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經卷第十八 明法品第十八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三藏沙門(삼장사문實叉難陀 (실차난타 

18. 명법품(明法品)  6

 

ㅡ바라밀도(波羅蜜道)  

菩薩(보살) 如是爲諸衆生(여시위제중생) 而演說法(이연설법) 則自修習(즉자수습) 

增長義利(증장의리) 不捨諸度(불사제도) 具足莊嚴(구족장엄) 波羅蜜道(바라밀도) 

보살이 이렇게 중생들을 위하여 법을 연설하고, 또한 스스로 수습(修習)하여 닦아서

의리(義利, 예리한 이치)를 증장하면서도, 제도(諸度, 모든 바라밀)를 버리지 않고 구족하여

바라밀도(波羅蜜道)를 장엄하나니, 

 

ㅡ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  

是時菩薩(이시보살) 爲令衆生(위령중생) 心滿足故(심만족고) 內外悉捨(내외실사)

而無所着(이무소착) 是則能淨(시즉능정) 檀波羅蜜(단바라밀) 

그런 때에 보살이 중생들의 마음을 만족하게 하고자, 내사(內捨, 법 보시)와 외사(外捨, 재물보시)로서

실사(悉捨)하여 모두 버리면서도 집착하지 않으니,

이는 단바라밀(檀波羅蜜, 보시 바라밀)을 청정하게 하는 것입니다.(보시바라밀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ㅡ보시에는 물질을 베푸는 재시(財施), 

진리의 가르침를 베푸는 법시(法施),

두려움을 없애고 편안하게 하여 주는 무외시(無畏施)의 세 가지가 있으며, 

무외시에는 재물없이 베풀 수 있는 7가지의 무재칠시(無財七施)가 있다. 

① 안시(眼施)= 부드러운 눈으로 대하는 ② 화안열색시(和顔悅色施)= 미소띤 얼굴로 기쁘게 대하는 

③ 언사시(言辭施)= 좋은 말로 대하는  ④ 신시(身施)= 예의 바르고 친절한 행동의 

⑤ 심시(心施)= 착한 마음으로 대하는 ⑥ 상좌시(床座施)= 남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방사시(房舍施)=가족이나 남에게 잠자리를 편안하게 제공하는 것.

 

ㅡ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  

具持衆戒(구지중계) 而無所着(이무소착) 永離我慢(영리아만) 

是則能淨(시즉능정) 尸波羅蜜(시바라밀)  

여러 가지 계율을 갖추어 지키면서도 집착하지 않으며, 아만(我慢)을 영원히 여의었으니,

이는 시바라밀(尸波羅蜜, 지계 바라밀)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며, (지계바라밀을 수행하는 것이며)

ㅡ계를 잘 지키는데 왜 아만이 없다고 합니까? 계를 특별히 잘 지키는 사람들치고, 아만 없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지금 같은 이런 세상에서 율을 지킨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자기가 계를 지키는 것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아만이 있는 겁니다.ㅡ무비스님 

 

ㅡ인욕바라밀(忍欲波羅蜜)  

悉能忍受(실능인수) 一切諸惡(일체제악) 於諸衆生(어제중생)에 其心平等(기심평등) 

無有動搖(무유동요) 譬如大地(비여대지) 能持一切(능지일체) 

是則能淨(시즉능정) 忍波羅蜜(인바라밀) 

일체의 모든 제악(諸惡) 모두를 능히 참으면서 여러 중생들을 대하는 그 마음이 평등하여서

동요(動搖)하지 않는 것이 마치 대지와 같나니,

능히 일체의 모든 것에 대하여 이와 같을 수 있다면,

이는 인바라밀(忍波羅蜜, 인욕 바라밀)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며, (인욕바라밀을 수행하는 것이며,)

 

ㅡ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  

普發衆業(보발중업) 常修靡懈(상수미해) 諸有所作(제유소작) 恒不退轉(항불퇴전) 

勇猛勢力(용맹세력) 無能制伏(무능제복) 於諸功德(어제공덕) 不取不捨(불취불사) 

而能滿足(이능만족) 一切智門(일체지문) 是則能淨(시즉능정) 精進波羅蜜(정진바라밀) 

