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 15권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李 通玄 장순용 번역
7) 여래명호품 ②
세 번째의 “서방으로 십불찰미진수를 지나서(三西方過十佛剎微塵數)” 이하 4행의 경문의 10 가지 법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십불찰미진수(十佛剎微塵數)라고 말한 것에서,
1) 십(十)이 원만한 원수(圓數)가 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니, 멀고 가까움의 원근(遠近)이 무진함을 밝힌 것이며,
2) 신심이 있는 자로 하여금 부처님 경계의 광대함을 알게 하여서,
스스로의 자심(自心)을 넓혀서 홍박(弘博)하도록 함을 밝힌 것이며,
3) 부처님 불경계(佛境界)의 두루함이 마치 거울 속의 상(像)과 같아서, 서로 사무쳐 걸림이 없음을 밝힌 것이며,
4) 신심을 일으키지 못한 자가 10불찰진(十佛刹塵)으로서 미혹에 처한 비유를 밝힌 것이니, 10무명(無明, 열 가지 근본 번뇌)을 요달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부처님 경계를 가로막아서 현전하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에 진(塵)을 들어 법을 나타낸 것이다."
첫째, 불찰의 방향을 든다는 것은 서방(西方)이며,
둘째, 불찰의 멀고 가까움의 원근(遠近)을 든다는 것은, 그 뜻이 처음의 해석과 같다.
"미혹을 따르는 것을 밖의 외(外)라 칭하고
깨달은 것을 온, 내(來)라 말하지만,
실제의 불찰은 본래로 멀고 가까움의 원근(遠近)과 안팎 등의 장애가 없으며,
또한 가고 옴의 거래(去來)도 없는 것이다"
셋째로 세계의 명칭(名)과 색(色)을 든다는 것을 설명하면,
연화색(蓮華色)이라 이름한 것은 10신위(十信位)에서 닦아 나아감이 점점 수승하여져서 마음이 마치 연꽃의 색깔과 같아진 것을 밝힌 것이니, 이는 10신위(十信位)에서 닦아 나감이 점점 수승하여져서 마음이 마치 연꽃과 같이 무염(無染)으로 깨끗함음을 밝힌 것이다.
연화색(蓮華色)이라 한 것에서, 연꽃에는 4 가지의 색이 있으니,
이는 신심(信心)이 이러한 4 가지의 색에 물들지 않음을 밝힌 것이며,
아울러 신심(信心)이 있는 보살이 색심(色心)으로 공(空)의 자체성이 무성도리(無性道理)를 관하여서, 오염되지 않도록 대치하기 때문에 연화색(蓮華色)이라 이름한 것이다.
넷째로 부처님의 명호를 든다는, 거불명호(擧佛名號)를 설명하면,
부처님의 명호가 멸암지(滅暗智, 어둠을 멸하는 지혜)인 것은,
서방이 금(金)이 되며, 백호(白虎)가 되며, 살해(殺害)가 되며, 혼함(昏暗)이 되며, 불상(不祥, 상서롭지 못함)이 되며,
고제(苦諦)가 되기 때문에 부처님의 명호가 멸암지(滅暗智)라는 것을 밝힌 것이니,
이는 신위(信位)를 닦아 나아가면서 지혜가 점점 수승하게 되기 때문에, 능히 자타의 어둠을 타파하는 것을 밝힌 것이다.
다섯째로 상수(上首) 보살의 명칭을 설명하면,
재수(財首)라고 명칭한 것은 신위(信位)가 수승하여져서 법재(法財)로 사물을 이롭게 하는 것을 밝힌 것이니,
바로 제삼신(第三信, 제3의 믿음) 속에서 스스로의 행으로서 중생을 이롭게 하는 명칭인 것이다.
부처님의 명호는 바로 자각지(自覺智, 자각의 지혜)요
보살은 자지혜행(自智之行, 지혜의 행)이니,
총체적으로는 각(覺)과 행(行)이 함께 나아가는 구진(俱進)하는 것을 밝힌 것이다.
나머지 문장들은 앞에서 해석한 바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니, 이는 인(忍)바라밀 중에서의 10바라밀을 주재하는 것이다.
