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 13권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李 通玄 장순용 번역
3) 보현삼매품(普賢三昧品) ②
보현삼매품을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하는 것에서 둘로 나눈 것 중에서의 두 번째, 삼매의 명칭을 해석하는 석사매명(釋三昧名)에서 이 삼매의 명칭의 뜻을 셋으로 나눈다면,
첫째는 삼매의 명칭을 해석하는 석삼매명(釋三昧名)이며,
둘째는 삼매의 체용을 해석하는 석삼매체용(釋三昧體用)이며,
셋째는 삼매의 덕을 찬탄하는 탄삼매덕(歎三昧德)이다.
첫 번째의, 삼매의 명칭을 해석하는 석삼매명(釋三昧名)이란,
비로자나여래장신(毘盧遮那如來藏身)이란 명칭에 대한 해석으로,
비로(毘盧)는 광명을 말하는 것이며,
자나(遮那)는 두루두루 낱낱을 비추는 것을 말하며,
여래(如來)는 법성의 체(體)이며,
장신(藏身)은 온갖 법을 갈무리한 지혜이니. 이지(理智)의 갖가지 교행(敎行)의광명으로 중생의 근기를 비추어서 근기에 따라 이익주는 것을 밝힌 것으로, 경문에서 ‘덕을 찬탄하는 탄덕(歎德)’에서 자세히 밝히고 있다.
둘째, 삼매의 체용을 해석하는 석삼매체용(釋三昧體用)이란,
이 삼매의 체(體)라는 것은 법계의 근본지(根本智)로 체(體)를 삼고, 차별지(差別智)로서 대용(大用)을 삼으며,
또한 법계의 (根本智)로 체(體)를 삼고, 중생을 따르는 지혜로서 용(用)을 삼으며,
또한 삼매에 들어가는 입삼매(入三昧)로서 체(體)를 삼고, 선정에서 나오는 출정(出定)으로서 용(用)을 삼으며,
또 들어감도 없고 나옴도 없는 무출무입(無出無入)으로서 체(體)를 삼고, 들어감과 나옴을 함께하는 것으로서 용(用)을 삼고,
또 들어감과 나옴을 함께하는 것으로 체(體)를 삼으니, 뜻에 준거하여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대강의 요지(要旨)를 말한다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법칙에서는 선정에 들어가는 입정(入定)으로 체(體)를 밝히고,
나중에 선정으로부터 일어나서 10 가지 선정의 명칭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 용(用)이 되는 것이니,
10 가지 선정의 명칭은 모두 법계의 머묾이 없는 지혜인 법계무의주지(法界無依住智)의 성품으로서 체(體)를 삼으니,
이 체(體)의 명칭이 또한 수능엄정(首楞嚴定)인 것으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일체의 모든 부처님의 제불삼매(諸佛三昧)의 제지혜문(諸智慧門)과 더불어 체(體)가 되는 것이니, ‘덕을 찬탄하는 탄덕(歎德)’ 에서 자세히 밝히고 있다.
경전에서 “세계해선(世界海旋)에 따라 들어가지 않음이 없다”고 말한 것은 이 삼매의 용(用)이 일체 중생의 법에 두루 사무치는 것에 대한 명칭이기 때문이며,
해(海)는 광대하다는 뜻이며, 선(旋)은 매우 깊다는 뜻이니,
이 삼매의 체용(體用)이 광대하고 매우 깊고 다함이 없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과 보살과 일체 시방의 6도(六道) 중생들의 행(行)이 모두 변만(遍滿)함을 밝힌 것이므로, 이 삼매로서 앞의 37 가지의 질문에 남김 없이 답하는 것이다.
