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 13권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李 通玄 장순용 번역
5) 화장세계품(華藏世界品)
장차 이 품을 해석함에 있어서 간략하게 10 가지의 문으로 나누겟으니,
첫째 품의 온 뜻을 해석하는 석품내의(釋品來意)이며,
둘째 품의 명목을 해석하는 석품명목(釋品名目)이며,
셋째 화장세계 해가 무엇으로 인하여 과보(果報)를 얻었는가를 해석하는 것이며,
넷째 화장세계해의 형상(形狀)과 안립(安立)을 해석하는 것이며,
다섯째 화장세계해의 안립이 속하는 인(因)에 짝을 지은 것이며,
여섯째 화장세계해의 순수함과 섞임의 순잡(純雜)이 서로 걸림이 없음을 해석하는 것이며,
일곱째 화장세계해가 뚜렷하게 삼세업(三世業)의 경계를 다스리는 것을 해석하는 것이며,
여덟째 부처님의 불국(佛國)이 본래 공(空)하였거늘, 어찌 화장세계해가 출생하는 소연(所緣)이 되었는가를 해석하는 것이며,
아홉째 화장세계해가 무엇으로 인하여 숨고 나타나는 은현(隱現)이 자재롭게 되었는가를 밝힌 것이며,
열째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하는 수문석의(隨文釋義)이다.
첫째 품의 온 뜻을 해석하는 석품내의(釋品來意)란,
이 품은 앞의 37 가지의 질문 중에서 불세계해(佛世界海)와 중생해(衆生海)와 바라밀해(波羅蜜海) 등에 답한 것으로,
이 품에서 여래의 5위 중 행업(行業)의 인과로 얻은 과보를 들어서 앞의 38 가지 질문에 답하는 까닭에 이 품이 반드시 온 것이다.
둘째 품의 명목을 해석하는 석품명목(釋品名目)이란,
이 부처님의 불경계(佛경境界)의 과보로 얻은 국토가 연꽃을 지니는 것으로써, 일체의 청정하고 더러운 경계를 갈무리하여서 모두 그 속에 함장(含藏)하고 있다는 것을 설하기 때문에 ‘화장(華藏)’이라 이름붙인 것이다.
셋째의 화장세계해가 무엇으로 인하여 과보(果報)를 얻었는가를 해석한다면 다음과 같으니,
처음의 초신심(初信心)에서부터 8지(八地)에 이르기까지 항상 큰 뜻과 원력의 대지원력(大志願力)을 지녀서 보리에서 물러나지 않게 하고,
모든 바라밀해(波羅蜜海)로서 일체 중생을 교화하여 이롭게 하여서 8지(八地)에 이른 것이니,
이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이(利)에 맡겨서 공(功)이 없어진 (8지에 이르러야 공용이 없어지기 때문) 이(利)는 풍륜(風輪)이 대원(大願)바라밀이 성취한 과보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즉 중생의 세간은 망상의 업풍(業風)이 유지하는 것이지만,
여래의 세간은 대원력의 지혜의 지풍(智風)으로 능히 온갖 경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혜가 능히 원(願)을 따르고, 원(願)이 능히 지혜를 성취함으로써, 대원(大願)과 법신(法身)과 대지(大智)의 과보로 얻은 것이 풍륜의 체(體)인 것이다.
만약 법신으로써 하지 않으면 일체의 모든 행이 다 유위(有爲)이기 때문이며,
만약 큰 뜻의 대원(大願)이 없으면 법신은 자체성이 없어서 능히 스스로를 성취하지 못하거늘 어찌 다른 것을 성취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대원(大願)과 법신(法身)과 대지(大智)의 세 가지로써 연(緣)이 되어야 비로소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일을 감당해서 공(空)에도 유(有)에도 걸리지 않고, 또한 닦아 나아가는 공(功)이 익어서 공숙(功熟)하여서, 그 이(利)에 맡겨 공(功)이 없게 되는 것이다.
또 처음에 대염원을 인(因)하는 것으로서 첫 머리를 삼아서 만경(萬境, 온갖 경계)을 유지함을 취한 것이니,
총체적으로는 대염원의 지풍(智風)으로 경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이 품의 아래 경문에서는 “널리 마니묘보화(摩尼妙寶華)를 뿌려서 옛 원력(願力)으로 허공 중에 머문다 (普散摩尼妙寶華,以昔願力空中住)”고 한 것이다.
이와 같은 화장세계의 장엄은 모두 풍륜 위에서 온갖 경계를 유지하는 것이며,
모든 복행(福行)은 본래 원(願)으로부터 생겨나고,
또한 근본의 본인(本因)을 거느림으로써 모든 과(果)를 갖는 것이니,
이러한 때문에 원(願)바라밀을 써서 능히 일체의 바라밀해(海)를 성취하는 것이니,
근본의 본인(本因)이 이러하기 때문에 인과(因果)가 서로 유지하는 것이다.
이제 제8(第八)과 아울러 초발심 때의 원(願)바라밀에서 10바라밀(十波羅蜜)이 10 가지 풍륜(風輪)을 이룸으로써,
그 위에 10 가지의 일체 장엄을 유지하는 것이니,
이는 원(願)바라밀이 서로 체(體)에 사무침으로써 그 위에 제행(諸行)의 과보로 얻어서 일체 장엄을 능히 유지하는 것이다.
