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經卷第十八 明法品第十八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三藏沙門(삼장사문實叉難陀 (실차난타 

18. 명법품(明法品)  3

ㅡ법혜(法慧) 보살의 답설(答說)

爾時(이시) 法慧菩薩(법혜보살) 告精進慧菩薩言(고정진혜보살언) 

善哉佛子(선재불자) 汝今爲欲多所饒益(여금위욕다소요익) 多所安樂(다소안락) 

多所惠利(다소혜리) 哀愍世間(애민세간) 諸天及人(제천급인) 

問於如是(문어여시) 菩薩所修(보살소수) 淸淨之行(청정지행) 

그때 법혜보살이 정진혜보살에게 답하여 말씀하시기를, 

훌륭하십니다. 불자시여!

지금 그대께서는 많은 이들을 요익하고 하고, 많은 이들을 안락하게 하고,

많은 이들을 혜리(惠利, 은혜롭고 이익이 됨)하게 하고자 하시며,

세간과 모든 천인들과 사람들을 가련하게 여기시어, 보살이 닦아야 할 청정한 행(行)들을 물으셨습니다.

 

佛子(불자) 汝住實法(여주실법) 發大精進(발대정진) 增長不退(증장불퇴) 

已得解脫(이득해탈) 能作是問(능작시문) 同於如來(동어여래)

諦聽諦聽(제청제청) 善思念之(선사념지) 我今承佛(아금승불) 威神之力(위신지력) 

爲汝於中(위여어중) 說其少分(설기소분) 

불자여! 그대께서는 실법(實法, 실상법)에 머무시어 크게 대정진하시어서,

마음이 불퇴(不退)하여 더욱 증장하였으며, 이미 해탈을 얻으셨으나,

능히 이와 같이 물어서 여래와 같아지고자 하는 것이니,

내 이제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그대를 위하여 소분(少分, 조금)이나마 설하겠으니,

그대는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도록 하소서!

 

佛子(불자)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已發一切智心(이발일체지심) 

應離癡暗(응리치암) 精勤守護(정근수호) 無令放逸(무령방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일체지(一切智)의 마음을 이미 내었다면,

마땅히 어리석고 어두운 치암(癡暗)을 벗어나서 부지런히 수행하는 정근(精勤)을 수호함에 있어서

방일(放逸, 게으름)하지 않아야 합니다.

 

ㅡ십종(十種)의 불방일법(不放逸法)

佛子(불자)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住十種法(주십종법) 名不放逸(명부방일) 何者爲十(하자위십)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10 가지의 십종법(十種法)에 머물 수 있다면 방일하지 않은 부방일(不放逸)이라 이름하나니,

무엇이 그 10 가지 인가? 

 

一者(일자) 護持衆戒(호지중계) 

二者(이자) 遠離愚癡(원리우치) 淨菩提心(정보리심) 

三者(삼자) 心樂質直(심락질직) 離諸諂誑(이제첨광) 

四者(사자) 勤修善根(근수선근) 無有退轉(무유퇴전) 

五者(오자) 恒善思惟(항선사유) 自所發心(자소발심) 

六者(육자) 不樂親近(불락친근) 在家出家(재가출가) 一切凡夫(일체범부) 

七者(칠자) 修諸善業(수제선업) 而不願求(이불원구) 出世間果報(출세간과보) 

八者(팔자) 永離二乘(영리이승) 行菩薩道(행보살도) 

九者(구자) 樂修衆善(낙수중선) 令不斷絶(영불단절) 

十者(십자) 恒善觀察(항선관찰) 自相續力(자상속력) 

그 하나는, 여러 가지 계율을 수호하여 지키는 것이요,

둘은, 어리석음의 우치(愚癡)를 멀리 여의어서 보리심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요,

셋은, 마음이 참되고 곧은, 질직(質直, 정직)함을 좋아하여서 아첨과 속이는 모든 첨광(諂誑)을 여의는 것이요,

넷은, 부지런히 선근(善根)을 닦음에 있어서 퇴전하지 않는 것이요,

다섯은, 자기가 발심한 것을 항상 깊이 사유(思惟)하는 것이요,

여섯은, 집에 있는 재가자(在家者)이거나 출가한 일체의 모든 범부들과 친근하게 지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요,

