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經卷第二十 十行品第二十一之一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 三藏沙門(삼장사문) 實叉難陀 譯(실차난타 역)
21. 십행품(十行品) ② ㅡ 8 ㅡ 제칠(第七) 무착행(無着行)
ㅡ제칠(第七) 무착행(無着行)은 방편(方便) 바라밀을 체(體)로 삼는다.
ㅡ보살이 불찰을 청정하게 장엄하고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면서도 마음에 집착하는 바가 없음을 밝힌 분(分)
佛子何等(불자하등) 爲菩薩摩訶薩(위보살마하살) 無着行(무착행) 佛子(불자) 此菩薩(차보살)
以無着心(이무착심) 於念念中(어염념중) 能入阿僧祗世界(능입아승지세계)
嚴淨阿僧祗世界(엄정아승지세계) 於諸世界(어제세계) 心無所着(심무소착)
불자들이여, 어떠한 것이 보살마하살의 집착이 없는 무착행(無著行)이라 하는 것인가?
불자들이여, 이 보살이 집착이 없는 무착심(無着心)으로 염념(念念, 매 순간)마다
아승기와 같이 많은 세계에 들어가서 아승기와 같이 많은 세계를 엄정(嚴淨, 매우 훌륭함)하게 장엄하지만,
그러한 모든 세계에 마음으로 집착하지 않습니다.
ㅡ능입아승지세계(能入阿僧祗世界), 일상에서 우리가 접하는 매 순간순간의 상황을 하나의 세계로 본 것입니다.
ㅡ보살이 부처님께 공양하고 사법(事法)에 처하여 항상 행함에 있어서도 무소착(無所着)임을 밝힌 분
往詣(왕예) 阿僧祗諸如來所(아승지제여래소) 恭敬禮拜(공경예배) 承事供養(승사공양)
以阿僧祗華(이아승지화) 阿僧祗香(아승지향) 阿僧祗鬘(아승지만)
阿僧祗塗香末香(아승지도향말향) 衣服珍寶(의복진보) 幢幡妙蓋(당번묘개)
諸莊嚴具(제장엄구) 各阿僧祗(각아승지) 以用供養(이용공양) 如是供養(여시공양)
爲究竟無作法故(위구경무작법고) 爲住不思議法故(위주부사의법고)
아승기와 같이 많은 여래의 처소에 왕예(往詣, 나아가)하여 공경하고 예배하고,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기를,
아승기와 (같이 많은) 꽃과 아승기와 (같이 많은) 향과 아승기 화만(꽃타래)과
아승기의 도향(塗香, 바르는 향)과 말향(末香,가루향)과 의복과 진보(珍寶, 진귀한 보배)와 당기와 깃발과
묘개(妙蓋, 아름다운 일산)과 등과 같은 모든 장엄거리를 각각 아승기와 같이 많이 공양하나니,
이러하게 공양하는 것은,
구경에 지음이 없는 무작법(無作法)을 성취하기 위한 연고요,
염념(念念, 매 순간) 사이에 불가사의한 법(法)에 머물고자 하는 연고입니다.
於念念中(어념념중) 見無數佛(견무수불) 於諸佛所(어제불소) 心無所着(심무소착)
於諸佛刹(어제불찰) 亦無所着(역무소착) 於佛相好(어불상호) 亦無所着(역무소착)
見佛光明(견불광명) 聽佛說法(청불설법) 亦無所着(역무소착)
於十方世界(어시방세계) 及佛菩薩(급불보살) 所有衆會(소유중회) 亦無所着(역무소착)
聽佛法已(청불법이) 心生歡喜(심생환희) 志力廣大(지력광대)
能攝能行(능섭능행) 諸菩薩行(제보살행) 然於佛法(연어불법) 亦無所着(역무소착)
염념(念念, 매 순간)마다 불가사의한 부처님을 뵙되, 그 모든 부처님이 계신 불소(佛所)에 마음이 무소착(無所着)이요,
제불찰(諸佛刹, 모든 부처님 세계)에도 무소착(無所着)이요,
부처님의 상호(相好, 32상 80종호)에도 무소착(無所着)이요,
부처님의 광명을 보고 부처님의 법문을 설하시는 것을 들음에도 역시 무소착(無所着)이요,
시방의 세계와 불보살(佛菩薩)이 모인 중회(衆會, 법회)에도 무소착(無所着)이요,
불법을 듣고서 환희한 마음이 생기고 지력(志力, 의지의 힘)이 광대하여져서, 모든 보살행을 능히 가지고 능히 행하지만,
역시 부처님의 불법에 집착하는 바가 없는 무소착(無所着)입니다.
