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經卷第十八 明法品第十八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三藏沙門(삼장사문實叉難陀 (실차난타 

18. 명법품(明法品)  4

 

ㅡ모든 부처님들께서 기뻐하시는 십종법(十種法)  

佛子(불자) 復有十法(부유십법能令一切(능령일체) 諸佛歡喜(제불환희

何者爲十(허자위십

불자여, 모든 부처님께서 기뻐하시는 10 가지의 십법(十法)이 또 있으니, 무엇이 그 10가지 인가?

 

所謂(소위) 安住不放逸(안주불방일安住無生忍(안주무생인) 

이른바 ①불방일(不放逸)에 편안히 안주(安住)하여 머무는 것이요,

②무생법인(無生法忍)에 머무는 것이요, 

ㅡ무생인(無生忍, 무생법인), 존재하는 모든 것은 태어난 바가 없다는 깨달음의 확신을 뜻하며,

인(忍)은 인가(忍可) 또는 인지(認知)를 뜻하여서 여실한 진리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한다는 것을 뜻한다.

능가경에서는 무생법인을 태어남이 없는 법의 인증 뜻하고, 

무량수경에서는 생(生)을 떠나다 뜻한다.

무생법인은 또한 법화경에서 설하는 법인(法印) · 신인(信印) · 순인(順印)의 삼법인(三法印)인 중에서 법인으로서

진리를 깨달은 지혜를 의미한다.

불전에 따라서 무생의 뜻을 다양하게 해석하여서, 성불하기 전까지 악심(惡心)을 내지 않은 것이나 삿된 견해를 일으키지 않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일체의 현상에서 생(生) 없음을 관찰함으로써 소멸할 것도 없다는 불생불멸의 공성(空性)을 깨닫는 것이다.

화엄경 44권에서 보살은 작은 법도 생겨남을 보지 않고,멸하는 것도 보지 않아서, 불생불멸의 공성을 깨달아 오고가는 일체 대상에 대한 헛된 마음작용이 끊어져 고요한 경지에 이른 자가 보살이라 하고,

반야심경의 공(空)은 무생법인을 압축한 내용으로  모든 공한 공상(空相) 불생불멸이라서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고 또한 늘어나거나 줄어들지도 않는다는 것이 바로 무생법인을 나타내는 말이다.

 

安住大慈(안주대자) 安住大悲(안주대비安住滿足諸波羅蜜(안주만족제바라밀)  

安住諸行(안주제행) 安住大願(안주대원安住巧方便(안주교방편) 安住勇猛力(안주용맹력

安住智慧(안주지혜觀一切法(관일체법) 皆無所住(개무소주猶如虛空(유여허공

佛子(불자) 若諸菩薩(약제보살) 住此十法(주차십법能令一切諸佛歡喜(능령일체제불환회

③대자(大慈)에 안주하는 것이요,

④대비(大悲)에 안주하는 것이요,

⑤모든 바라밀을 만족하게 하는 것에 안주하는 것이요,

⑥모든 제행(諸行)에 안주하는 것이요,

⑦큰 대원(大願)에 안주하는 것이요,

⑧공교하고 훌륭한 교방편(巧方便)에 안주하는 것이요,

⑨용맹한 힘의 용맹력(勇猛力)에 안주하는 것이요,

⑩지혜에 편안히 안주하여서,

일체법 모두가 머무는 바가 없는 무소주(無所住)라서 마치 허공과 같음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불자여, 보살이 이 만약 이러한 10 가지의 십법(十法)에 머물 수 있다면, 모든 부처님들을 기뻐하게 하는 것입니다.

 

ㅡ모든 보살의 속입제지(速入諸地)의 십종법(十種法)

佛子(불자) 有十種法(유십종법) 令諸菩薩(영제보살) 速入諸地(속입제지)

何等 爲十(하등위십)

불자여, 모든 보살들로 하여금 모든 지위에 빨리 들어가게 하는 10 가지의 십종법(十種法)이 있으니,

무엇이 그 10 가지 인가?

