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經卷第十九 昇夜摩天宮品第十九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 三藏沙門(삼장사문) 實叉難陀 譯(실차난타 역)
19. 승야마천궁품(昇夜摩天宮品) ㅡ 3
ㅡ무외림(無畏林) 보살 - 승혜(勝慧) 세계 - 부동안불(不動眼佛)
ㅡ무외림(無畏林) 보살이란 항상 정진을 행하는 것이 바로 생사에서 인천(人天)에게 이익을 주어 두려움이 없게 함을 밝힌 것으로, 이는 굽힘이나 흔들림이 없는 무굴요행(無屈撓行)을 주재하는 것이니, 지혜로서 때(時)를 알고, 법을 알고, 근기를 알아서 사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그러한 사(事)에 흔들리지 않으며, 그러한 공(功)에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선재동자의 선지식인 명지거사(明智居士)가 이 지위의 선지식이니, 명지(明智, 밝은 지혜)로써 중생을 이롭게 함에 있어서 그 행에 굽힘이나 흔들림이 없기 때문이며, 대흥성(大興城)에 머무는 것은 바로 정진의 뜻이기 때문이며,
시사구도(市四衢道, 저자 거리)라는 것은 요익(饒益)이 광대하고 많아서 무한히 이롭게 함을 밝힌 것이며,
순간적으로 사념하는 것은 작의(作意)의 방편이며, 허공을 우러러봄에 곳에 따르는 사물이 중생을 이롭게 하면서도 모두 공(空)으로부터 내리는 것은 지혜가 공과 같아서 지혜의 염(念)에 응함을 밝힌 것이니, 공(空)이 지혜의 근본이 되어서 지혜가 공(空)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까닭에 공(空)을 관하면 사물이 지혜를 따라 나타나는 것이니, 그러므로 공(空)이라는 것은 제법의 근본이니, 이로써 관하면, 일체 공덕이 총체적으로 공(空)의 지혜로부터 있음을 밝힌 것이다.
무외림보살이란 이 지위에서 행을 행하는 사람이며,
승혜(勝慧) 세계는 수행의 법이며,
부동안불(不動眼佛)은 이 지위 중의 불과이니, 정진의 지위가 사물을 따라 변하지 않기 때문에 부처님의 명호가 부동안(不動眼)인 것이니 경계에 움직이지 않는 것을 정진이라 칭함을 밝힌 것이다.
ㅡ무외림보살은 먼저 부처님의 광대한 몸이 법계에 가득함을 찬탄한 다음에 여래의 자재력과 불법을 잘 듣고, 믿는 이익에 대해 밝혔다. 즉, 미래세에 여래의 자재력에 관하여 듣고서 신심(信心)을 내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마땅히 부처를 이룰 것이며,
당래(當來)에도 부처님의 불법을 믿으면 당연히 정각(正覺)을 이루어 설법함에 두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爾時(이시) 無畏林菩薩(무외림보살) 承佛威力(승불위력) 普觀十方(보관시방) 而說頌言(이설송언)
그때, 무외림(無畏林)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설하였으니,
如來廣大身(여래광대신) 究竟於法界(구경어법계)
不離於此座(불리어차좌) 而遍一切處(이편일체처)
여래의 광대신(廣大身)이 끝없는 법계에 가득하시니,
그 자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일체처(一切處)에 두루하시는도다.
ㅡ“여래”란, 2600년 전에 열반에 드신 역사적인 부처님을 포함해서 우리 한사람ㆍ한사람의 마음, 참 나. 또는 참 사람, 곧 임제스님의 무위진인(無位眞人, 차별이 없는 참 사람) 등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무슨 조건으로 지금 말소리를 듣는 것인가?
스님이라고 하는 조건으로 듣는 것인가? 속인이라는 조건으로 듣는 것인가?
남자라는 조건으로 듣는 것인가? 여자라는 조건으로 듣는 것인가?
젊었다고 해서 듣는 것인가? 늙었다고 해서 듣는 것인가?
듣는다고 하는 그 사실, 듣는 그 당체는 아무 차별이 없는 것입니다.
