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經卷第十九 夜摩宮中偈讚品第二十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三藏沙門(삼장사문實叉難陀 (실차난타 

20. 야마궁중게찬품(夜摩宮中偈讚品) 1

 

 품은 공덕림(功德林) 등의 10보살 대중이 해당되는 지위의 행으로써 게송을 통하여, 해당되는 지위의 법을 찬탄하기 때문에 게찬품이라 칭하는 것이다. 

10행(十行)의 법을 설하고자, 먼저 게송으로 10 인과법문(因果法文)을 모두 찬탄하는 까닭  품이 반드시 옴을 밝힌 것이니, 만약 행한 바의 인과를 먼저 들지 않는다면, 무엇을 의지하여 10 성취하겠는가?

 

爾時(이시) 佛神力故(불신력고) 十方各有(시방각유) 一大菩薩(일대보살)  

一一各與佛刹(일일각여불찰) 微塵數菩薩俱(미진수보살구) 從十萬佛刹(종십만불찰)

微塵數國土外(미진수국토외) 諸世界中(제세계중)  而來集會(이래집회)  

그때, 부처님의 신력으로 시방의 각처에 있는 대보살(大菩薩)들이,

저마다 각각 불찰미진수와 같이 많은 보살들을 거느리고

십만불찰(十萬佛刹) 미진수와 같이 많은 세계의 밖으로부터 와서 모였으니,  

10주(十住)에서는 백(百) 불찰미진이라 말하고  지위에서는 10만(十萬)이라 말한 것은, 승진한 지혜의 확장을 밝힌 것이다. 

미혹된 마음과 모든 경계는 진(塵)의 양(量)이 되고, 

미혹된 집착이 거처하는 곳은 국(國)이라 칭하고, 

마음이 경계를 따라 구르는 것을 ‘모든 국토외(國土外) 칭하고,

집착이 없어지면서 지혜에 계합하는 것을 ‘온다(來)’라고 칭하고, 

밝은 지혜가 두루하면서 경계를 요달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보살(菩薩)이라 호칭하는 것이니,

하나하나의 보살이 그러한 것이니, 총체적으로는 미혹을 요달해서 지혜가 두루함을 밝힌 것이다.

 

ㅡ십림(十林) 보살(菩薩)의 이름

其名曰(기명왈) 功德林菩薩(공덕림보살) 慧林菩薩(혜림보살) 勝林菩薩(승림보살)

無畏林菩薩(무외림보살) 慚愧林菩薩(참괴림보살) 精進林菩薩(정진림보살) 力林菩薩(역림보살)

行林菩薩(행림보살) 覺林菩薩(각림보살) 智林菩薩(지림보살) 

이름하여, 공덕림(功德林)보살ㆍ혜림(慧林)보살ㆍ승림(勝林)보살ㆍ무외림보살(無畏林)보살ㆍ

참괴림보살(慚媿林)보살ㆍ정진림(精進林)보살ㆍ역림(力林)보살ㆍ행림(行林)보살ㆍ각림(覺林)보살ㆍ

지림(智林)보살 들이었으며,

 

보살이 각각 같은 호칭으로 두루함은 마음이 모든 경계를 미혹하니 티끌(진 塵)은 무명의 광대함을 나타낸 것이며,

마음이 깨달아 지혜가 통하면, 찰해에 두루하도록 일체종지(一切種智)가 그 견(見)과 같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저마다 명호가 두루함을 밝힌 것이니,

미혹할 때는 경계마다 미혹 아님이 없지만, 깨닫고 나면 경계마다 지혜 아님이 없음을 밝힌 것이다. 

