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經卷第十六 十住品第十五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三藏沙門(삼장사문實叉難陀 (실차난타 

15. 십주품(十住品)  12

 

ㅡ제이주(第二住) 치지주(治地住),

치지(治地), 자기 자신을 항복받고ㆍ관리하고 하여 다스리는 주.

ㅡ부처님 지혜를 얻어서 12연생을 관(觀)하여 대지혜의 바다를 성취함으로써 마음과 경계가 널리 자재롭게 두루함을 밝히고 있으니, 이는 이 치지주(治地住)에서 12연생으로서 다스림으로써 여래의 지지(智地)를 이루게 하기 때문이며, 

ㅡ치지주에서 배워야 할 10 가지 마음의 십종심(十種心);

 ①이익심(利益心) ②대비심(大悲心) ③락심(安樂心)

④안주심(安住心) ⑤연민심(憐愍心) ⑥섭수심(攝受心) ⑦ 동기심(同己心)

⑧수호심(守護心) ⑨사심(師心) ⑩도사심(導師心) 

 

第二治地住菩薩(제이치지주보살) 應當發起如是心(응당발기여시심)

十方一切諸衆生(시방일체제중생) 願使悉順如來敎(원사실순여래교) 

두 번째의 제이(第二)는 스스로를 다스려서 치지(治地)하는 주(住)이라,

이 치지주에 이른 보살은 마땅히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어야 하나니, 
시방으로 일체의 모든 중생들이 여래의 가르침인 여래교(如來敎)를 따르기를 원(願)하는 마음이니, 

利益大悲安樂心(이익대비안락심) 安住憐愍攝受心(안주연민섭수심) 

守護衆生同己心(수호중생동기심) 師心及以導師心(사심급이도사심)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는 마음의 이익심(利益心)과 대비심(大悲心)과

안락하게 하여주고자 하는 마음의 안락심(安樂心)과 
편안하게 느끼는 안주심(安住心)과 애처로인 여기는 연민심(憐愍心)과

거두어 들이는 섭수심(攝受心)과 수호하여 주는 마음의 수호심(守護心)과

중생들을 내 몸과 같이 생각하는 동기심(同己心)과 중생들이 스승이라 생각하는 사심(師心)과

길을 이끌어 주는 도사심(導師心)을 가지는 것이라. 

 

已住如是勝妙心(이주여시승묘심) 次令誦習求多聞(차령송습구다문)

常樂寂靜正思惟(상락적정정사유) 親近一切善知識(친근일체선지식) 

이러하게 수승하고 묘한 10 가지 마음의 최승심(勝妙心)에 머물게 되었다면, 
그 다음으로, 읽고 외워서 익히는 송습(誦習)하고, 많이 들어 알기를 구하는 구다문(求多聞)하여서
항상 고요한 적정(寂靜)에서 바르게 생각하는 정사유(正思惟)를 즐기며, 
일체의 모든 선지식들을 친근하며, 

發言和悅離麤獷(발언화열이추광) 言必知時無所畏(언필지시무소외) 

了達於義如法行(요달어의여법행) 遠離愚迷心不動(원리우미심부동) 

하는 말이 화목하고 기뻐서 화열(和悅)하여서, 추광(麤獷, 거칠고 사나운)하지 않으며,

말을 할 때에는 반드시 때에 맞게 두려움 없이 하며, 
그 뜻을 분명히 요달(了達)하여 알아서, 이치에 따라 여법(如法)하게 행(行)하며,  
우매(愚迷, 어리석은 미혹)함을 멀리 여읜 그 마음이 부동(不動)하나니, 

 

此是初學菩提行(차시초학보리행) 能行此行眞佛子(능행차행진불자) 

我今說彼所應行(아금설피소응행) 如是佛子應勤學(여시불자응근학) 