 

一者(일자) 善巧圓滿(선교원만) 福智二行(복지이행)  

二者(이자) 能大莊嚴(능대장엄) 波羅蜜道(바라밀도) 

三者(삼자) 智慧明達(지혜명달) 不隨他語(불수타어) 

四者(사자) 承事善友(승사선우)恒不捨離(항불사리) 

五者(오자) 常行精進(상행정진) 無有懈怠(무유해태) 

六者(육자) 善能安住(선능안주) 如來神力(여래신력) 

七者(칠자) 修諸善根(수제선근) 不生疲倦(불생피권)

八者(팔자) 深心利智(심심이지) 以大乘法(이대승법) 而自莊嚴(이자장엄)  

九者(구자) 於地地法門(어지지법문) 心無所住(심무소주) 

十者(십자) 與三世佛(여삼세불) 善根方便(선근방편) 同一體性(동일체성) 

하나는, 복덕(福)과 지혜(智)의 이행(二行)을 훌륭하게 원만히 하는 것이요,

둘은, 바라밀의 도(道)를 크게 장엄하는 것이요, (모든 바라밀을 잘 실천하는 것이요)

셋은, 지혜에 밝게 명달(明達)하여 다른 이의 말을 따르지 않는 것이요,

(지혜가 밝아서 다른 사람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것이요)

넷은, 훌륭한 선우(善友, 선지식)을 항상 승사(承事)하여 받들고 섬기어서 여의지 않는 것이요,

다섯은, 항상 정진하여서 게으르지 않는 것이요,

여섯은, 여래의 신통한 신력(神力, 근본지)에 능히 안주하여 잘 머무는 것이요,

(우리 모두가 갖추고 있는 근본지의 신통묘용에 능히 안주하여 머무를 수 있는 것이요)

일곱은, 모든 선근을 닦음에 있어서 피권(疲倦, 피로하거나 게으름)을 내지 않는 것이요, 

여덟은, 깊은 마음의 심심(深心)과 밝고 날카로운 지혜의 이지(利智)의 대승법으로서 스스로를 장엄하는 것이요,

아홉은, 각각의 수행지위에서의 법문에 그 마음이 머물러 정체되지 않는 심무소주(心無所住)인 것이요, 

(마음이 한 지위에 집착하여 머물어 정체된다면, 그 다음의 지위로 성장할 수 없으므로 각각의 지위에서 심무소주요)

열은, 과거 현재 미래, 삼세의 모든 부처님들의 선근방편과 더불어 같아지는 동일체성(同一體性, 한 몸)이 되는 것이니, 

ㅡ'삼세의 부처님과 더불어 체성(體性)이 동일하다'고 한 것은 법신의 지혜가 같기 때문이니, 
삼세의 광대한 겁이 일념(一念, 한 생각)과 같은 것이라서
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함께 대지혜와 대자비를 행하여서 원만하게 하는 것이다.

 

佛子(불자) 此十種法(차십종법) 令諸菩薩(영제보살) 速入諸地(속입제지)  

불자여! 이러한 열 가지의 십종법이 모든 보살들로 하여금 모든 지위에 속히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ㅡ' 가지 법이 모든 보살로 하여금 조속히 모든 () 들게 한다'  것은 

초발심 () 지위라도 모든 () 모든 행과 모든 회향과 모든 () 법문을 두루 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니, 

이는 하나가  일체이기 때문이며, 일체가  하나이기 때문이며, () 즉하고 () 즉하기 때문이다.

가령 선재동자가 미륵보살을 친견하고 나서 미륵보살이 문득 문수사리를 보게  것은 인과(因果)가 다르지 않고 여의지도 않음을 밝힌 것인데,  또한 마찬가지라서 초발심의 지위에서부터 불과의 지위에 이르기까지를 일념으로 가지런히 나아가면서도, 그 일념 벗어나지 않고, 정각을 성취한 부처님의 인과와 보살행을 닦아서  원만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초주(初住)에서 두루 모든 지위와 모든 () 닦기 때문에 일체법을 관찰해서 

총체적으로 일시(一時)이자 일법(一法) 것이니, 이는 많고 적음이나, 늦고 빠름이 자재롭고 걸림이 없는 것이라서,

모두가 한 순간의 1찰나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며, 법이 이와 같기 때문이니 

() 버리고 지혜로써 ()하면   있을 것이다.