 

ㅡ십림(十林) 보살(菩薩)들이 떠나온 십혜국(十慧國)  

此諸菩薩(차제보살) 所從來國(소종래국) 所謂(소위) 親慧世界(친혜세계) 幢慧世界(동혜세계)

寶慧世界(보혜세계) 勝慧世界(승혜세계) 燈慧世界(등혜세계) 金剛慧世界(금강혜세계)

安樂慧世界(안락혜세계) 日慧世界(일혜세계) 淨慧世界(정혜세계) 梵慧世界(범혜세계) 

이 보살들이 떠나 온 국토들은, 친혜(親慧) 세계ㆍ당혜(幢慧) 세계ㆍ보혜(寶慧) 세계ㆍ승혜(勝慧) 세계ㆍ

등혜(燈慧) 세계ㆍ금강혜(金剛慧) 세계ㆍ안락혜(安樂慧) 세계ㆍ일혜(日慧) 세계ㆍ정혜(淨慧) 세계ㆍ

범혜(梵慧) 세계 들이며, 

 

ㅡ십림(十林) 보살(菩薩)들의 십안불(十眼佛)

此諸菩薩(차제보살) 各於佛所(각어불소) 淨修梵行(청정범행) 

所謂(소위) 常住眼佛(상주안불) 無勝眼佛(무승안불) 無住眼佛(무주안불)

不動眼佛(부동안불) 天眼佛(천안불) 解脫眼佛(해탈안불) 審諦眼佛(심제안불)

明相眼佛(병상안불) 最上眼佛(최상안불) 紺靑眼佛(감청안불) 

이러한 10 분의 보살들은 제 각각의 불소(佛所)에서 범행(梵行)을 청정하게 닦았으니,

이른바 상주안불(常住眼佛)ㆍ무승안불(無勝眼佛)ㆍ무주안불(無住眼佛)ㆍ부동안불(不動眼佛)ㆍ

천안불(天眼佛)ㆍ해탈안불(解脫眼佛)ㆍ심체안불(審諦眼佛)ㆍ명상안불(明相眼佛)ㆍ

최상안불(最上眼佛)ㆍ감청안불(紺靑眼佛)이시었다.

 

是諸菩薩(시제보살) 至佛所已(지불소이) 頂禮佛足(정례불족) 隨所來方(수소래방) 

各化作(각화작) 摩尼藏師子之座(마니장사자지좌) 於其座上(어기좌상) 結跏趺坐(결가부좌) 

이러한 모든 보살들이 부처님이 계신 불소(佛所)에 이르러서 부처님의 발에 정례(頂禮)를 하고는,

각각 떠나 온 방향을 따라서, 제각각 마니장 사자좌를 화작(化作, 변화)하여 만들고는

그 사자좌 위에 결가부좌를 맺고 앉았다.

 

ㅡ화좌마니장(化座摩尼藏)”이란, 10행(十行)이 생사에 처하여, 중생을 교화하면서도  행에 더러움이 없음을 나타낸 것이다.

마니(摩尼)는 때가 없는 이구보(離垢寶)요, 

장(藏)이란 갈무리하였다는 뜻이며, 

사자(師子)는 두려움이 없는 것이니, 

이는 범부의 행(行)에는 오염이 있으나, 성인의 행(行)에는 더러움이 없음을 밝힌 것이다. 

사자는 주(主)에 의거해서 명칭을 세운 것이니, 총체적으로는 수행자의 지혜와 덕으로 수행할 바의 법을 밝힌 것이다.

 

如此世界中(여차세계중) 夜摩天上(야마천상) 菩薩來集(보살래집) 

一切世界(일체세계) 悉亦如是(실역여시) 其諸菩薩(기제보살) 世界如來(세계여래)

所有名號(소유명호) 悉等無別(실등무별) 

이 세계의 야마천상(夜摩天上)에 보살들이 모인 것과 같이, 일체 세계에서도 그러하였으니,

그 보살들이 떠나온 세계와 여래의 명호가 모두 같아서 차별이 없는 등무별(等無別)이었다.

 

ㅡ세존(世尊)의 족상(足上, 발등) 방광(放光) 

 발등의 백천억 광명은,

10신(十信)에서는 발밑의 족륜하(足輪下)의 광명을 놓고,

10주(十住)에서는 발가락 끝의 족단(足端) 광명을 놓고, 

 10행(十行)에서는   위의 족상(足上) 광명을 놓는 것은, 

차례로 지위에 따라 승진하는 승진법을 나타내는 것이며,

십천(十千)과 백천(百千)과 백천억(百千億)으로부터의 묘한 광명은 모두 지위에 따른 승진을 밝힌 것이니, 

대체로  밑과 발가락 끝과   위의 광명은 모든 행의 기본이 되는 행을 여의지 않는 것이다.

