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11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通玄 장순용 번역

 

주가신(主稼神)에서 한 대목의 뜻을 넷으로 나누면,

첫째 대중의 수를 드는 거중수(擧衆數)이며,

둘째 지위에 의탁해서 법을 나타내는 기위표법(寄位表法)이며,

셋째 명칭을 해석해서 행과 짝을 짓는 석명배행(釋名配行)이며,

넷째 수를 매듭짓고 덕을 찬탄하는 결수탄덕(結數嘆德)이다.

 
*첫째, 대중의 수를 드는 거중수(擧衆數)란,
첫 행의 한 구절이 이에 해당되며, 

 

*둘째, 지위에 의탁해서 법을 나타낸다는 기위표법(寄位表法)은, 주가신으로써 자량위(資糧位) 중 10행위(十行位)를 나타내는 것이다.

  

*셋째, 명칭을 해석해서 행과 짝짓는 석명배행(釋名配行)을 설명한자면 다음과 같으니, 
소위 첫 번째의 유연승미(柔軟勝味) 주가신은 환희행(歡喜行) 중 단(檀)바라밀을 주재하는데,

이 단(檀) 속에 두 가지의 뜻이 있으니, 하나는 법단(法檀)이고, 다른 하는 사단(事檀)이다.

법단(法檀)이란, 법을 구하러 오는 이를 보면 환희하면서 싫어함이 없기 때문에 유연승미라 이름붙이는 것이니, 법의 맛인 법미(法味)로서 사람을 도와서 그 마음을 조복하게 하기 때문이다. 

사단(事檀)이라는 것은 주가신이 이에 해당되는데, 후직신(后稷神)과 같은 무리이니, 신(神)으로서 오곡을 도와 그 뛰어난 맛을 내게 하여서 중생들을 이롭게 하기 때문에 시방세계에 두루하면서 처소에 따라 명칭이 다른 것이다.

 
두 번째의 시화정광(時花淨光) 주가신은 바로 환희행의 단바라밀 중 계(戒)바라밀이니,

근기를 알아서 행을 같이함을 시화(時花)라 이름하는 것이며,

성계(性戒)의 개발을 얻게 하는 것을 정광(淨光)이라 이름한 것이니, 이 또한 세간의 오곡의 꽃이 때(時)를 의거하는 것을 도움으로써 빛과 깨끗함의 광정(光淨)을 개발하게 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색력용건(色力勇健) 주가신은 단바라밀 중 인(忍)바라밀을 밝힌 것으로,

법인(法忍)의 공성(功成)이 이루어짐을 용건(勇健)이라 이름한 것이며,

인(忍)에 따라 과(果)를 성취하기 때문에 색력(色力)으로 몸을 장엄하게 됨을 밝힌 것이다.

모든 힘 중에서는 바람의 풍력(風力)이 최고이며,

모든 행에서는 참는 인력(忍力)이 최고이니, 마음을 흔드는 이쇠훼예칭기고락(利衰毁譽稱譏苦樂)의 팔풍(八風)에 부동(不動)하여 움직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능히 행을 따라 인(忍)을 성취하므로 용건(勇健)이라 이름한 것이니,

선재동자의 10행 중 제3행(第三行)의 구족(具足)우바이가 바로 그 행을 나타내는 것이니,

인(忍)이 모든 제행(諸行)의 과(果)가 됨을 밝히고 있기 때문에 구족(具足)이라 이름한 것이다.

ㅡ八風(팔풍)  利ㆍ衰(이쇠)  나에게 이로운 利(이)와 손해 보거나 쇠퇴하는 쇠(衰)는 잘 될 때와 잘 되지 않고 기울어지는 것. 

  毁ㆍ譽(훼예) 칭찬과 비방, 稱ㆍ譏(칭기) 멀리에서나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비방이나 칭찬,                 

  苦ㆍ樂(고락)고통과 즐거움 

  
네 번째의 증장정기(增長精氣) 주가신은 단(檀, 보시)바라밀 중 정진(精進)바라밀을 주재하나니,

정진력(精進力)과 자량법력(資糧法力)과 대자대비력(大慈大悲力)으로 생사의 바다에 처해 중생을 교화하면서도 게을리함이 없고 스스로 구하는 바도 없기 때문에 증장정기주가신이라 이름하는 것이니,

이는 정진력이 없으면 일체의 모든 행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의 보생근과(普生根果) 주가신은 단(檀, 보시)바라밀 중 선(禪)바라밀을 주재하나니,

법성(法性)으로 선(禪)을 삼아서 만행의 이지묘혜(理智妙慧)를 낳는 것을 보생근과(普生根果)라 이름하며,

법성의 이(理)로 선(禪)을 삼아서 지혜와 만행을 낳기 때문에 근(根)이 그대로 과(果)인 것이다.

