능히 분별하며,
중생을 취하지 않으나 중생수를 능히 요지(了知)하여 잘 알며,
세계에 집착하지 않으나, 불찰(佛刹)에 몸을 나투어 현신(現身)하며,
법을 분별하지 않으나, 불법에 선입(善入)하여 잘 들어가며,
의리(義理, 이치)를 깊이 통달하여 언교(言敎, 가르침의 말)을 자세히 연설하며,
이욕(離欲, 탐욕을 여읨)하여 진실의 진제(眞際)를 알아서
보살도를 부단(不斷)하여서 보살행을 행함에서 물러나지 않으며,
항상 부지런히 다함이 없는 무진행(無盡行)을 수습하여 청정한 법계에 자재하게 들어갑니다.
ㅡ중도(中道)를 말하는 것으로, 누구보다도 불법을 소상하게 잘 알지만, 법을 분별하지 않고
불법에 잘 들어가는 것이 중도입니다.
譬如鑽木(비여찬목) 以出於火(이출어화) 火事無量(화사무량) 而火不滅(이화불멸)
菩薩(如是(보살여시) 化衆生事(화중생사) 無有窮盡(무유궁진) 而在世間(이재세간) 常住不滅(상주불멸)
비유하자면, 나무를 모아서 불을 일으켰을 때, 불이 무량하게 타올라서 꺼지지 않는 것과 같이,
보살도 그와 같아서, 중생을 교화하는 일이 무진하여 항상 세간에 머물러 있으면서 멸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非究竟(비구경) 非不究竟(비불구경) 非取非不取(비취비불취)
非依非無依(비의비무의) 非世法非佛法(비세법비불법) 非凡夫非得果(비범부비득과)
구경도 아닌 비구경(非究竟)이요, 구경함이 아닌 것도 아닌 비불구경(非不究竟)이요,
취함도 아닌 비취(非取)요, 취하지 않음도 아닌 비불취(非不取)요,
의지하지 않는 비의(非依)요, 의지하지 않는 것도 아닌 비무의(非無依)요,
세상 법도 아닌 비세법(非世法)이요, 부처님의 법도 아닌 비불법(非佛法)이요,
범부도 아닌 비범부(非凡夫)요, 과를 얻은 것도 아닌 비득과(非得果)입니다.
ㅡ이행쌍차(二行雙遮), 雙遮雙照(쌍차쌍조), 2행을 쌍으로 부정하는 중도입니다.
ㅡ 설하지 않고서도 법을 설함이 자재로움을 밝힌 분
菩薩成就(보살성취) 如是難得心(여시난득심) 修菩薩行時(수보살행시) 不說二乘法(불설이승법)
不說佛法(불설불법) 不說世間(불설세간) 不說世間法(불설세간법) 不說衆生(불설중생)
不說無衆生(불설무중생) 不說垢(불설구) 不說淨(불설정)
보살이 이러하게 얻기 어려운 마음의 난득심(難得心)을 성취하여서 보살행을 닦을 때에는
이승법(二乘法)도 설하지도 않고, 부처님의 불법을 설하지도 않고, 세간법을 설하지도 않고,
중생이라 말하지도 않고, 무중생(無衆生)이라 말하지도 않고, 구(垢, 때)를 설하지도 않고,
정(淨, 깨끗한 것)도 설하지 않나니,
何以故(하이고) 菩薩(보살) 知一切法(지일체법) 無染無取(무렴무취) 不轉不退故(부전불퇴고)
菩薩(보살) 於如是(어여시) 寂滅微妙甚深最勝法中(적멸미묘심심최승법중) 修行時(수행시)
亦不生念(역부생념) 我現修此行(아현수차행) 已修此行(이수차행) 當修此行(당수차행)
不着蘊界處(불착온계처) 內世間 外世間(내세간외세간) 所起大願(소기대원)
諸波羅蜜(제바라밀) 及一切法(급일체법) 皆無所着(개무소착)
왜냐하면, 보살은 일체법은 (절대적인 본성은) 물들지도 않은 무염(無染)이요, 취함도 없는 무취(無取)요, 전변하여 물러나지도 않는 불전불퇴전(不轉不退)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니, 보살이 이러하게 적멸(寂滅)하고, 미묘(微妙)하고 매우 깊은 심심(甚深)한 최승법(最勝法) 가운데에서 수행할 때,‘내가 현재 이 행을 닦고 있으며, 이미 이 행을 닦았으며, 장차 이 행을 닦으리라’는 생각을 내지 않으며, 온(薀, 오온)ㆍ계(界, 18계)ㆍ처(處, 12처)에 집착하지도 않으며, 내세간(內世間) 외세간(外世間)과 일으킨 바의 대원(大願)과 바라밀과 일체법의 모두에 집착이 없는 무소착(無所着)이기 때문이요
ㅡ보통 사람들은 오온(몸과 마음)을 “나” 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지만,
진여불성의 참마음은 온(薀, 오온)ㆍ계(界, 18계)ㆍ처(處, 12처)과 관계없는 것입니다.
