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16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通玄 장순용 번역

 

13) 승수미산정품(昇須彌山頂品)


10주위(住位) 6 품의 경전이 있으니, 
첫째 승수미산정품(昇須彌山頂品), 둘째 정상게찬품(頂上偈讚品), 셋째 십주품(十住品),

넷째 범행품(梵行品), 다섯째 발심공덕품(發心功德品), 여섯째 명법품(明法品)으로,  6 품이 모두 10주(十住)의 법문을 성취하는 것이니다.

 

장차 승수미산정품을 해석함에 있어서 그 뜻을 셋으로 나누겠으니,

첫째는 품의 뜻을 해석하는 석품내의(釋品來意)이며,

둘째는 처소로써 법을 나타내는 이처표법(以處表法)이며,

셋째는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하는 수문석의(隨文釋義)이다.

 

첫째의 품의 뜻을 해석하는 석품내의(釋品來意) 설명하면,

앞에서의 보광명전, 즉 인간의 에서는 10신심(十信心) 성취하여 이미 끝냈고,

수미산의 묘봉(妙峰, 정상)에서는 10신에서부터 10주(十住)의 지위에 들어가 승진(昇進) 밝히고 있기 때문에 품이 반드시 오는 것이다.

 

둘째의 처소로써 법을 나타내는 이처표법(以處表法) 설명하면,

산은 일곱겹의 금윤위산(金輪圍山) 일곱 겹의 큰바다 안에 있으니,

바닷물에서 솟아난 높이만으로도 8 4 유순이며, 가로와 세로 또한 마찬가지이고, 

4 가지의 보배로 이루어졌으니, 동쪽은 황금이며 서쪽은 백은(白銀)이며 남쪽은 파리(頗梨)이며 북쪽은 마뇌(瑪惱)이다.

위의 4(四)에는 8부천중(部天衆) 있어서 도합, 4 곱하기 8 해서 32이고,

중심의  명칭은 묘고정(妙高頂)으로 천제석(天帝釋) 그 곳 보배 궁전에 거처하면서, 통칭 제석천이라 하며,

33천이 모두 제석(帝釋)을 (主, 주인)로 삼고 있다.

 

제석(帝釋)에게는 4 가지의 명칭이 있으니, 그 하나는 천제석(天帝釋)ㆍ둘은 교시가(憍尸迦)ㆍ셌은 석제환인(釋帝桓因)ㆍ넷은 인다라(因陀羅)라는 이름이며, 대의(大意) 능주(能主)를 뜻하는 것으로, 능히 온갖 () 위하여 () 짓기 때문이다.


묘봉산은 4 가지의 사보(四寶) 합성되었으며, 모든 () 보배 궁전이 위에서 장엄하기 때문에 묘봉산이 것이다.

산의 밖으로 일곱 겹의 금산과 일곱 겹의 대해 있는데,

넓이를 설명하자면, 금시조의 날개를 펼친 거리가 336 리로서( 다음 경문이 없어 무슨 가르침을 설하였는지 알 수 없) 매우 빠르게 있어서, 날개를 치면 만만구천 리를 날 수 있지만, 그러한 금시조가 7 밤낮 동안을 날아 비로소 산의 정상에 이를 수 있다고 하며, 산이 바다 안에 있으면서 형태는 허리에 차는 북의 요고(腰鼓)와 같고, 가파르게 높이 솟아 있어서 손발로는 반연해 올라 갈 수가 없다고 한.

 

10 법문은 처음 여래 지혜의 집안에 태어나 참된 진불자(眞佛子) 되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유위(有爲) 생멸하는 것을 헤아려 관찰하거나, 많이 배운 심상(心想)으로 반연해서 얻을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묘봉산을 비유함으로서, 후학자들이 본받아 배우도록 하고자 것이다.

산(山)이란, 높고 뛰어난 고승(高勝)의 뜻이니, 이는 10주(十住)가 부처님께서 머물고 있는 법신묘지혜(法身妙智慧)의 바다에 머물기 때문에 세간을 벗어난, 높고 뛰어나다는 출세고승(出世高勝義)의 뜻 표상한 것이다.