이러한 10 가지의 마음을 배워서 부동한것이 보리행(菩提行)을 처음 배우는 것이며, 
이러함을 능히 행할 수 있어야 진정한 진불자(眞佛子)라 할 수 있음이라.  
저 치지주(治地住)의 보살들이 행하여야 할 바를 지금 말하였으니
이러함은 불자가 마땅히 열심히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외우고ㆍ익히고ㆍ많이 듣고ㆍ고요히 정사유하고ㆍ선지식을 친근하기를 좋아하고ㆍ말이 아주 온순하고ㆍ

아주 순화되어 있고ㆍ거친 말 없고ㆍ때에 맞추어서 여법하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이 참다운 진불자로서

치지주의 보살이 행하여야 할 바입니다)

 

ㅡ제삼주(第三住)의 수행주(修行住)

ㅡ해안국(海岸國)에서 선주(善住)비구를 친견하고, 마음과 경계의 청정하지 못한 장애를 없애어서 보살의 무애해탈문(無碍解脫門)을 얻게 됨으로써 근기에 따른 업행(業行)으로 인해, 여기서 죽고 저기서 태어나는 일체 중생들을 능히 모두 밝게 보게 되는 것이 바로 수행주(修行住)이니,

초발심주 치지주 수행주, 3주(三住) 중에서 속박을 벗어난 마음의 자재로움을 얻게 되는 것을 밝힌 것이다. 

총체적으로는 10신심(十信心)을 통해서 스스로 일체 삼계의 분별무명이 근본부동지의 부처라는 것 믿고, 

초발심주에서 자재로운 이해력으로 믿음의 눈이 청정하게 되어서 지혜의 광명이 비추임으로서 널리 경계를 관(觀)하여 일체 장애를 벗어나서, 10주의 초심에 계합해서 깨달아 들어가는 것이다.

이상 초발심주와 치지주와 수행주는 10  속박을 벗어나는 마음의 뛰어남을 터득하는 것을 밝히고 있기 때문에 선재동자의 선지식이 모두 3인의 비구인 것이니, 이는 속박을 벗어난 해탈로서  3주위(三住位) 중의 행상(行相)을 밝힌 것이다.

 

第三菩薩修行住(제삼보살수행주) 當依佛敎勤觀察(당의불교근관찰) 

諸法無常及空(제법무상고급공) 無有我人無動作(무유아인무동작) 

제 3은 보살들의 수행주(修行住)이니,

마땅히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불교(佛敎)를 따라 힘써 관찰하여야 하는 것으로, 
법(諸法)이 무상(無常)하며, 괴로운 고(苦)요, 공(空)한 것이라,
'나'라는 것도 없는 무아(無我)이고, '남(상대)'이라는 것도 없는 무유인(無有人)이며,

움직임 없는 무동작(無動作)이며, 

 

一切諸法不可樂(일체제법불가락) 無如名字無處所(무여명자무처소) 

無所分別無眞實(무소분별무진실) 如是觀者名菩薩(여시관자명보살) 

일체의 모든 제법(諸法)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 이름하는 명자(名字)와도 같지 않고, 처소도 없는 무처소(無處所)이라,

분별할 것도 없고 진실도 없음을 힘써 관찰하여야 하나니
이러하게 관찰하는 이를 이름하여 보살이라 할 수 있습니다.

ㅡ무상(無常)ㆍ고(苦)ㆍ공(空)ㆍ무아(無我)ㆍ무동작(無動作)ㆍ무인(無人)은 불교의 기본교리로서

수행해서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次令觀察衆生界(차령관찰중생계) 及以勸觀於法界(급이권관어법계) 

世界差別盡無餘(세계차별진무여) 於彼咸應勤觀察(어피함응근관찰) 

 다음으로는 중생계를 관찰하고, 또한 법계를 관찰할 것을 권하나니,

세계의 모든 차별함을 남김없이 진무여(盡無餘)하게, 그 모두를 부지런히 관찰하여야 합니다.

