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 12권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李 通玄 장순용 번역
대중이 둘러싸고 항상 부처님을 따르는 대중들 가운데에서 보현보살로부터 대자재천에 이르기까지의 41중(十一衆)을 두 가지의 뜻으로 나누겠으니,
그 하나는 과(果)를 나타내어서 인(因)을 이루어 지위를 밝힌 분(分)으로, 앞에서 열거한 대중들이 해당되며,
다른 하나는 지위로부터 법의 닦아 나아가는 종위거법진수(從位擧法進修)를 들어서 다 함께 이익을 얻음에 의탁한 분(分)이니,
향하(向下, 아래)에서부터 보현과 해월광(海月光)에 이르기까지의 모두가 해당되는 것이다.
이제 제2권의 첫머리 “이때 여래의 도량에 온갖 대중이 운집하다” 이하부터
제5권의 “해월광대명보살”에 이르기까지 41중(衆)은 이 지위로부터 법을 닦아 나아가는 종위거법진수(從位擧法進修)를 들어서 다 함께 이익을 얻음에 의탁한 분(分)이다.
이 가운데에 도합 50중(五十衆)이 있으니, 보현 등의 열 보살이 등각의 11지(十一地) 법문을 하는 것이 이에 해당되며, 열 개가 서로 사무치면서 스스로 10중(十衆)을 갖추고 있으며, 일인(一人)이 십(十)을 갖추어서 모두 50중(五十衆)이 되는 것이다.
아래 경문에서 이익을 얻는 획익분(獲益分) 중에서 “들어가면 바로 부처님의 지견과 같아지다, 입즉동불지견(入卽同佛知見)”이라 한 것은 나중에 배우는 후학자(後學者)와 더불어 양식(樣式)을 만들어서 본받게 하기 위한 것이니,
깨닫지 못하면 범부(凡夫)요, 깨달으면 부처님의 불지견(佛知見)과 같기 때문에 “초발심 때에 문득 정각을 성취한다는 초발심시변성정각(初發心時便成正覺)”이라 칭하는 것이다.
이하의 신(神)과 천(天)이 이익을 얻는, 신천획익(神天獲益)’ 에 각각 20행의 게송이 있으니,
모든 게송의 첫 2행은 부처님의 덕을 찬탄한 것이며,
그 뒤의 18행(十八行)의 모든 3구(句)는 부처님을 찬탄한 것이며,
1구는 스스로 부처님과 더불어 지견이 같음을 찬탄한 것이다.
그 예를 든다면 이와 같이 수시(隨時, 때를 따라)로 경문을 분류하고, 수시(隨時, 때를 따라)로 찬탄한 것이니, 번거롭게 다시 해석하지 않겠다.
오직 보현보살 한 분만이 홀로 10법(十法)에 들어간 것은, 보현의 대중은 하나의 지위가 온갖 행에 널리 두루함을 밝힌 것이며,
해월광(海月光)의 대중은 다만 부처님의 덕이 자기가 들어간 법과 서로 비슷하다는 것을 찬탄한 것일 뿐이니,
이 때문에 게송에서 다시 따로 스스로의 덕을 찬탄하지 않은 것이다.
보현의 대중 가운데에서 정덕묘광(淨德妙光)보살을 덧붙였으니, 이 보살은 문수사리(文殊師利)의 다른 칭호이다.
문수사리는 한역하면 묘덕(妙德)이며, 또 법화경(法華經)에서의 과거 호칭은 묘광(妙光)이다.
묘덕(妙德)과 묘광(妙光)은 뜻이 서로 비슷하니, 덕(德)으로 광명을 삼아서 능히 어둠을 타파해서 밝음(明)을 발하기 때문이다.
이제 보현의 대중 중에서 법을 나타낸 것은 인과(因果)의 이지(理智)와 만행(萬行)의 원융(圓融)함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며,
보현이 홀로 열 가지의 이익을 얻은 것은 하나가 곧 일체하는 일즉일체(一卽一切)라는 것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며,
하나와 많음의 일다(一多)가 자재하고, 늦고 빠름의 연촉(延促)이 자유로움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니,
이는 총체적으로 포괄하는 뜻이다.
