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經卷第十七 梵行品第十七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三藏沙門(삼장사문實叉難陀 (실차난타 

17. 초발심공덕품(初發心功德品)  14

 

又敎億衆成緣覺(우교억중성연각獲無諍行微妙道(획무쟁행미묘도

以彼而校菩提心(이피이교보리심算數譬喩無能及(산수비유무능급

또한 억(億)의 중생을 교화하여서 연각(緣覺) 이루게 하며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온갖 번뇌와 투쟁, 갈등, 욕망이 모두 사라진, 무쟁(無諍)의 행과

미묘한 도(道)를 얻게 하였을지라도
그 공덕을 보리심(菩提心, 초발심, 불심)에 비교한다면, 어떠한 산수의 비유로도 미칠 수가 없으며, 

 

一念能過塵數刹(일념능과진수찰如是經於無量劫(여시경어무량겁

此諸刹數尙可量(차제찰수상가량發心功德不可知(발심공덕불가지

일념(一念, 한 생각) 사이에 진수찰(塵數刹, 티끌의 수와 같이 많은 세계)를 능히 지나가고
그와 같이 무량겁(無量劫)을 지나간다 할지라도
그렇게 지나간 모든 세계는 헤아려서 알 수 있을 것이나
발심공덕(發心功德, 초발심 공덕, 불심의 공덕)은 알 수가 없을 것이며,

 

過去未來及現在(과거미래급현재所有劫數無邊量(소유겁수무변량

此諸劫數猶可知(차제겁수유가지發心功德無能測(발심공덕 무능측

지난 과거와 오는 미래와 지금의 현재의 
그 많은 겁수(劫數)가 가없이 많은 무변량(無邊量)이나, 
그러한 무변량의 겁수(劫數)는 알수 있을지언정, 초발심한 공덕은 측량할 수 없을 것이니,

 

以菩提心遍十方(이보리심변시방所有分別靡不知(소유분별미불지

一念三世悉明達(일념삼세실명달利益無量衆生故(이익무량중생고

그 보리심이 시방에 두루하여서, (시방 세계의) 모든 분별들을 알지 못함이 없으며,  
일념(一念, 한 생각) 사이에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를 명달(明達)하여 밝게 아나니,

무량한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고자 하는 연고인 까닭이로다.

 

十方世界諸衆生(시방세계제중생欲解方便意所行(욕해방편의소행

及以虛空際可測(급이허공제가측發心功德難知量(발심공덕난지량

시방세계 중생들의 모든 욕해(欲解, 욕망과 이해)와 방편과 그 뜻하는 바의 의소행(意所行)과
허공제(虛空際, 허공의 경계)에 이르기 까지의 모든 것을 측량할 수 있을지라도 
초발심한 공덕의 양은 알기 어려운, 난지량(難知量)이라.

 

菩薩志願等十方(보살지원등시방) 慈心普洽諸群生(자심보흡제군생)

悉使修成佛功德(실사수성불공덕是故其力無邊際(시고기력무변제

보살의 지원(志願, 뜻과 원)이 시방과 같이 골고루 두루하여서
자심(慈心, 자비한 마음)으로 모든 군생(중생)을 보흡(普洽, 널리 흡족하게 함)하여서, 
(그들로 하여금) 부처님의 불공덕(佛功德)을 닦아 이루게 하나니,

그러므로 그 힘은 끝이 없는 무변제(無邊際)로다. 

 

衆生欲解心所樂(중생욕해심소락諸根方便行各別(제근방편행각별

於一念中悉了知(어일념중실요지一切智智心同等(일체지지심동등

중생들의 욕해(欲解, 욕구와 이해)와 마음으로 즐겨하는 심소락(心所樂)과 
제근(諸根, 6근)과 방편의 행이 각각으로 다르거늘, 
그러한 모두를 일념(一念, 한 생각) 사이에 분명히 요지(了知)하여 아나니
일체지지(一切智智, 평등지 平等智와 차별지 差別智를 모두 아는 지혜)의 마음과 동등하도다.

 

一切衆生諸惑業(일체중생제혹업三有相續無暫斷(삼유상속무잠단

此諸邊際尙可知(차제변제상가지發心功德難思議(발심공덕난사의)  

일체 중생들이 온갖 혹업(惑業, 번뇌와 업)으로
욕계ㆍ색계ㆍ무색계의 삼유(三有, 삼계)에 상속하여 잠시도 멈추지 않나니,  
이러한 삼유 상속의 끝은 오히려 알 수 있을 것이나, 
초발심한 공덕은 생각하기 어려운 난사의(難思議)이로다.

 

發心能離業煩惱(발심능이업번뇌供養一切諸如來(공양일체제여래

業惑旣離相續斷(업혹기리상속단普於三世得解脫(보어삼세득해탈)  

발심(發心, 초발심)함으로 인하여 업과 번뇌를 능히 여의었으며, 
일체의 모든 여래에게 공양할 수 있으니, 
혹업(惑業, 번뇌와 업)를 여의어서 상속됨이 끊어진다면,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에서 두루 해탈을 얻으리라.  

