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 13권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李 通玄 장순용 번역
세계성취품(世界成就品)의 세 번째 경문을 따라 뜻을 해석하는 수문석의(隨文釋義)을 하면,
이 한 품에는 11 대목의 경문이 있으니, 처음 한 대목의 긴 행과 한 대목의 게송은 이 품의 서분(序分)이 되며며
나중의 10대목의 긴 행과 십단(十段)의 게송은 바른 교설의 정설(正說)이며, 나아가 화장세계해가 모두 이 품을 통해서 세계성취품이 되는 것이니 모두가 정설분(正說分)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처음의 서분(序分)을 여섯 단락으로 장과(長科)하면,
첫째, “이때(爾時)” 이하의 4행 반의 경문은 보현 보살이 10해(十海)를 관찰하는 분(分)이며,
둘째, “이렇게 관찰 (如是觀察)” 이하의 8 행 경문은 보현 보살이 대중들에게 고(告)하면서 제불(諸佛)의 열 가지의 십종지해(十種智海)가 열 가지 불가사의라는 것을 찬탄하는 것을 밝힌 것이며,
셋째, “건립연설해(建立演說海)” 이하 6행의 경문은 보현 보살이 부처님의 십종신업(十種身業)의 교화가 불가사의하다고 찬탄하는 것이며,
넷째, “모든 중생해(衆生海)를 용맹하게 조복하여 헛되이 지나가는 자가 없다(勇猛調伏諸無空過者)” 이하의 7행 경문은 보현 보살이 부처님의 불신(佛身)과 지혜(智慧)의 2업(二業)을 따라 법륜을 따라 굴리니, 성취한 대중이 부처님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 10불가사의임을 찬탄한 것이다.
다섯째, “이오 같은 등의 일체법 (如是等一切法)” 이하의 18행 반의 경문은, 보현 보살이 부처님의 신력(神力)을 타고서 부처님의 지업(智業)과 신업(身業)으로 중생을 교화하고 요익하게 하여서 중생해(衆生海)의 덕을 성취킨 것을 설함을 밝힌 것이니,
수많은 보살과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경계해에 들어가게 하였기 때문이다.
여섯째, 보현 보살이 게송을 설하여서 이전의 법을 거듭 천명함을 밝힌 것이니,
이 20행의 게송 중에서 두 행이 하나의 게송이 되는 것으로, 그 속에 20 가지의 뜻이 있어, 그 모두가 앞의 37 가지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것이, 이는 게송이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로 부처님의 불지혜(佛智慧)의 깊고 깊음을 밝힌 것이며,
둘째로 부처님의 신업(身業)이 근기에 따라 널리 응(應)하는 것을 밝힌 것이며,
셋째로 부처님의 어업(語業)이 널리 두루함을 밝힌 것이며,
넷째로 부처님의 불행(佛行)이 수 많은 찰토를 두루 장엄하는 것을 밝힌 것이며,
다섯째로 모든 부처님의 자비가 중생을 성숙시키는 것을 밝힌 것이며,
여섯째로 부처님께서 널리 출흥(出興)하심을 나타내어서 이익을 주는 것을 밝힌 것이며,
일곱째로 중생의 근기가 열등해서 미혹에 따름을 밝힌 것이며,
여덟째로 대심(大心)의 청정한 믿음이 견고한 자가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이며,
아홉째로 모든 부처님께서 능력을 주어야 비로소 알게 된다는 것을 밝힌 것이면,
열째로 아첨을 여의는 것과 넓고 깊은 자비지욕(慈悲志欲)으로서 능히 들어감을 밝힌 것이며,
열한 번째로 법계가 허공과 같은, 법계여허공(法界如虛空)함을 관찰하여서 좋은 이익을 얻음을 밝힌 것이며,
열두 번째로 나머지의 다른 도를 닦는 자는 감당하지 못하지만, 보현행을 닦는 사람만이 증득해서 들어갈 수 있음을 가려 내는 것이며,
열세 번째로 중생계가 광대할지라도 법륜(法輪)이 보편적으로 이를 수 있을 밝힌 것이며,
열네 번째로 보현이 스스로의 몸이 광대함을 보이는 것을 밝힌 것이며,
열다섯 번째로 대중들에게 권하여서 모공(毛孔)을 관(觀)하게 하는 것이며,
열일곱 번째로 보현의 행원(行願)이 가 없이 무변(無邊)함을 밝힌 것이며,
열여덞 번째로 보현이 행(行)을 구족한 것을 스스로 찬탄한 것이며,
열아홉 번째로 법안(法眼)과 지안(智眼), 법신(法身)과 지신(智身)의 광대함을 찬탄한 것이며,
스무 번째로 “이것은 부처님께서 행하신 바이니 반드시 들으라”고 하면서 찬탄한 것이다.
이상은 경문에 스스로 갖추고 있어서 알 수 있는 것이지만, 대략 요점이 이와 같음을 과(科)한 것이다.
