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經卷第十六 十住品第十五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 三藏沙門(삼장사문) 實叉難陀 譯(실차난타 역)
15. 십주품(十住品) ㅡ 2
ㅡ보살의 주처(住處)
佛子菩薩住處(불자보살주처) 與法界虛空等(여법계허공등)
佛子菩薩(불자보살) 住三世諸佛家(주삼세제불가) 彼菩薩住(피보살주) 我今當說(아금당설)
“불자들이여, 보살이 머무는 주처(住處)는 법계나 허공과 같이 광대합니다.
불자들이여, 보살은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들의 불가(佛家)에 머무나니,
그렇게 보살의 머물러야 할 보살주처(菩薩住處)에 대하여 제가 마땅히 설하겠습니다.
ㅡ'보리살타(菩提薩埵) 또는 보디삿따 또는 보디사트바 Bodhisattva를, 줄여서 보살(菩薩)이라 하며,
보리(Bodhi)는 ‘깨달음’을 뜻하고, 살타(Sattva)는 ‘존재’를 뜻한다.
보살은 ‘깨달음을 추구하는 존재’, ‘깨달음의 의지를 지닌 존재’로 해석할 수 있지만, 단순히 깨달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광정에서 끊임없이 타인을 이롭게하며 자비와 선행을 실천하고, 함께 열반에 이르기를 서원하고 실천하는 자이다.
초기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이루기 직전의 석가모니를 지칭하는 용어이었으나, 대승불교로 발전하면서 보살 개념은 보다 보편화되어 이타적(利他的) 존재로 다시 정의되어서, 이 개념은 대승불교의 핵심적인 이념으로 자리 잡았으며, 단지 자신의 해탈에만 이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함께 깨달음으로 인도하려는 실천적 이상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보살은 불교가 만들어낸 가장 이상적인 인격자이기도 하며, 성불해서 부처가 되어서도 다시 보살이 되어서 그 원력의 보살행을 실천하는 것으로 성불이 목적이 아니라 보살행이 목적인 것이 화엄경에서 설하는 보살행이라 할 수 있다.
諸佛子(제불자) 菩薩住有十種(보살주유십종) 過去未來現在諸佛(과거미래현재제불)
已說當說今說(이설당설금설)
여러 불자들이여, 보살이 머무는 주처(住處)에는 10 가지가 있으니,
지난 과거와 오는 미래와 지금 현재의 모든 부처님들께서
이미 설하여 이설(已說)하신 것이고, 장차 설하실 당설(當說)할 것이며, 지금 설하시는 금설(今說)하시는 것입니다.
何者爲十(하자위십)
所謂初發心住(소위초발심주) 治地住(치지주) 生貴住(생귀주) 具足方便住(구족방편주)
正心住(정심주) 不退住(불퇴주) 童眞住(동진주) 法王子住(법왕자주) 灌頂住(관정주)
어떠한 것이 그 10 가지인가?
이른바 초발심주(初發心住)ㆍ치지주(治地住)ㆍ수행주(修行住)ㆍ생귀주(生貴住)ㆍ구족방편주(具足方便住)ㆍ
정심주(正心住)ㆍ불퇴주(不退住)ㆍ동진주(童眞住)ㆍ법왕자주(法王子住)ㆍ관정주(灌頂住)이라.
是名菩薩十住(시명보살십주) 去來現在(거래현재) 諸佛所說(제불소설)
이러한 것을 보살이 머물러야 할 10가지의 십주(十住)라 하나니,
지난 세상ㆍ오는 세상과 현재의 모든 부처님들께서 말씀하시는 바입니다.
1. 초발심주(初發心住)
ㅡ덕운 비구는 10주(住)의 초주(初住)인 초발심주에 머무는 선지식이니,
선재동자가 묘봉산 위에서 덕운비구를 친견하여서 모든 부처님의 지혜광명문을 얻고서는 즉시에 세간의 모든 번뇌장(煩惱障)을 없앰으로써 부처님 지혜의 광명을 성취하는 것으로, 선재동자가 묘봉산 위에서 믿음의 눈이 청정하게 밝아지고 지혜의 광명이 비춤으로써 널리 경계를 관(觀)하여 일체의 장애를 여의는 것이 바로 초발심주(初發心住)이다.
佛子(불자) 云何爲菩薩發心住(운하위보살발심주)
불자들이여, 어떠한 것을 보살의 발심주(發心住)라 하는가?
