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經卷第十九 十行品第二十一之一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三藏沙門(삼장사문實叉難陀 (실차난타 

21. 십행품(十行品)   2 ㅡ 제일(第一)의 환희행(歡喜行)

 

환희행은 단(檀, 보시) 바라밀로 체를 삼으며, 

첫째, 단바라밀을 행하여서 부처님께서 수행하시 바를 배우는 것이

둘째,  지위의 보살이 궁핍한 곳을 보고 맹세코 부귀로운 집안에 태어나기를 염원하여서,

재물과 신명(身命)을  보시하여 중생들을 요익하게 함이.

셋째, 진(眞)을 알아서 상념이 없음을 밝히는 분이며,

넷째, 중생이 견고한 몸이 아님을 관하고 견고한 몸을 구하여 영원히 안온하게 함을 밝힌 것이다

 

ㅡ10행 제일(第一)의 환희행(歡喜行)은 주(主) 바라밀이 단(檀, 보시) 바라밀이고

그 나머지 9 바라밀은 조(助)바라밀이 됩니다.

ㅡ단(보시) 바라밀을 행하여서 부처님께서 수행하신 바를 배우고자 함을 밝힌 분(分)

佛子(불자) 何等(하등)爲菩薩摩訶薩(위보살마하살) 歡喜行(환희행) 

佛子(불자) 此菩薩(차보살) 爲大施主(위대시주) 凡所有物(범소유물) 悉能惠施(실능혜시) 

其心平等(기심평등) 無有悔吝(무유회린) 不望果報(불망과보) 不求名稱(불구명칭) 不貪利養(불탐이양) 

불자여, 어떠한 것이 보살마하살의 즐거운 행의 환희행(歡喜行)이라 하는가?

불자여, 이 보살이 대시주(大施主)가 되어 가진 물건들 모두를 능히 보시하여 베푸나

그 마음이 평등하여 후회하거나 아까워하지 않으며, 과보(대가)를 바라지도 않으며,

명칭(名稱, 명예, 소문)을 구하지도 않으며, 이양(利養, 이익과 재물)을 탐하지도 않고, 

 

但爲(단위) 救護一切衆生(구호일체중생) 攝受一切衆生(섭수일체중생) 饒益一切衆生(요익일체중생) 

오로지 일체 중생을 구호(救護)하고, 일체 중생을 섭수(攝受)하여 거두어 들이며,

일체 중생을 요익(饒益)하게 하려는 것이며,

 

爲學習諸佛(위학습제불) 本所修行(본소수행) 憶念諸佛(억념제불) 本所修行(본소수행) 

愛樂諸佛(애락제불) 本所修行(본소수행) 淸淨諸佛(청정제불) 本所修行(본소수행) 

增長諸佛(증장제불) 本所修行(본소수행) 住持諸佛(주지제불) 本所修行(본소수행) 

顯現諸佛(현현제불) 本所修行(본소수행) 演說諸佛(연설제불) 本所修行(본소수행)

令諸衆生(영제중생) 離苦得樂(이고득락)

모든 부처님들께서 본래로 수행(修行)하신 바를 배우고자 하는 것이며,

모든 부처님들께서 본래로 닦으신 바의 행을 억념(憶念, 기억 생각)하고자 하는 것이며,

모든 부처님들께서 본래로 수행(修行)하신바를 애락(愛樂)하여 즐기고 좋아하고자 하는 것이며,

모든 부처님들께서 본래로 수행하신 바를 청정하게(훌륭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며,

모든 부처님들께서 본래로 수행하신 바를 더욱 증장(增長)하여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며,

모든 부처님들께서 본래로 수행하신 바에 주지(住持)하여 머물러 지니고자 하는 것이며,

모든 부처님들께서 본래로 수행하신 바를 현현(顯現)하여 밝게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며, 

모든 부처님들께서 본래로 수행하신 바를 드러내어 연설하여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이고(離苦)하여 괴로움을 여의고 득낙(得樂)하여 즐거움(행복)을 얻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보살이 궁핍한 곳을 보고 맹세코 부귀로운 집안에 태어나기를 염원하여서,

재물과 신명(身命)을  보시하여 중생들을 요익하게 하고자 .