 

爾時世尊(이시세존) 從兩足上(종양족상) 放百千億妙色光明(방백천억뵤색광명) 

普照十方一切世界(보조시방일체세계) 夜摩宮中佛及大衆(야마궁중불급대중) 

靡不皆現(미불개현) 

그때 세존께서 양족상(兩足上, 두 발등)으로부터 백천억의 묘색의 광명을 놓으셔서

시방으로 모든 세계를 비추셨으니, 야마천궁 안에 계시는 모든 부처님과 대중들이 모두 나타나지 않는 분이 없었다.

 

ㅡ이 광명은 부처님이 앞으로 10행의 법문을 설하기 위해서 대중들에게 조짐을 내는 것이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불교의 관점, 깨달은 사람의 관점은 이 세상이 먼저 있는 것이 아니고, 물론 동시에 있지만,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내 마음이 만들어서 비로소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나를 보고 있다고 여김으로부터 내가 여러분의 정신세계에 있다고 하는 것을 인정을 받게 되는 겁니다. 내가 여러분을 볼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여러분을 보는 순간, 내 마음의 어떤 작용에 잡히는 그 정도를 내가 아는 것이 서로가 똑 같습니다. 사람과 사람관계 뿐만이 아니고, 내가 세상을 보고 산천초목을 보는 것도 똑 같습니다. 

그것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인 것입니다. 내 마음의 작용에 의해서 비로소 있게 되는 것이지요.

그것을 “장갑을 끼고 꽃을 만지고, 흙을 만지고, 나무를 만지고, 심지어 똥을 만져도 내 손이 만지는 것이 아니다.”  내 손은 장갑을 만지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내가 무엇을 보든, 무엇을 듣든, 무슨 일을 하든 전부 내 마음이 하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ㅡ무비스님

 

ㅡ보살의 명칭과 아울러 지위에 따라 닦아 나아가는 10 가지의 진수인과(進修인因果)를 짝지음.

ㅡ진혜세계(親慧世界) 상주안불(常住眼佛) 공덕림(功德林) 보살의 찬탄

ㅡ공덕림보살, 10주에서 처음 부처님 지혜의  안에 태어난 까닭 보살의 명칭이 법혜(法慧)와 재혜(財慧) 등인 것으로,

 지위에서는 혜(慧)로 행을 행하여서 복과 지혜의 두 과보가 광대하고 많아지는 까닭에 임(林)으로 명칭을 삼은 것이다.

임(林)이란 광대하고 많다는 뜻으로 그늘을 드리운다는 뜻이고, 장엄의 뜻이며, 몸통 · 줄기 · 가지와 꽃 · 잎 · 열매가 서로 자량하는 뜻이니, 10행의 보살이 자체성이 없는 지혜로써 만행의 줄기와 가지를 장엄하고, 대자비로 잎을 삼아서 일체 중생에게 그늘을 드리워 교화함으로써 자타(自他)의 보리의 꽃과 열매를 모두 개발하게 하는 것을 밝힌 것이다. 

마치 냇물이나 연못에 숲이 있으면 온갖 새가 날아오는 것과 같이, 사람에게 행이 있으면 많은 사람이 의지하기 때문에 10 보살을 가리켜서 임(林)이라 이름하는 것이니, 이는 환희행의 단바라밀문에 해당된다.

가령 선재동자의 10 초기에 선지식의 명칭이 선견(善見)으로,  속에서 경행(經行)하는 것이 역시 이와 같고, 

나라의 명칭이 3眼(三眼)인 것은  지위의 불과의 명호를 안(眼)이라 하는 것을 말한다. 

