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16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通玄 장순용 번역

 

14) 수미정상게찬품(須彌頂上偈讚品)①

 
장차 이 품을 해석하는데 대략 4 가지의 문으로 분별을 짓겠으니,

첫째 품의 명목을 해석하는 석품명목(釋品名目)이며,

둘째 품이 온 뜻을 해석하는 석품내의(釋品來意)이며,

셋째 이 10주 6품 경의(經意, 경문의 뜻) 모두를 회통하는 것이며,

넷째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하는 수문석의(隨文釋義)이다.


첫째, 품의 명목을 해석하는 석품명목(釋品名目)을 설명하면,

법혜(法慧) 등의 10보살이 각각 자기의 해당되는 지위에서, 그 지위에 따라 닦아 나아가는 진수법(進修法)으로,

스스로의 게송으로 찬탄함으로써 믿음이 종결된 보살들로 하여금 본받아서 깨달아 들 수 있도록 하는 까닭에 이 품의 명칭이 게찬품(偈讚品)이 된 것이다.

이는 고금의 모든 부처님이 똑같이 이 지혜와 자비의 궁전에 함께 모여서, 고금의 부처님을 회통함으로써 자신이 바로 미래의 부처이니, 옛날의 부처님과 더불어 도가 합치됨을 밝힌 것이다.


둘째, 품의 온 뜻을 해석하는 석품내의(釋品來意)를 설명하면,

앞에서는 수미산에 올랐을 때, 제석이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한 것을 밝혔는데,

이 품에서는 10주위(十住位)에 해당되는 보살이 해당 지위의 법문을 게송으로 찬탄함으로써, 신심자(信心者)들로 하여금 지위에 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니, 그러한 까닭으로 이 품이 반드시 온 것이니,

처음은 과거불(過去佛)을 찬탄한 것이며, 그 다음은 현재불(現在佛)을 찬탄한 것이며,

미래불(未來佛)이란 바로 이 지위에 들어간 이가 해당되는 것이다.

 

그래서 경전 안에서는 미래를 말하지 않은 것이며,

10불(十佛)이 바로 과거불(過去佛)이며, 노사나(盧舍那)는 현재불(現在佛)이고,

수행으로 처음 지위에 들어간 자가 바로 미래불(未來佛)인 것이다.


셋째, 이 10주  6품의 경의(經意, 경문의 뜻) 모두를 회통하는 것을 설명하면,

하나, 승수미정품(昇須彌頂品)은 믿음이 종결되어 승진함을 밝힌 것이고,

둘, 수미정상게찬품(須彌頂上偈讚品)은 해당되는 지위의 법을 게송으로 찬탄하여 승진이(昇進理)를 권하여 닦아 나아가기를 밝힌 것이며,

셋, 십주품(十住品)은 해당되는 지위에서 행하는 바의 소행(所行)의 행(行)을 밝힌 것이며,

넷, 범행품(四梵行品)은 10주에서 지니는 무상(無相)의 성계(性戒)를 총괄함을 밝힌 것이며,

다섯, 발심공덕품(發心功德品)은 10주에서 발심으로 얻게 되는 공덕의 양(量)을 밝힌 것이며,

여섯, 명법품(明法品)은 곧 해당되는 지위의 법이 승진하여 10행으로 향하는 인(因)을 밝힌 것이니,

이러한 6품은 해당되는 지위의 수행하는 인과와 10행으로 향하는 인(因)을 밝힌 것이다.


넷째의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하는 수문석의(隨文釋義)에서 이를 다시 둘로 나눌 것이니,

하나, 품 경의(經意, 경문의 뜻)을 장과(長科)하는 것이며,

둘,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하는 수문석의(隨文釋義)이다.

 
먼저 1품의 경의(經意)를 장과(長科)한다면, 그 뜻을 따라 11단락으로 나눌 수 있으니, 
일, “이때 부처님의 신력 때문에(爾時佛神力故)” 이하 19행 반의 경문은,

부처님께서 신력(神力)으로 대중들을 모이게 함을 밝힌 분(分)이다.
둘, “법혜보살이 위의를 받아 게송을 설하다(法慧菩薩承威說頌)” 이하 10행의 게송은,

법혜보살이 부처님께서 광명을 놓아 대중을 모이게 함을 찬탄함을 밝힌 분(分)이다.
셋, “이때” 이하는 일체혜(一切慧)가 위의를 이어받아 10행의 게송을 설함을 밝힌 것이니,

무상법(無相法)으로사 진실로 삼음을 찬탄한 것이다.
넷, “이때” 이하는 승혜(勝慧)보살이 10행의 게송을 설하여서, 범부가 5온의 참된 성품을 미혹했다가 다른 사람의 설(說, 설명)로 말미암아 비로소 요달하게 됨을 찬탄한 것을 밝힌 것이다.
다섯, “이때” 이하 공덕혜(功德慧)가 10행의 게송을 설한 것은, 제법(諸法)의 진실상(眞實相)을 망녕되이 취함을 밝힌 것이다.

