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經卷第二十 十行品第二十一之一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 三藏沙門(삼장사문) 實叉難陀 譯(실차난타 역)
21. 십행품(十行品) ① ㅡ 7 ㅡ 제육(第六) 선현행(善現行)
ㅡ제육(第六) 선현행(善現行)은 반야(般若) 바라밀을 체(體)로 삼는다.
ㅡ보살이 마음과 경계의 일체법이 무성(無自性)이고, 무의(無依)라는 것을 요달하고,
중생을 교화하여 함께 의지처를 지음을 밝힌 분
佛子何等(불자하등) 爲菩薩摩訶薩(위보살마하살) 善現行(선현행) 此菩薩(차보살)
身業淸淨(신업청정) 語業淸淨(어업) 意業淸淨(의업) 住無所得(주무소득)
示無所得(시무소득) 身語意業(신어의업) 能知三業(능지삼업) 皆無所有(개무소유)
無虛妄故(무허망고) 無有繫縛(무유계박) 凡所示現(범소시현) 無性無依(무성무의)
불자들여, 어떠한 것이 보살마하살의 잘 나타나는 행의 선현행(善現行)이라 하는 것인가?
이 보살은 몸으로 짓는 신업(身業)이 청정하고, 말로 짓는 어업(語業)이 청정하고,
뜻으로 짓는 의업(意業)이 청정하며,
얻은 것이 없는 무소득(無所得)에 머물러서 무소득의 신어의(身語意)의 삼업(三業)을 보이나,
삼업(三業)이 모두 없는 무소유(無所有)이며, 허망한 것이라서, 얽매임과 속박이 없는 무계박(無繫縛)이며,
무릇 나타내 보이는 것들 모두가 성품이 없는 무성(無性)이고 의지함도 없는 무의(無依)라는 것을 능히 압니다.
住如實心(주여실심) 知無量心自性(지무량심자성)
知一切法自性(지일체법자성) 無得無相(무득무상) 甚深難入(심심난입)
실제와 같은 여실(如實)한 마음에 머물러, 무량한 마음의 자성(自性)을 알며,
일체법의 자성(自性)을 알지만, 얻은 것도 없고 형상도 없는 무득무상(無得無相)이요,
매우 깊은 심심(甚深)한 것이라서 들어가기가 어려운 것이라,(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라)
住於正位(주어정위) 眞如法性(진여법성) 方便出生(방편출생) 而無業報(이무업보)
不生不滅(불생불멸) 住涅槃界(주열반계) 住寂靜性(주적정성) 住於眞實(주어진실)
無性之性(무성지성) 言語道斷(언어도단) 超諸世間(초제세간) 無有所依(무유소의)
入離分別(입리분별) 無縛着法(무박착법) 入最勝智( 입최승지 ) 眞實之法(진실지법)
入非諸世間(입비제세간) 所能了知(소능료지) 出世間法(출세간법)
此是菩薩(차시보살) 善巧方便(선교방편) 示現生相(시현생상)
바른 지위의 정위(正位)의 진여법성(法性)에 머물러서 방편으로서 교화하지만)
업보가 없는 무업보(無業報)라서 불생불멸(不生不滅)하며, 열반계에 머물며,
고요한 적정성(寂靜性)에 머물며, 진실한 무성(無性)의 성(性, 성품)에 머무르며,
언어의 길이 끊어진 언어도단(言語道斷)이며, 세간을 초월하여 의지하는 바가 없는 무소의(無所依)이며,
분별을 여의어서 집착이 없는 무박착법(無縛着法, 속박이 없는 법)에 들어갔으며,
최승지(最勝智)의 진실한 법에 들어갔으며,
모든 세간이 능히 알 수 있는 것이 아닌 출세간법(出世間法)에 들어갔나니,
이러한 것을 보살의 교묘한 선교방편(善巧方便)으로 생상(生相, 나는 모양)을 나타내는 것이라 합니다.