佛子(불자)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修此行時(수차행시) 

令一切衆生(여일체중생) 歡喜愛樂(환희애락) 隨諸方土(수제방토) 有貧乏處(유빈핍처) 

以願力故(이원력고) 往生於彼豪貴大富(왕생어피호귀대부) 財寶無盡(재보무진)

假使於念念中(가사어념념중) 有無量無數衆生(유무량무수중생) 詣菩薩所(예보살소) 

我等貧乏(아등빈핍) 靡所資贍(미소자섬) 飢羸困苦(기영곤고) 命將不全(명장부전) 

惟願慈哀(유원자애) 施我身肉(시아신육) 令我得食(영아득식) 以活其命(이활기명) 

爾時(이시) 菩薩(보살) 卽便施之(즉변시지) 令其歡喜(영기환희) 心得滿足(심득만족)  

便 변 ① 편리하다② 곧③ 형편이 좋다 / 贍 넉넉할 섬 / 飢 주릴 기 / 羸 여윌 리, 파리할 리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행들을 닦을 때에는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환희하고 기쁘고 즐겁게 하고자 하나니,

여러 지방을 따라 빈핍처(貧乏處, 가난하고 궁핍한 곳)거 있으니,

원력으로써, 재물과 보화가 무진하고, 호사스럽고 크게 부귀한 회귀대부(豪貴大富)로 태어나서

염념(念念, 잠깐 잠깐) 사이에 무량하고 무수하게 많은 중생들이 보살에게 와서 말하기를

‘어진 인자(仁者)시여, 저희들은 몹시 가난하여 끼니를 이어갈 수가 없을 만큼 빈핍(貧乏, 궁핍)하여 굶주리고

자섬(資贍)하여 모든 것이 넉넉하지 못하며, 기영(飢羸)하여 굶주려서 파리하며,

곤고(困苦)하여 몹시 괴로워서 목숨을 부지하기가 매우 어렵사오니,

바라옵건대 불쌍히 여기시어 자비와 애민으로 저희들에게 육신(필요한 모든 것)을 보시하여 주셔서, 

저희들이 먹고 살아나게 하여 주소서’ 한다면,

보살은 곧 보시를 하여 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마음으로 환희하고 만족을 얻게 하며,

 

如是(여시) 無量百千衆生(무량백천중생) 而來乞求(이래걸구) 菩薩於彼(보살어피)

曾無退怯(증무퇴겁) 但更增長(단갱증장) 慈悲之心(자비지심) 以是衆生(이시중생)

咸來乞求(함래걸구) 菩薩見之(보살견지) 倍復歡喜(배부환희) 作如是念(작여시념)

我得善利(아득선리) 此等衆生(차등중생) 是我福田(시아복전) 是我善友(시아선우)

不求不請(불구불청) 而來敎我(이래교아) 入佛法中(입불법중) 我今應當(아금응당)

如是修學(여시수학) 不違一切衆生之心(불위일체중생지심)  

이러하게 무량한 백천의 중생들이 찾아 와서 구걸한다 할지라도 보살은 일찍이 겁내어 물러나지 않으며,

다만 자비심을 더욱 증장하게 하여서, 그러한 자비심으로서 많은 중생들 모두가 와서 구걸하는 것을 보살이 보고는

더 더욱 환희하면서 이렇게 생각하나니, 

‘나는 지금 선리(善利, 좋은 이익)을 얻었도다. 이러한 중생들이 곧 나의 복전(福田, 복밭)이요,

나의 선우(善友, 좋은 친구)이구나,

내가 부탁하여 청하지도 않았거늘, 이렇게 나에게로 와서 나로 하여금 불법 가운데 들게 가르쳐 주는구나!