여섯, 이때 정진혜(精進慧)가 10행의 게송을 설한 것은, 제법(諸法) 자체에는 무견(無見)이나, 망녕되이 진(眞)을 미혹함을 보는 것을 탄식한 것이다.
일곱, 이때 선혜(善慧)보살이 10행의 게송을 설한 것은, 중생의 다함 없는 무중생가진(無衆生可盡)과 법에도 유(有)나 무(無)의 두 가지 이견(二見)이 없음을 찬탄한 것이다.
여덟, 이때 지혜(智慧)보살이 10행의 게송을 설한 것은, 언설(言說)이 진(眞)에 미칠 수 없음을 찬탄한 것이다.
아홉, 이때 진실혜(眞實慧)보살이 10행의 게송을 설한 것은, 제법(諸法)에는 합치거나 흩어지는 성품이 없는 무합산성(無合散性)이라는 것을 찬탄한 것이다.
열, 이때 무상혜(無上慧)가 10행의 게송을 설한 것은, 부처님께서 얻은 법체(法體)는 분별이 없는 것이라서, 명수(名數, 법수法數)에 속하지 않음을 찬탄한 것이다.

ㅡ명수(名數), 법수(法數)라고도 하는데 3계ㆍ5온ㆍ5위 등과 같이 수를 가진 법문의 수량을 말한다.

열 하나, 이때 견혜(堅慧)가 10행의 게송을 설한 것은, 부처님의 대자비가 이익을 일으킴을 찬탄한 것이다.
이상으로 10보살이 각각 10행의 게송을 설한 것은, 보살이 지위의 법에 들어가 몸과 마음의 온갖 계교(諸計)로 하여금 의지함이 없게 함으로써 편집(偏執, 편벽된 집착)을 여의어서 부처님께서 머무는 곳에 머물게 됨을 융화시켜 회통한 것이다.

 
또한 처음 보살이 와서 모인 보살내집분(菩薩來集分)에서의 19행 반의 경문을 다시 7단락으로 나누면,

하나, “이때 부처님의 신력 때문에(爾時佛神力故)” 이하 5행 반의 경문은, 보살이 와서 모임을 밝힌 것이며,

둘, “떠나 온 국토(所從來土)” 이하 3행 반의 경문은, 보살 세계의 명칭을 밝힌 것이며,

셋, “각각의 불소에서 청정하게 범행을 닦는 바에서(各於佛所淨修梵行)” 이하 3행의 경문은,

본래 섬기고 있는 본소사불(本所事佛)을 밝힌 것이며,

넷, “이 모든 보살들이 부처님의 처소에 이르러(是諸菩薩至佛所)” 이하 2행의 경문은,

모든 보살들이 와서 법좌를 화(化, 변화)하여 앉는 것을 밝힌 것이며,

다섯, “이와 같은 세계 중(如此世界中)” 이하 2행의 경문은, 시방세계의 보살이 다 마찬가지인, 동연(同然)이라고 매듭지음을 밝힌 것이며,

여섯, “이때 세존께서는(爾時世尊)” 이하 2행 반의 경문은, 부처님께서 족지단(足指端, 발가락 끝)으로부터 광명을 놓아 널리 일체처의 제석궁전을 비춘 것이니,

10신에서는 족륜하(足輪下, 발바닥)으로 방광하고, 이 10주에서는 족지단(足指端, 발가락 끝)으로 방광한 것은 지위의 승진을 밝힌 것이며,

10행에서는 족부(足趺, 발 등)에서, 10회향에서는 슬상(膝上, 무릎 위)에서, 10지에서는 미간호상(眉間毫相)에서 방광을 하고 있다.

이러한 광명은 법위(法位)의 승진을 나타내기 때문에

제1회(第一會) 현상품(여래현상품)에서 놓는, 미간(眉閒) 광명은 과(果)로써 믿음을 이루어 지위에 들어가는 광명이며,

족지단(足指端, 발가락 끝)의 광명이란 이 주위(住位)에 들어간 몸과 마음의 지혜 궁전을 비추는 것을 밝힌 것이니,

성(聖)에 들어가는 단초(端初)를 나타내기 때문에 발가락 끝으로 광명을 놓는 것이다.

