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經卷第十九 十行品第二十一之一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三藏沙門(삼장사문實叉難陀 (실차난타 

21. 십행품(十行品)   4 ㅡ 제삼(第三) 무위역행(無違逆行) 

 

무위역행(無違逆行) 인(忍) 바라밀로 체(體)를 삼는다. 

 

ㅡ 자타(自他)를 해치지 않고 인욕하고 유화함을 밝힌 분

佛子(불자) 何等(하등) 爲菩薩摩訶薩(위보살마하살) 無違逆行(무위역행)

此菩薩(차보살) 常修忍法(상수인법) 謙下恭敬(겸하공경) 
不自害(불자해) 不他害(불타해) 不兩害(불양해)

不自取(불자취) 不他取(불타취) 不兩取(불양취) 

不自着(불자착) 不他着(불타착) 不兩着(불양착)

亦不貪求(역불탐구) 名聞利養(명문이양)

但作是念(단작시념) 我當常爲衆生說法(아당상위중생설법) 令離一切惡(영일체악)
斷貪瞋癡(단탐진치) 憍慢覆藏(교만부장) 慳嫉諂誑(간질첨광) 

令恒安住(영항안주) 忍辱柔和(인욕유화)

불자여, 어떠한 것을 보살마하살의 어기지 않는 무위역행(無違逆行)이라 하는 것인가?

이 보살은 항상 인욕(忍辱)하는 법을 닦아 겸손하고 남을 공경하며,

스스로 해하지 않는 불자해(不自害)하고, 남을 해하지 않는 불타해(不他害)하여서,

자타(自他) 모두를 해치지 않으며,

스스로 탐하여 취하지 않는 불자취(不自取)하고, 남의 것도 탐하여 취하지 않는 불타취(不他取)하여서,

그 둘 모두를 탐하지 않는 불양취(不兩取)하며,

스스로 집착하지 않는 불자착(不自着)하고, 남에게도 집착하게 하지 않는 불타착(不他着)하여서,

그 둘 모두에 집착하지 않는 불양착(不兩着)하며,

또한 명예와 이양(利養, 이익)도 구하지 않으나, 오로지 이렇게 생각할 뿐이니,

‘내가 마땅히 중생들에게 법을 설하여서 그들로 하여금 모든 악(惡)을 여의게 하고,

탐욕(貪)ㆍ성내는 일(瞋)ㆍ어리석음(癡)ㆍ교만(憍慢)ㆍ자신의 잘못을 감추어 숨기는 부장(覆藏)

아끼는 간(慳)ㆍ질투(嫉)ㆍ아첨(諂)ㆍ속임(誑) 등을 끊게 하여서

항상 부드럽게 화평하는, 인욕의 유화(柔和)함에 머물게 하리라’고 합니다.    

ㅡ無違逆行(무위역행), 어기지 않는다는 것은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수순하여서 받아들이고 욕됨을 참는, 인욕의 뜻입니다.  

 

ㅡ몇 10년 참선한 선지식이고, 견성해서 결제 해제 법문을 하는 큰 스님도 정작 경계를 대하면, 법력이 업력을 이기지를 못하는 것으로 보면 실망이 크고 갈등도 크지만, 수행을 접을 수도 없는..... 사건들ㆍ사실들 다 알잖아요.

그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라, 무수 억겁 동안 탐ㆍ진ㆍ치와 온갖 번뇌ㆍ108번뇌ㆍ8만4천 번뇌를 끊임없이 익히면서 살아 온 때문에, 부처님 말씀에 감동하고 눈물도 흘리지만, 정작 어떤 이해관계나 자기 자존심 상하는 일에는 법력이나 도력은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 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견고한 3독 번뇌도 눈 녹듯이 녹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보살은 인욕수행을 해서 어떤 상황에서도, 동요하지 않고 내 자신의 참 마음, 불성에 대해서 아주 明了한 인식을 갖고 선정을 지킬 수 있으면 그 힘으로 그야말고 다른 마음도 청정하게 할 수가 있다. 
승조 법사는 정치적인 문제에 계루 되어서 사형을 당하는 자리에서도 마음이 하나도 동요하지 않고 
'將頭臨白刃(장두임백인) 머리에 흰 칼날을 갖다 대니 猶如斬春風(유여참춘풍)이라. 마치 봄바람을 베는 것과 같더라.'는 
시를 읊었으며,
달마스님도 독약을 먹고도 증도가에 
'假饒毒藥(가요독약)이라도 也閑閑(야한한)이라.설사 독약이라 하더라도 마음은 한가하다.'고 한 것과 같이
두려워하거나 공포스러워 하거나 회피하려고 하는 자세가 없는 사례들이 불교역사에 많이 있습니다.ㅡ무비스님