네 번째로 “북방으로 십불찰미진수를 지나서(北方過十佛剎微塵數世界)” 이하 4행의 경문에도 10 가지의 문이 있으나,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첫째로 불찰의 방면을 든는 것은, 북방(北方)이 되며,
둘째로 불찰의 멀고 가까움의 원근(遠近)을 든 것도, 그 뜻이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으며,
셋째로 세계의 명칭(名)과 색(色)을 설명하면,
첨복화색(瞻蔔華色)이라 칭한 것은 이 꽃이 황색으로서 제사신심(第四信心, 제4의 신심)이 점점 수승하여져서 꽃을 피우게 되는 감응의 과덕(果德)이 중화(中和)의 색깔이 되는 것을 밝힌 것이다.
황색(黃色)은 5 가지의 색 중에서 최상의 색이며,
황(黃)이란 중궁(中宮)의 색으로서 복경(福慶ㅡ 복과 경축)의 기(氣)가 되는데,
이는 내심(內心)이 순백으로 청정하기 때문에 밖으로 황색의 상(相)이 나타나는 것을 밝힌 것이다.
경전에서 “진(眞)에 응하는 보살이 모두 진금색(眞金色)이다(應眞菩薩皆眞金色)”라고 하였으니,
이는 이 신심이 기쁘고 평화로우며, 오염되지 않은 순백의 청정함이기 때문에,
복경(福慶)의 화기(和氣)로서 도(道)의 과(果)를 꽃 피우는 것을 세계라 칭한다는 것을 밝힌 것으니,
그러므로 세계가 첨복화색(瞻蔔華色)이 된 것이다.
넷째로 부처님의 명호를 든 것을 설명하면,
부처님의 명호가 위의지(威儀智, 위의의 지혜)인 것은,
북방의 감(坎)이 스승이 되고 임금이 됨을 밝힌 것이니,
마치 임금이 덕(德)으로서 흑위(黑位)에 처하여 범부를 접(接)하는 것과 같이 때문에 스승이 된 것이다.
부처님의 호칭이 위의지(威儀智, 위의의 지혜)인 것은 제사신심(第四信心, 제4의 신심)이 더욱 뛰어남을 궤범으로 삼아서,
범우(凡愚, 범부와 어리석은 자)를 인도하는 것을 위의지(威儀智)라 이름한 것이니,
지혜로 상서(庠序)하여 스승의 모습이 되기 때문이다.
다섯째로 상수(上首) 보살의 명칭을 든 것에서,
명칭이 보수(寶首)가 되는 것은, 스승의 모범이 되어 법보(法寶)로써 중생을 이롭게 하기 때문이며,
나머지의 뜻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이 지위는 정진문(精進門, 정진 바라밀) 가운데에서 10바라밀을 주재한 것이다.
다섯 번째로 “동북방(東北方)” 이하 4행의 경문을 앞에서와 같이 10 가지의 법으로 나눈다면,
첫째로 그 방면을 설명하면, 동북방은 간괘(艮卦)가 되며, 소남(小男)이 되며, 동몽(童蒙)이 되며,
창명(創明)이 되며, 청조(淸朝)가 되는 것이다.
둘째로 불찰의 멀고 가까움의 원근의 뜻은 처음의 해석과 같으며,
셋째로 세계의 명칭(名)과 색(色)을 설명하면,
우발라화색(偶發羅華色)이라 이름붙인 것은 바로 청련화(靑蓮華)이니,
이는 제5신심(第五信心)이 청결하여 색(色)과 향기가 무염(無染)으로 꽃을 피우는 감응의 과(果)이기 때문에
간위(艮位)가 청조(淸朝)에 처하는 것과 같음을 나타낸 것이다.
넷째로 부처님의 명호를 설명하면, 부처님의 명호가 명상지(明相智)인 것은 제5의 신심이 더욱 수승하여지면서, 간위(艮位)가 청조에 처해 밝은 명상(明相)이 나타남을 표상한 것이니,
이는 자심(自心, 자기의 마음)을 믿는 바로서 부처님의 명호를 표(標)한 것일 뿐, 다른 부처님이 아니다.
다섯째로 상수(上首) 보살의 명칭을 설명하면,
명칭이 공덕수(功德水)가 되는 것은 앞서 말한 보수(寶首)를 밝힌 것이니, 곧 법보로 중생을 이롭게 한다는 것이다.
