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 14권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李 通玄 장순용 번역
둘째는 대중이 법을 청한 청법분(請法分)이다.
“그때 모든 보살들이 이렇게 사유했다(時諸菩薩作是思惟)” 이하의 14행 반의 경문은,
그 속에 32 가지의 질문이 있으니, 이를 두 가지의 뜻으로 나누면,
하나, 처음의 4 질문은 4 종류의 불찰(佛刹)을 묻는 것이며,
둘, 대보리(大菩提)를 성취하는 것이니,
시방의 모든 부처님을 세워서 설법을 권한 이하로 28 가지의 질문이 있어서,
보살의 주지(住地)와 부처님의 불안(佛眼)과 불이(佛耳) 등을 묻는 이 28 가지의 질문이 바로 여래출현품(如來出現品)에 이르기까지의 답이 되는 것이니 경문에서 자세히 밝히고 있다.
묻겠습니다.
초회에서 세주(世主)가 물은 것이 이 28 가지와 더불어 그 뜻이 상당히 비슷하여서,
다만 자세하고 간략한 것이 다를 뿐인데, 어째서 이 제 2회에서 다시 이와 같은 질문을 한 것입니까?
답한다.
전회(前會)는 세주(世主)가 물은 것으로, 불과(佛果)를 들어 수행을 권함으로써 부처님께서 얻으신 바를 믿게 하는 것이며,
이 회(會)에서는 스스로의 자신(自身)과 자심(自心)이 부처라는 것을 믿게 함과 아울러
지위에 들어 수행하게 하고자 하는 까닭으로 다시 물은 것이다.
전회(前會)의 지위는 보현 보살이 선정에 들어서 과(果)를 든 것이며,
이 회(會)에서는 문수 보살이 믿음으로 들어가는 입신(入信)의 시초를 일으킴을 밝힌 것이니,
즉 범부가 처음 믿을 때 신심(信心)의 조잡함(麤)을 드러내기 때문에 선정에 들지 않고 설함을 밝힌 것이며,
10주 이후라야 비로소 해당되는 지위의 보살이 선정에 들어가 설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이러한 뜻으로, 비록 전회(前會)의 물음과 의리(義理)가 다소 같기는 하지만 연(緣)에 응하는 차별 때문에 다른 것이니,
전회는 부처님께서 얻은 것을 믿는 것이며, 이 회(會)에서는 스스로 믿음에 들어가서 수행하는 것이다.
고인(古人)이 설하기를, “전회(前會)는 청하는 것이요 이 회(會)에서는 묻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잘못된 뜻으로, 전후 모두가 청(請)하는 것이다.
즉, 청(請)함이 곧 묻는(問) 것이니,
다만 수행을 권하는 권수(勸修)와 스스로 법에 들어가는 입법(入法)하는 것이 조금 다를 뿐이다.
전회(前會)에서는 여래 수행도(修行道)의 원만함과 이미 성도(成道)하신 과거의 모든 부처님들의 행이 원만한 과(果)를 들고 있는 것이며,
이 제2회에서는 시방의 모든 부처님의 근본지를 범부와 성인이 공유하는 과(果)를 드는 것이니,
바로 일체처가 금색세계이며, 일체처가 부동지불의 10지불 등이라고 한 것이 이에 해당되는 것으로,
일체의 모든 부처님과 중생이 부동지(不動智)를 공유하고 있음을 밝힌 것이다.
금색(金色)은 이(理)의 법성신이니, 신심(信心)이 생멸(生滅)하는 까닭에 색(色)을 취해 10색세계(十色世界)로 표현한 것이다.
이 회(會)에서 묻는 4 종류의 4종불찰(四種佛刹)에서
첫째, '부처님께서 머무는 불찰'이란, 바로 일체 모든 부처님과 일체 중생이 다 함께 머물러 공주(共住)하기 때문에, 일체의 범부나 성인의 근본지가 되는 것이니,
이는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자기 마음의 자심(自心)이 부처님께서 머무는 바의 지혜이기 때문에,
일체의 모든 부처님께서 이 믿음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며,
일체의 범부도 이로부터 일어난다는 것을 믿게 하는 것을 들은 것이다.