가령 가장 아래의 풍륜을 평등주(平等住)라 칭하는 것은 원(願)바라밀 중에서의 단(檀, 보시)바라밀의 과보로 얻었기 때문이니 그 위에서 일체 보염(寶焰, 보배로운 불꽃)의 치열한 장엄을 능히 지니는 것이며,
또한 원(願)바라밀 중에서의 단도문(檀度門)의 법재(法財)로 은혜롭게 베푼 과보로 태어난 것이라서, 스스로 서로 상대(相持)하여 유지하면 인과가 서로 사무치는 것이니, 법을 헛되이 얻지 않고, 인(因)을 헛되이 버리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이에 준하여 원(願)바라밀 중의 10도(度) 법문으로 짝지을 것이니,
10 가지의 풍륜 과보로 얻은 인과가 서로 유지하기 때문에, 마치 중생 세간의 망상의 업풍(業風)이 가장 아래에 머물고,
그 위로는 물의 경계인 금강지산(金剛地山)을 유지하여 안주하 하여서 별자리와 현광(玄光)이 천문(天文)을 이루어 운행하면서도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연화장(蓮華藏)'의 체(體)는 법신이 행을 따르는 무의주지체(無依住智體, 의지하거나 머묾이 없는 지혜의 체)의 과보로 얻은 것이며,
'궁전(宮殿)'은 모두 대자비로 감싸서 기른 과보로 얻은 것이며,
누각(樓閣)은 바로 지혜로 관조(觀照)하여 그 근기를 살펴서 자비로 사물을 제도한 과보로 얻은 것이며,
'그 땅이 금강, 기지금강(其地金剛)'이라는 것은 평등한 자성법신(自性法身)의 과보로 얻은 것이다.
다만 이 모든 장엄 중에서 소유금강(所有金剛)으로 장엄을 삼은 것은, 모두가 법신이 행을 따르는 과보로 얻은 것이며,
단지 마니로만 장엄한 것은 모두가 법신이 계(戒)의 체(體)를 이루어서 행을 따르는 과보로 얻은 것이며,
금강륜위산(金剛輪圍山)은 바로 대자비의 계(戒)로 수호하는 업의 과보로 얻은 것이며,
온갖 꽃의 중화(衆華)로 장엄한 것은 만행(萬行)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여 일체의 선(善)을 꽃피운 과보로 얻은 것이며,
보배 나무로 장엄한 것은 행(行)을 세워 중생을 이롭게 하고, 함식(含識, 중생)들에게 그늘을 드리워준 과보로 얻은 것이니,
예컨대 10행위(行位) 중 공덕림 보살 등의 10보살의 아래 이름이 모두 똑같이 ‘임(林)’이 된 것은 행(行)으로 그늘을 드리우기 때문이다.
또 '사자좌의 장엄'이란 것은 바로 법신이 지혜를 따라 법륜을 세운 과보로 얻은 것으로,
요약해서 말한다면, 과보의 보업(報業)으로 인(因)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에 충분한 것은 아니다.
무릇 과보를 헛되이 얻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인(因)하는 바가 있는 것이니, 만약 인(因)을 알지 못하면 어찌 과(果)를 닦는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때문에 이 품의 첫머리에서 “이 화장장엄세계해는 비로자나여래께서 과거에 세계해미진수(世界海微塵數) 부처님들 각각의 처소에서 세계해미진수의 대원(大願)을 청정히 닦아서 청정하게 장엄한 것이다”라고 한 것으로,
다만 원(願)이라 말한 것은 행(行)이 원(願)으로 말미암아 성취되기 때문이다.
또 아래의 경문에서 “보현의 지혜 땅, 보현지지(普賢智地)에서 행이 모두 이루어지나니, 일체의 장엄이 이로부터 나온다”고 한 것이니, 가령 향수해(香水海)는 대자비업(大慈悲業)의 과보로 얻은 것이며
향수의 강의 향수하(香水河)는 닦아 나아가는 진수행(進修行)의 과보로 얻은 것이다.
그 아래의 경문에서 문수사리 보살을 항상 따르는 대중 중 모두의 명칭을 법을 표시한 것은, 명칭을 보고서 행을 아는 것이며, 이러한 화장세계해는 과(果)를 보고서 인(因)을 아는 것이니, 나머지 경전을 모두 인용해서 이러함을 증명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화엄 경전은 명칭을 보면 곧 법을 알고, 과(果)를 보면 곧 인(因)을 알아야 비로소 이 경전의 의취(意趣)를 알 수 있는 것으로,
다른 경전의 법상(法相)의 문호(門戶)가 다분히 이 경전과는 상응하지 않는 것이다.
다른 경전들은 고제(苦諦)를 말했지만 이 경전은 성제(聖諦)를 말하고 있으니 그 뜻에 남음이 있고,
다른 경전은 4제(四諦)를 설했지만 이 경전은 10성제(十聖諦)와 10 가지의 12연(十二緣)을 설하였으니,
만약 다른 경전과 화엄경의 무량한 차별을 더욱 자세히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때문에 이 경전에서 인과(因果)를 짝지은 것을 다른 경전을 인용해서 이 경전과 짝을 지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 경전은 명칭을 보고서 행을 알고 과(果)로써 인(因)을 알아채는 것이니,
예를 들자면, 문수사리 보살이 항상 따르는 대중들에게 “시방의 의식(儀式)을 밝게 조련하는 주방신(主方神)과
무명(無明)의 어둠을 없애는 주야신(主夜神)과
일심(一心)에도 게으름 없이 불일(佛日)을 천명하는 주주신(主晝神)이다”라고 한 것이 바로 그러한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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