 

묘봉산(妙峯山)이란 부동(不動) 이며, 모든 () 거처는 묘락(妙樂)과 장엄의 뜻이니,

지위의 보살이 방편삼매로써 적연부동(寂然不動)하고 헤아림의 사량(思量)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거두어 수용하지 않고,

단지 성품에 맡겨 성품의 () 들어가서 평등한 평등(平等) 부합하여 법신과 더불어 합일하는 것이나, 

홀연 묘혜(妙慧) ()으로부터 일어나서,

비롯함이 없는 무명(無明) 모두 무소득(無所得)한 것으로, 부처님의 불묘혜(佛妙慧) 모두 머물며,

의지하는 바가 없는 무소의(無所依)로서 법의 묘하고 즐거운 지혜의 법묘락지혜(法妙樂智慧)를 얻고,

혜의 장엄이 정견(情見) 뛰어넘어 모든 부처님께서 설하신 해탈미묘(解脫微妙) 경전을 이해하여 요달하지 않음이 없으며,

여래지혜가(如來智慧家) 태어나는 까닭 삼계의 무명이 일시에 소멸하였으나,

오직 습기의 번뇌만이 남아 있어서 점점 법으로 다스리는  같은 것이다.


가령 아래의 십주품에서는불자야, 보살의 머무는 곳은 광대해서 법계와 허공과 더불어 동등하니(佛子,菩薩住處廣大與法界虛空等), 불자야, 보살이 삼세 모든 부처님의 집안에 머물기 때문이다(佛子,菩薩住三世諸佛家故)”이 했으며,

 

초발심공덕품에서는반드시 알아야 한다. 사람은 곧바로 삼세 모든 부처님과 동등하고, 곧바로 삼세 모든 부처님과 여래 경계와 더불어 평등하고, 곧바로 삼세 모든 부처님의 여래 공덕과 더불어 평등하기 때문에 여래의 일신(一身)이면서 한량없는 궁극적으로 평등한 진실 지혜를 얻음으로써, 발심할 바로 시방의 모든 부처님들께서 함께 칭찬하는 바이며, 나아가 일체 세계를 진동하는 것과 일체 세계에서 성불을 나타내 보이는 등이다라고, 경문에서 자세히 밝히고 있는 것과 같이, 
이는 삼승의 방편교(方便教, 방편의 가르침)에서 () 이전의 3(三) 보살은 현행(現行) 무명을 굴복시키게 되고,

() 이후에야 도를 보아 견도(見道)한다고 설한 것과는 같을 없는 것이니,

 

경전의 법교문(法敎門) 일체 부처님의 근본부동지를 의거해 발심하기 때문이며,

여래의 일체지승(一切智乘) 타고서 발심하기 때문이며,

10주위(住位) 중에서는 능히 여래와 더불어 지혜가 같기 때문이라서

단지 아공(我空) · 법공(法空) · 구공(俱空)의 3공관(三空觀)으로 잠깐 형행만을 굴복시키는 삼승과는 같지 않은 것이다.

 

경전에서는 발심한 자는 부처님의 부동지(不動智)로부터 보리심(菩提心)을 발하였으므로,

설령 나머지의 여습(餘習)이 있다 할지라도, 의지하거나 머묾이 없는 무의주지(無依住智)로서 다스린다면,

그 원래가 근본지(根本智)라서 굴복시키지도 않고 끊지도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이는 본래 공적의 작용이 자재로운 본적용자재(本寂用自在)한 까닭에 () 끊을 수도 없고 굴복시킬 수도 없기 때문이며,

설령 삼매를 닦는다 할지라도 성품이 청정한 성정(性淨)에 맡기는 까닭에, 역시 취하거나 거두어들일 것도 없고 굴복시킬 것도 없는 것이다.

