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經卷第十六 十住品第十五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 三藏沙門(삼장사문) 實叉難陀 譯(실차난타 역)
15. 십주품(十住品) ㅡ 14
ㅡ제9주(第九住) 법왕자주(法王子住)
ㅡ법왕자주는 법을 설하는 데 자재롭지 못한 장애를 대치해서 자재롭게 하는 것이다.
선재동자가 승열(勝熱) 바라문을 친견함으로써 도산(刀山)에 올라가서 화갱(火坑, 불 구덩이)에 들어가 고행(苦行)을 행할 때, 천(天)과 용과 신과 인비인(人非人) 등의 오는 자에 따라 이익을 얻게 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第九菩薩王子住(제구보상왕자주) 能見衆生受生別(능견중생수생별)
煩惱現習靡不知(번뇌현습미불지) 所行方便皆善了(소행방편개선요)
아홉 번째의 왕자주(王子住) 보살은 능해 중생들이 생을 받아 태어나는 수생(受生)의 차별을 보고
번뇌와 현재의 습기(習氣), 그 모두를 알지 못함이 없어서
행하는 바의 소행방편(所行方便) 모두를 잘 알며,
諸法各異威儀別(제법각이위의별) 世界不同前後際(세계부동전후제)
如其世俗第一義(여기세속제일의) 悉善了知無有餘(실선료지무유여)
제법(諸法)이 각각 다름과 위의(威儀)가 각각 차별함과
세계들이 부동(不同)한 것과 전생과 후생의 전후제(前後際)와
세속(俗第)에서의 제일의(第一義)를 정확하게 선료지(善了智)하여 남김없이 잘 알며,
法王善巧安立處(법왕선교안립처) 隨其處所所有法(수기처소소유법)
法王宮殿若趣入(법왕궁전약취입) 及以於中所觀見(급이어중소관견)
법왕(法王)께서 선교(善巧)하게 안립(安立)하신 곳과 그 처소에 따라 있는 모든 법과
법왕의 궁전에 나아가 들어가는 취입(趣入)하는 것과 그 안에서 관찰하는 것과
法王所有灌頂法(법왕소유관정법) 神力加持無怯畏(신력가지무겁외)
宴寢宮室及歎譽(연침궁실급탄예) 以此敎詔法王子(이차교조법왕자)
법왕(法王)의 정수리에 물로서 관정하는 관정법(灌頂法)과
신력(神力)과 가지(加持)와 두려움이 없는 무겁외(無怯畏)와
궁전에서 쉴 수 있는 연침(宴寢)하는 곳과 또한 명예를 찬탄하는 탄예(歎譽) 등을
교조(敎詔, 교육하여 가르침) 하는 것이 법왕자(法王子)이니,
如是爲說靡不盡(여시위설미불진) 於此了知修正念(어차요지수정념)
而令其心無所着(이령기심무소착) 一切諸佛現其前(일체제불현기전)
이와 같은 것을 남김없이 모두 설하여서, 그 마음에 집착이 없게 하여서
그러함을 분명히 요지(了知)하여 바른 생각의 정념(正念)을 닦게 한다면,
일체의 모든 부처님들께서 그 앞에 나타나실 것입니다.
ㅡ제10주(第十住) 관정주(灌頂住)
ㅡ관정주는 자비와 지혜의 자재롭고 청정하지 못한 장애를 대치해서 청정을 얻게 하는 것이니,
즉 선재동자가 사자당왕녀인 자행동녀를 친견하는 것이다.
왕(王)이란 지혜가 자재로운 것을 말하며,
여(女)란 자비를 따라 동사(同事)를 함께 함에 있어서 오염의 습기가 없음을 나타낸 것이니,
이는 지혜가 원만하여지면 자비를 좇아 세간에 처하기 때문에 일(事)을 함께 하면서도 습기가 없음을 밝힌 것이다.
ㅡ관정(灌頂, abhiseka), 고대 인도 왕가 전통으로 제왕이 즉위식이나 태자를 책봉 할 때 사해(四海)에서 길어온 물을 금접시에 담아서 군주의 머리에 부어 주어서 사해(四海)를 다스리라는 서임식(敍任式)이었습니다.
화엄경의 십지품에서는 9지의 보살이 제10지 법운지(法雲地)에 들어갈 때 모든 부처가 지혜의 물로써 그의 머리를 씻어주어 법왕(法王)의 직(職)을 받았음을 증명하는 수직관정(受職灌頂)라 하였으며 보살영락본업경(菩薩瓔珞本業經)에서는 제10지를 관정지(灌頂地)라 합니다.
관정에는 인연을 맺는 관정의 결연관정(結緣灌頂), 법을 배우는 관정의 학법관정(學法灌頂), 법을 전하는 관정의 전법광정(傳法灌頂) 등의 3가지가 있습니다.