此菩薩(차보살) 於不可說劫(어불가설겁) 見不可說佛(견불가설불) 出興於世(출흥어세)
一一佛所(일일불소) 承事供養(승사공양) 皆悉盡(개실진) 於不可說劫(어불가설겁) 心無厭足(심무염족)
이 보살이 말할 수 없는 불가설(不可說)의 겁 동안 말할 수 없는 불가설(不可說)의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흥하심을 보고서,
그 낱낱의 불소(佛所)에 가서 승사(承事, 모심)하고 공양하기를 불가설(不可說)의 겁이 다하도록 할지라도
그러함에 싫어함이나 만족함이 없으니,
見佛聞法(견불문법) 及見菩薩衆會莊嚴(급견보살중회장엄) 皆無所着(개무소착)
見不淨世界(견부정세계) 亦無憎惡(역무증오)
何以故(하이고) 此菩薩(차보살) 如諸佛法(여제불법) 而觀察故(이관찰고)
諸佛法中(제불법중) 無垢無淨(무구무정) 無闇無明(무암무명) 無異無一(무이무일)
無實無妄(무실무망) 無安穩(무안온) 無險難(무험난) 無正道無邪道(무정도무사도)
부처님을 뵙고 법을 듣고 또한 보살의 중회(衆會)의 장엄을 볼지라도, 그러한 모두에 집착함이 없는 무소착(無所着)이며,
(훌륭한 세계에만 무소착인 것이 아니라) 부정한 세계를 보게 될지라도 역시 증오(憎惡)하지 않나니,
왜냐하면, 이 보살은 모든 부처님의 불법이 그러한 바와 같다는 것을 관찰하는 까닭이니,(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까닭이니)
불법 가운데에는 때 묻음도 없는 무구(無垢)요, 깨끗함도 없는 무정(無淨)이요, 어둠도 없는 무암(無闇)이요,
밝음도 없는 무명(無明)이요, 다름도 없는 무이(無異)요, 무일(無一)이요, 진실함도 없는 무실(無實)이요,
허망함도 없는 무망(無妄)이요, 편안함도 없는 무안온(無安穩)이요, 무험난(無險難)이요,
바른 길도 없는 무정도(無正道)요, 삿된 길도 없는 무사도(無邪道)이기 때문입니다.
ㅡ중생의 고통을 관하여 대자비를 양육함을 밝힌 분
菩薩(보살) 如是深入法界(여시심입법계) 敎化衆生(교화중생) 而於衆生(이어중생)
不生執着(불생집착) 受持諸法(수지제법) 而於諸法(이어제법) 不生執着(불생집착)
發菩提心(발보리심) 住於佛住(주어불주) 而於佛住(이어불주) 不生執着(불생집착)
雖有言說(수유언설) 而於言說(이어언설) 心無所着(심무소착) 入衆生趣(입중생취)
於衆生趣(어중생취) 心無所着(심무소착) 了知三昧(요지삼매) 能入能住(능입능주)
而於三昧(이어삼매) 心無所着(심무소착) 往詣(왕예) 無量諸佛國土(무량제불국토)
若入若見(약입약견) 若於中住(약어중주) 而於佛土(이어불토) 心無所着(심무소착)
捨去之時(사거지시) 亦無顧戀(역무고연)
보살이 이러하게 법계(진리의 세계)에 깊이 들어가 중생을 교화하되, 중생에게 집착하지 않으며,
제법을 수지(受持)하나 제법에 집착하지 않으며,
보리심을 발하여 부처님께서 머무시는 곳에 머물되 (부처님과 같은 수준이나)
그러한 부처님 머무시는 곳에 집착하지 않으며,
비록 언설(言說, 가르침의 말씀)이 있을지라도 그 언설에 집착하지 않으며,
중생취(衆生趣, 중생의 종류)에 들어가되, 그 중생취에 집착하지 않으며,
삼매를 요지(了知)하여 분명히 알아서 능히 들 수 있고 능히 머무를 수 있지만, 그러한 삼매에 집착하지 않으며,
무량한 불국토에 왕예(往詣)하여 나아가서 혹 들어가기도 하고, 혹 보기도 하고, 혹 그 가운데에 머물기도 하나,