 

자정(自淨) 맡기는 까닭 설령 분별을 행할지라도 성품에 맡긴 임성지혜(任性智慧)가 () 따라 작용하여서, 역시 취하고 버림도 없는 것이니, 이와 같이 법에 맡겨 조화롭게 습기를 다스림으로써 이지(理智) 부합하게 하고, 익숙하게 익혀서 더욱 밝아지게 하고, 부처님의 원행(願行)을 따라 사세간(事世間) 따르고, 대자비를 성장하게 하여서 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는 불출불몰(不出不沒)인 것이다.

이러한 때문에 마음과 경계의 심경(心境)이 일진(一眞)으로써 나고 소멸함이 없는 것이니, 

그래서 경전에서는 아수라왕 등으로 나타내어서 대해 처하면서도 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는 등으로 비유한 것이다.
 
묻겠습니다.
어떠한 이유로 4천왕궁(四天王宮) 오르지 않고 제석궁(帝釋宮)으로 뛰어넘어 가신 것입니까?

답한다.
4
천왕은 묘봉산 중간 쯤에 있는 것이니, 이는 법의 정상에 올라가 () 다한 상진처(相盡處) 이르러서 지혜의 장엄을 나타내어 불퇴(不退) 머무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재동자가 묘봉산에서 모든 부처님의 불지혜광명문(佛智慧光明門)을 억념(기억)하는 것이 지위와 같으니,

예를 따라 준거하면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정진(情塵, 정 티끌)의 자취를 벗어나게 되는 때문에 산으로 나타낸 것일 뿐, 산을 올라 가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며, 이미 여래의 지혜에 들어감으로써, 무리를 이끄는 주도자(主導者) 되는 것 감당한 것이지 제석(帝釋) 되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셋째의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하는 수문석의(隨文釋義)를 셋으로 나누겠으니,

그 하나는, 1품을 장과(長科)하는 것이요,

그 둘은, 여래의 신행(身行) 두루하면서 평등한 등(等) 침을 밝힌 것이니,

가령 경문에서시방 일체의 모든 부처님 세계 속에서도 이와 같다(十方一切諸佛世界中悉亦如是) 하였으니,

시방 일체의 묘봉산에서 모두 여래께서 묘봉산의 정상에 오르는 것을 보는 것 밝힌 것이다.

그 셋은,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하는 것이니, 

 

번째로 장과일품(長科一品)이라는 것은, 에서 10단락으로 장과하겠으니, 
하나, 이때이하 3행의 경문은 부처님의 신력(神力)으로 널리 시방에 나타냄을 밝힌 것이요,

둘, “이때이하 1 반의 경문은 부처님께서 보리수하(菩提樹下)를 떠나지 않고서도 제석천의 궁전으로 올라감을 밝힌 것이요,

셋, 그때 천제이하 7행의 경문은 제석이 멀리서 부처님이 오시는 것을 보고 궁전을 장엄해 자리를 폄을 밝힌 것이요,

넷, 몸을 굽혀 합장하고이하 2행의 경문은 제석이 부처님께 청을 올려서 궁전으로 들어가시는 것을 밝힌 것이요,

다섯, 이때 세존께서는이하 구절의 경문은 여래가 청을 받아들여서 궁전에 들어가는 것이요,

여섯, 시방 일체 세계이하 구절의 경문은 시방의 보회(普會) 이와 같음을 맺는 것이요,

일곱, 이때 제석이하 1 반의 경문은 부처님의 신력(神力)으로 즐거운 음악이 저절로 쉬어짐 밝힌 것이요,

여덟, 스스로 억념한이하 구절은, 제석이 스스로 과거의 선근(善根) 생각하여 게송을 설함으로써 부처님께서 이곳에 오심을 찬탄함을 밝힌 것이요,

아홉, 이와 같은 세계이하 2 반의 경문은, 곳에서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자 시방의 모든 곳이 마찬가지라는 것을 모두 매듭 지은 것이요,

열째, 이때이하 2행의 경문은, 여래께서 법좌에 앉으시자, 궁전이 광박(廣博)하여 넓어지면서 넉넉해짐을 밝힌 것이며,

아울러 시방에서도 모두 이 같다는 것으로 매듭 지은 것이다.