국토의 명칭이 친혜(親慧) 세계인 것은  10행이 몸소 부처님의 지혜로부터 생기는 것으로 인(因)을 삼고,

또한  일체 중생과 더불어 친근하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ㅡ불과의 명호를 상주안불(常住眼佛)이라  것은 몸소 부처님의 지혜로부터 생기기 때문에 근기를 알아 세속을 이롭게 하는 것이 바로 상주하는 지혜의 눈을 얻게 하는 것이니, 이는 스스로 여래 지혜의 눈을 얻어서 중생을 이롭게 하는  또한 남에게 지혜의 눈을 얻게 하는 것임을 밝힌 것이니, 여래의 지혜로써 근기를 살펴서 중생을 이롭게 하는 지혜 바로 해당 지위의 불과(佛果)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ㅡ공덕림(功德林)은 행을 행하는 사람을 나타낸 것이며, 

친혜세계(親慧世界)는 해당 지위에서 수행하는 지혜의 인(因)이며, 

상주안불(常住眼佛)은 해당되는 지위의 근기와 견해를 아는 과(果)이니, 근본지와 더불어 상응하는 것을 ‘상주안불’이라 칭한다.

 

ㅡ친혜(親慧) 세계의 상주안불(常住眼佛) 부처님의 공덕림 보살이 무애자재덕(無碍自在德)을 찬탄하는 게송

爾時(이시) 功德林菩薩(공덕림보살) 承佛威力(승불위력) 普觀十方(보관시방) 而說頌言(이설송언)  

그때, 공덕림(功德林)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설하였으니, 

 

佛放大光明(불방대광명) 普照於十方(보조시방) 

悉見天人尊(실견천인존) 通達無障碍(통달무장애) 

부처님께서 대광명(大光明, 참나, 참마음 작용의 원리)을 놓으시어 시방을 두루 비추시니

환하게 틔이어 모든 천인존(天人尊)을 뵙게 됨에 통달하여 걸림이 없도다.

ㅡ우리 각자가 부처님을 아는 것도, 각자의 지식과 신심에 따라 각양각색, 정도가 다릅니다.

옛날에 가난한 유생이 쌀을 올릴 형편이 못 되어서, 상당히 큰마음을 쓰서 조 세말을 부처님한테 올리고 과거시험 보러 갔다가 낙방하고 내려와서는 법당에서 원망하기를, 내 노란 조를 세말이나 뚝딱 먹고는 과거 시험에 붙여주지도 않고 노랗게 앉아서 뭐 하느냐고... 개금을 해서 부처님이 노란것은 우리이 입장이고, 그 선비 입장은 조를 세말이나 먹어서 노랗다는 우스운 이야기지만 그와 같이 자기의 안목만큼 보고 이해하는 것으로, 세상을 보는 것도 똑 같습니다 ㅡ무비스님

 

佛坐夜摩宮(불좌야마궁) 普遍十方界(보편시방계) 

此事甚奇特(차사심기특) 世間所希有(세간소희유) 

부처님께서는 야마천궁에 앉으신 채, 시방세계에 두루하시나니

이러함은 매우 기특(奇特, 기이함)하여, 세간에서는 극히 드문 일이로다.

ㅡ부처님께서 부다가야 보리수 밑을 떠나지 않으시고, 수미산에 올라가셨으며,

부다가야와 수미산에 그대로 앉으신 채, 야마궁전에 계시는 것,

즉 우리의 마음이 그와 같이 확장될 수 있는 것이고,

야마궁전, 수미산궁전, 도리천궁 등은 이름만 화려하게 나열했을 뿐,

모두가 한마음의 표현이고, 한마음의 작용을 말하는 것입니다.  

 

須夜摩天王(수야마천왕) 偈讚十如來(게찬십여래) 

如此會所見(여차회소견) 一切處咸爾(일체처함이) 

수야마천왕이 게송으로 열분의 여래를 찬탄하나니

이 모임에서 보는 것과 같이 일체처(一切處)에서도 모두 그러하다네.