 

一念供養無邊佛(일념공양무변불亦供無數諸衆生(역공무수제중생

悉以香華及妙鬘(실이향화급묘만寶幢旛蓋上衣服(보당번개상의복

일념(一念, 한 생각) 사이에 끝없이 무변한 부처님들과

또한 무수하게 많은 중생들에게 공양하나니,

향과 꽃과 묘만(妙鬘, 아름다운 꽃다발)들이며
보배로운 당번(幢旛, 깃발과 장막) 개(蓋, 일산)과 상의복(上衣服, 가장 좋은 옷들)과 

중생공양이 제불(諸佛)공양이고, 제불(諸佛) 공양이 중생공양입니다.ㅡ무비스님

 

美食珍座經行處(미식진좌경행처種種宮殿悉嚴好(종종궁전실엄호

毘盧遮那妙寶珠(비로자나묘보주如意摩尼發光耀(여의마니발광요)찬란히 빛나는 여의주 마니보배로 

미식(美食, 맛이 좋은 음식)과 진좌(珍座, 좋은 의자 또는 자리)와 경행처(經行處)와 함께
종종(種種, 갖가지)으로 모든 궁전을 훌륭하게 장식하여서 장엄하고
비로자나 여래의 기묘한 보배 구슬인 묘보주(妙寶珠)와
여의마니(如意摩尼, 여의주) 보배가 광요(光耀)하여 찬란하게 빛나며, 

ㅡ비로자나는 불십호(佛十號)의 총체적인 총명(摠名)으로, 대지혜의 광명으로 갖가지의 제법과 종종의 중생들을 비추기 때문이다.
비(毘)는 갖가지의 종종(種種)을 말하며, 

노자나(盧遮那)는 두루 비추는 편조(遍照)를 말한다.

 

ㅡ청정법신(淸淨法身) 비로자나불, 깨달음의 경지 · 지혜, 진리 그 자체, 진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우주 그 자체를 부처로 사유한 것으로, 비로자나불과 대일여래(밀교)이다. 
비로자나는 바이로차나(Vairocana)를 소리 나는 대로 음역한 것으로, 변조(遍照) · 변광(遍光)이라 번역하며,
비로자나는 노사나 외에도 비로절나(鞞嚧折那), 폐로자나(吠嚧遮那), 자나(遮那) 등으로도 불리며,
그 의미를 따라 변일체처(遍一切處, 모든 곳에 두루함) 또는 광명변조(光明遍照, 모든 곳에 두루 비침)라고 한역(漢譯) 되기도 한다.
결국 비로자나불은 우주 전체여서 우주의 모든 현상은 비로자나불의 모습 아닌 것이 없고, 우주 그 자체이기 때문에 직접 중생에게 설법하지 않고 보여주기만 하는 ‘침묵의 부처’이다.  

 

念念如是持供養(염념여시지공양經無量劫不可說(경무량겁불가설)  

其人福聚雖復多(기인복취수부다不及發心功德大(불급발심공덕대

염념(念念, 생각생각)마다 이렇게 공양하면서 말할 수 없는 불가설(不可說)의 겁(세월)을 지낸다면
비록 그 사람의 모은 복취(福聚, 복더미)가 많다고 할 것이나
초발심한 공덕에는 미치지 못하는도다. 

 

所說種種衆譬喩(소설종종중비유) 無有能及菩提心(무유능급보리심) 

以諸三世人中尊(이제삼세인중존皆從發心而得生(개종발심이득생

앞에서 말한 바의 종종(種種)의 비유들도, 보리심(불심, 초발심)에 능히 미칠 수 가 없는 것이니, 

모든 삼세의 인중존(人中尊, 사람 가운데에서 높고 존귀한 사람)들이
모두 발심(초발심)으로부터 나신 연고인 때문이니라.

ㅡ부처님의 발심으로 부터 2700여년 동안 전 세계에 불교가 전해지게 된 것입니다.

 

發心無碍無齊限(발심무애무제한欲求其量不可得(욕구기량불가득

一切智智誓必成(일체지지서필성) 所有衆生皆永度(소유중생개영도) 

발심(發心)에는 걸림도 없는 무애(無碍)이고 제한도 없는 무제한(無齊限)이라
발심의 양을 구하고자 하여도 가히 얻을 수가 없나니,  
차별지(差別智)와 평등지(平等智)의 일체지지(一切智智)를 결정코 이루어서 모든 중생들을 영원히 제도하리라.

 

發心廣大等虛空(발심광대등허공) 生諸功德同法界(생제공덕동법계) 

所行普遍如無異(소행보편여무이) 永離衆着佛平等(영이중착불평등) 

발심은 광대하여서 마치 허공과 같으며, 모든 공덕을 내는 것이 마치 법계와 같으니

(발심은 모든 공덕을 출생하여 내는 것이 마치 허공과 법계와 같이 드넓고 무한하나니)
행하는 바의 소행(所行)이 널히 두루하여 다름이 없는 무이(無異)라.
영원히 모든 집착을 여의어서 부처님과 평등하도다.

 

ㅡ분별(分別)로 인하여 어리석음과 애착이 따라 일어나고,
어리석음과 애착을 말미암은 까닭에 내 것이라는 아소(我所)의 병이 생기고,
아소(我所)가 있기 때문에 자타(自他)를 가려서 집착하는 업이 문득 일어나고,
집취(執取, 집착)을 말미암은 까닭에 말나(末那)라 호칭하는 것이며,
말나(末那)의 집취(執取, 집착)를 하는 까닭에 식(識)이라 이름하고,
식(識)의 종자로 말미암아 생사가 상속하고,
이 생사로 인하여 일체의 모든 괴로움이 무량하며,
괴로움이 무량한 까닭에 비로소 괴로움이 없는 도(道)를 구하는 것이니,
미혹해서 괴로움을 알지 못하는 자는 능히 발심(發心)하지 못하나,
괴로움을 알고서 진(眞)을 구하고자 하는 이는, 구하고자 하는 그것이 바로 본지(本智)인 것이다.

괴로움의 고연(苦緣)을 이해하기 때문에 비로소 능히 괴로움을 아는 것이며,
괴로움의 고연(苦緣)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능히 괴로움을 알지 못하는 것이니, 
괴로움의 고연(苦緣)을 알기 때문에 비로소 능히 발심하여 무상도(無上道)를 구하는 것이다. ㅡ 이통현(李通玄)장자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14권 8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