 

번째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하는 수문석의(隨文釋義)를 설명하면,

보리수를 여의지 않고(不離菩提樹)라고 말한 것은, 보리의 () 가고 옴이나, 원근(遠近)이나, 처소를 떠나고 이르름이 없음을 밝히는 때문이며,

여래의 지신(智身)은 안팎이 없는 무표리(無表裏)라 () 두루하기 때문이며,

법계는 대소(大小)가 없어서 털 하나와 찰토(세계)가 서로 상용(相容)하여 용납하기 때문이며,

심경(心境, 마음과 경계)에  모습이 없어서 중변(中邊, 중심과 변두리)이나 방소(方所, 방향과 처소)가 없기 때문이며,

법이 자체성이 없는 무자성(無自性)이라서 일다(一多, 하나와 많음)가 항상  원만하기 때문이다.

 

제석이 멀리서 부처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는 요견(遙見)에 2 가지의 뜻이 있으니,

하나는 ()둘은 법(法)을 나타낸 것이.

하나, ()란, 여래께서 오고 감이 없는 성품의 무거래성(無去來性)에서 오고 가는 모습의 거래상(去來相) 보이는 까닭멀리서 보는 요견(遙見)’이 것이며,

둘은, 법(法)을 나타내는 것이란, 제석이 아직 동등하게 깨우치지 못하였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래의 지신(智身) 두루하여서 마음과 일체라는 것을 보지 못하 때문에멀리서 부처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遙見佛來)라고 말한 것이다.

   

또한 믿고 이해하는, 신해(信解)가 ‘멀리서 보는 요견(遙見)’이 되고,

자심(自心)의 지위에 들어가는 것이부처님이 오시는 불래(佛來)’가 되는 것이.

 

'제석이 신력(神力)으로 궁전을 장엄한(帝釋卽以神力莊嚴此殿) 것'에도 역시 2 가지의 뜻이 있으니,

하나는 ()요, 둘은 법(法)을 나타냄이다.

하나, () 있을 것이며,

둘의 법(法)을 나타내는 것은 스스로 가행(加行)을 하는 것이다.

 

보광명사자좌(普光明師子座) 법좌를 안치한 것에도 2 가지의 뜻이 있으니,

하나는 지위로써 법좌를 안치함을 기준으로 것이며,

둘은 제석이 스스로의 덕과 근기로 감당하는 것을 말한.

하나의 지위로써 법좌를 안치함을 기준으로 것이란, 10주위에서의 법의 지위를 기준으로 것이니, 10주에서 일체 부처님의 지혜 광명의 () 얻어서 일체법에 자재롭고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법좌를 안치한 것으로,

10행위에서 야마천궁에서 보련화사자(寶蓮華師子) 법좌를 변화로 만들어낸 것은 행위(行位) 기준으로 것이라서, 일체의 생사에서 대자비를 갖추어 만행을 행하면서도 이지(理智) 체로 무염(無染, 오염이 없음)을 얻기 때문이니, 이러한 뜻으로 연꽃으로 법좌의 () 삼아서 10주위에서 일체 모든 부처님의 지혜 광명을 얻어 만법을 널리 비출 수 있는 때문에 보광명장사자(普光明藏師子) 법좌를 안치한 것이고, 
10주위에서는 십천(十千) 층급의 법좌를 안치하고, 10에서는 백만(百萬) 층급의 사자좌를 변화로 만들어낸 것은,

10주위에서 처음으로 지위에 들어감으로써 수미산의 정상이 여전히 지상의 거처와 이어져 있음을 밝힌 것으로,

이는 마음에 얻은 바가 있는 심유소득(心有所得)이라서 믿음으로부터 처음 회통하여 ‘법을 보는 견법(見法) 집착을 밝힌 것이다.

 

때문에 사자좌를 반드시 안치하는 것이며, 또한 방편삼매가 바로 그 안치(安置)인 것이다.

그리하여 10주위 이지(理智) 묘혜(妙慧) 공을 성취하는 공성(功成)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바로 10행위 중의 묘용(妙用)이라서, 그러므로 법좌를 변화로 만들어 내는 것이며,

행(行)이 ()으로부터 세워지는 것을 기준으로 하는 것 또한, 지위가 야마(夜摩) 허공에 () 있음을 기준으로  것이다.