가만히 보면 ‘내가 뭘 로 듣지?’ 그것이 “참 나” 인겁니다. 아무 차별이나 조건이 없는 무위진인의 참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 차별 없는 참 사람의 능력으로 듣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의 “참 사람” 인겁니다.
그 자리ㆍ그 당체는 부처님하고도 차별이 없습니다.
심불급중생시삼무차별(心佛及衆生是三無差別, 마음과 부처와 중생이 차별이 없다)는 말이 바로 그 당체를 두고 하는 소리입니다. 그것은 이 자리에서 그냥 확인할 수 있잖아요. 그것이 여래광대신(如來廣大身)인 겁니다.
아무런 차별된 현상을 빌리지 않고 뭔가가 역력하게 듣고 있는 그것이 바로 부처이고, 그것이 차별 없는 참 사람인 것으로, 화엄경에서는 거의 그것을 부처님이라고 하는 것이고,
ㅡ不離於此座(불리어차좌, 보리좌를 떠나지 않고 있다), 내가 앉은 이 자리가 바로 보리좌입니다.
왜? 보리가 앉아 있으니까 보리좌입니다.
그런 생각을 놓치지 않고만 산다면, 어디가서 앉아도 우리가 앉은 자리는 보리좌인 것입니다.ㅡ무비스님
若聞如是法(약문여시법) 恭敬信樂者(공경신락자)
永離三惡道(영리삼악도) 一切諸苦難(일체제고난)
만약 이와 같은 법을 듣고 (여래의 법신, 즉 우리의 법신은 광대하며 모두가 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듣고 본다는 것을 듣고)
공경하여 신락(信樂)하는 이는
영원의 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도(三惡道)의 모든 고난(苦難)에서 벗어나게 되리라.
設往諸世界(설왕제세계) 無量不可數(무량불가수)
專心欲聽聞(전심욕청문) 如來自在力(여래자재력)
무량하여서 셀 수도 없이 많은 모든 세계를 두루 다닐지라도
여래의 자재력(自在力)을 전심(專心, 오롯한 마음)으로 듣고자(배우고자) 하여야 하리라.
如是諸佛法(여시제불법) 是無上菩提(시무상보리)
假使欲暫聞(가사욕잠문) 無有能得者(무유능득자)
이러한 모든 부처님의 불법(佛法)들이 곧 위없는 무상보리(無上菩提)라,
가사(假使, 가령) 잠깐만이라도 듣고자 할지라도, 능히 들을 수 있는 이가 없도다.(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로다)
若有於過去(약유어과거) 信如是佛法(신여시불법)
已成兩足尊(이성양족존) 而作世閒燈(이작세간등)
만약 어떤 이가 지난 과거세(過去世)에서 이와 같은 불법(佛法)을 믿었다면,
(그 과보로서) 이미 양족존(兩足尊, 부처)을 이루어 세간의 등불이 될 것이요.
若有當得聞(약유당득문) 如來自在力(여래자재력)
聞已能生信(문이능생신) 彼亦當成佛(피역당성불)
만약 오는 미래세(未來世)에 어떤 이가 여래의 자재력(自在力)을 듣고서
신심을 내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 역시도 당(當, 미래)에 마땅히 성불(成佛)할 것이요,
若有於現在(약유어현재) 能信此佛法(능신차불법)
亦當成正覺(역당성정각) 說法無所畏(설법무소외)
만약 지금 현재의 세상에서도 이러한 불법을 믿는다면
그 역시도 마땅히 정각을 이루어서 법을 설함에 두려워하지 않는, 설법무소외(說法無所畏)이라라.
無量無數劫(무량무수겁) 此法甚難値(차법심난치)
若有得聞者(약유득문자) 當知本願力(당지본원력)
무량하고 무수한 겁(세월)을 지난다 할지라도
이 법(불법)은 만나기가 매우 어려운 심난치(甚難値)한 것이니
만약 어떤이가 (이러한 심난치의 법을) 들을 수 있다면, 본래의 원력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하리라.