즉, 근(根)이 과(果)로부터 생겨서 근본(根本)과 지말(支末)이 다르지 않기 때문에 불과와 보현행의 과(果)가 서로 자량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는 과(果)로부터 근(根)이 생기고 근(根)으로써 과(果)를 자량함을 밝힌 것이다.

 

여섯 번째의 묘엄환계(妙嚴環髻) 주가신은 단(檀, 보시)바라밀 중 혜(慧)바라밀을 주재하는 것으로, 이는 오묘한 슬기의 묘혜(妙慧)로 행(行)을 장엄하고, 다시 행(行)이 혜(慧)를 장엄하여, 행과 혜(慧)가 서로를 장엄하여서 장차 중생을 이롭게 함으로써 그 의과(依果)가 상투를 고리처럼 틀게 하여 그 머리를 장엄하게 하는 것을 밝힌 것이다.

상투를 드리우는 것이 마치 고리와 같은 것은 이해와 행의 해행(解行)이 원만함을 밝힌 것이다.


일곱 번째의 윤택정화(潤澤淨花) 주가신은 단(檀, 보시)바라밀 중 방편(方便)바라밀을 주재하는 것으로,

이 지위는 대자비를 성취하기 때문에 윤택한 정화(淨花, 이해와 실천의 법)을 개발시킨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이것은 단方便바라밀 중의 방편문의 대자비를 성취하기 때문이다.

  

여덟 번째의 성취묘향(成就妙香) 주가신은 단(檀, 보시)바라밀 중 원(願)바라밀을 주재하는데,

10행의 제8위(第八位) 중 8지(八地)의 지혜(智)가 무공용(無功用)인 것과 같으니,

이것은 오분법신향(五分法身香)을 모두 성취하기 때문이며,

청정한 지혜의 정지(淨智)가 근기를 알아, 그 근기를 의거해 가르침을 시설함으로써 계(戒)ㆍ정(定)ㆍ혜(慧)의 묘향(妙香)을 성취하기 때문이다.


아홉 번째의 견자애락(見者愛樂) 주가신은 단(檀, 보시)바라밀 중 역(力)바라밀을 주재하나니,

이는 법사(法師)를 성취하여서 법력(法力)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으며,

법을 듣고 보아서 견문법자(見聞法者)가 모두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밝힌 것이다.

 
열 번째의 이구정광(離垢淨光)주가신은 단(檀, 보시)바라밀 중 지(智)바라밀을 주재하나니,

이는 지혜로써 능히 자타의 허물(垢)을 여의기 때문에 제법(諸法)으로 관정(灌頂)을 받는 것이 10주와 10지 중의 관정위(灌頂位)와 같은 것이다.


*넷째, 수를 매듭짓고 덕을 찬탄하는, 결수탄덕(結數嘆德)은 경문 그대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상으로 열 분의 주가신 모두는 환희행(歡喜行) 가운데에서 단(檀, 보시)바라밀의 10바라밀 자량행(資糧行)으로부터 호칭을 이룬 것이니, 이하의 예도 그러하며 그 법칙은 앞에서 서술한 것과 같은 것이다.

  

20 분의 주하신(主河神)은 요익(饒益)의 행이니, 계(戒, 지계)바라밀 중에서 10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다.


첫 번째의 보발신류(普發迅流) 주하신은 10행 중에서 계(戒, 지계)바라밀 가운데 단(檀, 보시)바라밀 자량행(資糧行)으로부터 호칭을 이룬 것이니, 이하의 예도 그러하며 그 법칙은 앞에서 서술한 것과 같다.

만약 그러함으로써 본다면 맹자의 어머니가 이에 해당되나니, 가령 선재동자의 요익행(饒益行) 중에서의 선지식은 강가에서 1만 명의 동자 중 석천(釋天, 자재주동자 自在主童子)을 수장(首長)으로 삼아서 모래 장난을 하고,

강으로서 행으로 삼아 계체(戒體)를 주재하면서 요익함을 밝힌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이 초회(初會)에서는 하신(河神)이 계체(戒體)가 되어서 전후가 서로 비슷한 것이니,

보발신류(普發迅流)는 일승(一乘)의 종성(種性)에 응함을 밝힌 것이다.

ㅡ맹자가 어렸을 때 이웃집에서 돼지를 잡는 광경을 보게 되었는데, 맹자가 어머니에게 돼지 잡는 이유를 물으니 어머니는 엉겁결에 “너를 주려고 잡는다”고 대답하고는, 나중에 생각해 보니 말을 잘못 한 것 같아서, 어머니는 일부러 돼지 고기를 사다가 맹자에게 먹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맹자의 어머니는 어린이를 속이지 말라는 교훈을 지킨 것이다.