此菩薩(차보살) 見佛世尊(견불세존) 形貌端嚴(형모단엄)
色相圓滿(색상원만) 人所樂見(인소낙견)
이 보살이 부처님 세존의 용모(형상)가 단엄(端嚴, 단정)하고 상호가 원만하여서 사람들이 보기를 좋아하며,
(32상과 80 종호를 갖추어서 사람들이 뵙기를 좋아하며)
難可値遇(난가치우) 만나 뵙기가 어려우며,
有大威力(유대위력) 큰 위력(위신력)이 있으며,
或見神足(혹견신족) 혹은 신족통(神足通)을 보기도 하고
或聞記別(혹문기별) 혹은 기별(記別, 수기)하심을 듣기도 하고,
或聽敎誡(혹청교계) 혹은 교계(敎誡, 가르침)을 듣기도 하며,
或見衆生(혹견중생) 受諸劇苦(수제극고)
혹은 중생들이 여러 가지의 극고(劇苦, 심한 고통)를 받음을 보기도 하고,
或聞如來(혹문여래) 廣大佛法(광대불법) 혹은 여래의 광대한 불법을 듣기도 하여서,
發菩提心(발보리심) 求一切智(구일체지)
보리심을 발(發)하게 되어서 일체지(一切智)를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ㅡ발심의 인(因)이 바로 부처님의 색신(色身)의 단아함을 보는 것이라는 것은 가르침이나 교훈을 듣는 것 등이 이에 해당된다.
10 가지의 법이 있는 것은 초발심주의 소연(所緣)인 여래의 10 가지의 뛰어난 지혜와 아울러 이 지위의 10 가지의 법을 취함으로써, 10주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모두 200 개의 법문이 다 함께 10주의 지위를 이루는 것으로,
각각의 주(住)에 20개의 법문의 십법(十法)으로 해당되는 지위의 문(門)을 이루고,
10 가지 법을 승진행(昇進行)으로 삼는 것을 밝힌 것이다.
ㅡ십종법(十種法) ㅡ 십력(十力)
此菩薩(차보살) 緣十種難得法(연십종난득법) 而發於心(이발어심) 何者爲十(하자위십)
발심한 이 보살은 10 가지의 얻기 어려운 난득법(難得法)을 인연으로 발심(發心)하게 되나니,
어떠한 것이 그 10가지 인가?
所謂(소위) ①是處非處智(시처비처지)
이른바 시처(是處, 옳은 것, 있을 자리)와 비처(非處, 옳지 않은 것, 있을 곳이 아닌 것)을 아는 지혜와,
②善惡業報智(선악업보지) 선(善)과 악(惡)의 과보로 받는 업보(業報)를 아는 지혜와
ㅡ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의 인연과보를 아는 지혜
③諸根勝劣智(제근승렬지)
중생들의 근기가 승열(勝劣)하여서 뛰어나기도 하고 열등하기도 한 것을 아는 지혜와
④種種解差別智(종종해차별지)
중생들이 이해를 함에는 갖가지로 차별(差別)하다는, 이해의 차별을 아는 지혜와,
⑤種種界差別智(종종계차별지)
중생들은 갖가지로 그 경계에 차별(差別)함을 (각각으로 한계가 있음을) 아는 지혜와,
⑥ 一切至處道智(일체지처도지)
일체의 모든 곳에 이르러가는 길을 아는 지혜와,
ㅡ조사스님의 말씀에, 중처편추(重處偏墜), 나무 토막을 떨어뜨려도 무거운 곳이 먼저 떨어지는 것과 같이,
우리도 업, 즉 인연을 어디에 많이 지었는가에 따라, 그 인연이 무거운 곳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⑦諸禪解脫三昧智(제선해탈삼매지)
모든 선정과 해탈과 삼매를 아는 지혜와
⑧宿命無碍智(숙명무애지)
숙명을 앎에 있어서 걸림이 없는 숙명무애지(宿命無礙智)와
⑨天眼無碍智(천안무애지)
걸림이 없는 천안의 천안무애지(天眼無礙智)와
⑩三世漏普盡智(삼세루보진지)
과거ㆍ현재ㆍ미래의 삼세(三世)의 번뇌가 모두 다하여 멸한 누진(漏盡)의 지혜이니
是爲十(시위십) 이러한 것이 10 가지입니다.
(이러한 얻기 어려운 난득법을 인연으로 하여서 발심하게 되는 것 입니다.)
ㅡ권학(勸學)의 10 가지 법(法)
佛子(불자) 此菩薩(차보살) 應勸學十法(응권학십법)
何者가 爲十(하자위십)
불자들이여, 이 보살들이 마땅히 배워야할 10 가지의 십법(十法)을 권하나니,
어떠한 법이 그 10 가지인가?