앞에서는 부처님의 신력(神力)으로 37 가지의 질문 가운데에서, "어떠한 것이 불지(佛地), 불해(佛海)이며, 부처님의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등인가"라는 질문에 답한 것이며,
지금은 보현의 삼매로서 37 가지의 질문 중에서 "어떠한 것이 보살의 행해(行海)이고 삼매해(三昧海)인가" 등의 질문에 답한 것이니,
부처님의 불행(佛行)과 보살행(菩薩行)의 체용이 서로 사무친다는 것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이는 부처님으로서 체(體)를 삼고 보현행해(普賢行海)로서 용(用)을 삼는 것이니,
이 체용으로 제법을 총괄하여 법마다 다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가 체(體)가 되고, 중생의 사업을 두루 능히 아는 것이 용(用)이 되나니,
그 이하에서 여래께서 보현에게 지혜를 주는 것은 보현의 지혜가 부처님의 근본지에 계합하여 다르지 않기 때문에, 후에 믿는 자로 하여금 자기 스스로의 지혜와 부처님의 근본지가 일체(一體)로서 둘이 아님을 의심하지 않게 함을 밝힌 것이다.
또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손으로 정수리를 만진' 것은 끌어들여 인가(忍可)하는 것을 밝힌 것이며,
'보현이 삼매로부터 일어났다(보현종삼매개 普賢從三昧起)'고 말한 것은 선정의 체(體)가 근기를 따라 작용하는 곳에 그가 다시 근기에 의거해 이익을 얻는 것을 ‘일어난 기(起)’라 칭함을 밝힌 것이니, 그 작용이 다함이 없지만 대략 10 가지만을 들어서 다함 없음을 나타낸 것이니, 그 나머지 뜻은 경문에서 자세히 밝히고 있으며,
그 대의는 부처님의 근본지가 선정의 체(體)요 보현의 행이 용(用)임을 밝힌 것이다.
4)세계성취품(世界成就品)
이 품을 해석함에 있어서 대략 3 가지의 문으로 나누면,
*첫째는 품의 명목(名目)을 해석하는 석품명(釋品名)이며,
*둘째는 품의 온 뜻을 해석하는 석품내의(釋品來意)이며,
*셋째는 경문에 따라 뜻을 해석하는 수문석의(隨文釋義)이다.
첫째, 품의 명목(名目)을 해석하는 석품명(釋品名)을 설명한다면 다음과 같으니,
세계해(世界海)의 의지하고 머무는 의주(依住)의 형상(形相)과 고락(苦樂)과 청정과 오염됨의 정예(淨穢)가 모두 중생 스스로의 자업(自業)의 과보로 장엄한 것으로, 다른 것을 말미암아 있는 것이 아니며,
부처님과 보살의 세계해는 대원력(大願力)에 의거하고, 자체의 청정한 법성력(法性力)에 의거하고,
모든 바라밀과 모든 행해(行海) 등의 자체청정력(自體淸淨力)에 의거하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대자비의 지력(智力)에 의거하고,
불가사의한 변화력(變化力)으로 성취한 것임을 밝히고 있기 때문에 세계성취품(世界成就品)이라 칭하는 것이다.
둘째, 품이 온 뜻을 해석하는 석품내의(釋品來意)에는 5 가지의 대의(大意)가 있으니,
첫 번째, 앞의 세주(世主)가 물은 37 가지 질문의 불해(佛海)와 중생해(衆生海)와 바라밀해(波羅蜜海)에 답한 것이니,
이 품에서 업과보(業果報, 업의 과보)를 보이고 법과보(法果報, 법의 과보)를 보여서 앞의 질문에 대답하기 때문이니,
이는 앞에서는 부처님의 불광명(佛光明)과 신력(神力)으로 답하였지만,
이 품에서는 부처님의 행해(行海)와 부처님의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와 바라밀해(波羅蜜海)와 변법계해(遍法界海)와 중생업행해(衆生業行海)를 보이는 까닭에 37 가지 질문에 모두 일시에 답함으로써, 대중해(大衆海)로 하여금 부처님의 행한 바를 깨달아서 보현보살의 행에 들어가게 함을 밝힌 것이니, 그러한 까닭에 그 이름을 불화엄경(佛華嚴經)이라 호칭하는 것이다.
두 번째, 모든 현재와 미래에서 처음 보리심을 발한, 시발보리심자(始發菩提心者)로 하여금 부처님의 행한 바의 불소행(佛所行)과 보살행해(菩薩行海)와 불보살의 대자비해(大慈悲海)와 능히 보편적인 법계해(法界海)와 중생의 행업해(行業海)를 알게 하고 이익즐 줌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구경안(究竟岸, 궁극의 언덕)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이미 완전히 보고 난 뒤에 이를 본받아 부처님의 행을 배우게 되기 때문에 처음 발심한 자로 하여금 자비와 지혜가 원만해서 행과 이해의 행해(行解)가 잘못되지 않게 하고자 하는 까닭이다.