ㅡ본질과 사상, 현실과 현상
佛子(불자) 此菩薩(차보살) 作如是念(작여시념) 一切衆生(일체중생) 無性爲性(무성위성)
一切諸法(일체제법) 無爲爲性(무위위성) 一切國土(일체국토) 無相爲相(무상위상)
一切三世(일체삼세) 唯是言說(유시언설) 一切言說(일체언설) 於諸法中(어제법중)
無有依處(무유의처) 一切諸法(일체제법) 於言說中(어언설중) 亦無依處(역무의처)
불자들이여, 이 보살이 이와 같이 생각하나니,
‘일체 중생이 성품이 없음으로서 성품을 삼는 무성위성(無性爲性)이고,
일체의 모든 법이 함이 없음으로서 성품을 삼는 무위위성(無爲爲性)이고,
일체의 모든 국토가 형상 없음으로서 모양을 삼는 무상위상(無相爲相)이며,
일체의 모든 삼세가 오로지 언설(言說)일 뿐이니,
일체의 모든 언설이 제법(諸法) 가운데에서 의지함이 없는 무의처(無依處)이나,
일체의 모든 제법(諸法) 또한 의지함이 없는 무의처(無依處)라 합니다.
ㅡ아주 이율배반적인 상이성적안 이론인 그것이 언어의 한계이지만, 사실은 말과 생각의 한계 안에 존재하는 것이라서,
우리의 생각과 개념을 말로서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것 뿐이지만, 그것은 실체가 없다는 뜻입니다.
菩薩(보살) 如是解一切法(여시해일체법) 皆悉甚深(개실심심) 一切世間(일체세간)
皆悉寂靜(개실적정) 一切佛法(일체불법) 無所增益(무소증익)
佛法(불법) 不異世間法(불이세간법) 世間法(세간법) 不異佛法(불이불법)
佛法世間法)불법세간법) 無有雜亂(무유잡란) 亦無差別(역무차별)
보살은 이와 같이 일체법 모두가 심심(甚深)하여 매우 깊다는 것을 알며,
일체의 모든 세간이 적정(寂靜)하여서 고요하고,
일체의 모든 불법(佛法)이 더함이 없는 무소증익(無所增益)이며,
불법이 세간법과 다르지 않은 불이세간법(不異世間法)이고,
세간법이 불법과 다르지 않은 불이불법(不異佛法)이고,
불법과 세간법이 서로 섞여서 혼잡하지도 않는 무잡란(無雜亂)이며,
또한 무차별(無差別)하다는 것을 이해하나니,
了知法界(요지법계) 體性平等(체성평등) 普入三世(보입삼세)
永不捨離(영불사리) 大菩提心(대보리심) 恒不退轉(항불퇴전)
化衆生心(화중생심) 轉更增長(전갱증장) 大慈悲心(대자비심)
與一切衆生(여일체중생) 作所依處(소작의처)
법계의 체성(體性)이 평등함을 요지(了知)하여 분명하게 알아서 삼세에 두루 들어가며,
대보리심(大菩提心)을 영원히 버리지 않으며,
중생을 교화하는 마음이 항상 불퇴전(不退轉)하며,
대자비심(大慈悲心)이 더욱 증장하여 일체 중생들이 의지할 수 있는 작의처(所依處)가 됩니다.
ㅡ이치와 현상으로 볼 때에는 아무것도 존재 하지 않는 것 같으나,
중생을 제도하는 입장에서는 분명히 대보리심의 대자비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菩薩(보살) 爾時(이시) 復作是念(부작시념)
我不成熟衆生(아불성숙중생) 誰當成熟(수당성숙) 我不調伏衆生(아불조복중생) 誰當調伏(수당조복)
我不敎化衆生(아불교화중생) 誰當敎化(수당교화) 我不覺悟衆生(아불각오중생) 誰當覺悟(수당각요)
我不淸淨衆生(아불청정중생) 誰當淸淨(수당청정) 此我所宜(차아소의) 我所應作(아소응작)
보살이 이 때에 다시 생각하기를 ‘내가 중생을 성숙시키지 않으면 누가 성숙시킬 것이며,
내가 중생을 조복시키지 않으면 누가 조복시킬 것이며,
내가 중생을 교화하지 않으면 누가 교화할 것이며,
내가 중생을 각오(覺悟)하여 깨우치게 하지 않으면 누가 각오하게 할 것이며,
내가 중생을 청정하게 하지 않으면 누가 청정하게 할 것인가!