나는 마땅히 이렇게 배우고 닦아서 모든 중생들의 마음을 어기거나 거스르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며,

 

又作是念(우작시념) 我(원아) 已作現作當作(이작현작당작)

所有善根(소유선근) 令我未來(영아미래) 於一切世界一切衆生中(어일체세계일체중생중) 

受廣大身(수광대신) 以是身肉(이시신육) 充足(충족) 一切飢苦衆生(일체기고중생) 

乃至(내지) 若有一小衆生(약유일소중생) 未得飽足(미득포족) 願不捨命(원부사명) 

所割身肉(소할신육) 亦無有盡(역무유진) 

 

다시 생각하기를 ‘원하나니, 내가 이작(已作)하여 이미 지었거나, 현작(現作)하여 지금 짓고 있거나, 

당작(當作)하여 장차 지을 모든 선근으로써, 오는 미래(未來)에는 일체 세계의 일체 중생들 가운데에서

가장 큰 몸의 광대신(廣大身, 영향력이 큰 사람이 되어서)을 받아서,

그 육신의 살(그 영향력)로써 굶주림에 시달리는 모든 중생들을 충족시키되,

만약 어떠한 작은 중생에 이르기까지라도 미포족(未飽足)하여 만족하게 배부름을 얻지 못하는 이가 있다면,

나의 목숨이 다하여 죽지도 않을 것이며, 내 몸에서 베어내는 살 또한 다함이 없기를 원하며,

(어떠한 작은 중생도 만족하지 않은 이가 없을 때까지 보살의 광대한 보시할 수 있는 힘이 다하지 않기를 원하며) 

 

以此善根(이차선근) 得(원득) 阿耨多羅三藐三菩提(아뇩다라삼먁삼보리) 證大涅槃(증대열반) 

願諸衆生(원제중생) 食我肉者(식아육자) 亦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역아뇩다라삼먁삼보리)

獲平等智(획평등지) 具諸佛法(구제불법) 廣作佛事(광작불사) 乃至(내지)

入於無餘涅槃(입어무여열반) 若一衆生(약일중생) 心不滿足(심불만족) 

我終不證(아종불증) 阿耨多羅三藐三菩提(아뇩다라삼먁삼보리) 

이러한 선근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서 대열반을 증득하기를 원하며,

‘나의 살을 먹은 중생들 (내가 돌보아 준 중생들) 역시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서 평등한 지혜를 가지며,

불법을 갖추어서 불사를 널리 짓다가 무여(無餘)열반에 들 수 있기를 원하며,

만약 한 중생이라도 그 마음이 만족하지 못한다면, '나는 끝끝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지 않으리라’고 합니다.

 

菩薩(보살) 如是利益衆生(여시이익중생) 而無我想(이무아상) 衆生想(중생상) 有想(유상) 命想(명상) 

種種想(종종상) 補伽羅想(보가라상) 人想(인상) 摩納婆想(마랍파상) 作者想(작자상) 受者想(수자상)

보살이 이러하게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지만, 나라는 생각의 아상(我想)과 중생이라는 생각의 중생상(衆生想),

있는 것이라는 생각의 유상(有想)ㆍ목숨이라는 생각의 명상(命想)ㆍ여러 가지 생각의 종종상(種種想)ㆍ

보특가라라는 생각의 보가라상(補伽羅想)ㆍ사람이라는 생각의 인상(人想)ㆍ

아직 어려서 부족하다는 생각의 마납바상(摩納婆想)ㆍ짓는 이가 있다는 생각의 작자상(作者想)ㆍ

받는 이라는 생각의 수자상(受者想)들 모두가 없으며,

ㅡ보특가라(補特加羅), 중생의 나(我)를 가리키는 것으로, 자주 5취(趣, 인간ㆍ아수라ㆍ축생ㆍ아귀ㆍ지옥)의 고통을 취하기 때문에 삭취취(數取趣)라고도 한다.

 

但觀(단관) 法界衆生界(법계중생계) 無邊際法(무변제법) 空法無所有法(공법무소유법) 

無相法(무상법) 無體法(무체법),  無處法(무처법), 無依法(무의법) 無作法(무작법)  

다만 법계와 중생계가 끝이 없는 법이라는 무변제법(無邊際法)과 공법(空法)과

무소유법(無所有法)과 무상법(無相法), 무체법(無體法), 무처법(無處法)과

의지할 바가 없다는 무의법(無依法)과 지음이 없는 무작법(無作法)을 관찰할 뿐입니다.

