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 14권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李 通玄 장순용 번역
제2회(會)의 여섯 품 경전은 보살의 신심(信心)을 밝힌 문으로,
이 하나의 회상 속에는 스스로 서분(序分)과 정설분(正說分)과 유통분(流通分)이 있다.
제12권 초의 “이때” 이하 4행 반의 경문은 서분(序分)이며,
그 이하의 현수품(賢首品)까지는 정설분(正說分)이며,
현수품 말미의 3행 반의 경문은 유통분(流通分)이다.
7) 여래명호품(如來名號品)①
이 여래명호품에서부터 현수품(賢首品)에 이르기까지는 제3 장과문(長科文) 가운데 과(果)로써 믿음을 성취하여,
자기 마음의 자기심(自己心)이 부처라는 것을 믿는 수인계과생해분(修因契果生解分)이니, 이 한 단락에서 대략 6법(六法)을 통해 자기 마음의 자심불과(自心佛果)를 성취하여 믿는 자로 하여금 불과(佛果)에 들게 하기 때문이다.
첫째, 불명호품(佛名號品)은 신심(信心) 있는 자로 하여금 부처님의 명호가 일체 세간의 명칭에 두루함을 믿게 하여서 명칭의 성품이 여읜 것을 알게 하는 것이며,
둘째, 사성제품(四聖諦品)은 신심이 있는 자로 하여금 스스로 일체 세간의 고제(苦諦)가 바로 성제(聖諦)라는 것을 믿게 하여서 따로 찾지 않게 하는 것이며,
셋째 광명각품(光明覺品)은 신심이 있는 자로 하여금 스스로 자기 마음의 광명으로 일체 세간의 다함이 무진(無盡)의 대천세계가 모두 부처님의 경계로서, 자기와 동등하다는 것을 각조(覺照)하게 하는 것이니,
즉 마음이 광명을 따라 하나하나를 비춤으로써 마음과 경계가 하나로 합쳐져서 내외(內外)의 견(見)이 없어지는 것이다.
처음에는 삼천대천 세계를 끝내고, 다음에는 동방에서 시작하여 광명이 동방의 1삼천대천세계에 이르고 100삼천대천세계를 비추니, 이와 같이 시방으로 10중(十重)을 두 배씩 두루 돌면서, 시방을 원만히 비추면 몸과 마음의 동일한 성품이 걸림없이 두루하여 부처님의 경계와 같아지는 것이다.
하나하나 뜻을 지어 이와 같이 관찰한 뒤에, 작위가 없는 무작방편(無作方便)의 선정으로 인(印)을 쳐서 10주의 초심에 들어가 여래 지혜의 집안에 태어나서, 여래 지혜법왕의 참된 자식이 되는 것이 광명이 비추는 바와 일여(一如, 한결같음)한 것이니, 경전에서 자세히 밝히고 있다.
부처님의 광명을 지을 수 있으면서도 스스로 그러한 분수가 없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며,
반드시 자기 마음의 광명이 부처님의 광명과 같다는 것으로, 그 마음을 깨달아 열어서 법계를 원만히 비추어야 하는 것이다.
넷째, 문명품(問明品)은 신심이 있는 자로 하여금 믿고 있는 법문을 믿게 하는 것이며,
다섯째, 정행품(淨行品)은 보살이 초발심할 때에는 모든 대원(大願)을 발하는 것으로서 으뜸을 삼는다는 것을 신심이 있는 자에게 믿게 하는 것이며, 아울러 신심이 있는 자로 하여금 비롯함이 없는 망념을 문득 돌이켜서 지해(智海)의 생멸이 없는 성품의 무생멸성(無生滅性)을 성취하게 하는 것이다.
여섯째, 현수품(賢首品)은 불신력(佛神力)의 신통조화가 무변(無邊)하여서 대자재(大自在)를 얻는 것과
신심의 복(福)을 신심이 있는 자에게 믿게 하는 것이니,
이러한 6법(六法)을 믿는 것을 현수(賢首)라 칭하고,
이러한 6법(六法)으로서 관행(觀行)이 상응하는 것을 신심(信心)이라 칭하는 것이니,
이는 부동지불(不動智佛) 등의 10지(十智) 여래가 모두 자기 마음의 자심과(自心果)이니,
부동지불(不動智佛)로서 체(體)를 삼고, 나머지의 지혜로 용(用)을 삼는 것이니, 아래의 경문에서 밝힌다.
