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14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通玄 장순용 번역

 

묻겠습니다.
일체 중생에게는 본래로 부동지(不動智)가 있는데,

무슨 이유로 스스로 진(眞)에 응하면서 항상 청정하지 않은 것이며?

무슨 이유로 오염을 따르는 것입니까?

답한다.
일체의 중생들이 이 지혜 때문에 삼계에 태어나는 자는 지혜에 자체성이 없는 지무성(智無性)이라서

이 지(智)와 비지(非智), 선악(善惡)과 괴로움과 즐거움의 고락(苦樂) 등의 법을 알지 못하나며,

지혜의 체(體)가 성품이 없는 지체무성(智體無性)기 때문에, 다만 연(緣)을 따라 나타나는 것이, 

마치 빈 골짜기의 메아리가 사물(계곡)에 응하여 메아리 소리를 이루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러하게 자체성 없는 무성지(無性智)가 단지 연(緣) 응해 분별하는 것이다.

   
분별(分別)로 인하여 어리석음과 애착이 따라 일어나고,

어리석음과 애착을 말미암은 까닭에 내 것이라는 아소(我所)의 병이 생기고,

아소(我所)가 있기 때문에 자타(自他)를 가려서 집착하는 업이 문득 일어나고,

집취(執取, 집착)을 말미암은 까닭에 말나(末那)라 호칭하는 것이며,

말나(末那)의 집취(執取, 집착)를 하는 까닭에 식(識)이라 이름하고,

식(識)의 종자로 말미암아 생사가 상속하고,

이 생사로 인하여 일체의 모든 괴로움이 무량하며,

괴로움이 무량한 까닭에 비로소 괴로움이 없는 도(道)를 구하는 것이니,

미혹해서 괴로움을 알지 못하는 자는 능히 발심(發心)하지 못하나,

괴로움을 알고서 진(眞)을 구하고자 하는 이는, 구하고자 하는 그것이 바로 본지(本智)인 것이다.


괴로움의 고연(苦緣)을 이해하기 때문에 비로소 능히 괴로움을 아는 것이며,

괴로움의 고연(苦緣)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능히 괴로움을 알지 못하는 것이니, 

괴로움의 고연(苦緣)을 알기 때문에 비로소 능히 발심하여 무상도(無上道)를 구하는 것이다.

   

종성(種性, 불종성 佛種性)이 있는 보살은 숙세(宿世)에서 미리 이러한 괴로움을 알고 발심하여 신해(信解)하였으니,

종성이 강한 자는 비록 인천(人天)의 즐거운 낙과(樂果)를 받을지라도 능히 발심해서 무상도를 구하나니,

 

이러한 때문에 지혜로 인하여 미혹을 따르는 인지수미(因智隨迷)이고

지혜로 인하여 깨달음을 따르는 이지수오(因智隨悟)인 것이다.

 

마치 사람이 땅으로 인해 넘어졌다가 땅으로 인해 일어나는 것과 같이(如人因地而倒因地而起),

일체의 중생도 자기 마음의 근본지로 인해 넘어졌다가 자기 마음의 근본지로 인해 일어나는 것과 같으니, 

(一切衆生因自心根本智而倒,因自心根本智而起)

 

바르게 미혹을 따르는 정수(正隨)하는 것을 식(識)이라 이름하고

바르게 깨달음을 따르는 정수(正隨)하여 깨우치는(悟) 것을 지(智, 지혜)라 이름하며,

 

속박되어 있는 것을 이름하여 식(識)이라 하고, (在纏名識)

깨달음의 각(覺)에 있으면 이름하여 지(智, 지혜)라 하는 것이니(在覺名智),

식(識)과 지(智, 지혜)가 본래로는 스스로의 명칭이 없는 것이지만

다만 미혹과 깨달음을 따라 그 명칭을 세운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상견(常見)이나 단견(斷見)을 묶어서 이름지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 지혜(智)와 식(識)은 다만 미혹과 깨달음을 따라 세운 명칭으로,

만약 어디서 비롯되고 어디서 끝나는가를 찾는다면 허공 중에서 자취를 찾는 것과 같으며,

그림자에서 사람을 찾는 것과 같으며,

몸 안에서 ‘나’가 의지하거나 머무는 소재를 찾는 것과 같은 것으로,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의 고신(故新)이나 길고 짧음의 장단(長短)이나 처소(處所)의 상(相)과 같이 끝내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명과 지혜는 시종(始終)이 없는 것이라서, 설령 보리를 얻었을지라도 무명은 멸하지 않는 것이니,