이 지위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공덕이며, 나머지의 뜻은 앞에서와 같으며,
이 지위는 선문(禪門, 선바라밀) 중에서 10바라밀을 주재하는 것이니, 간(艮)으로 지(止)를 삼기 때문이다.
여섯 번째로 “동남방(東南方)” 이하 4행의 경문에서의 10 열 가지의 뜻은 앞에서와 같으니,
첫째로 불찰의 방향을 설명하면, 이는 동남방으로서 손괘(巽卦)이니,
손(巽)은 바람의 가르침이 되며, 사(事)에서는 방(方)이 되며, 사람에게는 설(說)이 되는 것이니,
군자가 가르침을 설하여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주역(周易)에서는 “군자가 가르침을 베푸니 계몽(啓蒙)이 따르는 것이, 마치 풀 위에 바람이 부는 것과 같은 것으로, 이는 불순(不順)하지 않는다는 뜻이다”라고 하여 분명히 드러내고 있으니,
이는 관괘(觀卦)가 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주역에서는 “바람이 땅 위를 행할 때 상(像)을 관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이는 군자가 덕으로 바른 가르침을 베푸니, 일체의 모든 사람들이 믿고 따르는 것이 풀 위에 바람이 부는 것과 같아서 따르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이는 손(巽)이 대중이 되고, 믿고 따름의 신순(信順)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4대(四大) 중에서는 바람의 힘이 최고가 되는 것이니,
천지도 바람의 힘을 입고서 유지되고, 사람도 바람의 힘을 입고서 살아가며, 해나 달도 바람의 힘으로 운행하는 것이다.
또한 바람이 능히 더러움을 가려내고 청정함을 택한다는 뜻이 있음을 밝힌 것이니,
이러한 까닭으로 가르침이 되나니,
즉 가르침이 능히 잘못(非)을 가려내고 올바름(是)을 택하여서 우매한 자를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손괘(巽卦)는 그 지위가 동남에 있으면서 진(辰)을 본받아 축(丑)을 유지하고 간위(艮位)가 되는 것이며,
간(艮)은 소남(小男)이 되고 동몽(童蒙)이 되는 것이니,
이는 손(巽)이 바람의 가르침이 되어서 동몽을 교화해 발명케 함을 밝히고 있기 때문에,
여래께서 이러한 법으로서 진(辰)과 사(巳)의 사이에 재계(齋戒)를 하시는 것이다.
진(辰)과 사(巳)의 중간은 위로 각수(角宿)와 만나는데,
각(角)은 천문(天門)이 되어서 승(僧, 비구)과 니(尼, 비구니)와 도(道, 도가)와 사(士, 유가)를 주재하나니,
이는 모든 선문(善門)으로, 지혜와 언설이 모든 선문(善門)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하게 뜻이 무량하여서 충분히 설하기 어려운 까닭에 우선 간략히 말하는 것이니,
나중에 지혜있는 자는 법으로서 자세히 살펴서 사유한다면, 그 깊고 엄밀한 뜻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 불찰의 멀고 가까움의 원근은, 그 뜻이 앞에서 말한 것과 같으며,
셋째로 세계의 명칭(名)과 색(色)을 설명하면,
세계가 금색(金色)이라 이름한 것은 최초의 제1신심(第一信心)인, 첫믿음이 태(胎)와 같음을 밝히는 때문에,
동방 금태(金胎)의 지위로써 최초의 신해(信解)를 나타낸 것이지만,
닦아 나아가는 제6신위(第六信位)에 이르러서는, 신심이 더욱 더 수승하여 졌음을 밝히는 까닭에 금(金)이 생기는 것으로,
이는 신심이 더욱 밝아지면서 순백의 청정함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 동남방의 금색세계는 마치 4월에 금이 생기는 것과 같으니,
이는 신심이 더욱 밝아지고 순백으로 청정함이 더욱 더 수승하게 됨으로써,
일체의 법을 잘 간택하여 능히 가르침을 설하기 때문에 바람의 교화가 행해짐을 나타낸 것이니,
말하자면 이를 통해서 지혜의 문을 나타낸 것이다.