(정법을 모르고 물질에 미혹 되어있는 재가자나 출가자들과 친하게 가까이 지내지 않는 것이요)

일곱은, 선업(善業)을 닦으나, 출세간의 과보를 구하지 않는 것이요,

여덟은, 성문과 연각의 이승(二乘)을 영원히 여의고 보살도(菩薩道)를 행하는 것이요,

아홉은, 모든 선(善)을 즐겨 닦아서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요,

열은, 스스로 자신의 상속력(相續力)을 잘 관찰하는 것이니,   

(스스로의 수행을 잘 관찰하여서 빠지거나 모자람이 없도록 하는 것이니.)

 자기가 닦은 공덕이나 복과, 자기가 지은 죄는 피할 수가 없고, 남에게 줄 수도 없는 것입니다.

모든 일이 자기가 지은 데로 가는 것이니까 무리할 것도 없고,

좋은 일을 많이 하되 그 과보나 공덕을 바랄 것도 없습니다 ㅡ무비스님

 

佛子(불자) 若諸菩薩(약제보살) 行此十法(행차십법) 是則名爲(시즉명위) 住不放逸(주불방일)

불자여, 만약 보살들이 이러한 10 가지의 십법(十法)을 행한다면,

곧 부방일(不放逸)함에 머무는 것이라 이름할 수 있습니다.

 

ㅡ십종(十種)의 청정을 얻음

佛子(불자)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住不放逸(주부방일) 得十種淸淨(득십종청정) 

何者(하자) 爲十(위십)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이러하게 방일하지 않음에 머문다면, 10 가지의 청정함을 얻나니,

무엇이 그 10 가지인가?

 

一者(일자) 如說而行(여설이행) 

二者(이자) 念智成就(염지성취) 

三者(삼자) 住於深定(주어심정) 不沈不擧(불침불거) 昏= 어두울 혼

四者(사자) 樂求佛法(낙구불법) 無有懈息(무유해식) 

五者(오자) 隨所聞法(수소문법) 如理觀察(여리관찰) 具足出生(구족출생) 巧妙智慧(교묘지혜)

六者(육자) 入深禪定(입심선정) 得佛神通(득불신통) 

七者(칠자) 其心平等(기심평등) 無有高下(무유고하) 

八者(팔자) 於諸衆生(어제중생) 上中下類(상중하류) 心無障碍(심무장애) 猶如大地(유여대지) 等作利益(등작이익)  

九者(구자) 若見衆生(약견중생) 乃至一發(내지일발) 菩提之心(보리지심) 尊重承事(존중승사) 猶如和尙(유여화상) 

十者(십자) 於授戒和尙(어수계화상) 及阿闍梨(급아사리) 一切菩薩(일체보살)

諸善知識(제선지식) 法師之所(법사지소) 常生尊重(상생존중) 承事供養(승사공양) 

하나는, 설하는 바 대로 행하는 여설이행(如說而行)이요,

둘은, 염지(念智, 마음의 지혜)를 성취하는 것이요,

셋은, 깊은 선정에 머무르는 그 마음이 불침(不沈)하여 갈앉지 않으며,

불거(不擧)하여 망상에 잠기지도 않는 것이요.

(깊은 선정에 머무는 그 마음이 혼침(昏沈)하지 않아서 멸진정을 여의고, 도거(掉擧)하지 않아서 식려선을 여의는 것이요)

ㅡ욕계의 선정이 5욕(五欲)에 반연하는 것을 이름하여 들뜸의 도(掉)라 하고,

색계와 무색계의 선정은 가라앉음의 침(沈)이며,

또한 성문과 연각의 선정은 가라앉음(沈)이며,

공관보살이 6바라밀을 행하여서 정토에 태어나는 것은 들뜸(掉)이니,

이와 같이 삼승의 선정 모두에 가라앉음(沈)과 들뜸(掉)이 있는 것은 더러움과 청정함이 여전히 없어지지 않았고,
도(道)를 보는 것이 참되지 못하여 좋고 싫어함이 있기 때문이다.ㅡ신화엄경