所謂(소위) ①勤供養佛(근공양불)
이른바 부지런히 부처님께 공양하는 근공양불(勤供養佛, 일체 생명, 주변의 모든 이)하는 것이며,
②樂住生死(낙주생사)
기꺼이 생사에 머무는 것을 즐겨할 것이며,
③主導世間(주도세간) 令除惡業(영제악업)
세상을 인도하여서 나쁜 악업(惡業)을 없애게 할 것이며,
④以勝妙法(이승묘법) 常行敎誨(상행교회)
수승하고 묘한 승묘법(勝妙法, 대승법)으로 항상 가르침을 행할 것이며,
⑤歎無上法(탄무상법) 위없는 무상법(無上法)을 찬탄하며,
⑥學佛功德(학불공덕) 부처님의 공덕을 배울 것이며,
⑦生諸佛前(생제불전) 恒蒙攝受(항몽섭수)
부처님의 불전(佛前)에 태어나서 항상 거두어 주심의 섭수(攝受)함을 받을 것이며,
(항상 부처님의 가르침의 불교를 배워서 부처님의 섭수를 받을 것이며)
⑧方便演說寂靜三昧(방편연설적정삼매)
방편으로 적정(寂靜)한 삼매를 연설하여서,
(보살행을 왕성하게 하려면 삼매만 즐겨서는 안 되지만, 때에 따라 삼매를 주장해야될 때에는 방편으로 적정삼매를 연설하며,)
⑨讚歎遠離生死輪廻(찬탄원리생사윤회)
나고 죽음의 생사윤회(生死輪廻)를 멀리 여의는 것을 찬탄하여야 하며,
⑩爲苦衆生(위고중생) 作歸依處(작귀의처)
고통을 받고 있는 중생들이 귀의할 수 있는 귀의처(歸依處)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何以故(하이고) 欲令菩薩(욕영보살) 於佛法中(어불법중) 心轉增廣(심전증광)
有所聞法(유소문법)에 卽自開解(즉자개해) 不由他敎故(불유타교고)
어떠한 까닭에서 그러한 것인가?
보살들로 하여금 부처님의 불법(佛法) 안에서 그 마음이 더욱 넓게 증광(增廣)되게 하여서
듣게 되는 바의 법을 따라 스스로 이해하여서 열리게 되어서,
다른 이의 가르침으로 말미암지 않게 하려는 연고인 것입니다.
(다른이의 가르침을 쫓지 않게 하려는 연고입니다.)
ㅡ이 육신은 태어난 그대로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무형의 마음은 수련하는 대로 바꿀 수 있습니다.
불법을 통해서 불법을 통해서 마음이 더욱 더 증광(增廣)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불교는 他力(타력)의 종교인가? 自力(자력)의 종교인가?에서,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아미타불을 부르는 그 이치는 자력(自力)이지만, 중생들의 근기가 나약하니까 타력(他力)으로 유도를 해서 결국은 자력(自力)으로 가게 하는 것입니다.
극락을 가도 자력으로 가고, 관세음보살의 영험을 얻어도 결국 자력으로 얻는 것기,
내가 ‘관세음보살을 생각하는 힘’ 그것은 내 힘인 것으로,
내가 ‘관세음보살을 염(念)하는 그 힘,’ 이라고 해석해야 되는 것입니다.
보문품에서 '염피관음력(念彼觀音力)하여서'가 아닌, ‘관세음보살의 힘을 생각해서’는 관세음보살의 힘 즉 어떤 제 3의 힘이 있어서 나에게 부여되는 것처럼 되는 것이고,
'염피관음력(念彼觀音力)으로'인 것입니다. 관세음보살을 염(念)하든지, 화두를 들든지, 법화경을 외우든지, 화엄경을 공부하든지, 무엇을 하든 간에 내가하는 것이고, 내가 한 그 힘으로, 라는 뜻이니까 결국은 자력(自力)의 이치인 것입니다.
그러나 불교 안에서 사실 他力이야기가 많아서, 죽을 때, “아미타불을 열 번 부르면 왕생극락한다.” 죽는 그 순간에 아미타불을 부를 수 있는 힘이라면, 혼자 실컷 극락가고도 남지요. 거기 부처님이 뭐 하러 와요? 부처님이 와도 염불하느라고 볼 시간도 없는데, 손을 내밀면 부처님이 그 손을 붙잡고 가는 것처럼 유혹 해놓은 것입니다.
사실 죽는 순간에 죽음까지도 초월할 정도로 염불을 강력하게 할 수 있으면, 그 사람은 부처님이 와도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그러한 이치가 자력(自力)인데, 근기가 약한 사람들을 위해서 타력(他力)을 많이 권하는 것일 뿐입니다ㅡ무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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