 

彼諸菩薩衆(피제보살중) 皆同我等名(개동아등명) 

十方一切處(시방일체처) 演說無上法(연설무상법) 

저 모든 보살 대중들 모두가 우리와 같은 이름의 동명(同名)이니, 

시방 일체의 모든 곳에서 위없는 무상법(無上法)을 연설하시나니, 

 

所從諸世界(소종제세계) 名號亦無別(명호역무별) 

各於其佛所(각어기불소) 淨修於梵行(정수어범행) 

떠나 온 여러 세계들의 이름 또한 다르지 않으며,  

제각각으로 저마다의 부처님이 계신 불소(佛所)에서 범행(梵行)을 정수(淨修)하여 청정히 닦았음이로다.

 

彼諸如來等(피제여래등) 悉亦同(명호실역동) 

國土皆豊樂(국토개풍락) 神力悉自在(신력실자재) 

저 모든 여래들의 명호 또한 같은 동명호(同名號)이며, 

그 모든 국토들이 풍요롭고 안락한 풍락(豊樂)하며, 신력(神力, 신통력)도 모두 자재하시도다.

 

十方一切處(시방일체처) 皆謂佛在此(개위불재차) 

或見在人間(혹견재인간) 或見住天宮(혹견주천궁) 

시방으로 모든 세계에서마다 부처님이 여기에 계신다고 하나니, 

혹은 인간 가운데에 계시고, 혹은 천궁에 계시는도다. 

ㅡ시방의 모든 세계, 즉 우리 모두가 가는 곳마다, 우리의 마음, 참나가 작용하고 있어서,

어디든 내가 있는 곳이라면 '나'라는 부처, 참나가 있는 것입니다.

 

如來普安住(여래보안주) 一切諸國土(일체제국토) 

我等今見佛(아등금견불) 處此天宮殿(처차천궁전) 

여래께서는 두루 모든 국토에 편안히 안주(安住)하여 계시거늘, 

지금 우리들은 부처님께서는 이 천궁전(天宮殿, 야마천궁, 보장엄전)에 계시는 것을 보는도다.

 

昔發菩提願(석발보리원) 普及十方界(보금시방계) 

是故佛威力(시고불위력) 充遍難思議(충변난사의)

옛적에 보리를 이루고자 발하신 서원이 널리 시방세계에 두루하였으니, 

그러므로 부처님의 위신력이 두루 충만하여, 시방 세계에 가득 차게 되었음이 난사의(難思議)하도다.

 

遠離世所貪(원리세소탐) 具足無邊德(구족무변덕) 

故獲神通力(고획신통력) 衆生靡不見(중생미불견)

세간의 탐욕을 멀리 여의시어 무변한 공덕을 구족하시었으니,

그러한 까닭으로 얻으신 신통력이라, 보지 못하는 중생이 없으시도다.

 

遊行十方界(유행시방계) 如空無所碍(여공무소애) 

一身無量身(일신무량신) 其相不可得(기상불가득) 

시방의 세계로 가르침과 교화의 유행(遊行)을 하심에 마치 허공과 같이 걸림이 없으시니,

한 몸의 일신(一身)이신지? 많은 몸의 무량신(無量身)이신지?  

그 상(相)은 알 수가 없는 불가득(不可得)이로다.

ㅡ일신이 곧 무량신이고, 무량신이 곧 일신인 것으로, 우리 절에만 부처님이 있는가 했더니 곳곳의 절마다 부처님이 모두 계시고, 한 법당에만 있는가 했더니 가는 법당마다 다 부처님이 계시는 그것이 일신과 무량신의 관계입니다. ㅡ무비스님

 

佛功德無邊(불공덕무변) 云何可測知(운하 가측지)

無住亦無去(무주역무거) 普入於法界(보입어법계) 

부처님의 공덕은 무변하니 (우리들 모두의 진여생명, 참나의 공덕은 무변하니)
어찌 헤아려 알 수 있으리오! (어찌 내 마음을 헤아려 알 수 있으리오!)
무주(無住)하여 머물지도 않고 무거(無去)하여 가는 것도 아니지만, 두루 온 법계에 들어가시는도다. 

(온갖 작용을 다 하고, 온갖 곳에 모두 가지만 항상 '나'이고, 그 '나'는 하나이면서 여럿이고, 여럿이면서도 하나이며, 

머묾도 없고 감도 없이 법계에 두루 들어가서 모든 것을 간섭하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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