불국토에 집착하지 않으며, 버리고 떠날 때에도 고연(顧戀, 아쉬워하고 잊지 못함)하지 않습니다.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以能如是(이능여시) 無所着故(무소착고) 於佛法中(어불법중)
心無障碍(심무장애) 了佛菩提(요불보리) 證法毘尼(증법비니) 住佛正敎(주불정교)
修菩薩行(수보살행) 住菩薩心(주보살심) 思惟菩薩(사유보살) 解脫之法(해탈지법)
於菩薩住處(어보살주처) 心無所染(심무소염) 於菩薩所行(어보살소행) 亦無所着(역무소착)
淨菩薩道(정보살도) 受菩薩記(수보살기)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능히 집착함이 없는 무소착(無所着)인 연고로
불법 가운데에서 마음에 장애가 없으며, 불보리(佛菩提)를 밝게 알며, 제법의 비니(毘尼, 계율)를 증득하며,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인 불정교(佛正敎)에 머무르며, 보살행(菩薩行)을 닦으며,
보살심(菩薩心)에 머물러서 보살의 해탈법을 사유하며,
보살이 머물러야 할, 보살주처(菩薩住處)에 머물되 그 마음이 물듦이 없으며,
보살이 행하여야 할, 보살소행(菩薩所行)을 행함에도 집착하지 않아서,
보살도를 청정하게 하여서 보살의 수기를 받습니다.
得受記已(득수기이) 作如是念(작여시념) 凡夫愚癡(범부우치) 無知無見(무지무견)
無信無解(무신무해) 無聰敏行(무총민행) 頑嚚貪着(완은탐착) 流轉生死(유전생사)
不求見佛(불구견불) 不隨明導(불수명도) 不信調御(불신조어) 迷誤失錯(미오실착)
入於險道(입어험도) 不敬十力王(불경십력왕) 不知菩薩恩(불지보살은) 戀着住處(연착주처)
聞諸法空(무제법공) 心大驚怖(심대경포) 遠離正法(원리정법) 住於邪法(주어사법)
捨夷坦道(사이탄도) 入險難道(입험난도) 棄背佛意(기배불의) 隨逐魔意(수축마의)
於諸有中(어제유중) 堅執不捨(견집불사) 菩薩(보살) 如是觀諸衆生(여시관제중생)
增長大悲(증장대비) 生諸善根(생제선근) 而無所着(이무소착) 頑 완구할 완 / 嚚 어리석을 은
보살이 수기를 받은 후에 생각하기를,
‘범부가 우치하여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 (지식도 없고 견해도 없는) 무지무견(無知無見)이요,
신심도 없고 이해가 없는 무신무해(無信無解)요, 총명하고 민첩한 행이 없는 무총민행(無聰敏行)이요,
미련하고 어리석어서 탐욕에 집착하는 완은탐착(頑嚚貪着)이요,
생사에 유전하여 헤매이면서도, 부처님 뵙기를 구하지 않으며, (깨달은 사람의 가르침을 배우지 않으며)
명도(明導, 밝은 곳으로 인도함)를 따르지 않으며, 조어(調御, 부처님)를 믿지 않으므로
길을 잃고 잘못 됨에 빠진, 미오실착(迷誤失錯)하여서 험난한 길에 들어가며,(인생을 험하게 살며)
십력왕(十力王, 부처님)을 공경하지 않으며, 보살의 은혜를 알지 못하며,
주처(住處, 머무른 곳, 사는 곳)에만 연착(戀着)하여 연연하고 집착하며,
제법이 공하다 함을 듣고는 마음으로 크게 공포를 느끼며,
바른 정법(正法)을 멀리하고 삿된 사법(邪法)에 머물며,
평탄한 탄도(坦道)를 버리고 험난한 험도(難道)에 들어가며,
부처님의 뜻을 등지고 마군의 뜻을 따라 모든 있음의 제유(諸有)에 굳게 집착하여 버리지 못하는구나’라고 (생각하고는)
보살이 이렇게 중생을 관찰하고는 대비심을 더욱 증장하여 모든 선근을 내지만 무소착(無所着)입니다.