 

ㅡ보살의 신어(身語)로감내하고참음을밝힌분

佛子菩薩(불자보살) 成就如是忍法(성취여시인법) 假使(가사) 有百千億(유백천억)

那由他阿僧祗(나유타아승지) 衆生來至其所(중생래지기소) 一一衆生(일일중생)

化作(화작) 百千億那由他(백천억나유타) 阿僧祗口(아승지구)

一一口(일일구) 出百千億那由他(백천억나유타) 阿僧祗語( 아승지어) 

所謂不可喜語(소위불가희어) 非善法語(비선법어) 不悅意語(불열의어)
不可愛語(불가애어) 非仁賢語(비인현어) 非聖智語(비성지어)

非聖相應語(비성상응어) 非聖親近語(비성친근어) 深可厭惡語(심가염오어) 

不堪聽聞語(불감청문어) 以是言詞(이시언사) 毁辱菩薩(훼욕보살)

불자들이여, 보살이 이렇게 인욕함을 성취하였다면,

가령 백천억 나유타 아승기와 같이 많은 중생들이 그가 있는 처소에 와서,

그 각각의 중생들마다 백천억 나유타 아승기 입(口)을 변화하여서

가지고 낱낱의 입들이 백천억 나유타 아승기와 같이 많은 말들을 뱉어 내나니,

소위, 기뻐할 수 없는 불가희어(不可喜語)와, 선하지 못한 말의 비선법어(非善法語)와,

반갑지 않은 뜻의 불열의어(不悅意語)와, 사랑스럽지 못한 불가애어(不可愛語)와,

어질고 현명하지 못한 말의 비인현어(非仁賢語)와, 성스럽지 않고 지혜롭지 못한 말의 비성지어(非聖智語)와,

성스러움에 상응하지 않는 비성상응어(非聖相應語)와, 성스러움에 가까울 수 없는 비성친근어(非聖親近語)와

매우 혐오스러운 심가염오어(深可厭惡語)와

차마 듣고 감당할 수 없는 불감청문어(不堪聽聞語) 등의 말들을 뱉어 내나니, 

이러한 언사(言詞)로서 보살을 헐뜯고 욕하면서 모욕하거나,

 

又此衆生(우차중생) 一一各有(일일각유) 百千億那由他(백천억나유타) 阿僧祗手(아승지수) 

一一手(일일수) 各執(각집) 百千億那由他(백천억나유타) 阿僧祗器仗(아승지기장)

逼害菩薩(핍해보살) 如是經於阿僧祗劫(여시경어아승지겁) 曾無休息(증무휴식)

遭此極大楚毒(조차극대초독) 身毛皆竪(신모개수) 命將欲斷(명장욕단) 作是念言(작시념언) 
我因是苦(아인시고) 心若動亂(심약동란) 則自不調伏(즉자불조복) 自不守護(자불수호) 
自不明了(자불명료) 自不修習(자불수습) 自不正定(자불정정) 自不寂靜(자불적정) 
自不愛惜(자불애석) 自生執着(자생집착) 何能令他(하능령타) 心得淸淨(심득청정) 

또한 이 중생들이 각각이 저마다 백천억 나유타의 아승기와 같이 많은 손을 가져서

그 각각의 손마다 각각 백천억 나유타 아승기와 같이 많은 기장(器仗, 병장기 또는 흉기)를 들고서

아승기겁이 지나도록 잠깐도 쉬지 않고 보살을 해치고 박해한다 할지라도, 

보살이 이렇게 극심한 고초를 당하여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생명이 곧 끊어지게 될 지경에 이를지라도,

‘내가 이러한 고통으로 인하여 마음이 흔들린다면, 곧 나 스스로를  조복하지 못하는 것이요,

나 스스로를 지켜서 수호하지 못하는 것이요, 나 스스로를 분명히 알지 못하는 것이요,

나 스스로를 닦아 익히지 못하는 것이요, 나 스스로가 바른 선정을 하지 못한 것이요,

나 스스로가 적정하지 못한 것이요, 나 스스로를 사랑하고 아끼지 못한 것이요,

나 스스로에게 집착한 것이 될 것이니, 어떻게 다른 이들의 마음을 청정하게 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생각 합니다.