둘째, 불법성(佛法性, 불법의 성품)을 장엄하는 불찰(莊嚴佛法性佛剎)이란,
바로 10주ㆍ10행ㆍ10회향ㆍ10지ㆍ11지의 지위를 따라 각각 10 분의 부처님 명호가 있는 것이 이에 해당되는 것으로,
이는 자기 마음의 자심근본지(自心根本智)를 말미암아 믿음을 일으켜,
수행으로 나아가서 지위와 행에 따른 모든 바라밀의 장엄하여서 법신의 지신(智身)으로 하여금 성숙하게 하기 위한 것이며,
법신과 지신(智身)으로서 만행을 장엄함으로써, 행(行)에 집착함이 없게 하고자 하기 때문에
그 명칭이 ‘불법의 성품을 장엄하는 불찰(莊嚴佛法性佛剎)’인 것이다.
셋째, '청정한 부처님께서 법을 설한 불찰(淸淨佛所說法佛剎)'이란,
여래께서 정각의 성취를 보여서 법륜을 굴리는 것이 이에 해당되며,
넷째, '체성불(體性佛)의 위덕(威德)의 불찰(體性佛威德佛剎)'이란,
신통으로 응현(應現)하여서 근기에 따라 출세(出世)하는 것이 이에 해당되는 것이다.
明後二佛剎從前二佛剎起信修行成熟故得。
나중의 두 불찰(淸淨佛所說法佛剎, 體性佛威德佛剎)은
앞의 두 불찰(부처님께서 머무는 불찰, 莊嚴佛法性佛剎)로부터 믿음을 일으켜서 수행으로 성숙하게 하기 때문에 얻어진 것임을 밝힌다.
이러한 때문에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다 함께 이와 같은 일도(一道)로써 출생하게 된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이다.
반드시 이렇게 알고서, 반드시 이렇게 신해(信解)해서, 신해(信解)의 성취를 얻으면,
한결같이 모든 부처님의 믿는 바와 같아지기 때문에, 이러한 믿음을 얻는 자는 현수품(賢首品)에서 설하는 바와 같이,
손으로 삼천대천세계를 받들고(手擎三千大千世界), 1 겁동안 허공 중에 머무르는(住於空中經過一劫) 것보다 뛰어난 것이니, 이는 그 믿기 어려운 난신(難信)을 밝힌 것이며,
또 시방세계 미진수의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면서 1겁을 지내는 것(供養十方世界塵數諸佛)보다 뛰어나나니, 공덕이 이와 같은 신심보다는 못하기 때문이다.
이하에서 28 가지 질문은 경전에서 모두 자세히 설하고 있으니,
그 뜻이 은밀해서 밝히기 어려운 것은 풀이하고, 뜻이 뚜렷한 것은 경문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32 가지의 질문 중에서 10통(十通)과 10정(十頂)을 묻고 있는데,
경문에서는 다만 10통(十通)과 10인(十忍)만 있을 뿐, 정(頂)의 명칭은 나타내지 않고 있으니,
10인(十忍)은 남는 것이며 10정(十頂)은 없는 것이다.
“원하옵건대 부처님이신 세존께서도 모든 보살들을 위해 설하셔서(願佛世尊爲諸菩薩,亦爲我說)”의 두 구절은
결론지어 청하는 청결(結請)이며,
“이로부터” 이하는 여래께서 신력(神力)으로 법을 들어서 답을 나타낸 것이다.
여래명호품(如來名號品)①에서의 세 번째,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하는 수문석의(隨文釋義)에서 그 뜻을 둘로 나눈 것에서의 두 번째의, 해당되는 품을 나누어서 과품(科品)한 것에서 다시 4 가지로 장과(長科)한 것에서의 세 번째
“이때 세존게서는 모든 보살들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바를 아시고(爾時 世尊 知諸菩薩心之所念)” 이하 41행의 경문은 여래의 신통으로 법을 나타냄을 밝힌 여래신통현법분(如來神通現法分)으로,
이 가운데에서 그 뜻을 둘로 나누겠으니,
하나는, 유(類)를 따라 법을 나타내는 수류현법(隨類現法)을 밝힌 것이며,
둘은, 처음의 신심(約初信心)을 밝힌 것이다.