何以故(하이고) 法界中(법계중) 無有法名(무유법명) 向聲聞乘(향성문승)
向獨覺乘(향독각승) 無有法名(무유법명) 向菩薩乘(향보살승)
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향아뇩다라삼먁삼보리)
無有法名(무유법명) 向凡夫界(향범부계) 無有法名(무유법명) 向染向淨(향염향정)
向生死(향생사) 向涅槃(열반) 何以故(하이고) 諸法無二(제법무이) 無不二故(무불이고)
왜냐 하면 법계에는 어떠한 법은 성문승을 향하는 것이고,(성문승의 법이라고 정해진 것이 아니며)
어떤 법은 독각승을 향하는 것이라고 (정하여) 이름하는 것이 없으며,
어떤 법은 보살승을 향하는 것이고, 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향하는 것이라고 (정하여) 이름하는 것이 없으며,
어떤 법은 범부의 세계에 향하는 것이라 (정하여) 이름하는 것이 없으며,
어떤 법은 물듦에 향하는 것이고, 어떤 법은 깨끗함에 향하는 것이고, 어떤 법은 생사에 향하는 것이고,
어떤 법은 열반을 향하는 것이라고 (정하여) 이름하는 것도 없는 까닭이니,
왜냐하면, 제법은 (제법의 본성은) 둘도 없아닌 무이(不二)요, 둘이 아님도 없는 무불이(無不二)이 때문입니다.
ㅡ보통, 자기 마음에 들면 정(淨)이고,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염(染)인 것입니다.ㅡ무비스님
譬如虛空(비여허공) 於十方中(어시방중) 若去來今(약거래금) 求不可得(구불가득)
然非無虛空(연비무허공) 菩薩如是(보살여시) 觀一切法(관일체법) 皆不可得(개불가득)
然非無一切法(연비무일체법) 如實無異(여실무이) 不失所作(불실소작)
普示修行(보시수행) 菩薩諸行(보살제행) 不捨大願(불사대원) 調伏衆生(조복중생)
轉正法輪(전정법륜) 不壞因果(불괴인과) 亦不違於平等妙法(역불위어평등묘법)
普與三世(보여삼세) 諸如來等(제여래등) 不斷佛種(부단불종) 不壞實相(불괴실상)
深入於法(심입어법) 辯才無盡(변재무진) 聞法不着(문법불착) 至法淵底(지법연저)
善能開演(선능개연) 心無所畏(심무소외) 不捨佛住(불사불주) 不違世法(불위세법)
普現世間(보현세간) 而不着世間(이불착세간)
비유하자면, 마치 허공은 시방에서 과거나 미래나 현재를 구하고자 하여도 얻을 수 없는 불가득이지만,
그러나 허공이 없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이,
보살 역시도 그와 같아서, 일체법 모두가 얻을 수 없는 불가득이라는 것을 관찰하지만,
그러나 일체법은 없는 것도 아니며, 여실(如實)하고 무이(無異)하여 다르지 않은 않으며,
지은 것들을 잃지 않는 불실소작(不失所作)인 것과 같이,
보살의 여러 행(6바라밀ㆍ10바라밀ㆍ4섭법ㆍ4무량심 등)들을 수행하는 것을 보이며,
대원(大願)을 버리지 않고 중생들을 조복하며, 정법륜(正法輪)을 굴리며, 인과(因果)를 파괴하지 않으며,
또한 평등한 묘법(妙法)도 위배하지 않아서,
과거ㆍ현재ㆍ미래, 삼세의 모든 여래들과 더불어 평등하며, 부처의 불종(佛種)을 끊지 않으며,
진실한 실상(實相)을 파괴하지도 않으며, 법에 깊이 들어가서 변재가 무진하며,
문법(聞法)하고서 집착하지 않으나 깊은 법의 근원인 법연저(法淵底)에 이르러서
능히 개연(開演)하여 잘 연설하는 그 마음에 두려움이 없으며, 부처님 머무는 곳을 버리지 않으나, (불소에 머무나)
세법(世法)을 어기지도 않아서 세간에 두루 나타나지만 세간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ㅡ 보살행을 행하면서도 과보를 구하지 않음을 밝힌 분
菩薩(보살) 如是成就(여시성취) 難得智慧心(난득지혜심) 修習諸行(수습제행)
於三惡趣(어삼악취) 拔出衆生(발출중생) 敎化調伏(교화조복)
安置三世(안치삼세) 諸佛道中(제불도중) 令不動搖(영불동요)
보살이 이렇게 얻기 어려운 난득(難得)의 지혜심(智慧心)을 성취하고, 모든 제행(諸行)을 수습하여서,
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취(三惡趣, 삼악도)에서 중생들을 건져내어 교화하고 조복하여서
삼세 부처님의 불도에 편안히 안치하여 동요하지 않게 합니다.