十方世界及虛空(시방세계급허공) 所有地水與火風(소유지수여화풍) 

欲界色界無色界(욕계색계무색계) 悉勸觀察咸令盡(실권관찰함령진) 

시방의 세계들과 허공과, 지대(地大)ㆍ수대(水大)ㆍ화대(火大)ㆍ 풍대(風大)의 사대(四大)들과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의 삼계(三界)에 이르기까지를
모두 빠짐없이 부지런히 관찰하여야 하며, 

 

觀察彼界各差別(관찰피계각차별) 及其體性咸究竟(급기체성함구경)

得如是敎勤修行(득여시교근수행) 此則名爲眞佛子(차즉명위진불자) 

그 각각의 세계가 차별한 것을 모두 관찰하고
또한 그 자체의 체성(體性)까지를 모두 철저하게 관찰하여야 하나니,

이러하게 부처님의 가르침인 불교(佛敎)를 부지런히 수행한다면
이러한 이를 일러서 진실한 진불자(眞佛子)라 하는 것입니다.

 

ㅡ초발심주(初發心住)와 치지주(治地住)와 수행주(修行住)의 세 가지 주(主)에서 총체적으로 출세간의 마음을 닦아서 모든 세간의 번뇌와 속박을 타파함을 밝힌 것이다.
세간의 번뇌는 선재동자가 게송을 설한 근본번뇌가 10 개 있고, 6 개의 수번뇌(隨煩惱)가 있으니, 
열 가지 근본번뇌란 ① 욕망, ② 색(色), ③ 무색(無色)으로, 이는 삼계의 근본적인 속박처이고, 
④ 교만, ⑤ 제취(諸趣), ⑥ 애(愛), ⑦ 어리석음, ⑧ 탐욕, ⑨ 성냄, ⑩ 심마(心魔)로써 10 개가 된다.
또한 6개의 수번뇌란,

① 첨(諂, 아첨), ② 광(誑, 속임수), ③ 의혹, ④ 간(慳, 인색함), ⑤ 질투, ⑥ 교영(郊迎, 아양)이다.
선재동자의 게송에서 “세 가지 유(有)가 성곽(城郭)이 되고, 
교만이 담장이 되고, 제취가 문호(門戶)가 되고,

애착의 애수(愛水)가 연못이나 도랑이 되고, 어리석음이 암복(闇覆, 어둠의 덮개)가 되고,

탐내고 성내는 불이 치열해서 마왕이 군주(君主)가 되자, 동몽(童蒙)이 의지하여 머무는 것이다.

탐심과 애착이 휘전(徽纏, 얽어 맴)이 되고, 첨광이 비륵(고삐와 재갈)이 되고, 의혹이 그 눈을 가려서 모든 삿된 견해에 들어가 인색하고 질투하며 교영하기 때문에 삼악도에 들어간다”고 했는데,

이는 내심(內心)이 나아가는 바에 근거한 것이지, 신견(身見)과 변견(邊見)과 견취(見取)와 게취(戒取)와 사견(邪見)에 근거한 것이 아니니, 내심이 지혜를 성취하면 모든 견해는 저절로 해탈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일승의 교체(敎體)는 다만 무명을 깨달아서 대지혜를 이루고 온갖 견해를 이용해서 자재로움을 짓는 것이니,

이 때문에 5견(五見)을 논하지 않는 것이다.

 

ㅡ제사주(第四住)의 생귀주(生貴住)

ㅡ생귀주(生貴住) 세간의 법칙과 생사의 번뇌에 자재롭지 못한 장애를 대치해서 자재롭게 함을 밝힌 것이다.

 선재동자가 저자거리에서 미가(彌伽)장자가 윤자경(輪字經)을 설하는 것은 보는 것은 생사의 저자가 시끄러우나, 항상 고요함을 나타낸 것이며, 하나하나의 글이 마치 수레바퀴와 같아서 일(一)과 다(多)가 원만하게 체(體)를 서로 번갈아 서로 성취하고 있으며,  제석천의 보망(寶網) 서로 연기(緣起)하면 겹겹이 사무치게 비치는 것과 같아서, 

 글자 속에 다함이 없는 자구(字句)가 있는 것은 세간의 명구문신(名句文身)으로 모든 말학(末學)을 인도함으로써 가르침의 궤칙을 이루는 것이며, 

또한 세속의 선비인 미가로써  행을 성취하는 것은 세간을 벗어나는 마음을 얻게  뒤에 반드시 세간의 고요함과 시끄러움의 정난(靜亂)으로 연기하는 생사의 성품과 만법의 무생멸 세간 명자(名字)의 의리(義理)와 일체 중생의 언어를 밝힘으로써,

서로가 성취토록 하는 것이니, 가령 옛날 복희(伏羲) 등의 부류가 이에 해당되는 것이다.