第十灌頂眞佛子(제십관정진불자) 成滿最上第一法(성만최상제일법)
十方無數諸世界(시방무수제세계) 悉能震動光普照(실능진동광보조)
열 번째의 관정주는 진실한 진불자(眞佛子)이라,
가장 높은 최상의 제일법(第一法)을 만족하게 성취하여 이루어서
시방으로 무수한 세계들을 능히 모두 진동시키고, 밝은 광명을 두루 비추나니,
住持往詣亦無餘(주지왕예역무여) 淸淨莊嚴皆具足(청정장엄개구족)
開示衆生無有數(개시중생무유수) 觀察知根悉能盡(관찰지근실능진)
머물러 지니는 주지(住持)함과 나아감의 왕예(往詣)함에 있어서 남김이 없는 무여(無餘)이며,
청정한 장엄들을 모두 갖추어 구족(具足)하여서
수 없이 많은 중생들에게 개시(開示)하여 열어 보이며
중생들의 근기를 관찰하여서 모두 알지 못함이 없으며,
發心調伏亦無邊(발심조복역무변) 咸令趣向大菩提(함령취향대보리)
一切法界咸觀察(일체법계함관찰) 十方國土皆往詣(시방국토개왕예)
발심(發心)하여 조복하게 하는 것도 끝없이 무변하며,
그 모두로 하여금 대보리(大菩提)를 향하여 나아가게 하며,
일체 법계를 모두 관찰하면서, 시방의 모든 국토에 모두 나아가게 하나니,
其中身及身所作(기중신급신소작) 神通變現難可測(신통변현난가측)과
三世佛土諸境界(삼세불토제경계) 乃至王子無能了(내지왕자무능요)
그러한 가운데에서 몸(身)과 몸으로 짓는 신소작(身所作)의
신통과 변화는 측량하기 어려운 난가측(難可測)이라,
삼세의 불토(佛土)에서 행하는 바의 모든 경계는 법왕자의 보살들도 능히 알지 못하며,
一切見者三世智(일체견자삼세지) 於諸佛法明了智(어제불법명요지)
法界無碍無邊智(법계무애무변지) 充滿一切世界智(충만일체세계지)
일체의 모든 견자(見者, 보는 이)의 과거 현재 미래 지혜의 일체견자삼세지(一切見者三世智)와
모든 부처님의 불법을 분명하고 명확하게 아는 지혜의 제불법명료지(諸佛法明了智)와
법계의 걸림이 없고 끝이 없는 지혜의 법계무애무변지(法界無碍無邊智)와
일체의 세계에 가득한 지혜인, 충만일체세계지(充滿一切世界智)와
照耀世界住持智(조요세계주지지) 了知衆生諸法智(요지중생제법지)
及知正覺無邊智(급지정각무변지) 如來爲說咸令盡(여래위설함령진)
세계를 밝게 비추면서 머무는 지혜의 조요세계주지지(照耀世界住持智)와
중생들과 제법을 모두 명확하게 아는 지혜의 요지중생제법지(了知衆生諸法智)와 함께
정각의 끝이 없음을 바르게 깨달아 아는 지혜의 지정각무변지(知正覺無邊智)를
여래께서 끝까지 모두를 설하여 주십니다.
ㅡ총결(總結)
如是十住諸菩薩(여시십주제보살) 皆從如來法化生(개종여래법화생)
隨其所有功德行(수기소유공덕행) 一切天人莫能測(일체천인막능측)
이와 같은 십주(十住)의 모든 보살들은,
모두가 여래의 법(여래의 가르침)으로부터 태어난 여래법화생(來法化生)이라,
그들의 지닌 바의 소유공덕(所有功德)의 행(行)을
모든 하늘이나 인간들이 측량할 수 없는 막능측(莫能測)이며,
過去未來現在世(과거미래현재세) 發心求佛無有邊(발심구불무유변)
十方國土皆充滿(시방국토개충만) 莫不當成一切智(막불당성일체지)
지난 과거세(過去世)와 오는 미래세(未來世)와 지금의 현제세(現在世)에서
초발심(初發心)하여 부처를 구하기를 끝없이 하여서
시방의 모든 국토에 가득하여 충만하나니,
마땅히 일체지(一切智)를 이루지 못함이 없을 것입니다.
ㅡ초발심의 발심주(發心住)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一切國土無邊際(일체국토무변제) 世界衆生法亦然(세계중생법역연)
惑業心樂各差別(혹업심락각차별) 依彼而發菩提意(의피이발보리의)
일체의 국토들이 끝없이 많은 무변제(無邊際)라,
그러한 세계의 중생법(衆生法) 역시도 그러하며,
혹업(惑業, 번뇌와 업)과 마음으로 즐기는 심락(心樂)이 각각으로 차별하여 다르나니
그러한 이들을 위하여 보리심을 발(發)하였도다.
始求佛道一念心(시구불도일념심) 世間衆生及二乘(세간중생급이승)
斯等尙亦不能知(사등상역불능지) 何況所餘功德行(하황소여공덕행)
불도(佛道)를 구하고자 처음으로 마음을 낸 그 일념(一念, 한 순간)의 (초발심의) 마음을
세간의 중생들과 이승(二乘)의 성문이나 연각 등도
능히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그 밖의 나머지 공덕들을 어찌 알수 있겠습니까!