이러함은 당연히 내가 하여야 할 바이니, 내가 반드시 하리라’고 합니다.
ㅡ보살의 경지는 불이(不二)로 대변될 수 있어서, 깨달음을 얻고 중생을 돌아보지 않는 자는 깨달은 자로 볼수 없고,
실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 상불경
復作是念(부작시념) 若我自解(약아자해) 此甚深法(차심심법)
唯我一人(유아일인) 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어아뇩다라삼먁삼보리) 獨得解脫(독득해탈)
而諸衆生(이제중생) 盲冥無目(맹명무목) 入大險道(입대험도) 爲諸煩惱(위제번뇌)
之所纏縛(지소전박) 如重病人(여중병인) 恒受苦痛(항수고통) 處貪愛獄(처탐애옥)
不能自出(불능자출) 不離(불리) 地獄餓鬼畜生(지옥아귀축생) 閻羅王界(염라왕계)
不能滅苦(불능멸고) 不捨惡業(불사악업) 常處癡闇(상처치암) 不見眞實(불견진실)
輪廻生死(윤회생사) 無得出離(무득출리) 住於八難(주어팔난) 衆垢所着(중구소착)
種種煩惱(종종번뇌) 覆障其心(부장기심) 邪見所迷(사견소미) 不行正道(불행정도)
또한 다시 생각하기를 ‘만약 나 혼자만이 이렇게 심오한 심심법(甚深法)을 이해하여서 안다면,
오로지 나 한 사람만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해탈할 것이나,
이러한 모든 중생들은 눈이 멀어 캄캄한 맹명무목(盲冥無目)이라서 매우 험난한 길에 들어갈 것이며,
모든 번뇌에 전박(纏縛, 속박)되어서 마치 중병에 걸린 사람과 같이 항상 고통을 받을 것이며,
애옥(愛獄, 탐애의 감옥)으로부터 스스로 헤어나지 못할 것이요,
지옥ㆍ아귀ㆍ축생ㆍ염라왕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며,
항상 어리석음으로 어두운 치암(癡闇)에 있으면서 진실(眞實)을 보지 못할 것이요,
생사에 윤회(輪廻)하여 헤매이면서 출리(出離, 벗어남)를 얻지 못할 것이요,
팔난(八難) 가운데에 있으면서 중구(衆垢, 온갖 더러움)에 집착하여서
갖가지의 번뇌가 그 마음을 덮어 가리워서 미혹하여 사견(邪見)에 빠져서
바른 정도(正道)를 행하지 못하리라’고 합니다.
ㅡ팔난(八難); 부처를 보지 못하고 불법을 들을 수 없는 여덟 가지의 어려운 상황
* 고통이 심해서 불법을 듣지 못하는,
① 재지옥난(在地獄難, 지옥), 큰 죄를 지어서 지옥에 떨어져 고통이 극심하여 수행하지 못하는 어려움.
② 재축생난(在畜生難, 축생),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 축생으로 태어나서 고통스럽게 살아가기에 불법을 들을 수가 없는 것.
③ 재아귀난(在餓鬼難, 아), 전생의 죄로 아귀에 태어나 부처님을 보거나 불법을 들을 수 없는 것과
*즐거움이 너무 많아서 불법을 듣지 않는,
④ 재장수천난(在長壽天難, 장수천), 장수천에는 즐거움이 너무 많아 그것을 즐기느라 불법을 듣지 못하는 것.