첫 번째 유(類)를 따라 법을 나타내는 수류현법(隨類現法)이란 것은,
5위 가운데에서의 보살의 유(類)를 따라 각각 열 가지 부처님의 지위를 나타낸 것이니,
10주ㆍ10행ㆍ10회향ㆍ10지ㆍ11지 중에 각각의 지위에 따른 불과의 명호가 있는 것이 이에 해당되며,
또 일체의 국찰(國刹)과 일체 중생의 유(類)를 따라서 저마다 명호가 같이 않음을 나타낸 것이니,
아래에서 문수사리 보살이 설한 부처님의 명호가 이에 해당되는 것이다.
두 번째 처음의 신심(約初信心)을 밝히는 것이란, 바로 이 해당되는 1품과 1부(部)를 통틀어 모두 신심이 되는 것으로,
총체적으로는 5위 중의 인과를 믿어서 마음에 걸림이 없어야 비로소 행할 수 있는 것이니,
어떤 교설(教說)에서는 비유하기를 “어떤 사람이 5백 유순의 험한 길을 지나 가고자 할 때에는 먼저 그 길의 막히고 통하는 것을 안 뒤에야 가야 하는 것과 같다”고 했는데,
이는 10신(十信)의 보살이 먼저 신심(信心)에서 5위를 닦아 나아감에 있어서 막히고 통함을 알아서 미리 원행(願行)을 대비하는 것과 같음을 비유한 것이다.
그리하여 자기 마음의 분별하는 성품인 자심분별성(自心分別性)이 본래 일체 모든 부처님의 부동지(不動智)의 체(體)하는 것을 믿음으로써 삿된 견해로 다른 경계를 취하게 되는 것을 막는 것이다.
즉 지위에 따른 망식(妄識)이 요동하여 참다운 지혜를 가로막기 때문에 선(禪)바라밀로 방비하고,
지위에 따른 제8주와 제8행과 제8회향과 제8지에서는 지혜가 두드러지면서 공적(空寂)에 걸리어서 진(眞)의 작위 없는 대자비를 가로막기 때문에 140의 대원(大願)으로 방비하고,
생사를 즐겨서 참다운 지혜를 가로막기 때문에 4념처관(四念處觀) 등의 37조보리분법(助菩提分法)으로 방비하는 것이다.
아울러 열 개의 4제관(四諦觀)과 열 개의 12연생관(十二緣生觀)으로 막고,
10바라밀로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을 충분히 넓혀가지 못할까 염려한 까닭에 4섭법(以四攝)과 4무량법(四無量法)으로 막고,
스스로 즐거움의 과(果)를 구하느라, 중생을 교화함의 더욱 넓어지지 못하기 때문에 10회향(十迴向)을 일으키고,
아울러 대원(大願)과 대자대비(大慈大悲)를 덧붙여 일체의 악도(惡道)와 지옥(地獄)과 인천(人天)을 버리지 않고 두루 그곳에 태어남으로써, 자신의 즐거움으로 보리심을 어겨서서 얻는 바가 있게 되는 것을 방비한다.
이러한 뜻으로, 10신(十信)의 마음이 모두 5위(五位)에 통하게 되어서 모든 미혹이 믿음을 이루게 되는 것이니,
만약 스스로의 믿음이 사무친다면, 그 추구하는 것마다 요달하지 못함이 없겠지만,
만약 의심을 없애지 못한다면, 어찌 믿음을 이룰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 여래명호품(如來名號品)품에서는 불과문(佛果門)을 들고,
현수품(賢首品)에 이르러서는 부처님의 불신통(佛神通)과 부처님의 소행인 불소행(佛所行)의 업행(業行)을 들어서,
처음 믿는 초신심자(初信心者)로 하여금 믿음이 사무치게 하는 까닭에 비로소 신심(信心)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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