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經卷第十七 梵行品第十七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 三藏沙門(삼장사문) 實叉難陀 譯(실차난타 역)
17. 초발심공덕품(初發心功德品) ㅡ 5
ㅡ일체업망(一切業網)
佛子(불자) 復置此喩(부치차유) 불자여, 이러한 앞의 비유는 치차(置此)하여 그만두고,
假使有人(가사유인) 於一念頃(어일념경) 能知東方無數世界(능지동방부수세계)
所有衆生(소유중생) 種種差別業(종종차별업) 廣說乃至(광설내치) 此十方衆生(차시방중생)
種種差別業(종종차별업) 可知邊際(가지변제)
菩薩(보살) 初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초발아뇩다라삼막삼보리심)
善根邊際(선근변제) 不可得知(불가득지)
가령 어떤 사람이 일념(一念, 한 생각) 동안에 동방의 무수한 세계에 있는 중생들의
갖가지로 차별한 종종차별업(種種差別業)을 능히 아는 것과 함께, 더욱 더 나아가서
열 번째의 사람에 이르기까지 시방 중생들의 종종차별업(種種差別業)을 아는 것에는
변제(邊際, 끝)이 있을 수 있겠지만,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초발(初發)한 선근의 변제(邊際, 끝)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ㅡ업력난사의(業力難思議) 대비무장애(大悲無障碍).
그야말로 업의 힘은 참으로 불가사의 한 것입니다. 과거 수 많은 생을 거듭해 오면서 무슨 업을 익혔는지는 알 수가 없는 것으로, 부모도 자기가 낳은 자식이 어떤 업을 가지고 태어났는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 한 사람 속에는 무수한 억겁의 삶이 다 녹아 있는,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아닙니까? 천문학, 전자산업, 물리학이 발달해서 이 화엄경을 아주 이해하기 쉽도록 받혀주고 또 “화엄과 물리학”이라는 책도 많지만, 업을 안다는 것이 정말 어려운 것입니다.
무수한 억겁의 삶이 모두 녹아있는 한 표현이 업력난사의(業力難思議)이고, 그래서 내 마음 나도 모르는 것입이고,
내가 무슨 업을 짓고, 과거 수많은 생을 살아왔는지, 내 속에서 업의 언제 어떻게 튀어나올지 사실 모르는 겁니다.
화엄경 공부하는 업을 쌓아서, 그것이 아뢰아식(무몰식)이라는 없어지지 않는 장식 속에 갈무리 된 업의 인자가 기회가 오면 자기도 모르게 튀어 나올 수 있게 하여야 합니다.ㅡ무비스님
何以故(하이고) 佛子菩薩(불자보살) 不齊限(불제한) 但爲知爾所衆生業故(단위지이소중생업고)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발아뇩다라삼막삼보리심) 欲悉知(욕실지)
三世一切衆生業(삼세일체중생업) 乃至欲悉知(내지욕실지) 一切業網故(일체업망고)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발아뇩다라삼막삼보리심)
왜 그러한 것인가? 불자여, 보살이 다만 중생들의 종종차별업을 알기 위한 것으로 제한(齊限)하여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낸 것이 아니라,
삼세의 모든 중생들의 업을 모두 알고자 하며, 또한 일체의 업망(業網, 업의 그물)에 이르기까지를
모두 알고자하는 연고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發)한 때문입니다.
ㅡ업망(業網)“업”, 내 업과 네 업이 상호연관성을 가지고 있어서, 내가 무엇인가를 하면 다른 이도 알아차리고, 또 그 사람의 업이 튀어나오면 나도 아는, 그것이 상호연관성, 법계연기 성, 즉 법계의 연기로 짜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저 앞산과 뒷산이 나하고 아무 관계없이 존재하는 것 같지만, 다 연관이 되어있고 관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산에 가서 나무 한 그루를 새로 심는 것과, 거기에 있던 나무를 잘라버리고 뽑아버리는 것이 그 산 전체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칩니다.
가까이 있는 것은 크게 영향을 끼치고, 멀리 있는 것은 작게 영향을 끼치고 ‘전부 그물과 같이 우주법계 전체가 연관관계를 맺고 있다고 보는 것이 화엄경의 법계연기설이고, 그래서 그물 망(網)자를 자주 쓰는 것입니다. ㅡ무비스님
ㅡ그물 網(망)은 법계연기 사상을 표현하는 내용으로,
법계연기는 우주의 모든 현상이 함께 의존하며 발생하여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면서 끊임없이 교류하면서 융합한다고 보는,
일대연기(一大緣起)로 보는 것으로, 법계무진연기(法界無盡緣起)·법계무애연기(法界無碍緣起)라고도 하며, 이는 중국 및 우리 나라의 화엄종(華嚴宗)을 중심으로 성립되고 발전되었다.