 

第四生貴住菩薩(제사생귀주보살) 從諸聖敎而出生(종제성교이출생)

了達諸有無所有(요달제유무소유) 超過彼法生法界(초과피법생법계)로 

네 번째의 생귀주(生貴住)에 이른 보살은 성인의 가르침인 성교(聖敎, 부처님의 가르침)로부터 태어나
(諸有, 모든 있음 또는 존재) 있는 것이 아닌,

무소유(無所有)라는 것 명확하게 요달(了達)하여 알기에
그 제유(諸有, 모든 있음 또는 존재)의 법을 뛰어넘어서 법계에 태어나나니, 

 

信佛堅固不可壞(신불견고불가괴) 觀法寂滅心安住(관법적멸심안주) 

隨諸衆生悉了知(수제중생실요지) 體性虛妄無眞實(체성허망무진실) 

부처님에 대한 믿음이 견고하여 흔들어 파괴할  없는 불가괴(不可壞)이고
법을 관찰하며 고요한 적멸심(寂滅心)에 편안하게 안주(安住)하며, 
모든 중생들을 따라서 자체의 체성(體性)이 허망하여 진실이 없음을 분명히 요지(了知)하여 알며, 

世間刹土業及報(세간찰토업급보) 生死涅槃悉如是(생사열반실여시) 

佛子於法如是觀(불자어법여시관) 從佛親生名佛子(종불친생명불자) 

세간(世間)의 찰토(刹土, 국토)와 업(業)과 과보(果報)와
생사(生死)와 열반(涅槃) 역시도 그러하게 허망하고 진실이 없음을 분명히 요지(了知)하여 알며, 
불자가 이러하게 법을 관찰한다면,

이름하여 부처님을 따라 태어난 종불친생(從佛親生)의 불자(佛子)라 할 수 있습니다.

  

過去未來現在世(과거미래현재세)  其中所有諸佛法(기중소유제불법) 

了知積習及圓滿(요지적습급원만) 如是修學令究竟(여시수학영구경) 

지난 세상의 과거세(過去世)ㆍ오는 세상의 미래세(未來世)ㆍ지금의 현재세(現在世)에서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부처님의 불법(佛法)들을
분명히 요지(了知)하여 쌓아 모으고, 또한 익혀서 원만하게 하며
이와 같이 수학(修學)하여 닦고 배우기를 구경(究竟)에 이르기까지 하나니, 

 

三世一切諸如來(삼세일체제여래) 能隨觀察悉平等(능수관찰실평등) 

種種差別不可得(종종차별불가득) 如是觀者達三世(여시관자달삼세)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에 계시는 모든 여래의모든 것이 평등한 것이라,

갖가지의 종종차별(種種差別)을 얻을 수가 없다는 것을 능히 관찰하나니, 
이러하게 관찰하여 보아서 삼세를 통달하는 것입니다.

 

如我稱揚讚歎者(여아칭양찬탄자) 此是四住諸功德(차시사주제공덕) 

若能依法勤修行(약능의법근수행) 速成無上佛菩提(속성무상불보리) 

제가 선양(宣揚)하고 찬탄하는 것과 같이 선양하고 찬탄하는 이는
그러함이 4주(第四住) 생귀주(生貴住)의 공덕이라!
만약 이러한 법에 의지하여 부지런히 닦아 근수행(勤修行)한다면
부처님의 위없는 무상불보리(無上佛菩提)를 속히 이룰 수 있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