若有能受持(약유능수지) 如是諸佛法(여시제불법)
持已廣宣說(지이광선설) 此人當成佛(차인당성불)
만약 어떤 이가 이러한 부처님의 불법을 능히 수지(受持)하여 받아 지니며,
수지한 뒤에는 다른 이들에게 널리 선설(宣說)하여 펼친다면, 이 사람은 당연히 성불하여 부처를 이룰 것이니,
况復勤精進(황부근정진) 堅固心不捨(견고심불사)
當知如是人(당지여시인) 決定成菩提(결정성보리)
하물며 부지런히 근정진(勤精進)하면서 견고한 마음을 버리지 않는 사람이겠는가!
이렇게 근정진하는 사람은 결정코 보리(菩提, 깨달음)을 성취하리라.
ㅡ참괴림(慚愧林) 보살 - 등혜(燈慧) 세계 - 천안불(天眼佛)
ㅡ참괴림(慘愧林) 보살이란 혼란스럽고 어리석은 행이 없는 것이니, 선(禪) 바라밀을 주재하나니,
부끄러움을 갖추어서 선(善)을 행하니, 선정이 지혜를 발하여 행에 혼란스러움과 어리석음이 없기 때문이다.
선재동자의 선지식인 보계장자가 이 지위의 선지식으로, 저자 가운데에 있는 것은 행 중의 선체(禪體)가 시끄러우면서도 항상 고요함을 밝힌 것이며, 선재의 손을 잡고 장차 거처하는 집(宅)에 나아가는 것은 인도하여 제접함을 밝힌 것이니, 생사의 저자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제접함으로써 장차 거처할 지혜의 과(果)로 나아감을 밝힌 것이다.
이는 과(果)를 관하여 인(因)을 알게 되는 것을 밝힌 것으로, 그 집의 보배 장엄은 10층이요 8문(門이)다.
원(院)에 8문이 있고, 각(閣)에 10층이 있으니, 8문은 8정도(正道)를 밝힌 것이며, 10층의 각(閣)은 10바라밀의 과보에 근거한 것이니, 한결 같이 10도(度, 10 바라밀)의 행이 아래로부터 위를 향하여 배열해서 스스로 법칙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니, 이는 선체(禪體)가 만행을 모두 거두어들임에 근거한 것이다.
참괴림보살은 이 지위의 수행하는 사람이며,
등혜(燈慧)세계는 행하는 법이니, 선정이 능히 지혜의 밝음을 일으켜서 사물을 비추기 때문에 세계의 명칭이 등(燈)이며,
천안불(天眼佛)은 이 지위의 불과이니, 선정이 능히 모든 근(根)을 청정하게 하기 때문에 명호가 천안불인 것이다.
ㅡ참괴림 보살은 부처님의 불대지혜(佛大智慧)의 수승한 이익을 찬탄하였다.
爾時(이시) 慚愧林菩薩(참괴림보살) 承佛威力(승불위력) 普觀十方(보관시방) 而說頌言(이설송언)
그때, 참괴림(慚愧林)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설하였으니,
若人得聞是(약인득문시) 希有自在法(희유자재법)
能生歡喜心(능생환희심) 疾除疑惑網(질제의혹망)
만약 어떤 사람이 이렇게 희유하고 자재한 법을 듣고서 능히 환희하는 마음을 낼 수 있다면
(그러한 환희심으로) 모든 의혹망(疑惑網)들을 빠르게 제거하여 없앨 수 있으리라.
一切知見人(일체지견인) 自說如是言(자설여시언)
如來無不知(여래무불지) 是故難思議(시고난사의)
일체의 모든 지견인(知見人)들이 스스로 이렇게 말하기를,
여래는 모르시는 것이 없다 하나니, 그러한 까닭에 상상하기 어려운 난사의(難思議)로다.
ㅡ이것은 어떻게 보면 내가 나를 아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영지불매(靈知不昧)한 나의 신령스럽게 아는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無有從無智(무유종무지) 而生於智慧(이생어지혜)
世間常暗冥(세간상암명) 是故無能生(시고무능생)
지혜가 없는 무지(無智)에서 지혜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지혜는 무지함에 있지 않고 지혜에서 생기는 것이라)
세간은 항상 암명(暗冥)하여 어둡고 캄캄하니, 그러한 까닭에 지혜를 낼 수 없는도다.