 

두 번째의 보결천간(普潔泉㵎) 주하신은 3승(三乘)과 인간(人天)과 천상(天) 등의 선법(善法)에 응함을 밝힌 것이니,

이는 10행 중 계(戒, 지계)바라밀 가운데 계(戒, 지계)바라밀을 주재하는 것이다.

이하의 모든 신들도 행에 의거해서 명호를 세운 것이니, 이름의 뒷 글자의 뜻으로서 앞에서 서술한 것과 짝지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10행 중의 계체(戒體)라는 것은 석천(釋天)동자가 산수법(算數法)과

상염자법(相黶子法, 염자(黶子)는 얼굴 위의 검은 점이고, 이 검은 점으로 관상을 보는 것이 상염자법이다.)과

음양오행 등으로, 사람을 이롭게 하는 교묘한 술법을 10행 중의 계체로 삼은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그 명칭을 보결천간(普潔泉㵎)이라 한 것이니, 만약 이렇지 않다면 행이 원만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인천(人天)과 3승을 모두 교화함에 있어서 교묘한 술법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이 바로 보결(普潔)의 뜻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세 번째의 주해신(主海神)은 거스름이 없는 무위역행(無違逆行)을 밝히면서 인(忍, 인욕)바라밀을 밝히고 있는데,

마치 바다가 온갖 흐름을 능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과 같이 거스름이 없는 무위역(無違逆)한 것이다.

인(忍, 인욕)바라밀을 주재하는 데 10개의 해신(海神)이 있는 것은 바로 인(忍, 인욕)바라밀 중 10바라밀을 밝힌 것이니,

저마다의 이름의 뒷 글자의 뜻에 따라서 앞에서 서술한 것과 같이 짝지어 보면 알 수 있지만 대의(大意)는 이러한 것이다.

10행 중의 인(忍)은 법성(法性)의 대자비로 인(忍)의 체(體)를 삼으므로 마치 바다가 윤택함을 갈무리하면서도 그 하류(下流)에 처해서는 일체를 모두 수용하는 것과 같이, 능히 일체의 무명(無明)과 높은 오만과 생사의 흐름을 모두 받아들여서 그 모두를 법류(法流)로 삼음에 있어서 장애가 없기 때문에 거스름이 없는 무위역행(無違逆行)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마치 선재동자가 거스름이 없는 무위역행(無違逆行) 중에서 선지식(善知識)은 남쪽 지방에 성(城)이 있으니 그 이름을 해주(海住)라 하고, 우바이가 있으니 그 이름을 구족(具足)이라 하며, 깨끗한 흰 옷을 입고 머릿결을 드리운 것은 자비로운 모습의 자인모(慈忍貌)이니, 구족하게 인(忍)을 성취해서, 그 행(行)마다 완전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구족(具足)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해신(海神)이란 여신(女神)이니, 자비롭고 부드러워서 행(行)에 처해서도 능히 참기 때문에 그 마음이 바다와 같아서 복과 지혜가 구족함으로써 중생을 요익케 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이러한 연고로 인(忍)이 만행 중의 과(果)가 되어서 능히 온갖 흐름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네 번째의 주수신(主水神)은 꺾이지 않는 무굴요행(無屈撓行)을 밝힌 것으로써 정진(精進)바라밀을 주재하며, 물의 수체(水體)가 모든 더러움을 정화시킬 수 있음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지위의 보살이 법성(法性)의 물로 항상 부지런히 정진하여 중생을 교화하되, 그 하나 하나의 근기를 알아서 이롭게 하면서도 그 마음을 꺾지 않는 것이, 마치 중생을 윤택케 하는 물이 사물에 따라 이로움을 주면서도 저마다 그 처소를 얻게 할 뿐, 꺾지 않고 이롭게 하는 무굴요(無屈撓)하는 것과 같음을 밝힌 것이다.

 
그 중의 열 분의 수신(水神)은 바로 정진(精進)바라밀 중의 10바라밀이니, 그 만행이 마치 물과 같아서 일을 같이 하여서 동사(同事)하면서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을 밝힌 것이다.

그 각각의 이름 뒷 글자의 뜻을 따라 짝을 지어 볼 것이니, 항상 10행 중의 정진(精進)으로 체(體)를 삼는 것이다.

가령 10주 중의 정진문(精進門)은 법성(法性)을 부지런히 관찰(觀)하는 것을 즐기는 것으로써 체(體)를 삼고 있다면, 이 10행 중의 정진문은 세간에 처해 중생을 이롭게 하면서도, 행(行)을 통해 사물을 윤택하게 하는 것을 체(體)로 삼고 있는 것이다.