 

作是觀時(작시관시) 不見自身(불견자신) 不見施物(불견시물) 不見受者(불견수자) 

不見福田(불견복전) 不見業(불견업) 不見報(불견보) 不見果(불견과)  

不見大果(불견대과) 不見小果(불견소과)  

이러하게 관찰을 할 때에는 스스로의 몸도 보지 않는 불견자신(不見自身)이며,

보시하는 물건도 보지 않는 불견시물(不見施物)이며, 받는 이도 보지 않는 불견수자(不見受者)이며,

복밭도 보지 않는 불견복전(不見福田)이며, 업도 보지 않는 불견업(不見業)이며,

과보를 헤아리지 않는 불견보(不見報)이며, 결과를 기대하지도 않는 불견과(不見果)이며,

큰 결과를 바라지 않는 불견대과(不見大果)이며, 작은 결과도 바라지 않는 불견소과(不見小果)입니다.

ㅡ삼륜청정(三輪淸淨), 삼륜(三輪), 즉 받

는 사람의 수자(受者)ㆍ주는 사람의 시자(施者)ㆍ사물을 보시하는 시물(施物)의 세 가지가 공(空)한 것으로 아는 것입니다

 

爾時(이시) 菩薩(보살) 觀去來今一切衆生(관거래금일체중생) 所受之身(소수지신)

尋卽壞滅(심즉괴멸) 便作是念(변작시념) 奇哉衆生(기재중생) 愚癡無智(우치무지)

於生死內(어생사내) 受無數身(수무수신) 危脆不停(위취부정) 速歸壞滅(속귀괴멸)

若已壞滅(약이괴멸) 若今壞滅(약금괴멸) 若當壞滅(약당괴멸) 

그때, 보살은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중생들이 그 몸을 받은 몸이 곧 괴멸(壞滅)하여 무너져 멸하는 것을 관찰하고는,

문득 생각하기를, ‘이상하도다(신기하도다, 애석하도다) 중생들이여!

우치하고 무지하여 생사(生死) 가운데에서 무수한 몸을 받지만,

그 몸은 위태하고 연약하여서 머물지 못하고 속히 멸하여서 빠르게 무너져 없어지는 것이라,

이괴멸(已壞滅)하여 이미 멸하였거나, 금괴멸(今壞滅)하여 지금 멸하고 있거나,

당괴멸(當壞滅)하여 장차 멸할 것이어늘,(과거ㆍ현재ㆍ미래 모두를 관찰하여도 괴멸하기만 할 뿐이거늘)

ㅡ위태부정(危脆不停), 바늘에 찔리기도 하고, 부딪치면 깨지고, 음식을 잘못 먹으면 그대로 탈나고, 찬바람에 감기 걸리는 등으로 약하고 변해가는 몸인 것입니다.

 

而不能以(이불능이) 不堅固身(불견고신) 求堅固身(구견고신) 我當盡學(아당진학) 諸佛所學(제불소학)

證一切智(증일체지) 知一切法(지일체법) 爲諸衆生(위제중생) 說(설) 三世平等(삼세평등)

隨順寂靜(수순적정) 不壞法性(불괴법성) 令其永得(영기영득) 安隱快樂(안온쾌락) 

佛子야 是名菩薩摩訶薩(시명보살마하살) 第一歡喜行(제일환희행) 

이러하게 견고하지 않은 몸으로써 견고한 몸을 구하고 있나니,

내가 마땅히 모든 부처님들께서 배우신 것을 모두 배워서 일체지(一切智)를 증득한 수,

일체법(一切法)를 알아서,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가 평등하며,

적정(寂靜)에 따르는 무너지지 않는 불괴법(不壞法)의 성품을 설하여 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안온하고 쾌락함을 얻게 하리라’ 하나니,

불자들이여, 이러한 것을 첫 번째 보살마하살의 제일환희행(第一歡喜行)이라 하는 것입니다.