 

십천(十千) 층급의 법좌, 백만(百萬) 층급의 법좌, 그리고 제석처궁과 야마천궁이라 말하는  모두는 지위에 따라 승진하는 행상(行相) 밝힌 것으로, 만약 올바르게 법에 들어간 지혜로운 자라면 호진(毫塵, 털이나 티끌)을 벗어나지 않고서도, 모든 찰해(刹海) 두루할 수 있는 것이니, 법좌가 10회향과 10지에 이르기까지 높고 낮음과 장식이 저마다의 지위에 따라 같지 않은 것은 이러한 예에 준거하여 알아야 하는 것이다.

 

법좌 장엄이 모두 십천(十千) 것은 만행의 과보로 얻은 것을 밝힌 것이니,

가령 십천의 금망(金網)이란 능히 교행(敎行) 그물로써 중생을 구체하 과보를 기준으로 것이며,

십천 종장(種帳)이란 양육의 뜻을 밝힌 것이니, 일체처에서 부처님이 되고, () 되고, 대역사(大力士) () 됨으로써 중생을 옹호하고 양육하는 행의 과보로 얻은 바이기 때문이다.

십천 종개(種蓋)란, 대자비의 뜻이니, 대자비심으로 일체 중생을 감싸서 기르는 과보로 얻은 바이기 때문이고,

십천 회기(繪綺) 하나의 일(一) 속에 다함이 없는 무진의 차별행을 행하고,

하나의 일언음(一言音) 속에서 차별의 가르침을 갖춘 것이 모두 명백하여서 관할 있는 ()인 것이다.

십천 주영(珠纓)이란, 만행(萬行)이 두루하여 지혜와 경계를 장엄하고, 중생을 교화하여 이롭게 함에 휴식함이 없는 ()로서 얻어짐을 밝힌 것이니, 하나하나의 티끌 어디에나 다함이 없는 무진의 보현신(普賢身) 있다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십천 의복(衣服)이란, 일체 생사의 바다에서 부드럽고 온화하고 착하게 인내하면서 중생을 감싸 기르는 () 것이며,

십천 천자(天子) 능히 만행을 행하는 사람을 밝힌 것이며,

십천 범왕(梵王)이란 속에서 지혜가 자재로움을 밝힌 것이며,

십천 광명(十千光明) 비춘다는 것은, 지혜로 비추어서, 자타(自他) 미혹으로 어두운 밤을 능히 타파하여 크게 밝히는 것 밝힌 것이다.

이상은 모두 지위의 과덕(果德)으로 장엄을 성취함을 들어서,발심하여 지위에 들어간 보살 하여금 () 알고 () 행함에 있어서 의혹이 없게 하고자 것이다.

 

몸을 굽혀(曲躬)이하는 제석천이 여래께 공경을 바치면서 부처님께 궁전에 드실 것 청하는 것을 밝히는 것으로, 겸손히 행함을 밝힌 것이며,

여래께서 청을 받아들이는 것은 믿음으로부터 () 들어감을 밝힌 것이니, 경문에서 있을 것이다.
가장 아래에서 제석이 숙념력(宿念力, 전생을 아는 능력) 얻어서 과거에 부처님의 처소에서 선근을 심은 것을 게송으로 설하여 부처님을 찬탄하는 것이니, 이는 삼매력을 통하여 스스로의 몸과 마음의 체성(體性) 옛날이나 지금의 불지혜(佛智慧) 선근(善根)과 같다는 것 밝힌 것이며,

이하의 10(十) 그 각각에 해당되는 지위의 공용(功用) 옛날(古) 합하는 것이이니, 설한 게송 20행의 게송은 2행이 1게송이다.