각각의 지위는 해당되는 지위가 행을 주재하는 바를 따라 체(體)가 되고, 그 나머지의 아홉은 행을 주재하는 체(體)에서 별(別)을 짓기 때문에, 한 쪽으로만 이해하여서 체의(體意)에 맞지 않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가령 10회향 중의 정진바라밀은 이지(理智)와 대비(大悲)를 원융하여서 균등하게 함으로써 자재로운 것이니,

이와 같이 5위가 하나를 얻으면, 곧 5위 모두가 함께 같아지지만, 관습의 생소함과 익숙함 때문에 반드시 순서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차제(次第, 순서)를 세우긴 하였지만 법계의 지체(智體)는 먼저와 나중이 없는 것이니,

이는 먼저와 나중이 없는 가운데의 차제(次第, 순서)이며,

일성(一性)의 차별 없음 가운데에서의 동이(同異, 같고 다름)인 것이니, 정견(情見)으로 먼저와 나중이 있다는 견해를 지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실제로 논하자면, 초발심주(初發心住)에서 한 방울의 물이 큰 바닷물 속에 들어가면 전체적으로는 바다의 체(體)와 같아져서, 모든 용과 물고기와 보배가 다 그 속에 있는 것과 같지만,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는 가르침의 그물이나 통발이나 덫을 갖추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예컨대 명자(名字)나 언구(言句)를 대나무에나 비단에 쓰게 되면 먼저와 나중의 뜻(義)이 생기는 것과 같은 것다. 

ㅡ그물이나 통발이나 덫 등은수렵의 도구이며, 이 도구들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방편에 비유한 것이고,

ㅡ고대에는 종이가 없었기 때문에 대나무나 비단에 글을 썼다.

 

도를 체득한 체도자(體道者)가 밝게 조감하는 것은 마치 보배 거울로서 만상을 비추는 것과 같은 것이니,

10지(十地)에서는 익숙하게 익힌 공(功)을 성취케 함을 밝히고 있으며,

등각위(等覺位)에서는 자재로운 행이 법계에 두루함을 밝히고 있다.

만약 10주의 한 지위만을 본다면 단지 견도(見道)의 초공(初功)을 밝힌 것이며,

또 10행의 수행을 안배한다면 단지 세간을 벗어나는 마음의 출세심(出世心)이 두드러지게 강하나니,

이러한 까닭으로 10회향의 대염원의 구름을 일으키는 것을 덧붙여서 자비와 지혜의 만행을 원만하게 하는 것이며,

10지에서는 다만 공(功)을 쌓아 덕을 성취해서 성덕(成德)하는 것에 익숙하게 하여서,

반드시 11지(地)를 성취하여 세속에 들어가 자재로운 자재행(自在行)으로 두루함으로써 법에 맡겨 중생을 요익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가르침의 그물인 교망(教網)을 분명히 베풀어서 배우는 자로 하여금 귀의할 곳이 있게 하는 것이니,

만약 이러하지 못하다면 발심한 자가 어떻게 하여야 하겠는가?

 

다섯 번째의 주화신(主火神)은 어리석음과 혼란이 없는 무치난행(無癡亂行)을 밝힌 것으로서 선바라밀을 주재한다.

그 중의 10신(神)은 선(禪)바라밀 중의 10바라밀을 밝힌 것이니, 모두 10행위의 선(禪)으로 체(體)를 삼는다.

이는 곧 보편적인 지혜로 비추면서도 항상 적정(寂寂)하기 때문에 화신(化神)으로 선정의 체(體)를 삼으며,

적정(寂寂)에 즉해서 항상 비추고, 사(事)에 즉해서 항상 이(理)인 것이라서, 자비와 지혜의 비지(悲智)로서 비추어 작용하면서도 장애가 없기 때문에 화신으로 선정의 체(體)를 삼는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ㅡ离 산신 리, 흩어질 리, 떠날 리

만약 세간사(世間事)의 일로 본다면 남방의 이신(离神)이 이에 해당되며,

만약 사람으로 본다면 마음(心)이니, 법을 벗어난 마음이기 때문이며,

만약 법으로 본다면 허무한 지혜의 허무지(虛無智)이며

  

만약 외적인 일의 외사(外事)로 본다면 태양(日)이며,

만약 몸으로 본다면 눈(目)이며,

만약 방법으로 본다면 중도(中道)가 되고, 정(正)과 명(明)이 되고, 명(明)은 허무(虛無)가 되고

지혜로 만유를 비춤이 되고, 보광명전(普光明殿)이 되는 것이니, 이는 여신(女神)이기 때문이다.

 

선재동자가 남쪽 지방으로 간 뜻이 이와 같으니, ‘어리석음과 혼란이 없는 무치란행(無癡亂行)’이 화신(火神)으로 능히 어둠을 타파하기 때문이며, 미혹하지 않은 때문이며, 어둠의 장애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이 한 대목은 작용(用)을 잡아서 선정(定)으로 삼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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