법계의 우주만유는 천차만별이지만 피차가 서로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며, 어느 하나도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만유를 모두 동일한 수평선 위에 두고 볼 때에는 중생과 불(佛), 번뇌와 보리(苦提), 생사와 열반(涅槃) 등과 같이 대립적으로 생각하던 것들 모두가 실제로는 모두 동등한 것이며, 번뇌가 곧 보리요, 생사가 곧 열반이라서 만유는 원융무애(圓融無碍)한 것으로 있게 된다.
일즉일체(一卽一切)를 일체즉일(一切卽一)이라 하고, 하나의 사물은 상식적으로 나타나는 하나가 아니라, 그대로가 전 우주라는 뜻에서 한 사물을 연기의 법으로 삼는 것이 우주성립의 체(體)요, 힘인 동시에 그 사물은 전 우주로 말미암아 성립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같이 우주의 만물은 각각의 하나와 일체가 서로 연유(緣由)하여 있는 중중무진(重重無盡, 끝없이 이어짐)한 관계이므로 이것을 법계무진연기라고 한다. 이 사상은 불교연기론의 극치로서 법상종(法相宗)의 아뢰야식연기(阿賴耶識緣起)와 법성종(法性宗)의 진여연기(眞如緣起) 등과 같이, 우주연기의 주체를 어떤 한 사물이나 이체(理體)에 국한하지 않고 그 하나하나를 만유의 합당한 모습으로 말하는 것이 특징이다.ㅡ다른 블로그 참고.
ㅡ번뇌차별(煩惱差別)
佛子(불자) 復置此喩(부치차유) 불자여, 이러한 앞의 비유는 치차(置此)하여 두고,
假使有人(가사유인) 於一念頃(어일념경) 能知東方無數世界(능지동방무수세계)
所有衆生(소유중생) 種種煩惱(종종번뇌) 念念如是(염념여시) 盡阿僧祗劫(진아승기겁)
此諸煩惱種種差別(차제번뇌종종차별) 無有能得知其邊際(무유능득지기변제)
有第二人(유제이인) 於一念頃(어일념경) 能知前人(능지전인) 阿僧祗劫(아승기겁)
所知衆生(소지중생) 煩惱差別(번뇌차별) 如是復盡阿僧祗劫(여시복진아승기겁)
次第廣說(차제광설) 乃至第十(내지제일) 南西北方(남서북방)
四維上下(사유상사) 亦復如是(역부여시)
가령 어떤 사람이 일념(一念, 한 생각) 동안에 동방의 무수한 세계에 있는 중생들의
갖가지의 종종번뇌(種種煩惱)를 알고 하되,
그 모든 번뇌가 갖가지로 종종차별(種種差別)함의 변제(邊際, 끝)를 능히 알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이나,
염념(念念, 매 순간)마다 그러한 것을 알아 내기를 아승기 겁이 다하도록 하며,
또한 두 번째의 사람이 일념(一念, 한 생각) 동안에 앞의 사람이 아승기 겁 동안에 알게 된 바의
중생의 번뇌가 차별한 것을 능히 알며, 다시 중생들의 종종번뇌를 더욱 더 알아내기를 아승기 겁이 다하도록 하며,
이와 같이 차례차례로 열 번째의 사람에 이르기 까지 알아내며,
남방ㆍ서방ㆍ북방과 네 간방의 사유(四維)와 상방ㆍ하방에서도 이와 같이 알아 내나니,
佛子(불자) 此十方衆生(차시방중생) 煩惱差別(번뇌차별) 可知邊際(가지변제)
菩薩(보살) 初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초발아뇩다라삼막삼보리심)
善根邊際(선근변제) 不可得知(불가득지)
불자여, 이러한 시방의 중생들 번뇌가 차별한 것은 그 변제(邊際, 끝)를 알 수가 있겠지만,
보살이 처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초발(初發)한 선근은 그 변제(邊際, 끝)를 알지 못합니다.