두 번째의 정설분(正說分)에 열 대목의 경문이 있으니,
첫 대목의 긴 행에 18행 반의 경문이 있으며, 그 중에 6 가지의 대의 있으니,
첫째 보현 보살이 대중들에게 고(告)해서 이 법을 설하고자 함을 밝힌 것이며,
둘째 세계해(世界海)에 10 가지의 십사법(十事法)이 있어서, 삼세의 모든 부처님께서 다 같이 부연하심을 정설(正說)한 것이며,
셋째 세계의 형상과 체성에 10 가지가 있어서 광대하고 무진하다는 것을 거양하는 것이며,
넷째 세계가 이미 이루어졌으며, 현재 이루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에 10 가지의 인연이 갖추어져 있음을 정설(正說)한 것이며,
다섯째 여래의 신력(神力)과 법이 그러하여서 법여시(法如是) 등에 연유하는 것을 정설(正說)한 것이니, 그 뒤의 10사인연(十事因緣)이 이에 해당되는 것이다.
여섯째 부처님의 신력(神力)을 받아 게송을 설하는 것이니, 이러한 18행의 게송에서 거듭 앞의 행에서의 법을 읊어서 중생계(衆生界)가 넓고 많아서 광다(廣多)함과 불보살의 비원(悲願)이 덮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하여 행(行)이 광대하기 때문에 장엄한 국토가 광대하며,
중생의 업이 무량(無量)하기 때문에 보살행(菩薩行)이 무량하며,
보살의 신심(信心)이 광대하여 더러움을 여읜 까닭에 머무는 국토가 광명의 보배로서 청정하여져서 더러움이 없는 것이니, 이는 청정함과 더러움이 함께 거(居)하나 업의 나타남은 저마다 각각 다름을 밝힌 것이니, 경문에서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경전에서는
“보살이 모든 염원의 바다를 수행하여 널리 중생의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르나니,
중생의 심행(心行)이 광대하여서 무변(無邊)한 때문에 보살의 국토가 시방에 두루하다
(菩薩修行諸願海,普隨衆生心所欲,衆生心行廣無邊,菩薩國土遍十方)”고 하신 것이다.
둘째 대목의 “이때(爾時)” 이하의 9행 반의 경문과 44행의 게송은 세계의 의지하고 머묾의 세계의주(世界依住)를 밝힌 것이니, 경문에서 자세히 밝히고 있으며,
셋째 대목의 “이때(爾時)” 이하 6행의 경문과 20행의 게송은 세계의 차별형(差別形)이 업(業)에 연유함을 밝힌 것이니, 경문에서 자세히 밝히고 있으며,
넷째 대목의 “이때(爾時)” 이하 13행의 경문과 10행의 게송은 세계체(世界體)의 차별(差別)을 밝힌 것이며,
다섯째 대목의 “이때(爾時)” 이하의 11행의 경문과 20행의 게송은 세계장엄(世界莊嚴)의 차별(差別)을 밝힌 것이며,
여섯째 대목의 “이때(爾時)” 이하의 10행의 경문과 20행의 게송은 수행하는 바 방편의 원력 때문에 모든 세계해의 장엄을 출생하는 것이니, 업이 청정하기 때문에 장엄이 청정하고, 업이 오염된 까닭에 장엄이 오염되는 것을 밝힌 것이며,
일곱째 대목의 “이때(爾時)” 이하의 8행의 경문과 20행의 게송은 모든 세계에서 제불(諸佛)의 출현이 차별(差別)한 것은 중생의 업행(業行)과 수명의 길고 짧음에 의거해서 부처님의 출현이 같지 않다는 것을 밝힌 것이며,
여덟째 대목의 “이때(爾時)” 이하의 7행의 경문과 20행의 게송은 세계의 겁주(劫住)가 같지 않은 것이 업(業)에서 연유한다는 것을 밝힌 것이며,
아홉째 대목의 “이때(爾時)” 이하 14행의 경문과 10행의 게송은 겁(劫)이 업(業)에 따라 청정하기도 하고 더러움으로 전변하기도 한다는 것을 밝힌 것이며,
열째 대목의 “이때(爾時)” 이하 15행의 경문과 20행의 게송은 일체의 세계해에서 여래께서 출현하는 것에 차별이 없음을 밝힌 것이니, 하나하나를 경문에서 자세히 밝히고 있다.
이 1품으로서 앞에서의 37 가지의 질문에 답하는 것은, 그 뜻이 현재와 미래에서 보리심을 발하는 발보리심자(發菩提心者)로 하여금 부처님의 행하는 바를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니,
즉, 가없는 중생의 업해(業海)를 여래께서 보현행으로 널리 제도하심에 걸림이 없는 법성의 이지(理智)로서 초발심에서부터 대염원의 구름을 일으키어서 자비와 지혜로 널리 감싸나니, 바라밀해(海)를 통하여 찰해마다 그 몸이 나타나지 않음이 없으며,
그 행하시는 행(行)마다 사(事)를 같이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미진(微塵 , 티끌)과 호(毫, 털) 안의 찰해에도 영현(影現)이 중중(重重)하여 평등한 지신(智身)이 따라 들어가지 않음이 없지만, 법계의 체(體)로서는 가고 옴이 없는 것은, 법이 항상 그러한 법상여시(法常如是)한 것이니, 배우는 자로 하여금 본받게 하여서 잘못된 추구를 하지 않게 하고자 한 것이다.
이는 바로 대왕로(大王路)의 법이 항상 그러한 것과 같은 것이니,
그외에 다시 다르게 구하는 것이 있다면 편벽되는 것으로, 옳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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