 

ㅡ보살 초주(初住) 시(時)에서 관찰하여야 할 바.  

復次佛子(부차불자) 諸菩薩(제보살) 初住地時(초주지시) 應善觀察(응선관찰) 

또한 불자여, 모든 보살들이 처음의 초주(初住)의 지위에서 마땅히 잘 관찰하여야 하나니,

 

隨其所有一切法門(수기소유일제법문) 隨其所有甚深智慧(수기소유심심지혜) 

隨所修因(수소수인) 隨所得果(수소득과) 隨其境界(수기경계) 隨其力用(수기력용) 

隨其示現(수기시현) 隨其分別(수기분별) 隨其所得(수기소득) 悉善觀察(실선관찰) 

知一切法(지일체법) 皆是自心(개시자심) 而無所着(이무소착) 

如是知已(여시지이) 入菩薩地(입보살지) 能善安住(능선안주) 

그 지닌 바의 일체의 법문을 따라,  

그 소유한 바의 심오한 심심지혜(甚深智慧)를 따라,

그 원인이 되는 바의 소인(所因)을 따라 수습하며, 

그 얻은 바의 과(果, 과보, 결과)를 따라,

그 경계를 따라, 

그 힘의 작용을 따라, (그 노력하는 바를 따라)

그 시현(示現)하여 나타내 보이는 것을 따라, 

그 분별을 따라,

그 증득하여 얻은 바를 따라서

그러한 모두를 잘 관찰하여서 일체법 모두가 자기의 마음인,

일체법개시자심(一切法皆是自心,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니,

이렇게 알고 난 후에는 보살의 지위에 들어가 능히 편안하게 안주(安住)하여 머물 수 있는 것입니다.

(일체법 모두가 자기 마음이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서 집착하지 않고 안주하는 것입니다.)  

 

佛子(불자)  彼諸菩薩(피제보살) 作是思惟(작시사유) 我等(아등) 宜應速入諸地(의응속입제지) 

불자여, 모든 보살이, ‘우리들이 마땅히 모든 지위에 빨리 들어가야 한다’고 사유(思惟)하나니,

 

何以故(하이고) 我等(아등) 若於地地中住(약어지지중주) 成就如是(성취여시) 廣大功德(광대공덕) 

具功德已(구공덕이) 漸入佛地(점입불지)

왜냐하면? 만약 우리들이 여러 지지(地地, 각각의 지위)에 머문다면, 그와 같은 광대함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니,

그러한 공덕을 갖추어 구족한 뒤에는 점차로 부처님의 불지(佛地)에 들어갈 것이며,

(광대한 공덕을 갖추어서 10신ㆍ10주ㆍ10행ㆍ10회향ㆍ10지ㆍ등각을 거쳐서 묘각의 불지에까지 이를 수 있을 것이니) 

 

住佛地已(주불지이) 能作無邊(능작무변) 廣大佛事(광대불사) 

是故(시고) 宜應常勤修習(선응상권수습) 無有休息(무유휴식) 無有疲厭(무유피렴) 

以大功德(이대공덕)으로 而自莊嚴(이자장엄) 入菩薩地(입보살지) 

부처님의 불지(佛地)에 머물게 된 후에는 끝없이 무변하고 광대한 불사(佛事)를 능히 지을 수 있을 것이므로

마땅히 부지런히 수습(修習)함에 있어서, 피로해하거나 염증을 내어서 쉬지 않을 것이며,

그러한 대공덕(大功德)으로서 스스로를 장엄하여 보살의 지위에 들어가리라' 라고 사유할 것입니다.

 

ㅡ소행청정(所行淸淨) 십종법(十種法)

佛子(불자) 有十種法(유십종법) 令諸菩薩(영제보살) 所行淸淨(소행청정)

何等爲十(하등위십)?  