 

ㅡ진정한 불자라면 오로지 중생들을 이고득락하게 하고 중생들을 위해서 사는 것이지만, 우리나라에는 일찍이 대승불교가 들어 와서 불교 교리 자체는 대승불교이지만, 그것을 배우는 승려들은 소승입니다. 선방에서 한 철 공부한 다음에 만행을 나설 때 육환장 짚고 나서는데, 우리 어릴 때에는 육환장을 짚고 다니는 스님들 많았습니다. (청담스님은 오랫동안 육환장 짚고 다녔습니다.)
육환장이란, 해제한 3개월 동안 ‘육도만행을 베풀어라.’는 뜻으로, 3개월은 공부하고, 3개월은 육도만행, 즉 보시하러 다니는데, 요즘은 그것을 잊어버리고 해제 중에 또 결제 하고 앉아 있는 겁니다. 계속 앉아 있기만 하면 어쩌자는 겁니까? 참선을 한 철 했으면 나가서 참선을 나누고, 경전을 한 철 공부했으면 경전을 나누고, 염불을 한 철 했으면 염불을 나누어야 되고, 만약 상황이 안되면, 노동이라도 해줘야 됩니다. 제가 관음사에 향곡스님 살아계실 때에는, 결제중 저녁에 내려와서 멸치 잡는 것 거들었어요. 중이 멸치 잡는 것 거들면 되겠습니까? 그렇지만 그 멸치는 어차피 죽은 멸치입니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이 고생ㆍ고생하는 것을 못 보겠더라고요. 그래서 밤에 나가서 끌어올리는 것을 계속 거들었습니다. 그렇게라도 해야지요. 
호연스님은 해제 중에 걸망지고 가다가 초상집이 있는데, 보니까 아주 외로워 보여서, 그래서 거기서 哭(곡)하면서 울어 준겁니다. 농사도 거들어주고, 큰물 났을 때 재해를 돕도록 되어있는데, 그런 것 전부 잊어버리고... 

회향삼처실원만(回向三處悉圓滿)에서의 삼처(三處)는보리(菩提)ㆍ중생(衆生)ㆍ실제(實際)이고, 

선근을 닦아사 좋은 일을 하고, 그 좋은 일이 좀 더 확장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회향입니다.

예를 들어서 100일 기도를 했다면, 그 다음에 회향으로 100일 기도를 한 번 더 한다든지, 선행을 하는 것이 회향입니다.

상구보리(上求菩堤) 하화중생(下化衆生) 위로는 보리, 즉 깨달음을 구하는 것이  보리에 회향하는 것이고, 

실제(實際) 회향은 실제(實際)는 진리, 이치와 동화(同化) 되는 것도 하나의 회향인 것입니다.

숨을 들이마시는 것은 돌이킬 회(廻), 밖으로 향하여 내 뿜는 것은 향(向)이고, 먹는 것은 회(廻)이고, 배설하는 것은 향(向)입니다

총림에 와서 공부하는 것은 회(廻)이고, 돌아가서 개인 수행하는 것이 향(向)이고,

자기 공부하는 것은회(廻)이고 공부한 것을 가르치는 것은 향(向)이고,  

태어나는 것은 회(廻)이고, 죽는 것이 향(向)으로, 일체가 회향(廻向)인, 회향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해서 돈 버는 사람은 돈 벌어서 베풀어야 되는 것으로, 버는 것은 회(廻)이고, 베푸는 것은 향(向)이 되는 것으로,   

전부를 모두 배운 후에 가르치려고 하는 것을 부처님이 일찍이 경계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우유를 매일 짜니까 자기 식구들 밖에 못 먹겠거든요. 그래서 한 달을 모아서 한꺼번에 짜서 동네사람들에게 다 한 번씩 돌아가도록 해야 되겠다해서 한 달을 기다렸다가 짜니까 우유가 다 말라서 하나도 없더라. 부처님이 이런 비유를 들었잖아요. 

그날 배운 것은 그날 회향해서가르쳐야 됩니다.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뜻도  ‘회향이다.’ 라고 저는 정리했습니다.

불교 공부는 내 자신을 위해서ㆍ내 자신에게 대접하기위해서ㆍ내 자신의 인격 향상을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인데, 공부만 하고  회향하지 않으면 이것은 크게 빚지는 겁니다. ㅡ무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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