일곱, “이때” 이하 1행의 경문은 법혜보살이 게송을 설하여 부처님을 찬탄함을 밝힌 것이다.
나머지의 뜻은 경문에서 알 수 있으니, 과문(科文)의 뜻을 기준으로 하면 그 뜻을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니,

가령 처음에 보살이 와서 모인 것과 세계의 명칭을 공유하는 것과 아울러 본래 섬기고 있는 부처님 등은 모두 해당되는 지위의 행과 법문의 인과에 짝지어 회통하면 비로소 그 뜻을 알게 될 것이다.

 

“법헤보살”부터는 이 지위에서 수행하는 사람들로서, 그 터득한 여래지(如來智)를 기준으로 해서 명칭을 세운 것이며,

세계의 명칭이 인다라화(因陀羅華)인 것은 닦는 바의 소수법(所修法)이며,

특수월불(特殊月佛)은 이 초발심주(住)의 지위에서 법을 닦은 바의 소수과(所修果)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인다라(因陁羅)라 하는 것은 한역하면 능주(能主)이고, 화(華)란 활짝 피어 열매를 감응한다는 뜻이니,

이 10주에서의 초발심 보살이 능히 시방의 일체 세계에서 성불을 나타내 보이기 때문에, 세계의 명칭이 능주(能主)가 되며, 능히 나타내 보임으로써 일체 중생을 주도하는 때문에 그 행의 화(華)로써 능히 자타(自他)의 지혜과(智慧果)를 활짝 여는 것이다.


경전에서 “하나하나 제각각이 불찰미진수의 동명(同名) 법혜보살과 함께 하였다”는 것은,

지혜(智慧)와 해행(解行)과 요오(了悟)와 변지(遍知)가 경계인 까닭에 스스로의 자심(自心)을 요달함으로써, 일체가 모두 마찬가지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따라서 하나를 미혹하면 일체가 미혹하게 되는 일미일체미(一迷一切迷)이고, 

하나를 깨우치면 일체를 깨우치게 되는, 일오일체오( 一悟一切悟)이니,

이는 오직 해탈한 자만이 스스로 미혹을 푼 까닭에 지혜가 두루함을 밝힌 것이다.

 

“1백불찰미진수의 국토 밖에 있는 모든 세계로부터 왔다(從百佛剎微塵數國土外諸世界中來)”고 말한 것은,

미혹한 까닭에 국토외(國土外, 국토 밖)이라 말하고, 미혹을 풀었기에 ‘온다(來)’라고 하는 것이다.

다만 무명에 미혹된 어둠의 장애가 넓고 많기 때문에 세계의 진수(塵數, 먼지 수)에 비한 것이며,

깨달음에 대한 이해의 해행(解行)이 넓고 많은 까닭에 세계의 진(塵, 먼지)과 같음에 비교한 것이니,

지혜와 무명이 서로 같으면서도 다만 미혹과 깨달음이 현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때문에 경문의 아래에서 “삼천대천세계의 양(量)과 동등한 경권(經卷, 경전)들이 작은 중생의 몸 속에 들어 있다”고 한 것이 그러한 뜻인 것이다.


부처님의 명호가 특수월(特殊月)인 것은, 수(殊)는 뛰어남이며, 특(特)은 기특함이며, 월(月)은 청량함이니,

이 지위에 들어간 보살이 여래가지혜가(如來智慧家)에 태어날 때, 비롯됨이 없는 무시무명(無始無明)과 번뇌의 치열함 및 악도(惡道)의 치열함이 단박의 일시에 소멸하고, 오직 여래의 지혜만이 명랑(明朗)하고 청량한 것이 달과 같음을 밝힌 것이니,

이는 이 지위의 보살이 처음 진(眞)에 들어가 번뇌와 미혹이 치열한 곳을 능히 타파함으로써, 자기 불과의 명칭을 세움을 밝힌 것이다.

 

다음 10행과 10회향의 지위에 따른 승진에서는 보살의 명호와 부처 및 세계의 명호가 각각 지위에 따라 차별하니,

10행 중에서는 불과명호(佛果名號)의 아랫 글자가 모두 같은 안(眼)인 것은,

근기를 알아서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으로 명칭을 세운 것이며,

10회향 중 불과명호佛果名號)의 윗 글자가 모두 같은 묘(妙)인 것은,

생사 가운데에서 중생을 이롭게 하는 묘용이 자재한 것이니, 그 지위에 이르러서 밝히겠다.


또 “시방에서 온 법혜 등의 10보살들이 각각 부처님의 처소에서 범행을 청정히 닦는다(十方諸來法慧等十菩薩衆各於佛所淨修梵行)”고 한 것은,

각각 자기 마음의 법신 지혜로서 능히 번뇌를 청정케 하여, 그 청량함이 달과 같은 것을 ‘각각 부처님의 처소에서 범행을 청정히 닦는다(各於佛所淨修梵行)’고 이름는 것이니, 범(梵)이란 청정함이다.