   

처음의 2행의 게송은 가섭불(迦葉佛) 찬탄한 것으로, 갖추어서 말하면가섭파(迦葉波)’이고 한역하면음광(飮光)’이니, 이는 그의 ()이며, 몸의 광명이 특수하여서 능히 모든 천자(天子) 해와 등의 빛보다 뛰어나서 그 해와 달의 빛들이 나타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다음 2행은 구나모니불(拘那牟尼佛) 찬탄한 것으로, 정식으로 말하면 가나모니(迦那牟尼)이니, 구나(拘那) 말한 것은 한역으로 ()이며, 모니(牟尼)라는 것은 ()이니, 금색으로 호칭을 삼는 것이.
다음 2행은 가라구타(迦羅鳩駄) 찬탄한 것이니, 갖추어서 말하면 가라구촌타불(迦羅鳩村駄佛)이며, 한역하면 반드시 끊을 것을 끊는다는 것이다.

 

다음 2행은 비사부불(毘舍浮佛) 찬탄한 것이니, 정식으로 말하면 식기나(式棄那)이고, 한역하면 지계(持髻) 또는 유발(有髮)이라 한다.
다음 2행은 비바시불(毘婆尸佛) 찬탄한 것이니, 한역하면 정관(淨觀) 혹은 승관(勝觀) 혹은 종종관(種種觀)이라고 한다.
다음 2행은 불사불(弗沙佛) 찬탄한 것이니, 정식으로 말하면 경사(勁沙)인데 한역하면 증성(增盛)이다.
다음 2행은 제사불(提舍佛) 찬탄한 것이니, 정식으로 말하면 저사(底沙)인데 한역하면 설법도인(說法度人, 법을 설하여 사람을 제도함)이다.
다음 2행은 파두마화불(波頭摩華佛) 찬탄한 것이니, 정식으로 말하면 발특망(鉢特忙)이니 이는 적련화(赤蓮華)이다.
다음 2행은 연등여래(燃燈如來) 찬탄한 것이다.
앞의 부처님은 바로 지금 현겁(賢劫) 부처님이요,

나중의 일곱 칠불(七佛) 이전 겁의 부처이다.

 

이는 처음 10주의 문에 들어가니 고금의 법칙이 서로 회통함을 밝힌 것으로, 옛날의 고불(古佛) 지금의 금불(今佛) 법에 있어서 다름이 없기 때문에, 지위에 드는 자는 동등하게 화통하여 다르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

 

길상(吉祥)이란 것은, 정상이 복(福)과 선(善)의 처소라는 것을 찬탄한 것이니,

승진하는 자가 삼매력으로 그 몸과 마음이 부동(不動)하여서 마치 산왕(山王) 같다는 것으로,

총체적으로는 예나 지금의 모든 부처님과 지혜가 같다는 것을 이해함을 밝히는 것이다.

 

아홉 번째로이와 같은 세계 도리천(如此世界中忉利天)이하 4행의 경문을 4 가지 뜻으로 나누면, 
첫째, 세계에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함을 드는 것이고,

둘째, 시방이 마찬가지라는 것을 총체적으로 드는 것이고,

셋째, “이때이하는 여래께서 궁전에 드시어 법좌에 올라가 앉음을 밝힌 것이고,

넷째,  궁전이 갑자기 광박(廣博)하여 지면서 두루 모든 하늘이 머무는 곳을 용납하는 것을 밝힌 것이니,

이는 여래의 자타(自他)가 없는 덕이 마땅히 그러함을 기준으로 하여서, 대중들로 하여금 보게 함을 밝힌 것이니, 대중으로 하여금 지위에 들어가서 이와 같아지 하고자 함 밝힌 것이다.


이상으로 승수미정품(昇須彌頂品)에 대한 해석을 끝낸다.

대체로 삼매력을 통하여 올바르게 () 들어갈 때에는 몸과 마음 모두가 확연하게 틔이여서 법계의 성품에 부합하여 안팎이 없음을 밝힌 것이다.

광명이 밝고 투철한 것이 바로갑자기 넓혀진다(忽然廣博) 뜻이자, 보광명장사자좌의 뜻이고,

지혜가 현전하는 것이 바로부처님께서 온다는 불래(佛來)’의 뜻이니,

하나하나 이렇게 () 회통하여 수행하여야 하는 것으로, 명자(名字)만을 좇지는 않아 하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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