 

넷은, 즐겨 불법을 구함에 있어서 게으르거나 쉬어 멈추지 않는 것이요,

다섯은, 들은 바를 따라 법문을 이치대로 여리관찰(如理觀察)하여 묘지혜(妙智慧)를 구족하여 출생하는 것이요, 

여섯은, 깊은 선정에 들어가서 부처님의 신통을 얻는 것이요,

ㅡ깊은 선정에 들어가서 부처님의 신통을 얻는다는 것이란,
마음이 이(理)에 칭합해서 근본적으로 출입이 없음으로써 체(體)에 고요함이나 시끄러움이 없고,

체에 조작의 성품이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理)에 맡겨진 그 스스로가 진(眞)이라서 낳지도 않고 조복시키지도 않으며,
참된 이(理)가 지혜에 응하면서 성품이 스스로 두루하여 삼세와 시방에 일시에 널리 응하고 색신을 대현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지혜에 따라 응하여 군품(群品)을 교화하면서도 오고 감이 없으며,

아울러 변화하지도 않는 것을 부처님의 신통이라 칭하는 것이니,

지혜가 의지함도 없고 형색(形色)도 없어서 체(體)에 오고 가는 성품이 없으며, 
성품이 스스로 두루하여 삼세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능히 삼세의 법에 널리 응하는 것을 신통이라 칭하는 것이다.
때문에 “지혜가 삼세에 들면서도 오고 감이 없다”고 한 것이니,
삼세가 중생의 정(情)으로 망녕되이 세운 것일 뿐, 실유(實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지혜의 체(體)가 형상이나 색이 없어서 조작하지 않고서도 군품(群品)에 응하는 것을 신(神)이라 칭하는 것이며, 
시방에 원만하여 법마다 알지 못함이 없고 근기마다 알지 못함이 없는 것을 통(通)이라 칭하는 것이다.

 

일곱은, 그 마음이 평등하여 높고 낮음의 고하(高下, 분별이나 차별)가 없는 것이요,

여덟은, 중생들에 대하는 그 마음에는 상ㆍ중ㆍ하로 나누어서 분별하는 장애가 없어서

마치 대지와 같이 평등하게 모두를 이익되게 하는 것이요,

아홉은, 만약 일발(一發)의 보리심이라도 내는 중생을 보게 된다면,

존중하여 받들어 섬기기를 마치 화상(和尙, 큰 스님 )과 같이 하는 것이요,

열은, 수계(授戒)하여 주는 화상(和尙, 큰 스님)이나, 아사리(阿闍梨, 스승)나,

일체의 모든 보살이나, 선지식이나 법사들의 처소에서

그러한 모든 분들을 항상 존중하고 승사하여 받들어 모시고 공양하는 것이니,

 

佛子(불자) 是名(시명) 菩薩住不放逸(보살주불방일) 十種淸淨(십종청정)

불자여, 이러한 10 가지의 청정을 이름하여 보살이 방일하지 않음에 머무르는

십종청정(十種淸淨)이라 하는 것입니다. 

ㅡ아사리(阿闍梨, ācārya)는 바른 행동을 보여준다 하여 정행(正行)이라 하기도 하며, ‘스승’이라는 뜻이다. 계율과 의식에 밝아서 출가자들을 가르치고 지도할 수 있는 덕이 높고, 또 선법(善法)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옷을 단정히 입고 걸식(乞食)을 법답게 하며, 항상 제자들을 자식처럼 여기는 승려를 아사리라고 하였다.

10회 이상의 안거(安居)를 마쳤고 계율에 밝고 지혜와 복덕을 겸비한 승려이며, 

출가하여 승려가 되는 이에게 10계(戒)를 주는 출가아사리(出家阿闍梨),

구족계를 줄 때 의식을 주관하는 갈마아사리(羯磨阿闍梨),

구족계를 받는 이에게 규율이나 몸가짐 등을 가르치는 교수아사리(敎授阿闍梨), 

경전을 가르치는 수경아사리(受經阿闍梨) 등이 있다.