如色及非色(여색급비색) 此二不爲一(차이불위일)
智無智亦然(지무지역연) 其體各殊異(기체각수이)
색(色, 물질)과 비색(非色, 물질이 아닌 것)의 둘이 하나가 될 수 없는 것과 같이
지혜(智慧)와 무지(無智) 역시도 그러한 것으로, 그 자체가 각각으로 수이(殊異)하여 다른 것이며,
(지혜로운 체와 무지한 체가 각각 다른 것이며)
如相與無相(여상여무상) 生死及涅槃(생사급열반)
分別各不同(분별각부동) 智無智如是(지무지여시)
상(相, 모양이 있는 것)과 무상(無相, 모양이 없는 것)과 태어남의 생(生)과 죽는 사(死)와 열반도
각각으로 차별하여 다른 것과 같이, 지혜(智慧)와 무지(無智) 역시도 그러하게 다른 것이며,
世界始成立(세계시성립) 無有敗壞相(무유패괴상)
智無智亦然(지무지역연) 二相非一時(이상비일시)
세계가 시성립(始成立)하여 처음 생길 때에는, 패괴상(敗壞相, 파괴상)이 없는 것과 같이,
지혜(智慧)와 무지(無智) 역시도 그러한 것으로,
그 이상(二相, 두 모양)이 일시(一時)에 함께 할 수 없는 것이며,
如菩薩初心(여보살초심) 不與後心俱(불여후심구)
智無智亦然(지무지역연) 二心不同時(이심부동시)
마치 보살의 초심(初心)이 나중의 후심(後心)과 함께하지 않는 것과 같이,
지혜(智慧)와 무지(無智) 역시도 그러한 것으로, 그 이심(二心)이 동시에 함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로다.
譬如諸識身(비여제식신) 各各無和合(각각무화합)
智無智亦然(지무지역연) 究竟無和合(구경무화합)
비유하여 말하자면 모든 식신(識身, 안식, 이식, 비식, 설석, 신식, 의식)들은 각각이라서 화합하지 않는 것과 같이
지혜(智慧)와 무지(無智) 역시도 그러한 것으로, 구경(究竟, 끝까지)에 무화합(無和合)이로다.
如阿伽陀藥(여아가타약) 能滅一切毒(능멸일체독)
有智亦如是(유지역여시) 能滅於無智(능멸어무지)
마치 아가타약(伽陀藥, 인도의 전설적인 약, 신비의 약)이 능히 일체의 모든 독을 멸하는 것과 같이
지혜(智慧)와 무지(無智) 역시도 그러한 것으로, 능히 무지(無智)를 멸할 수 있는도다.
ㅡ제(무비스님)가 콩나물 법문이라고 해서 상당히 유명 해졌거든요, 콩나물 키울 때 하루에 몇 번씩 물은 주지만, 그 물은 다 빠져나가 버리는데 신기하게 하루 이틀가고 일주일가고 열흘 가면 콩나물이 먹을 만큼 자라있습니다. 우리 공부 하는 것도 다 빠져나가는 것 같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영혼은 쑥쑥 자라서, 생각하지 못했던 말이 툭 튀어 나오게 되는 겁니다.ㅡ무비스님
如來無有上(여래무유상) 亦無與等者(역무여등자)
一切無能比(일체무능비) 是故難値遇(시고난치우)
여래(무위진인, 참나)는 위가 없는 무유상(無有上)이요, 같을 이도 없는 무여등자(無與等者)이며
일체의 모든 것으로도 비교할 수 없나니, 그래서 만나기 어려운 난치우(難値遇)로다.
(그래서 견성하여 나를 보는 것이 참으로 어렵도다.)
ㅡ일체무능비(一切無能比)라서 비교할 수 없기에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 일체무유여불자(一切無有如佛者)
하늘의 위나 하늘의 아래 부처님과 같은 이가 없으며, 시방세계에서도 비교할 사람 없도다.
세상에 있는 것 모두를 내가 둘러보아도, 그 어떠한 것도 부처님과 같은 이가 없도다.
이 게송은 대웅전 주련으로 많이 쓰이는 것입니다.
ㅡ천지여아동근(天地與我同根), 하늘과 땅은 나와 같은 뿌리이고,
만물여아일체(萬物與我一體), 만물 모두가 나와 같은 일체로다.ㅡ 후진 시대의 승조(僧肇) 스님의 ‘조론(肇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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