⑤ 재울단월난(在鬱單越難, 울단월), 수미산의 북쪽에 있는 최상의 세계로 이곳 사람들의 수명은 일천 세이고,
⑥ 농맹음아난(聾盲音啞難), 신체적 결함으로 수행하기가 어려운 것.
⑦ 세지변총난(世智辯聰難), 세상일에는 똑똑하고 총명하지만 세상의 지혜를 초월한 불법은 알아듣지 못하는 것.
⑧ 불전불후난(佛前佛後難), 부처님이 계시지 않으므로 불법을 직접 들을 수 없는 어려움.
ㅡ중생을 제도함이 미진하니, 스스로 열반의 증득을 취하지 않음을 밝힌 분
菩薩(보살) 如是觀諸衆生(여시관제중생) 作是念言(작시염언) 若此衆生(약차중생)
未成熟未調伏(미성숙미조복) 捨而取證(사이취증) 阿耨多羅三藐三菩提(아뇩다라삼먁삼보리)
是所不應(시소불응) 我當先化衆生(아당선화중생) 於不可說不可說劫(어불가설불가설겁)
行菩薩行(행보살행) 未成熟者(미성숙자) 先令成熟(선령성숙) 未調伏者(미조복자) 先令調伏(선령조복)
보살이 이러하게 중생들을 관찰하고서는 이렇게 생각하나니,
‘이 중생들이 미성숙(未成熟)하였으며, 미조복(未調伏)으로 조복되지 못하였거늘,
이 중생들을 내버리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취하여 증득한다는 것은 차마 하지 못할 일이구나!
나는 마땅히 먼저 중생들을 교화하고자 말할 수 없는 불가설불가설의 겁(세월) 동안 보살행을 행할 것이니,
먼저 성숙하지 못한 미성숙자(未成熟者)들을 성숙하게 할 것이요,
먼저 조복하지 못한 미조복자(未調伏者)들을 조복하게 하리라.’
是菩薩(차보살) 住此行時(주차행시) 諸天魔梵(제천마범) 沙門婆羅門(사문바라문)
一切世間(일체세간) 乾達婆阿修羅等(건달바아수라등) 若有得見(약유득견)
暫同住止(잠동주지) 恭敬尊重(공경존중) 承事供養(승사공양) 及暫耳聞(급잠이문)
一經心者(일경심자) 如是所作(여시소작) 悉不唐捐(실불당연) 必定當成(필정당성)
阿耨多羅三藐三菩提(아뇩다라삼먁삼보리) 是名菩薩摩訶薩(시명보살마하살)
第六 善現行(제육 선현행)
이 보살이 이러한 행에 머물러 있을 때, (이러한 행을 행할 때)
제천(諸天, 모든 하늘)ㆍ마군(魔)ㆍ범천(梵)ㆍ사문(沙門)ㆍ바라문(婆羅門)과,
일체의 모든 세간의 건달바와 아수라 등이 만약 그 보살을 보게 되거나, 잠깐이라도 함께 머물거거나
공경하고 존중하고 섬기고 공양하거나, 또한 잠깐이라도 귀로 듣거나,
마음에 한번이라도 거치기만 할지라도, 그러한 모든 것이 부당연(不唐捐)하여 헛되지 않아서,
필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것이니,
이러한 것을 보살마하살의 여섯 번째의 잘 나타나는 선현행(善現行)이라 하는 것입니다.
ㅡ세상 모든 나라의 모든 집단의 도덕적 규범과 법률은 중생을 바르게 이끌고자 하는 인과율의 의지입니다. 비록 육식(六識)의 중생에겐 불합리하고 불평등해 보일지라도 그것은 고귀한 인과율의 의지입니다. 세상은 어떤 사람의 시각으론 참으로 불평등하고 불합리 하지만 진여의 입장에선 그 불평등과 불합리가 중생들을 성숙시키고 바르게 이끌기위한 최고의 교육 재료입니다.