“이때 여래 도량의 대중들” 이하부터 26행의 경문이 있는데, 그 의의에 따라 둘로 나눈다면,
*첫 번째는 처음 ‘이시(爾時, 이때)’ 이하부터 11행(十一行)의 경문은 대중이 이미 운집한 것을 밝힌 것으로서,
다시 이 대목의 뜻을 다섯으로 나눈다면,
첫째는 대중의 운집을 진술한 것이며,
둘째는 부류(部類)가 저마다 각별(各別)한 것을 진술한 것이며,
셋째는 모두가 온갖 덕을 찬탄하는 것이며,
넷째는 본래가 부처님의 교화로 인한 것임을 밝힌 것이며,
다섯째는 지금은 뛰어난 승해력(勝解力)으로 부처님의 앎인, 불소지(佛所知)에 들어감을 밝힌 것이다.
*두 번째는 “이른바 묘염해(妙焰海) 대자재천왕” 이하부터 15행(十五行)의 경문이 있는데 이 대목의 뜻은 둘로 나눈다면,
첫째는 천왕이 이익을 얻음을 밝힌 것이며,
둘째는 천왕이 위의(威儀)를 타고 게송을 설함을 밝힌 것이다.
또 이 20행(二十行)의 게송에 두 가지의 뜻이 있으니,
첫째 두 행의 게송은 순수하게 부처님의 덕을 찬탄한 것이며,
둘째 그 나머지 18행의 게송의 세 구절은 부처님의 덕을 찬탄한 것이며,
한 구절은 스스로 부처님과 더불어 앎이 같은 여불동지(與佛同知)함을 찬탄한 것이다.
그 이하는 마찬가지이지만, 오직 보현 보살만이 약간 다르니 앞에서 이미 서술한 바와 같다.
이상으로 모든 대중은 이와 같으니, 뜻으로 경문을 분류하고 뜻에 따라 찬탄한 것이다.
화엄경의 가르침의 교문(教門)이 너무 크고 넓어서 번거롭게 글을 쓰지 않는 것이니, 뜻을 얻으면 되는 것이다.
이 초회(初會)에 있는 47(四十七) 대중 가운데에서 이전의 일곱 대중은 앞에서 이미 다 풀이한 것이다.
여래 법좌 안의 대중을 경전에서는 “여래 사자좌(師子座)의 온갖 아름다운 묘화(妙華)와 윤대기폐(輪臺基陛)와 모든 호유(戶牖)와같은 일체 장엄구(莊嚴具)들 하나하나마다 불찰미진수(佛刹微塵數)의 보살마하살이 나왔다”고 설하고 있는데,
이 대목의 의의를 두로 나눈다면,
첫째는 대중이 온 뜻을 서술하는 것이며,
둘째는 경문을 장과(長果)하는 것이다.
첫째, 대중이 온 뜻을 서술한다는 것에 세 가지의 뜻이 있으니,
하나는, 모든 보살이 옛 부처님 과거 행의 고불구행(古佛舊行)이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며,
둘은 지금의 부처님께 계합하는 금불계동(今佛契同)을 밝히는 것이며,
셋은 옛과 지금이 둘이 아닌, 고금불이(古今不二)를 밝히는 것이니,
이는 앉아 있는 법좌가 옛의 고(古)와 합치하며, 행하는 바의 보살행이 옛(舊)을 의지함을 밝히기 때문이다.