何以故(하이고) 佛子(불자) 菩薩(보살) 不齊限(불제한) 但爲知爾(단위지이)
所世界衆生煩惱故(소세계중생번뇌고)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발아뇩다라삼막삼보리심)
爲盡知(위진지) 一切世界所有衆生(일체세계소유중생) 煩惱差別故(번뇌차별고)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발아뇩다라삼막삼보리심)
왜 그러한 것인가? 불자여, 보살은 다만 세계 중생들의 번뇌를 알기 위한 것으로 제한하여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것이 아니라,
일체 세계에 있는 모든 중생들의 번뇌가 차별한 것을 모두 알고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發)한 때문이니,
ㅡ번뇌(煩惱, kilesa)란 마음의 여러 작용 중 그 성질이 부적정(不寂靜)한 것들을 말한다.
즉, 적정(寂靜) 즉 열반, 출세간, 참된 행복과는 계합할 수 없는 부정적인(악 또는 유부무기의) 마음작용들을 뜻하는데, 보다 구체적으로는, 탐욕 · 분노 · 무지와 같은 부조화로운 마음작용들로서 유익하지 않은 마음작용들을 말한다. 일상적 낱말로는 번뇌란 네거티브(Negative), 네거티브한 마음, 나쁜 마음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적극적인 대승불교의 관점에서는 번뇌가 그대로 깨달음인 번죄즉보리(煩惱卽菩提)이며,
생사의 세계가 그 자체로서 열반인 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이라고 본다.
즉 미혹에만 얽매인 중생에게는 미망(迷妄)의 근원인 번뇌와, 열반에 이르는 깨달음이 상대적이지만,
깨달은 눈으로 보면 번뇌와 깨달음이 그대로 하나이어서 차별이 없다는 것이다.
所謂欲盡知(소위욕진지) 輕煩惱(경번뇌) 重煩惱(중번뇌)
말하자면, 가벼운 경번뇌(輕煩惱)ㆍ무거운 중번뇌(重煩惱)와
眠煩惱(면번뇌) 起煩惱(기번뇌)
잠재하여 있는 번뇌의 면수뇌(眠煩惱, 근본번뇌)와
일어나는 기번뇌(起煩惱, 수번뇌 隨煩惱)와 함께
一一衆生(일체중생) 無量煩惱(무량번뇌) 種種差別(종종차별)
낱낱의 중생들의 무량한 번뇌들이 갖가지로 차별한 것을 모두 모두 알고자 하는 까닭이며,
ㅡ근본번뇌(根本煩惱, mūla-kleśa)는 탐(貪) · 진(瞋) · 만(慢) · 무명(無明) · 견(見) · 의(疑)의 6가지 번뇌성의 마음작용들을 말하며, 이들 중 무명(無明)은 치(癡)라고도 하며, 여기서 견(見)은 악견(惡見) 즉 부정견(不正見)을 뜻한다. 즉 유신견 · 변집견 · 사견 · 견취 · 계금취의 5견(五見)을 말한다.
ㅡ수번뇌(隨煩惱)는 수혹(隨惑)이라고도 하며, 세 가지의 뜻이 있다.
첫 번째는 근본번뇌(根本煩惱)를 따라 일어난 2차적인 번뇌라는 뜻으로, 이 경우의 수번뇌를 근본번뇌와 구분하여 지말번뇌(枝末煩惱) 또는 지말혹(枝末惑)이라고도 하며,
두 번째는 마음(心, citta)를 따라 일어나서 유정을 괴롭고 혼란스럽게하는 마음작용, 즉 근본번뇌라는 뜻이며,
세 번째는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의미를 통칭하는 것으로, 이 경우의 수번뇌는 곧 일체(一切)의 번뇌 즉 모든 번뇌를 말하며, 번뇌의 여러 다른 이름 가운데 하나이다.
種種覺觀(종종각관) 淨治一切(정치일체) 諸雜染故(제잡염고)
갖가지로 다양한 깨달음의 시각인 종종각관(種種覺觀)으로 관찰하여
일체의 모든 물들어 잡염(雜染)된 것들을 깨끗하게 다스려서 정치(淨治)하고자 하는 까닭이며,
ㅡ각관(覺觀), 거친 마음으로 처음 생각하는 것을 각(覺)이라 하고,
세밀한 마음으로 분별하는 것을 관(觀)이라 한다.
각관(覺觀)은 심사(尋伺)이며,
심(尋)은 찾아 헤매는 마음과 사물에 대한 개략적인 사고 작용이고,
사(伺)는 그보다 세심한 분별 작용을 가리키는 것으로, 번뇌에 수반되는 수번뇌(隨煩惱)의 일종으로 분류된다.