세 번째, 처음 발심한 시발심보살(始發心菩薩)로 하여금 중생 업보의 동이(同異)와 차별(差別)이 마음으로 인하여 지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하기 때문이다.
네 번째, 처음 발심한 시발심자(始發心者)로 하여금 중생계의 광대함이 법계(法界)ㆍ허공계(虛空界)와 동등해서 마치 그림자와 같이 서로 상입(相入)하여 들어가는 것이 중중무진하여서 의지하거나 머묾이 각각 다름에도 불구하고 부처님과 보살의 행이 모두 충만하다는 것을 알게 하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처음 발심한 시발심(始發心) 보살로 하여금 모든 불보살의 경계해(境界海)와 중생 경계해(境界海)의 동일성이나 차이성을 얻을 수 없음을 알게 하기 때문이며,
중생의 스스로의 자업(自業)이 전변(轉變)함에 따라서 찰해(剎海)가 전변하기 때문이며,
자기 스스로의 자업(自業)의 성괴(成壞, 생성과 파괴)를 따라 찰해가 생성하고 파괴됨을 알게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온갖 인연을 쓰는 까닭에 이 품이 반드시 온 것으로, 처음 배우는 자를 개발하게 하는 것이니,
만약 이 품이 없다면, 초심(初心)의 보살이 어떻게 여래께서 섭중생(攝衆生)하여 다스림과 여래의 행문(行門)과 아울러 중생의 행업(行業)과 세계의 넓거나 좁은 광협상(廣狹相)을 알 것인가?
만약 알지 못한다면 무엇을 의지하여서 발심하여 부처님께서 대자비로 널리 구제하는 것과 원행(願行)으로 널리 제도함을 얻을 수 있겠는가?
이러한 뜻이 있는 까닭에 아래의 게송에서 “모든 아첨과 기만을 여의어서 마음이 청정하고(離諸諂誑心淸淨),
항상 자비를 즐기면서 성품이 환희하며(常樂慈悲性歡喜),
의지의 욕구가 광대해서 깊이 믿는 사람이(志欲廣大深信人)
이 법을 들으면 기뻐하는 마음을 낸다(彼聞此法生欣悅)
보현의 모든 원력의 땅에 안주하고(安住普賢諸願地),
보살의 청정한 도를 수행하고(修行菩薩淸淨道),
법계와 허공계를 관찰해야(觀察法界虛空界)
비로소 능히 부처님께서 행하는 곳을 안다(此乃能知佛行處)”고 한 것이다.
만약 중생계(衆生界)와 법계(法界)와 불계(佛界)와 보살경계(菩薩境界)와 허공계(虛空界)가 둘이 아닌 무이(無二)이고 다 함이 없는 무진(無盡)이라서 마치 그림자와 같이 겹겹이 의지하고 머문다는 것을 설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발심자(發心者)가 설령 이승의 도에 들어가지 않고 보살행을 닦는다 할지라도 그 권교(權教, 방편의 가르침)의 보살의 마음이 항상 염정(染淨)을 구분하고 한계와 장애가 있어서 부처님의 경계에 들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자불(自佛)과 타불(他佛)과 국찰(國刹, 국토, 찰토)의 한계가 있고 가고 오는 의지처가 있는 것이니,
이는 삼승에서 설한 ‘정토가 타방에 있어서 보살이 그곳에 나기를 원하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이 품을 설한 뜻은 처음 보리심을 발한 초발보리심자(初發菩提心者)로 하여금 중생의 경계와모든 부처님 경계의 광대한 상(相)과 걸림없이 중중(重重, 겹겹)으로 겹쳐서 다함이 없는 무진상(無盡相)과 부처님과 보살의 원행(願行)이 두루 감싸면서 이롭게 하여 티끌만치도 유실됨이 없다는 것을 알게 하고자 하는 때문에 이 품이 반드시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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