여러 가지의 중업(衆業, 일들)을 두루 일으켜서 항상 닦아 게으르지 않으며,

여러 가지 일들을 지음에 있어서 항상 퇴전하지 않으니, 

(여러 가지 일들에 참여하여 수행하고 진행함에 있어서 게으르거나 퇴전하여 포기하지 않으니)

그 용맹한 세력(용맹한 정진력의 의지)을 아무도 굴복 시킬 수 없으나,

그러한 모든 공덕을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으면서도

능히 일체지(一切智)의 문을 만족하게 한다면, 이는 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며,

(정진바라밀을 수행하는 것이며)

 

ㅡ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  

於五欲境(어오욕경) 無所貪着(무소탐착) 

諸次第定(제차제정) 悉能成就(실능성취) 常正思惟(상정사유) 不住不出(불주불출) 

而能銷滅(이능소멸) 一切煩惱(일체번뇌) 出生無量(출생무량) 諸三昧門(제삼매문) 

成就無邊(성취무변) 大神通力(대신통력) 逆順次第(역순차제) 入諸三昧(입제삼매)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가 하고자 하는 오욕(五欲)의 경계(오욕낙)에 탐착하지 않으며,

차례로 닦아 나아가는 선정의 구차제정(九次第定)들을 능히 모두 성취하여(모두 닦아서),

항상 바르게 정사유(正思惟)하나, 그러함에 머물지도 않고 벗어나지도 않으며,

능히 온갖 번뇌를 능히 소멸시킬 수 있으며,

 

於一三昧門(어일삼매문) 入無邊三昧門(입무변삼매문) 悉知一切(실지일체) 三昧境界(삼매경계) 

與一切三昧(여일체삼매) 三摩鉢底智印(삼마발저지인) 不相違背(불상위배) 

能速入(능속입) 於一切智地(어일체지지) 是則能淨(시즉능정) 禪波羅蜜(선바라밀)

무량한 여러 가지의 삼매문을 낼 수 있으며,(여러 가지의 삼매에 들 수 있으며)

무변한 대신통력을 성취하였으며,

(12인연법을) 역(逆, 거꾸로)과 순(順, 바르게)의 차례대로 (관하는) 모든 삼매에 들 수 있으며,

하나의 일삼매문(一三昧門)에서 무변하게 많은 삼매문에 들어가되, 그 모든 삼매의 경계를 모두 알며,

일체의 모든 삼매(三昧)와 삼마발저(三摩鉢底, 위빠사나 관, 지관 止觀)의 지인(智印, 정혜 定慧)과 더불어

서로 위배(違背)하지 않으며,  

능히 일체지(一切智)의 지위(자리)에 빠르게 들어 갈 수 있나니,

이러한 것을 곧 선바밀(禪波羅蜜, 선정바라밀)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라 하며, 

(선정바라밀을 수행하는 것이라 하며,)

ㅡ구차제정(九次第定), 불교의 수행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서 

첫째는 산란한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는 ‘samatha’  ‘지(止)’와

다른 하나는 집중된 마음으로서 법을 관찰하는 ‘vipassana’  ‘관(觀)’의 선정(禪定)을 함께 수행하는 것으로 지관(止觀)이라 하며,

‘지’를 통해서 마음이 안정되는 것을 ‘정(定)’이라 하고 ‘관’을 통해서 지혜가 생기는 것이 ‘혜(慧)’입니다.

‘정혜쌍수(定慧雙修)’는 바로 ‘지관’을 바르게 닦는 것으로,   

부처님께서 ‘지관’을 통해서 연기의 도리를 깨친 후, 그 깨친 내용을 언어로 표현한 것이 불교의 교리입니다.