선정의 정(定)도 무의식의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생각하고 살피는 작용이 있다.
그러나 심사(尋伺)와 다른 점은 선정은 '바르게' 생각하고 살피는 것이고
심사(尋伺)는 바르지 못한 것이며,
이 각관(覺觀), 즉 심사(尋伺)를 버려야 2선으로 들어갈 수 있다.
ㅡ심(尋)과 사(伺)는 부정심소(不定心所)이다. 심구의 심(尋, vitarka)의 심소는 대상에 대하여 그 뜻과 이치를 대강 심구(尋求)하는 것이다.
사찰(伺, vicāra)의 심소는 심구에 의해 대강 파악된 대상을 세밀하게 분별해서 사찰(伺察)한다.
이로써 몸과 마음의 평안이나 불안이 있게 되므로 부정심소라 하는 것이다.
欲盡知(욕진지) 依無明煩惱(의무명번뇌) 愛相應煩惱(애상응번뇌)
斷一切諸有趣煩惱結故(단일체제유취번뇌결)
또한 무명에 의지한 번뇌인 의무명번뇌(依無明煩惱)와
애욕에 상응하는 애상응번뇌(愛相應煩惱)를 모두 알아서
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도ㆍ천도ㆍ아수라 갈래인 제유(諸有, 6도)의
취번뇌(趣煩惱)의 결(結, 결박)을 끊어 내고자 하는 까닭이며,
欲盡知(욕진지) 貪分煩惱(탐분번뇌) 瞋分煩惱(진분번뇌)
癡分煩惱(치분번뇌) 等分煩惱(등분번뇌) 斷一切煩惱根本故(단일체번뇌근본고)
또 탐(貪)하는 성품의 탐분번뇌(貪分煩惱)와 성내는 성품의 진분번뇌(瞋分煩惱)와
어리석은 성품의 치분번뇌(癡分煩惱)와 평등한 성품의 등분번뇌(等分煩惱)를 남김없이 모두 알아서
일체 번뇌의 근본을 끊고자 하는 까닭이며,
ㅡ탐(貪) · 진(瞋) · 치(癡) · 견(見) · 질(嫉) · 간(慳) 등의 번뇌는 그 각자의 개별적인 본질적인 성질인 자성(自性)과 작용하는 한편, 이들은 또한 번뇌 일반으로서의 공통적인 성질과 작용의 공상(共相)을 가지는 것으로,
부적정한 영향력(行), 부적정한 업이 몸과 마음에 상속하여 전전(展轉)하게 하는 것이다.
보다 정확하게는, '몸과 마음의 상속인 신심상속(身心相續)', 즉 5온의 상속 시에 부적정이 인과의 법칙에 따라 여러 가지 양태로 전개되어 함께 나아 가는 것이다.
欲悉知(욕실지) 我煩惱(아번뇌) 我所煩惱(아소번뇌) 我慢煩惱(아만번뇌)
覺悟一切煩惱(각오일체번뇌) 盡無餘故(진무여고)
또한 '나'라는 생각으로 인한 아번뇌(我煩惱)와 내 것이라는 것으로 인한 아소번뇌(我所煩惱)와
아만으로 인한 아만번뇌(我慢煩惱)를 모두 알아서,
일체의 번뇌를 남김없이 모두 깨닫자 하는 까닭이며,
欲悉知(욕실지) 從顚倒分別(종전도분별) 生根本煩惱(생근본번뇌) 隨煩惱(수번뇌)
또한 뒤바뀌게 분별하는 전도분별(顚倒分別)로부터 근본번뇌(根本煩惱)와 수번뇌(隨煩惱)가 생기고,
ㅡ근본번뇌(根本煩惱)는 탐(貪) · 진(瞋) · 만(慢) · 무명(無明) · 견(見) · 의(疑)의 6가지 번뇌성의 마음작용으로, 모든 번뇌의 근본이 된다는 뜻에서 수면(隨眠)이라고 한다.