가령 그 아래의 게송 중에서 “모든 부처님께서 깨달은 것을 내가 이미 알았다, 제불소오아이지(諸佛所悟我已知)”고 하는데, 항상 법신으로 법좌의 체(體)를 삼고, 보현의 만행으로 장엄을 삼고, 작위 없는 무작대비(無作大悲)의 지혜로 법좌 위의 부처님을 삼는 것이니, 전불(前佛, 이전의 부처님)과 후불(後佛, 나중의 부처님)이 모두 이와 똑같아서, 지금의 부처님이 옛 자취와 계합함을 밝혀서 여우와 같은 의심을 평정하게 하고자 하는 때문에 반드시 오는 것이니,
이를 여래의 자행(自行)이 옛과 더불어 같다고 칭하는 것이라서 인중(因衆, 이 대중은 옛부처님이 행한 바의 대중으로, 지금의 부처님도 이를 의지하여 행하기 때문에 인중이라 칭하는 것이다.)이 법좌의 체(體)가 되는 것이 법계(法界)이며,
행하는 바의 소행(所行) 또한 법계(法界)이다.
그리하여 이 체(體)와 행(行)이 무애자재하기 때문에 법좌의 몸이 정보(正報)이며
법좌 위의 장엄은 행(行)이 초래한 의보(依報)이니,
지금 또한 본행(本行)의 과보로 얻은 과(果)로부터 본자행(本自行)의 인보살(因菩薩)들이 출현하는 것이다.
이 또한 인과가 둘이 아닌 인과불이(因果不二)의 체(體)를 밝히고 있는 것이니,
법계품(法界品)에서는 여래의 사자좌가 법계에 두루하면서 법좌의 체(體)가 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 경문을 장과(長科)한다는 것은 “이때 여래의 사자좌, 이시여래사자좌(爾時如來師子座)”로부터 29행의 경문이 있는데,
이 경문 속에 일곱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 법좌 위의 장엄이 출중(出衆)함을 밝힌 것이고,
*둘째, 출현한 대중들의 명칭을 열거하는 것이고,
*셋째, 도래한 대중이 공양을 일으키는 것이고,
*넷째, 그 대중이 부처님을 둘러싸고 공경을 일으키는 것이며,
*다섯째, 공경을 모두 끝내고는 법좌에 올라가서 앉는 것이며,
*여섯째, 도래한 대중의 덕을 찬탄하는 것이고,
*일곱째, 위의를 입고 게송을 설하는 것이다.
이 이하부터는 10보살이 제각각 20행의 게송을 설하면서 여래께서 성도(成道)하신 복과 지혜와, 의보(依報)와 정보(正報)ㆍ그리고 과거에 닦은 인(因)을 찬탄한 것으로,
이는 후세의 명철한 사람이 경문과 그 뜻에 따라 찬탄함에 맡겨서, 다시 번거롭게 풀이하지 않겠다.
그 가운데의 이 한 대목은 지금의 부처님께서 고행(古行, 옛행)에 합치하고 고행(古行, 옛행)이 지금의 부처님과 합치하는 것을 밝힌 것이니,
법좌 밖의 보현 대중은 부처님의 이타행(利他行)이며
법좌 내의 대중은 부처님의 불자행(佛自行)으로 계합한 보현의 대중임을 밝힌 것이다.
이 보현 대중은 고금의 모든 부처님의 도(道)가 같아서 다시 이로(二路, 두 길)이 없기 때문에 중생이 타는(乘) 것이 바로 부사의승(不思議乘)이고, 여래승(如來乘)이고, 최승승(最勝乘)이고, 무상승(無上乘)을 타고 도량에 도달한 것을 칭하는 것이니,
이는 일체법으로서 도량(道場)을 삼는 것이다.
그리하여 법계(法界)로써 도량의 땅으로 삼고,
모든 바라밀로서 인공(人功)을 삼는 것이니,
일체의 더러움을 다스리면서도 본래 스스로 청정한, 본자정(本自淨)이기 때문이며,
무명을 다스려 근본지를 성취하기 때문이다.
교리의 경문이 너무나 넓어서 대체적인 뜻만을 말하는 것이니, 경문을 따라 찬탄하는 것은 후대의 현자에게 맡기노라.
이 열 개의 게송 중에서 향하(向下)로는 부처님의 10바라밀과 10지를 찬탄한 것이 20행의 게송이 있고
그 나머지도 모두 20행이니 이에 준거해서 알아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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