넷째, 부처님의 명호를 설명하면,
부처님의 명호가 구경지(究竟智)인 것은, 신심이 더욱 더 증진하여 능히 잘 가르침으로써,
정(正)과 사(邪)를 잘 간택하여 구경지에 이름을 밝힌 것이여,
또한 손(巽)을 바람으로 삼아서, 사(事)에 있으면서 방(方)을 이루니, 방(方)은 법과 같으며,
선(善)에 있으면 간택하여 순백청정의 이(理)를 이루며, 언(言) 있으면 설(說)을 이루며,
화(化)에 있으면 가르침을 이루며, 범(凡)에 있으면 사(思)를 이루며, 지(智)에 있으면 혜(慧:슬기)를 이루며,
이(离)의 덕을 이루면 적(赤)이 되고 문장(文章)이 되며, 태(兌)의 덕을 이루면 금초생(金初生)이 되고 순배청정이 되는 것이다.
태(兌)는 금(金)이 되고, 입(口)이 되나니, 입으로 능히 순백청정한 궁극의 이(理)를 설하는 까닭에
부처님의 명호가 구경지불(究竟智佛)이 되는 것이다.
다섯째, 상수 보살의 명칭이 목수(目首)가 되는 것은,
제6신심(第六信心)이 더욱 밝아져 정(正)과 사(邪)를 잘 간택함으로써, 그 도(道)가 밝게 드러난 정견(正見)으로, 미혹하지 않음을 목수(目首)라 칭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니,
그 손괘(巽卦)의 방위가 동남방에 있으면서 진(辰)을 본받아 축(丑)에 있으며,
그 지위는 바람으로서 위로는 기수(箕宿)와 만나나니, 기(箕)는 바람이 되어 간택한다는 뜻이다.
또 기(箕)는 인위(寅位)가 되어서 초명(初明)을 주재하는데,
이는 이 제6신심(第六信心)이 반야바라밀을 주재하는 결정적인 지혜로 정사(正邪)를 잘 간택함으로써,
자타(自他)로 하여금 뛰어난 승혜(勝慧)의 밝음을 나게 한다는 것을 밝히는 이 때문에 그 명칭을 목수(目首)라 하는 것이니,
목(目)이란 잘 보아서 간택함이 분명하다는 뜻이며, 나머지 뜻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이 동남방(東南方)은 길흉(吉凶)을 밝히고, 정사(正邪)를 정하는 방위이니,
오(午)에 이르면 만사가 필(畢, 마침)하여지는 것으로, 오(午)는 상명(常明, 항상 밝음)의 법문이 된다.
선재동자가 남쪽으로 순행하면서 벗에게 묻는 것은 허무하고 무작(無作)의 항상 밝은 도를 얻게 되는 것이니,
이는 불위(不爲)의 묘용(妙用)인 것이다.
이러한 때문에 군신(君臣, 임금과 신하), 사제(師弟, 스승과 제자), 부자(父子, 아버지와 아들)의 의례(儀禮)에서
신하는 남쪽, 임금은 북쪽에서 바른 다스림이 무위무작(無爲無作)의 그러한 도를 밝힌 것이니,
남방의 이괘(离卦)가 이중허(离中虛)가 되어서 허무가 되고, 일(日)이 되며,
명(明)이 되고 몸에서는 안목(眼目)이 되고, 마음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주역(周易)에서는 “이(离)가 마음을 받기 때문이다(离法心故)”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법은 머무는 곳도 없는 무주처(無住處)이고, 법은 얻는 바도 없는 무소득(無所得)이며,
법은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마음의 안이비설신심(眼耳鼻舌身心)이 아닌 한편 또한 안이비설신심을 떠나지도 않기 때문에,
지금 여래께서는 방우(方隅)로써 법을 나타내어 초학자들로 하여금 이해하기 쉽게 한 것이니,
만약 이렇게 법을 나타내서 믿음을 내도록 하지 않는다면 초학자가 어디에 의탁할 수 있겠는가?
언설(言說)의 법은 모두 사(事)에 의탁해서 상(像)을 나타내는 까닭에,
뜻을 얻은 자는 법(法)과 상(像)이 모두 진(眞)이며
말할 때이나 침묵을 할 때의 모두에 계합하는 것이다.
이 지위는 혜(지혜) 바라밀을 주재하고, 나머지 아홉의 바라밀은 반(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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