十方所有諸世界(시방소유제세계) 能以一毛悉稱擧(능이일모실칭거)
彼人能知此佛子(피인능지차불자) 趣向如來智慧行(취향여래지혜행)
시방에 있는 모든 세계들을 하나의 털로써 모두 다 들어 올릴 수 있다면
그러한 이는 불자(佛子, 초발심자)가 여래지(如來智)를 취하여 나아가는
지혜의 혜행(慧行)을 능히 알 수 있을 것이며,
十方所有諸大海시방소유제대해) 悉以毛端滴令盡(실이모단적영진)
彼人能知此佛子(피인능지차불자) 一念所修功德行(일념소수공덕행)
시방의 모든 대해(大海)를 하나의 모단(毛端, 털 끝)으로 찍어내어 모두 말릴 수 있다면
그러한 이는 이러한 불자(佛子, 초발심자)가 일념(一念, 한 순간) 동안 수행하는
공덕행(功德行)을 비로소 능히 알수 있을 것이며,
一切世界抹爲塵(일체세계말위진) 悉能分別知其數(실능분별지기수)
如是之人乃能見(여시지인내능견) 此諸菩薩所行道(차제보살소행도)
일체의 세계를 모두 부수어서 미진(티끌)을로 만들어서
그 미진의 수효를 헤아려서 알 수 있는 이가 있다면
그러한 사람이라야 마침내 이러한 보살(菩薩)이 행하는 바의 보살소행도(菩薩所行道)를
능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去來現在十方佛(거래현재시방불) 一切獨覺及聲聞(일체독각급성문)
悉以種種妙辯才(실이종종묘변재) 開示初發菩提心(개시초발보리심)
과거 미래 현재, 삼세(三世)와 시방의 부처님들과
일체의 독각이나 성문들까지도 갖가지로 묘한 변재로서
처음 마음을 낸 초발보리심(初發菩提心)을 열어 보이고자 하여도,
發心功德不可量(발심공덕불가량) 充滿一切衆生界(충만일체중생계)
衆智共說無能盡(중지공설무능진) 何況所餘諸妙行(하황소여제묘행)
초발심한 공덕은 헤아릴 수 없는 불가량(不可量)이라,
시방의 일체 중생계에 충만하여 가득 찼으니
많은 지혜로운 사람들이 모두 함께 설한다 할지라도 끝끝내 설하지 못할 것이거늘
하물며 그 나머지 여러가지의 묘행(妙行)이겠습니까!
ㅡ이상의 열 가지 대치(對治)는 모두 일념의 마음과 초발심 시(時)와 일행(一行)과 일시(一時) 안에서 먼저와 나중이 없는 것이다.
이 열 가지 장애법을 대치하여, 일법(一法), 일심(一心), 일지혜(一智慧)를 이루면서도, 일행(一行) 가운데에서 백 가지의 무진한 법문이 모두자기마음의 부동지불로서 체(體)를삼는 것이니,
법사(法事) 속에 이러한 열 가지의 무진 법문을 갖추어서 동(同)과 별(別), 일(一)과 다(多)가 자재롭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열 가지 대치가 일시에 관습을 자재롭게 하는 까닭에 3승의 권교에서는 이해력이 낮은 중생을 위하여 세간 삼세의 성품을 간직함으로써 불과가 3아승기 밖에 있다고 설하는 것과는 같지 않은 것이다.
자기 마음의 근본무명분별(根本無明分別)의 종자로 문득 부동지불을 이루고,
법계의 체용을 믿음으로 나아가 깨달아 들어가는, 신진오입(信進悟入)의 문을 삼기 때문에, 믿음으로 지위에 들어가 닦아 나가는 것에서부터, 10주 ·10행 ·10회향 ·10지 ·11지를 거치기까지 총체적으로 근본부동지불을 여의지 않고,
일시(一時) ·일념(一念)· 일법(一法) ·일행(一行)을 여의지 않고서도 무진하고 무량한 불가설불가설(不可說不可說)인 법계와 허공계의 미진수 법문이 있는 것이니, 왜냐 하면 법계와 근본부동지로부터 믿음으로 나아가 깨달아 들어가기 때문에 법이 마땅히 그러한 것이다.
법계의 지체(智體)에는 별개의 시(時)가 없기 때문이니, 마치 한 방울의 물이 큰 바다에 들어가면, 문득 큰 바다와 같아져서 새로운 물과 옛 물의 구별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정(情)을 버려야 비로소 볼 수 있을 것이며, 식심(識心)으로 알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나아가 수행을 일으키는 자는 대지혜의 경계에서 삼세나 멀고 가까움이나 늦고 빠름 등의 견해를 짓지 말아야 하니, 이는 지혜 경계를 어기기 때문이며, 근본대지혜의 경계를 잃어서 정식(情識)을 좇기 때문이며, 상(相)을 따라 굴려지기 때문이다.
제16권의 15. 십주품(十住品)을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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