근본번뇌를 따라서 2차적으로 일어나는 번뇌를 수번뇌(隨煩惱)라 하며,
예를 들면, 질(嫉, 시기, 질투)은 근본번뇌 가운데 진(瞋, 미워함, 손상시키고 싶어함, 성냄)으로부터 생겨나는 수번뇌인 것이다
因身見(인신견) 生六十二見(생육십이견) 調伏一切煩惱故(조복일체번뇌고)
5온의 화합체를 실재하는 '나' 또는 '나의 것'이라고 집착하는 소견의 신견(身見)으로 인한
62견(六十二見, 잘못 된 사견 邪見)이 생기는 것을 모두 알아서 일체의 모든 번뇌를 조복하고자 하는 까닭이며,
欲悉知 蓋煩惱(개번뇌) 障煩惱(장번뇌) 發大悲救護心(발대비구호심)
斷一切煩惱網(단일체번뇌망) 令一切智性淸淨故(영일체지성청정고)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발아뇩다라삼막삼보리심)
진실한 참된 뜻을 가려서 깨닫지 못하게 덮는 개번뇌(蓋煩惱)와
선한 마음을 막아서 장애하는 장번뇌(障煩惱)를 모두 알아서 대자비로 구호심(救護心)을 발하여서
일체 번뇌망(煩惱網, 번뇌의 그물)을 끊어내고,
일체지(一切智)의 성품을 청정하게 하고자 하는 까닭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發)하는 것입니다.
ㅡ범부(凡夫)중생은 천지우주가 무량(無量)한 광명이 충만한 부처의 한 덩어리요,
청정미묘(淸淨微妙)한 하나의 생명체인 불성(佛性)을 보지 못하고,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고 어지럽히고 미혹(迷惑)하게 하여 더럽히는 것을 번뇌(煩惱)라 하며,
또한 천지우주가 바로 부처인 실상(實相)을 바로 보지 못하고 진리에 어운 것을 무명(無明)이라 하고
실상을 바로 보지 못하는 미망(迷妄)으로 우리의 본래 청정한 마음을 의혹(疑惑)하여서 혹(惑)이라 합니다.
치심(痴心)은 나와 너를 둘로 분별라고, 한계가 있고, 옳다 그르다 시비하는 어리석은 마음입니다.
또한 치심이 있기 때문에 탐심(貪心)과 진심(瞋心)을 내는 이 세 가지 삼독심(三毒心)은 서로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탐·진·치 삼독심을 간단히 근본번뇌라 하고, 열가지번뇌의 십혹(十惑)이 근본번뇌인 본혹(本惑)이라합니다.
①탐심, 탐욕심. ②진심(嗔心). ③치심(癡心), 어리석은 마음,
④만심(慢心 아만심 我慢心), 나라는 마음으로 자기가 낫다거나 남보다 조금 수승한 일이 생기면 내는 아만심을 냅니다.
⑤ 의심(疑心), ⑥신견(身見), 자기에 따른 '나'라는 집착을 버리기가 제일 어렵고 일체 번뇌는 ‘나’라는 고집, 아상(我相)의 두 가지 아견(我見)과 아소견(我所見) 때문에 번뇌가 일어납니다.
⑦변견(邊見), 내가 있다고 생각할 때에 나라는 존재가 항항 있기를 원하는 상견(常見)이나,‘내 몸도 마음도 금생에 다 끝나버리는 것이지 전생도 없고 내생도 없이 단절된다고 생각하는 단견(斷見)가 있는 것이며,
⑧ 사견(邪見), 착한 일을 하면 반드시 그 과보로써 안락과 행복이 오고 악을 행하면 또 그 과보로 반드시 불행이 온다는 인과(因果)의 법칙을 무시하는 견해입니다.
⑨견취견(見取見), 절대적인 지혜가 아닌 견해를 절대적으로 옳다고 고집하는 견해입니다.
⑩계금취견(戒禁取見). 외도(外道)들이 고집하며 지키는 것으로, 참다운 도의 원인이 아닌데도 참다운 도나 행복의 원인이라고 생각하여서 고집하고 그러한 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화엄경(華嚴經)'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화엄경(華嚴經) 제17권 17. 초발심공덕품(初發心功德品) 7 (0) | 2026.05.06 |
|---|---|
| 화엄경(華嚴經) 제17권 17. 초발심공덕품(初發心功德品) 6 (0) | 2026.05.05 |
| 이통현(李通玄)장자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14권 4. 여래명호품(如來名號品)① (0) | 2026.05.03 |
| 화엄경(華嚴經) 제17권 17. 초발심공덕품(初發心功德品) 4 (0) | 2026.05.03 |
| 화엄경(華嚴經) 제17권 17. 초발심공덕품(初發心功德品) 3 (0) | 2026.05.0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