가령 예를 든다면,
1) 특정 정치인, 자본가, 권력자.. 의 이익에 따라 그 판단 기준이 달라지는 듯이 느껴지는 법률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법에 의해 피해를 보았다고 생각하면 有錢無罪(무전유죄) 無錢有罪(무전유죄)를 부르짓기도 합니다.
2) 신호등에서 여러 사람이 무단횡단을 하였는데, 교통경찰이 호루라기를 불고 교통법규 위반한 사람들에게 멈추라고 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도망가고 도망가지 않은 사람만 교통경찰에게 잡힙니다. 그 붙잡힌 사람은 경찰에게 따집니다. 이보시오, 저 도망간 사람들은 다 놔주고 왜 나만 잡소? 이럴바엔 나도 도망갈걸 그랬소.
우리의 작은 의식체계인 육식(六識)으로 보면 너무도 억울하지만 세상에 이유없는 고통은 없습니다. 불평등하고 억울한 법규라도 나의 의식의 성장에 도움이 되기에 인과율은 그러한 억울해 보이는 상황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또한 전생에 어떠한 큰 죄를 지었더라도 현재의 내 마음이 바르고 올바르다면 절대로, 단연코 그런 나쁜일은 생기지 않습니다. 화엄경 초발심 공덕품에서 부처님께서는 무수한 중생을 오랫동안 공양하기 위해 이세상에 나온것이 아니라, 오직 중생을 성숙시켜 모든 중생들도 부처님의 경지에 이르러 한없는 자유와 즐거움을 누리게 하시기 위한 것이라 합니다.
그렇다고 불법을 모든 것을 체념하고 피지배자는 지배자의 입맛에 맞게 살아야 된다는 사상이라고 생각해선 안됩니다. 권력자의 불합리함에 맞서 싸우는 시민의식 역시 인과율의 의지 이니까요.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은 어떠한 일이 발생했을 때, 대처하는 마음가짐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사실 가장 논란이 될수도 있고, 악용될수도 있는 사상입니다. 또한 제가 두말하는 사람으로 비춰질수도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실제 인도에서는 윤회와 인과율의 편중된 시각으로 받아들여 악용하는 카스트 제도의 영향으로 귀족은 영원히 다시 환생해도 귀족, 천민은 다시 환생해도 천민의 삶을 산다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천민들이 환생하면 대부분 귀족이나 왕족으로 환생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고귀한자로 환생해서는 다시 전생에 고귀한자였던 자들(지금은 천민)을 학대하여서 내세에는 다시 천한자의 삶을 겪는 인과를 짓고 맙니다. 이러한 이치는 제 ‘새로운 시각의 인과율’ 과 ‘윤회와 업보의 비밀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천민으로 태어났다고 천민의 운명을 받아들이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반성하며 받아들이는 것도 인과율의 의지이며, 자신의 타고난 운명을 개척하려는 노력 역시 인과율의 의지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했습니다. 세간의 법이 바로 불법입니다. 왜냐하면 세간의 법칙은 인과율의 의지에 의해 생겨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과율의 율법은 때론 너무도 가혹하고, 억울한 시련을 주는듯 하지만 그의 내면의 깊숙한 곳에 들어가서 살펴보면 전혀 억울할것도 가혹할 것도 없습니다. 그의 현재의 부정한 마음이 그러한 억울한 일들을 부른 것이니 말입니다.
길에서 만난 모르는 사람이 나를 공격하는 말이 비록 내 감성에 안맞는 말이더라도 지금 이순간 인과율(관세음보살의 화신, 지장보살의 화신, 혹은 주님이나 성모마리아님, 신이라고 하셔도 됩니다.)께서 그의 입을 빌어 했다고 생각하여 그냥받아들이는것이 바른 수행자의 태도입니다. ㅡ상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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