 

 

菩薩爾時(보살이시) 復作是念(부작시념) 我從無始劫(아종무시겁) 住於生死(주어생사) 

受諸苦惱(수제고뇌) 如是思惟(여시사유) 重自勸勵(중자권려) 令心淸淨(영심청정) 

而得歡喜(이득환희) 善自調攝(선자조섭) 自能安住(자능안주) 於佛法中(어불법중) 

亦令衆生(역령중생) 同得此法(동득차법) 

그때, 보살이 다시 생각하기를, ‘나는 시작이 없는 무시겁(無始劫)의 오랜 세월 동안 생사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여러 가지의 많은 고통을 받았구나!’ 하고는 그러함을 사유하여서 스스로를 더욱 권려(勸勵, 독려)하여서 

스스로의 마음을 청정하게 가다듬어서 환희하여지고, 스스로를 조섭(調攝= 길들이고 섭수하여 절제함)하여

스스로 불법 가운데에 편안히 안주하고 또한 중생들로 하여금 이와 같은 법을 얻을 수 있게 하리라!' 합니다.

 

復更思惟(부갱사유) 此身空寂(차신공적) 無我我所(무아아소)

無有眞實(무유진실) 性空無二(성공무이) 若苦若樂(약고약락) 皆無所有(개무소유) 

諸法空故(제법공고) 我當解了(아당해료) 廣爲人說(광위인설) 令諸衆生(영제중생) 

滅除此見(멸제차견) 是故我今(시고아금) 雖遭苦毒(수조고독) 應當忍受(응당인수) 

다시 사유하기를,  ‘이 몸은 공적(空寂)한 것이라! 무아(無我)이고, 나의 것이라 할 것도 없는 무아소(無我所)이라,

진실함이 없어서 변하는 무진실(無眞實)한 것이며,

그 성품은 공하여서 둘이 없는 성공무이(性空無二)요,

괴롭고 없고 즐거움의 모든 것이 없는 무소유(無所有)이니, 

제법이 공한 것이라는 법공(法空)인 까닭을 내가 마땅히 이해하여 알아서,

다른 이들을 위하여 널리 설하여 여러 중생들로 하여금 그러함을 알지 못하는 잘못 된 소견을 없앨 수 있게 하리라!

그러므로 내가 비록 이러한 고독(苦毒, 고초, 고통)을 당한다 할지라도 당연히 인수(忍受)하여 참고 견디어야 하리라!

 

爲慈念衆生故(위자념중생고) 饒益衆生故(요익중생고) 安樂衆生故(안락중생고) 

憐愍衆生故(연민중생고) 攝受衆生故(섭수중생고) 不捨衆生故(불사중생고) 

自得覺悟故(자득각오고) 令他覺悟故(영타각오고) 心不退轉故(심불퇴전고)

趣向佛道故(취향불도고) 是名(시명)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第三無違逆行(제삼무위역행) 

(이러한 고독(苦毒, 고초, 고통)을 참고 견디는 까닭은)

중생을 자애로이 생각하고 염려하는 까닭이요, 중생들에게 요익(饒益)하게 하려는 까닭이요,

중생을 안락하게 하고자 하는 까닭이요, 중생을 연민하여 가엾이 여기는 까닭이요,

중생을 섭수하여 보살피고자 하는 까닭이요, 중생을 버리지 않고자 하는 까닭이요,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자득각오(自得覺悟)하고자 하는 까닭이요,

스스로의 깨달음을 얻은 후에는 남도 깨달을 수 있도록 영타각오(令他覺悟)하게 하려는 까닭이요,

마음이 물러나 퇴전하지 않으려는 까닭이요,

부처님의 불도(佛道)를 향하여 나아가고자 하는 까닭이라’고 하나니,

이것을 세 번째의 보살마하살이 어기지 않는 무위역행(無違逆行)이라 하는 것입니다.

 

ㅡ어떤 상황이 자신의 뜻에 부합되면 순경계(順境界)라 하고 그렇지 않은 것을 역경계(逆境界)라 합니다.