 

그리하여 이 지위의 보살이 묘혜(妙慧)가 현전하여서 온갖 행(行)의 체(體) 스스로가 청정한 까닭에 법성지혜(法性智慧)는 법에 맡겨 운행하면서 그 체(體)가 무생멸(無生滅)임을 밝힌 것이니, 체(體)가 무생멸처(無生滅處)로써 자심(自心)의 불과(佛果)를 표시한 것이다.

 

그러므로 발심한 이는 반드시 이와 같은 방편의 무작(無作)이고, 무사(無思)의 성품에 맡긴 정(定)으로써, 스스로의 자심(自心)의 자체성이 무성(無性)의 불지혜(佛智慧)를 발휘하여 능히 번뇌에 오염되는 바가 없게 된다면, 곧 그 이름를 특수월불(特殊月佛)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도래한 방위를 따라서 각각 비로자나장(藏)인 사자좌를 변화로 만들어낸 것(隨所來方各化作毘盧遮那藏師子之座)'을 설명하면, 이 법혜보살은 동쪽의 지위이니, 지위에 들어가고자 어둠을 깨뜨리기 시작할 때가 마치 태양이 처음 동쪽에서 떠오를 때 능히 어둠을 타파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니,

이는 지혜의 밝음으로서 능히 자타의 비롯됨이 없는 장야(長夜, 오랜 세월)의 미암(迷闇, 미망)을 타파하는 것이니,

이러한 때문에 불과의 명칭이 특수월불인 것이다.

 
초발심을 한 뒤에는 천인사(天人師)가 됨으로써 세계의 명칭이 능주화(能主華)인 것이며,

변화로 만들어낸 법좌의 명칭이 비로자나장사자좌(毘盧遮那藏師子座)인 것은 바로 불과의 법좌인 것이다.

비로(毘盧)란 광명이며, 자나(遮那)란 두루함을 밝힌 것이니, 비롯 없는 일체 무명 번뇌에 두루 앉음으로써 일체 대지혜 광명장(藏)을 변화로 만들어내고, 일체 마음과 경계를 두루 비쳐서 법계의 자재해탈문(自在解脫門)을 화성(化成)함을 밝힌 것이며,

사자(師子)라고 한 것은 무외(無畏)를 얻었다는 것이다.

ㅡ이상의 모두는 의주석(依主釋)이다.

 

결가부좌(結跏趺坐)란, 망상을 회통하여 참된 지혜로 삼게 되는 때문에 결가부좌가 되는 것이다.

 

이 10주위 중 10 분의 보살은 선재동자가 묘봉산 정상에서 처음 믿음에 들어간 뒤와,

10주에 들어가기 시작한 처음에 덕운(德雲)비구 이하 자행돈녀(慈行童女)에 이르는 법문과 서로 비슷한 것으로,

문수사리보살을 통해하여 초발신심(初發信心)하는 것을 밝힘으로서 이 경전에서의 가르침과 행을 원만하게 회통하여 나중에 배우는 후학자(後學者)들로 하여금 이해하기 쉽게 한 것이니,

단지 그 가르침만 설하고 능히 행하는 사람을 드러내지 않으면 완전하게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뜻이 있는 까닭에 초회(初會)에서 불과의 신(神)이나 천(天)을 들어 법에 들어감을 보이고,

수행을 권하는 권수(勸修)로써 하나하나의 모두가 부처님의 지견(知見)과 같음을 밝히고,

제2회에서 신해(信解,믿음과 이해)하는 마음을 낼 것을 권하여 부동지불로 신문(信門)을 성취하고,

그 다음으로 지위에 들어가서 진수(進修)하여 나아가는 가르침을 설하였으니,

곧 10주ㆍ10행ㆍ10회향ㆍ10지ㆍ11지 법문이며,

법계품(法界品)의 말미에 선재동자를 든 것은, 그가 능히 5위(五位)의 행을 행한 자라서, 그 가르침의 행을 충분히 드러내어 이해하기 쉽게 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비록 교법(敎法)을 배울지라도 행(行)에서는 오히려 미혹할 것이니, 때문에 이 1부의 경전에 인과(因果)와 이지(理智)와 교행(敎行)과 인사(仁士) 등의 하나하나를 충분히 드러냄으로써, 수도자들로 하여금 본받아 배워서 그릇되지 않게 하고자 한 것이다.

 

이는 10주의 진(眞)에 들어가서 도(道)를 본 초심(初心)이 나중의 10행ㆍ10회향ㆍ10지ㆍ11지와 더불어 정각의 과(果)를 이룰 수 있게 되는 때문이니, 마치 사람이 백 살일지라도 먼저 태어난 사람이 어른이 되며,

사람이 열의 아들을 낳아도 처음 낳은 자를 맏이로 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16 권 종(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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