불자여, 보살들로 하여금 행하는 바의 소행(所行)을 청정하게 하는 10 가지의 법이 있으니,

무엇이 그 10 가지 인가? 

 

一者(일자) 悉捨資財(실사자재) 滿衆生意(만의중생) ▶보시바라밀

二者(이자) 持戒淸淨(지계청정) 無所毁犯(무소훼범) ▶지계바라밀

三者(삼자) 柔和忍辱(유화인욕) 無有窮盡(무유궁진) ▶인욕바라밀

四者(사자) 勤修諸行(근수제행) 永不退轉(영불퇴전) ▶정진바라밀

五者(오자) 以正念力(이정념력) 心無迷亂(심무미란) ▶선정바라밀

六者(육자) 分別了知(분별요지) 無量諸法(무량제법) ▶ 지혜바라밀

七者(칠자) 修一切行(수일체행) 而無所着(이무소착)

八者(팔자) 其心不動(기심부동) 猶如山王(유여산왕) 

九者(구자) 廣度衆生(광도중생) 猶如橋梁(유여교량)

十者(십자) 知一切衆生(지일체중생) 與諸如來(여제여래) 同一體性(동일체성) 

佛子(불자) 是爲十法(시위십법) 令諸菩薩(영제보살) 所行淸淨(소행청정)  

하나는, 자재(資財, 물자와 재물)을 희사하여 중생들의 뜻을 만족하게 하는 것이요,

둘은 계(戒, 계율)을 청정하게 지니어 범계(犯戒, 파계)하지 않는 것이요,

셋은, 유화(柔和)하여 부드럽게 인욕하기를 끝없이 하는 것이요,

넷은, 부지런히 제행(諸行)을 닦아서 영원히 퇴전하지 않는 것이요,

다섯은, 바르게 생각하는 정념(正念, 깨어있음, 알아차)의 힘으로 마음이 산란하지 않는 것이요,

ㅡ정념(正念)은 깨어 있음, 마음 챙김으로 우리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판단하지 않고, 제 삼자의 입장에서 '있는 그대로' 예의 주시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나에게 일어나는 온갖 느낌, 생각, 감정 등을 '나'라고 고집하지 않고 '제3자의 입장'에서 구경꾼처럼 쳐다 보는 것입니다. 

 

여섯은, 무량하게 많은 제법(諸法)들을 분별하여 분명하게 아는 것이요,

일곱은, 일체의 모든 행(行)을 닦으나, 그 닦음이나 행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요,

여덟은, 부동(不動)하여 동요하지 않는 그 마음이 마치 산왕(山王, 태산)과 같음이요,

아홉은, 광도중생(廣度衆生)하여 널리 중생들을 제도하여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건네 주는 것이)

마치 교량(橋梁, 다리)과 같음이요,

열은, 일체의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그 성품이 여래와 더불어 동일한 체성(體性)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라,

 

불자여, 이러한 10 가지의 법이 보살들이 행하는 바의 소행(所行)을 청정하게 하는 것입니다.

ㅡ'일체 중생이 모든 여래와 체성이 동일함을 알게 한다'고 한 것은

3승의 보살은 일체 중생이 여래의 불성이성(佛性理性, 바탕의 법신)을 똑같이 갖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이 경전에서는 일체 중생이 여래의 일체종지(一切種智, 사事를 판단하는 지혜)의 성품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을 말한다. 

가령 경전 아래 경문에서, 경권(經卷)이 삼천대천세계 같아서 소중생(小衆生)의 몸 속에 들어 있으니, 어떤 사람이 성불하면서 이 미진(微塵)을 타파하여 그 경권(經卷)들을 낸다고 하는데, 이것은 미진만한 크기의 중생들 모두가 부처님의 일체종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보살이 성불하여 화(化)하면서 총체적으로 여래의 일체종지를 얻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이(理)를 요달한 지혜의 명칭이 일체지(一切智)이며, 차별지를 함께 요달하는 명칭이 일체종지(一切終智)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