그 이유는 본래 없는 것이라서 다시 멸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또 무명을 따를 때에도 부동지(不動智)는 멸하지 않는 것이니, 이 역시 본래 없는 것이라서 다시 멸함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색(色)이나 소리(聲)나 냄새(香)를 따라 취하는 바의 연이 되는 것을 무명이라 하고,

다만 괴로움(苦)을 알아 발심하는 연(緣)이 되는 것을 지혜라 칭하며,

다만 연(緣)에 따르는 것을 유(有)라 이름한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체(體)가 근본이 없는 체무본(體無本)이라서 마치 빈 골짜기의 메아리와 같은 것이니,  생각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의 세계의 명칭과 색을 든다는 것이란,

세계의 명칭이 금색(金色)인 것은 금(金)의 체(體)가 순백으로 청정해서 오염이 없음을 든 것이니,

법신의 성품이 없는 법신무성(法身無性)이므로 그 체에 오염이 없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마치 세간에서 서쪽의 금이 백색이 되는 것과 같은 것으로,

체(體)가 희고 그 색이 황색인 것은 진(眞)에 응하는 보살이 안으로는 백법(白法, 정법, 불법)에 계합하고

밖으로는 황색의 모습(相)을 나타냄을 밝힌 것이니, 황색이란 진(眞)에 응하는 기(氣)인 것이다.

 

허보(許父)는 “오색(五色) 중에서 황색이 최고이니,

사람의 얼굴이 누런 참외의 색깔과 같으면 안으로는 현명한 행(行)이 있다”고 하였으며,

경전에서도 “진(眞)에 응하는 보살은 모두 진금색(眞金色)이다”라고 하였다.

 
또 금색세계를 밝힌 것은 신심(信心)의 지위에서 비록 자기의 몸과 마음이 순백으로 청정하여서 본래는 무염(無染)의 법신지신(法身智身)이라는 것을 줄 믿긴 하지만, 그 믿음이 생멸하는 유루심(有漏心)이기 때문에 바로 색심(色心)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동방을 첫머리로 삼은 것은, 동방이 초명(初明)으로써 만물이 발생하고 진동하는 첫머리가 되기 때문에 이를 취하여 법을 나타냄으로써 10신의 첫머리에 비유함을 밝힌 것으로,

이는 방위에 있으면서도 방위가 없는 것이라서 다만 그 법을 들어 이(理)에 비유함으로써 그 체용을 나타낸 것이니, 우왕(牛王)과 용왕(龍王) 등으로 부처님의 덕을 비유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묻겠습니다.
동방으로 법을 나타내서 10신(十信)의 첫머리에 비유했다고 하셨지만,

금(金)의 방위는 서방에 있는데, 어찌하여 동방이 금색세계가 되어서 법신이 금색이 되는 것을 나타내고

근본지가 부동지가 된는 것을 드러내신 것입니까?

답한다.
이 물음이 도리를 깊이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마치 경전에서 설한 바와 같이, 신심(信心)으로 태(胎)를 삼고,

10주의 지위에서는 ‘처음으로 불가(佛家)에 태어난다’라고 이름하였으니,

 

이제 동방으로 금색세계를 삼은 것이란, 금(金)이 정월은 포(胞)요, 2월은 태(胎)요, 3월은 형(形)을 이루고,

4월은 사(巳)에서 생기고, 5월은 오(午)에서 기르고, 6월은 미(未)에서 관대(冠帶)하고, 7월은 상(相)이요

8월은 왕(王)임을 밝힌 것인데,

이제 10신(十信)이 마치 태(胎)와 같음을 밝히고 있기 때문에 동방의 금태(金胎)로써 나타낸 것이다.

 

다음 남방과 서방과 북방과 상하사유(上下四維)는 10신(十信)의 마음을 닦아 나아가는 것이 수승(殊勝)하여지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에 사(事)에 의탁해서 이해하기 쉽도록 비유한 것이니,

 

가령 이 품에서 문수사리는 “세존께서 과거에 보살이었을 때, 갖가지 담론(談論)의 방편과 지위 등으로 성취를 얻게 되었는데, 또한 중생들이 이러한 지견(知見)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법을 설한다”고 하였으니,

후대의 배우는 후학자(後學者)들은 잘 살펴야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이 방우(方隅)를 설하여서 법을 나타내었으니,

반드시 알라! 그물을 통해 고기를 잡을 때 고기가 그물은 아니지만, 그물이 없다면 또한 고기를 잡지 못할 것이니,

뜻으로써 생각하면 지극한 이치의 지리(至理)에서 비로소 믿음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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