따라서 불교의 교리는 ‘지관’을 통해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ㅡ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  

於諸佛所(어제불소) 聞法受持(문법수지) 近善知識(근선지식) 承事不倦(승사불권) 

常樂聞法(상락문법) 心無厭足(심무염족) 隨所聽受(수소청수) 如理思惟(여리사유) 

入眞三昧(입진삼매)  

모든 부처님 처소에서 법을 듣고 수지(受持)하여 받아 지니며,

선지식을 친근하여 받들어 승사(承事)함에 게으르지 않으며,

항상 문법(聞法)하여 법을 듣는 것을 좋아하는 그 마음에 싫증을 내거나 불만족이 없으며,

그 들은 바를 따라 이치대로 사유하여서 (오염과 청정이나 가라앉음과 들뜸이 없는) 진삼매(眞三昧)에 들어가며,

 

離諸僻見(이제벽견) 善觀諸法(선관제법) 得實相印(득실상인)

了知如來(요지여래) 無功用道(무공용도) 乘普門慧(승보문혜) 

入於一切智智之門(입어일체지지지문) 永得休息(영득휴식) 

是則能淨(시즉능정) 般若波羅蜜(반야바라밀)

제법들을 잘 관찰하여 실상인(實相印, 진리, 즉공 即空의 진리)을 얻었으며, 

모든 벽견(僻見, 일면으로 지우친 소견, 62견)을 여의었으며,

여래의 무공용도(無功用道)를 요지하여 분명하게 알며,

보문혜(普門慧, 중생의 모든 근기와 법을 두루 아는 지혜)를 타고

모든 것이 평등한 가운데에서도 각각이 다른 차별지와 모든 것이 각각으로 차별한 가운데에서 평등함의 평등지의 모두를 아는 일체지지(一切智智)의 문에 들어가서 영원한 휴식을 얻었다면,

이러함이 곧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을 청정하게 하는 것입니다. (반야바라밀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ㅡ'벽견(僻見)이란, 유(有)와 무(無)의 두 견해가 이에 해당되며, 내견(內見)과 외견(外見),

신견(身見)과 변견(邊見), 계취(戒取)와 견취(見取) 등이 모두 이에 해당되며, 나아가 62견(見)이 이에 해당된다.

62견이란 일체법에서 계교한 네 가지 사견(四見)으로,

상(常), 무상(無常), 항상하면서도 무상한 상무상(常無常), 항상하지도 않고 무상하지도 않은 상무상(非常非無常)으로,

5음(陰)에 각각 이 네 가지 견(見)이 있어서 4와 5로써 20개가 되는 것이니, 삼세(三世)의 5음을 합해서 모두 60개가 되고,

여기에 근본의 2견(二見)을 더해 62견이 되는 것으로, 일체의 편벽된 견해는 이 62견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의 몸이 무 안이비설신의(無 眼耳鼻舌身意)라고 했는데, 이 것이 진실한 것입니다.

진실한 모양이 무(無)이기 때문에 무(無)로 돌아가는 것이지,

진실한 모양이 아니라면, 무(無)로 돌아가지 않고 이 모습 이대로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어떤 문제가 생기면 금방 무(無)로 돌아간다는 것을 유추해서 잘 사유해보면  ‘아~! 그래서 無 眼耳鼻舌身意라고 했구나!’ 그런 결과를 보고, 또 그 결과를 생각하고 아는 것은 우리와 같이 둔한 사람들의 사유이고,

좀 영리한 사람들의 사유는 거기까지 생각 안하고 바로  ‘아, 無 眼耳鼻舌身意 맞아! 안이비설신의 없는 거야.’ 

그렇게 깊이 생각 안 해도 되고, 연기라고 생각 안 해도 되고, 무상하다고 생각 안 해도 되는, 바로 즉공(卽空)이라는 겁니다.

즉공(卽空), 곧 바로 공이지, 인연으로 만들어진 연기공(緣起空)도 아니고,

하나ㆍ하나분석해 보는 분석공(分析空)도 아닙니다.

하나ㆍ하나분석해 본 후 분석공이라고 아는 것은 세속적인 관점이고,

또 이런ㆍ저런 인연에 의해서 만들어진 합성품으로서 인연소치로 생각하는 것은 성문과 연각의 소승의 인연관(因緣觀)입니다.

그런데 보살은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즉공(卽空), 그대로 바로 공으로 줄로 보는 즉공관(卽空觀)입니다.

관자재보살은 관(觀)이 자재(自在)해서, 연기까지 동원 안 해도 그냥 공한 직관(直觀)으로, 색즉시공(色卽是空), 물질이 그대로 공(空)인 것입니다. ㅡ무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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