ㅡ모든 것이 있다는 제유(諸有)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있다.’ 는 것 다음에는 ‘좋다.’, 좋다고 생각하면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하게 되는데, 쉽게 내 것이 안되면 화를 내고,
그리고는 무리하게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하여서 여러 불상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ㅡ무비스님
ㅡ보살이 생사에 상주하여 중생을 교화하면서도 집착이 없음을 밝힌 분
菩薩爾時(보살이시) 復作是念(부작시념) 我當爲一衆生(아당위일중생)
於十方世界(어시방세계) 一一國土(일일국토) 經不可說不可說劫(경불가설불가설겁)
敎化成熟(교화성숙) 如爲一衆生(여위일중생) 爲一切衆生(위일체중생) 皆亦如是(개역여시)
終不以此(종불이차) 而生疲厭(이생피렴) 捨而餘去(사이여거)
又以毛端(우이모단) 遍量法界(변량법계) 於一毛端處(어일모단처)
盡不可說不可說劫(진불가설불가설겁) 敎化調伏(교화조복) 一切衆生(일체중생)
如一毛端處(여일모단처) 一一毛端處(일일모단처) 皆亦如是(개역여시)
그 때에 보살이 다시 이렇게 생각하나니, ‘내가 마땅히 한 중생을 위하여서도
시방세계 낱낱의 국토에서 말할 수 없는 불가설 불가설의 겁(세월)이 지나도록 교화하여 성숙하게 할 것이며,
한 중생을 위하는 것과 같이 일체의 모든 중생을 위하여서도 그와 같이 할 것이니,
그러함에 있어서 끝끝내 싫어거나 고달프다는 마음을 내어 그냥 버리고(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가지 않을 것이며,
또한 모단(毛端, 털 끝)에서 법계를 두루 헤아려서
일모단처(一毛端處, 하나의 털 끝)에서 불가설불가설의 겁이 다하도록 일체 중생을 교화하고 조복할 것이며,
낱낱의 일일모단처(一一毛端處, 각각의 털 끝)에서도 그와 같이 하리라’고 (생각) 합니다.
乃至不於(내지불어) 一彈指頃(일탄지경) 執着於我(집착어아) 起我我所想(기아아소상)
於一一毛端處(어일일모단처) 盡未來劫(진미래겁) 修菩薩行(수보살행) 不着身(불착신)
不着法(불착법) 不着念(불착념) 不着願(불착원) 不着三昧(불착삼매) 不着觀察(불착관찰)
不着寂定(불착적정) 不着境界(불착경계) 不着敎化調伏衆生(불착교화조복중생)
亦復不着入於法界(역불착입어법계)
내지 ‘일탄지경(一彈指頃, 손가락을 한 번 퉁기는 동안)이라도 '나(我)'라는 것에 집착하여서
'나(我)'라는 생각과 '내 것(我所)'이라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며,
낱낱의 모단처(一毛端處, 하나의 털 끝)에서마다 미래의 겁(세월)이 다하도록 보살행을 닦으나,
불착신(不着身)하여 몸에 집착하지 않고, 불착법(不着法)하여 법에 집착하지 않고,
불착념(不着念)하여 생각에 집착하지 않고, 불착원(不着願)하여 소원에 집착하지 않고,
불착삼매(不着三昧)하여 삼매에 집착하지 않고, 불착관찰(不着觀察)하여 관찰함에 집착하지 않고,
불착적정(不着寂定)하여 고요한 선정에 집착하지 않고, 불착경계(不着境界)하여 경계에 집착하지 않고,
중생을 교화하여 조복하는 것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다시 법계에 들어감에 있어서도 역시 집착하지 않으리라’고 (생각) 하나니,
ㅡ중생을 교화하는 법이 환(幻)과 같다고 관(官)함을 밝힌 분
何以故(하이고) 菩薩作是念(보살작시념) 我應觀一切法界(아응관일체법계) 如幻(여환)
諸佛如影(제불여영) 菩薩行如夢(보살행여몽) 佛說法如響(불설법여향)
어찌하여 그런 것인가? 보살이 생각하기를 ‘나는 마땅히 일체의 법계가 마치 요술(환상)과 같은 여환(如幻)이요,
모든 제불(諸佛)이 마치 그림자 같은 여영(如影)이요, 보살행이 마치 꿈과 같은 여몽(如夢)이요,
부처님의 설법은 마치 메아리와 같은 여향(如響)이라고 관하여 보나니,
一切世間如化(일체세간여화) 業報所持故(업보소지고) 差別身如幻(차별신여환)하야, 환상과 같음은
行力所起故(행력소기고) 一切衆生如心(일체중생여심) 種種雜染故(종종잡염고)
一切法如實際(일체법여실제) 不可變異故(불가변이고)
일체 세간이 여화(如化)하여 변화된 것이라서 (곧 사라지는 것이니), 지닌 바의 업보(業報)로 유지되는 까닭이며,
차별한 몸이 여환(如幻)하여 마치 요술(환상)과 같으니, 행력(行力, 행하는 바의 힘)으로 일어난 까닭이며,
일체 중생이 여심(如心)하여 마음과 같으니 갖가지의 잡염(雜染)으로 물든 까닭이며,
일체법이 여실제(如實際)한 것이니, 다르게 변할 수 없는 까닭이라’고 (보살은 관찰) 합니다.