일반적으로 아사리라고 하면 은사(恩師)·법사(法師)·계사(戒師) 중에서 계사를 지칭한다.  

 

佛子(불자)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住不放逸(주부방일) 

發大精進(발대정진) 起於正念(기어정념) 生勝欲樂(생승욕락) 所行不息(소행불식) 

於一切法(어일체법) 心無依處(심무의처) 於甚深法(어심심법) 能勤修習(능근수습) 

入無諍門(입무쟁문) 增廣大心(증광대심) 佛法無邊(불법무변) 能順了知(능순요지) 

令諸如來(영제여래) 皆悉歡喜(개실환희)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방일하지 않은, 불방일(不放逸)의 십종법에 머물러서 대정진을 발(發)하여,

바른 생각의 정념(正念)을 일으키고, 수승한 욕망과 즐거움의 승욕락(勝欲樂)을 내어서

소행(所行)을 행함에 쉬지 않으며, 일체법(一切法)에 대하여 마음으로 의지하지 않으며,

깊고 심오한 심심법(甚深法)을 능히 부지런히 수습하여 다툼이 없는 무쟁(無諍)의 문에 들어가서

광대심(廣大心)을 더욱 증장하게 하며,

무변(無邊)하게 많은 불법에 능히 수순하여 요지(了知)하여 분명하게 알아서

모든 여래들로 하여금 환희하시게 합니다.

 

ㅡ모든 부처님께서 기뻐하시는 십종법(十種法)

佛子(불자)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復有十法(부유십법) 能令一切(능령일체) 諸佛歡喜(제불환희)

何等爲十(하등위십)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다시 10 가지의 법이 있어서 모든 부처님을 환희하게 하나니,

어떠한 것들이 그 10 가지 인가?  

 

一者(일자) 精進不退(정진불퇴) 

二者(이자) 不惜身命(불석신명)

三者(삼자) 於諸利養(어제이양) 無所希求(무소희구) 

四者(사자) 知一切法(지일체법) 皆如虛空(개여허공이)

五者(오자) 善能觀察(선능관찰) 普入法界(보입법계) 

六者(육자) 知諸法印(지제법인) 心無倚着(심무의착) 

七者(칠자) 常發大願(상발대원) 

八者(팔자) 成就(성취) 淸淨忍智光明(청정인지광명) 

九者(구자) 觀自善法(관자선법) 心無增減(심무증감) 

十者(십자) 依無作門(의무작문) 修諸淨行(수제정행) 

佛子(불자) 是爲菩薩(시위보살) 住十種法(주심종법) 能令一切如來歡喜(능령일체여래환희) 

하나는, 정진하여 물러가지 않는 정진불퇴(精進不退)요,

둘은,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는 불석신명(不惜身命)이요,

셋은, 모든 이양(利養, 이익 늘림)하는 것을 희구(希求)하지 않는 것이요,

넷은, (근본은 적멸하여서) 모든 일체법이 허공과 같다는 것을 아는 것이요,

다섯은, 법계를 잘 관찰하여서 그러한 법계에 두루 들어가는 것이요,

여섯은, 모든 법인(法印)을 잘 아나, 마음으로 의지하고 집착하지 않는 심무의착(心無倚着)이요,

일곱은, 항상 큰 대원(大願)을 발하는 것이요,

여덟은, 청정하나 드러나지 않는 인(忍)과 지혜의 광명을 성취하는 것이요,

아홉은, 스스로의 자선법(自善法)을 관찰함에 있어서 증감(增減)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요,

(스스로의 선한 법을 관찰하되, 마음이 동하지 않는 것이요)

열은, 지음이 없는 무작(無作)의 문으로 모든 깨끗한 정행(淨行)을 닦는 것이니,

 

불자여! 이러함을 보살이 열 가지의 십종법에 머물러 모든 여래들로 하여금 환희하시게 하는 것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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