문수사리 보살과 각수(覺首) 보살과 목수(目首) 보살 등의 10수(十首) 보살들은 신심(信心)을 수행하는 자의 몸(身)이며,
이 품에서부터 현수품(賢首品)에 이르기까지의 6 품 경전은 이 일부의 경전을 장과(長科)하는 것에서의 세 번째인 과(果)로써 믿음을 이루는 이과성신문(以果成信門)이니,
즉 초회(初會)는 불과(佛果)를 들어 수행을 권함으로써 모든 부처님의 얻은 바를 믿게 하는 것이며,
제2회는 과(果)로 믿음을 성취함으로써 자기 마음이 부처로서 과불(果佛)과 다르지 않음을 믿게 하는 것이니, 본문에 가서 밝히겠다.
앞에서는 이미 성취한 불과로 수행을 권하였지만 여기에서는 불명호(佛名號)의 과(果)로서 수행을 권하고 있으니,
시방 세계의 어느 하나의 명칭도 부처님의 불명(佛名)이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은, 명칭의 체성이 스스로 해탈한 때문이나, 다만 중생이 듣는 바에 따라 같지 않을 뿐인 것이다.
이는 부처님의 명호가 두루함을 밝힌 것이니, 곧 일체의 명칭에 집착할 바가 없음을 밝힌 것이다.
이 여래명호품(如來名號品)① 품을 해석하는 데 3 가지의 삼문(三門)을 지을 것이니,
첫째는 품의 온 뜻을 해석하는 석품내의(釋品來意)이며,
둘째는 품의 명목을 해석하는 석품명목(釋品名目)이며,
셋째는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하는 수문석의(隨文釋意)이다.
첫째, 품의 온 뜻을 해석하는 석품내의(釋品來意)를 설명한다면,
앞의 초회에서는 단지 여래의 등정각(等正覺)을 이룬 등정각신(等正覺身)과 지혜로서 중생을 교화하는 것만을 밝혔을 뿐, 여래의 명호가 중생을 교화하는 광의(廣意)와 협의(狹意)라는 것을 밝히지 못하였으니,
이제 이 제2회 보광명전에서 비로소 불과명호(佛果名號)로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을 밝히기 때문에 이 품이 온 것이며,
또 불과명(佛果名)을 들어서 믿음과 이해를 내게 하는 까닭에 이 품이 온 것이다.
앞의 회상에서는 몸과 지혜의 지신(身智)이 두루함을 밝혓지만
이 회상에서는 명칭(名)과 몸(身)과 지혜(智)가 모두 함께 두루함을 밝히고 있으며,
초회에서는 세주(世主)가 물었으나 그 답이 없었지만,
이 품에서는 앞의 질문에 답하여서 후에에 믿는 자가 신심(信心)을 내게 함으로써,
부처님의 명칭(名)과 몸(身)과 지혜(智)가 법계에 두루하면서도 그 음기(蔭機, 그늘)에 응하여 사물을 이롭게 하고
세속을 비추어 미혹을 파하기 때문에 보광명전이라 칭하는 것이니,
덕(德)으로서 전(殿)을 이루고
전(殿)으로서 덕(德)을 밝히기 때문에 이 품이 온 것이다.
둘째, 품의 명목을 해석한다는 석품명목(釋品名目)을 설명한다면,
이 부처님의 명호는 대략 5 가지의 오연(五緣)으로서 부처님의 명호를 이루고 있으니,
하나는, 법계 자체의 근본지(根本智)의 연(緣)으로 부처님의 명호를 이룬 것이며,
둘은, 여래께서 정각의 성취를 보이는 스스로의 덕연(德緣)을 자음으로써 부처님의 명호를 이룬 것이며,
셋은, 여래께서 중생을 이롭게 하는 방편연(方便緣)을 밝힌 것이니, 지위의 닦아 나아감을 근거로 하여 부처님의 명호를 이룬 것이며,
넷은, 여래께서 일체 중생이 근기를 따라 즐기는 바의 수근소락연(隨根所樂緣)을 밝힘으로써 부처님의 명호를 이룬 것이며,
다섯은, 법계의 체용이 평등한 법계체용평등연(法界體用平等緣)을 밝혀서 일체제법을 부처님의 명호라 칭한 것이다.
'화엄경(華嚴經)'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화엄경(華嚴經) 제17권 16. 범행품(梵行品) 3 (0) | 2026.04.29 |
|---|---|
| 화엄경(華嚴經) 제17권 16. 범행품(梵行品) 2 (0) | 2026.04.28 |
| 화엄경(華嚴經) 제17권 16. 범행품(梵行品) 1 (0) | 2026.04.27 |
| 화엄경(華嚴經) 제16권 15. 십주품(十住品) 13 (1) | 2026.04.26 |
| 화엄경(華嚴經) 제16권 15. 십주품(十住品) 14 (0) | 2026.04.2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