又作是念(우작시념) 我當盡虛空遍法界(아당진허공변법계) 於十方國土中(어시방국토중)
行菩薩行(행보살행) 念念明達(염념명달) 一切佛法(일체불법) 正念現前(정념현전) 無所取着(무소취착)
다시 또 생각하기를 ‘내가 마땅히 허공과 법계가 다하도록 두루하게 시방의 국토에서 보살행을 행할 것이니,
염념(念念, 매 순간)마다 일체 불법을 명달(明達)하여 밝게 통달하고,
정념(正念, 바른 생각)이 현전(現前)하여 취하여서 집착하지 않으리라’고 (생각) 합니다.
ㅡ보살이 아직 조복되지 않은 중생을 보고 그곳에 가서 태어날 것을 밝힌 분.
菩薩(보살) 如是觀身無我(여시관신무아) 見佛無碍(견불무애) 爲化衆生(위화중생)
演說諸法(연설제법) 令於佛法(어제불법) 發生(발생) 無量歡喜淨信(무량환희정신)
救護一切(구호일체) 心無疲厭(심무피렴) 無疲厭故(무피렴고) 於一切世界(어일체세계)
若有衆生(약유중생) 未成就未調伏處(미성취미조복처) 悉詣於彼(실예어피) 方便化度(방편화도)
보살이 이와 같이 몸을 관찰하여 무아(無我)라는 것을 보아 견불(見佛)함에 장애가 없으므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제법을 연설하여,
그들로 하여금 부처님의 불법에서 무량한 환희와 정신(淨信, 청정한 신심)을 내게 하며,
일체의 모든 이들을 구호하되 그 마음에 고달프거나 싫증을 내지 않는 무피렴(無疲厭)이라,
무피렴(無疲厭)인 까닭에 일체의 모든 세계에서 만약 아직 성취하지 못하였거나 조복하지 못한 중생이 있다면,
그곳으로 나아가 방편으로 교화하여 제도하나니,
其中衆生(기중중생) 種種音聲(종종음성) 種種諸業(종종제업) 種種取着(종종취착)
種種施設(종종시설) 種種和合(종종화합) 種種流轉(종종유전) 種種所作(종종소작)
種種境界(종종경계) 種種生(종종생) 種種歿(종종몰) 以大誓願(이대서원)
安住其中(안주기중) 而敎化之(이교화지) 不令其心(불령기심) 有動有退(유동유퇴)
亦不一念(역불일념) 生染着想(생염착상)
그 중생이 갖가지의 종종음성( 種種音聲)과 갖가지 업의 종종제업(種種諸業)과
갖가지 집착의 종종취착(種種取着)과 갖가지의 종종시설(種種施設)과
갖가지로 함께하는 종종화합(種種和合)과, 갖가지의 헤매이는 종종유전(種種流轉)과
갖가지 짓는 바의 종종소작(種種所作)과 갖가지 대상의 종종경계(種種境界)와
갖가지의 태어남의 종종생(種種生)과, 갖가지의 죽음의 종종몰(種種歿) 등에 대하여
대서원(大誓願)으로 그 가운데 편안히 안주하여 교화하나, 그 마음이 변하거나 퇴전함이 없으며,
한 순간이라도 물든 생각도 (다른 생각도) 내지 않습니다.
何以故(하이고) 得(득) 無所着無所依故(무소착무소의고)
自利利他(자리이타) 淨滿足(청정만족) 是名(시명)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第七無着行(제칠무착행)
어떻게 그러할 수 있는 것인가?
집착함이 없는 무소착(無所着)과, 의지함이 없는 무소의(無所依)을 얻은 까닭에, (터득한 까닭에)
스스로가 이롭고 다른 이를 이익되게 하는 자리이타행(自利利他)이 청정하고 만족하나니,
이러함이 보살마하살의 일곱 번째의 집착이 없는 무착행(無着行)이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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