復作是念(부작시념) 世間衆生(세간중생) 不知恩報(부지은보) 更相讐對(갱상수대)
邪見執着(사견집착) 迷惑顚倒(미혹전도) 愚癡無智(우치무지) 無有信心(무유신심)
隨逐惡友(수축악우) 起諸惡慧(기제악혜) 貪愛無明(탐애무명) 種種煩惱(종종번뇌)
皆悉充滿(개실충만) 是我所修(시아소수) 菩薩行處(보살행처)
다시 생각하기를 ‘세간의 중생들이 은혜 갚는 것을 알지 못하고, 더욱이 원수와 같이 대하며,
삿된 사견(邪見)에 집착하여서 미혹되어 전도(顚倒) 되었으며,
우치(愚癡)하고 어리석고 무지(無智)하여 지혜가 없으며, 신심이 없으며,
나쁜 악우(惡友)를 따라 온갖 악혜(惡慧, 나쁜 지혜)를 일으키며,
탐애(貪愛, 탐욕과 애착)와 무명으로 갖가지 번뇌로서 가득하였으니, 이러한 곳이 내가 보살행을 닦을 곳이요,
設有知恩(설유지은) 聰明慧解(총명혜해) 及善知識(급선지식) 充滿世間(충만세간)
我不於中(아불어중) 修菩薩行(수보살행) 何以故(하이고) 我於衆生(아어중생) 無所適莫(무소적막)
無所冀望(무소기망) 乃至不求(내지불구) 一縷一毫(일루일호) 及以一字(급이일자)
讚美之言(찬미지언) 盡未來劫(진미래겁) 修菩薩行(수보살행)未曾一念(미증일념)
自爲於己(자위어기) 但欲度脫(단욕도탈) 一切衆生(일체중생) 令其淸淨(영기청정) 永得出離(영득출리)
만약 은혜를 알고 총명하고 지혜가 있는 이들과 선지식들이 충만한 세간이라면,
나는 그러한 세간에서는 보살행을 닦지 않을 것이니,
왜냐 하면 나는 중생에 대하여 그러하게 맞추어(適) 친할 것도, 맞추지 않아서(莫) 친하지 않을 것도 없어서,
기망(冀望, 바라고 기대함)할 것도 없으며,
또한 일호(一毫, 하나의 털)도 일루(一縷,한 올의 실) 만큼의 찬미언(讚美言, 칭찬하는 말)을 구하지도 않고,
다만, 오는 미래겁(未來劫)이 다하도록 보살행을 닦아서 일체의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여 해탈시켜서
그들로 하여금 영원히 출리(出離)를 얻게 하고자 하기 때문이다’라고 (생각) 합니다.
何以故(하이고) 於衆生中(어중생중) 爲明導者(위명도자) 法應如是(법응여시)
不取不求(불취불구) 但爲衆生(단위중생) 修菩薩道(수보살도)
令其得至(영기득지) 安穩彼岸(안온피안) 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성아뇩다라삼먁삼보리)
是名菩薩摩訶薩(시명보살마하살) 第八(제팔) 難得行(난득행)
왜냐하면, 중생들 가운데에서 명도자(明導者, 지도자, 부처님)의 법이 으레히 그러한 때문이며,
불취(不取)하여 집착하지도 않고, 불구(不求)하여 구하고자 하는 바도 없이,
다만 중생들을 위하여 보살도(菩薩道)를 닦아서 그들로 하여금 안온한 피안(彼岸, 저 언덕)에 이르게 하여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게 하고자 할 뿐인 때문이니,
이러한 것을 보살마하살의 여덟 번째 얻기 어려운 행의 난득행(難得行)이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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