괴로움은 나에게 맞지 않는 역경계(逆境界)의 역연(逆緣)으로, 괴로움은 참기가 어려운 것인 반면,

즐거움은 나에게 아주 맞는 순연(順緣)이요 순경계(順境界)라서, 즐거움이 다가오면 참을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역경계보다 순경계를 더욱 조심해야 하고, 순연에 빠지지 않도록 마음을 더욱 다져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시험에 들지 않게 하소서'라는 말이 역경계를 만나지 않게 하여 주기를 바라는 것일 것입니다.  

아주 좁게 살펴 보면, 도둑질을 계획한 것이 잘못되어서 잡히는 것도 그 도둑의 입장에서는 역경계일 수가 있고, 

도둑질이 잘 되어서 흡족하게 훔치게 되는 것은 그 도둑에게는 순경계가 될 수도 있는 것이지만,

그 도둑의 역경계가 그 도둑과 모두에게는 더욱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보통의 우리들은 인생의 흐름에서 어떠한 것이 역경계인지를 잘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라서, 조금이라도 내가 뜻한 바대로 되지 않을 때에는 역정을 내고, 주변을 탓하는 경우가 많은데, 스스로 살펴 보아야 할 것이고, 

우선은 진리(불법, 이치 등등)을 사유하여서 도리와 이치에 맞고 맞지 않는 것들에 대한 스스로의 이해와 철학이 뚜렷해야 해서 바른 일을 계획하고 바른 결과를 바라는 것이 역경계를 피하는 것이 될 수가 있겠습니다.

 

ㅡ사전에서는 인욕(忍辱)은 외부로부터의 핍박을 감내하여 마음을 안온하게 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설사 ‘타인의 핍박을 받더라도 참아야 한다’고 합니다.  참음의 기준과 한계와 종류는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인내의 마음가짐에 대하여 간략히 이야기한다면, ‘타인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더라도 성내는 마음을 내지 말라. 그리고 ‘고난에 처하더라도 신심에 동요를 일으키지 말라. 그래서 ‘인욕의 이치를  알면 수행자의 규범() 깨뜨리는 죄에서 벗어   있다’면서 인욕의 자세와 공능을 밝히고 있습니다. 어리석어서 계(戒)를 어기는 만큼 참지 못하여 범하는 규범() 빈번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우리의 행위() 연관시킨다면 비록 남이 자신을 괴롭힐지라도 몸을 단속하여 인내하는 신인행(身忍行) 

타인의 거친 말에도 투쟁을 일으키지 않는 구인행(口忍行), 

그리고 상대로부터 수치를 당하더라도 원한을 가지지 말라는 의인행(意忍行)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몸으로 참고, 입으로 인내하고, 생각으로 감내하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좋고 싫은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면 결국 평온으로 이끄는 () 범하게 되고, 그로 인하여 종국에는 해탈과 열반에서 멀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참을 인(忍)자 셋이면 살인도 피한다’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욕’하라는 것은 단순히 무조건 억누르고 견디라는 것이 아닙니다. 억지로 참는 것은 단순히 삭이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인내의 한계에 다다르거나 똑같은 상황에 이르면  과정을 반복하게  입니다. 그렇게 인내하는 것은 그냥 인욕이라 하지만, 일체가 공한 이치를 알고 행하는 인내(行觀一切皆空之安忍) 바라밀이라 합니다. 바라밀이란 열반(彼岸)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수행의 총칭으로 인욕으로 해탈에 이르고자 하는 정진이 인욕바라밀입니다. 그래서 앞에서 인용한 글에 “참는 사람은 악(惡)이 없기 때문에 반드시 부처님이 되느니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욕망의 달콤함에서 자유롭지 못하듯이 분노케 하는 것에서 절제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다만 인욕하지 않았을  따르는 결과를  알기에 억지로라도 참으려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하고 싶은 것을 참는 것은 어느 정도의 절제력만 있으면 가능하지만, 억울하거나 부당한 경우를 당하였을  일어나는 화를 다스리기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감정이 흐르는대로 따르면 한 순간의 기분은 풀릴지 모르겠지만, 그와 동시에 감당해야  멍에도 함께 짊어져야 합니다.  관계를 <선가귀감>에서 간단히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성내는 마음   일으키면 백만가지 장애의 문이 열린다(一念瞋心起百萬障門開).작성자 태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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