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 11권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李 通玄 장순용 번역
1) 세주묘엄품 ③
제10권에서 ‘열 분의 보현들’ 이하 ‘다섯 번째의 세 번째, 주가신(主稼神) 이하부터 주주신(主晝神)에 이르기까지 이 열 분의 십중신(十衆神)들이 10행(十行)의 중생을 이롭게 하는 법문의 인과를 밝힌다는 것이란,
주가신을 통해 행(行)이 자량(資糧)됨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니,
예를 들자면, 세간에서는 쌀을 자량으로 삼아서 유위(有爲)의 몸을 오래도록 기르지만, 불법은 10바라밀행을 자량으로 삼아서 법신을 영원히 기름으로써 세간의 습기(習氣)를 점점 약화시켜서 종내에는 세간의 습기로부터 벗어나서 대자대비와 대지혜를 통하여 변설을 터득하는 것이다.
마치 자량위(資糧位)를 3승의 설에 준하여 본다면, 10신(十信)ㆍ10주(十住)ㆍ10행(十行)ㆍ10회향(十廻向)은 도(道) 이전의 네 가지 자량의 도전사종자량(道前四種資糧)이 되고,
초지(初地) 이상은 견도(見道)의 가행(加行)이 되는 것으로,
3승지(三乘地) 이전의 보살은 일대승기겁(一大僧祗劫)을 거치면서 유위(有爲)와 유루(有漏)의 행을 닦고 나서야 초지(初地)에서 도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전은 10신(信) 중에서 자기 마음과 시방 모든 부처님의 성(性)과 상(相) 및 대지혜가 차별이 없는 일체라는 것을 완전히 믿음으로써 10주(住)의 초심에서는 방편삼매를 닦는 힘으로 도를 보게 되며,
그리하여 초발심주(住)부터 그 이상의 모든 주(住) 모두가 견도위(見道位)가 되며,
10행ㆍ10회향ㆍ10지는 다 가행(加行)이 되어서 모두가 자량(資糧)이 되는 것이니, 이는 가행과 자량이 부처님의 인과와 더불어 같이 나아가기 때문이다.
즉, 가행(加行)과 불과(佛果)가 동등하게 자량(資糧)이 됨으로써 보현행을 통해 자비의 염원을 자량해 완성을 이루는 것이다.
그리하여 10주 초심에서 보는 법신의 이지성과(理智性果)로써 보현행을 자량하기 때문에, 인천(人天)의 유위와 무상(無常)에는 속하지 않는 것이니, 초발심주(初發心住)에서부터 5위를 닦아 나아가는 데에는 여래 법신의 이지성과(理智性果)와 보현행의 과(果)가 일진법계(一眞法界)에서 서로 자량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하나를 폐하면 둘 다 성립되지 못하는 것이니, 그 이유는 바로 청정한 정심(淨心)이 일어났다가 오염된 구심(垢心)이 일어났다가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이지(理智)의 과(果)로써 행(行)을 장엄하고, 행으로 과(果)를 장엄하기 때문에 부처님의 화엄, 불화엄(佛華嚴)이라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다음 단계인 10주와 10행과 10회향의 지위에서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같은 지위에 들어간 보살의 호칭이 같은 동호(同號)이고, 지혜를 주고 정수리를 어루만져주게 되는 것 등은 모두 동체(同體, 바탕이 같음)로서 지혜를 회통한 것이다.
가령 3승의 보살은 타방(他方)의 정토에 많이 태어나며, 아울러 4선(四禪)의 위쪽으로 따로 보살의 정토를 두는 것은, 설령 욕계에 있을지라도 자비의 원력(願力)으로 미혹을 남겨서 중생을 윤택하게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경전의 법문에서는 여래법계승(如來法界乘)을 타고, 초발심주부터 여래의 대지혜인 법신성과(法身性果)와 보현행과(普賢行果)로써 널리 생사를 두루하여 동(動)과 적(寂)이 평등하고,
이(理)와 사(事)가 보편적으로 진행됨으로써 법계의 체용으로 나머지 습기를 다스려서
법에 먼저와 나중이 있다거나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이 있다는 등의 집착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승의 별교(別敎)에서는 타방에 따로 정토가 있다고 설하여 미혹을 사바세계에 남겨둠으로써 가행(加行)이 초지위(初地位)의 처음에 있고,
자량(資糧)이 10심ㆍ10주ㆍ10회향에 있다고 하는 것과는 같지 않은 것이니,
5위에 이미 불과(佛果)가 없다면 10지에서 도를 보는 것이 참되지 못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전은 10신(十信)의 마음에서 스스로 자심(自心)에 13 가지 세계가 있다고 믿는 것이니,
즉 금색(金色)세계ㆍ묘색(妙色)세계ㆍ연화색(蓮華色)세계 등과 같은 열 가지 색의 세계가 있는 것은 10신의 마음이 유위(有爲)이기 때문에 믿고 있는 부처님의 경계도 색(色)이 있게 되는 것이다.
또 본래 섬기고 있는 본소사불(本所事佛)이 부동지불(不動智佛)과 무애지불(無㝵智佛)과 해탈지불(解脫智佛)과 같은 10지불(十智佛)인 것은 바로 자기 마음이 믿고 있는 자기 마음의 열 가지 지혜의 과(果)로써 열 가지 불과(佛果)의 호칭을 삼은 것이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는 모든 부처, 즉 불과(佛果)의 법을 닦아 증명한 완성처에서 이러한 지혜를 성취하게 되는 것으로, 이 지혜는 다르지 않은 것이다.
ㅡ십지불(十智佛)
동방 금색세계 문수사리 보살의 부동지불(不動智佛)과
묘색(妙色) 세계의 각수보살의 무애지불(無礙智佛)과
연화색(蓮華色) 세계 재수보살의 해탈지불(解脫智佛)과
첨복 또는 담복 화색(簷蔔華色) 세계 보수 보살의 위의지불(威儀智佛)과
우발라화색(優鉢羅華色) 세계 공덕수 보살의 명상지불(明相智佛)과
금색(金色)세계 목수 보살의 구경지불(究竟智佛)과
보색(寶色) 세계 정진수 보살의 최승지불(最勝智佛)과
금강색(金剛色) 세계 법수 보살의 자재지불(自在智佛)과
파려색(玻瓈色) 세계 지수 보살의 범지불(梵智佛)과
평등색(平等色) 세계 현수보살의 관찰지불(觀察智佛)이셨다. ㅡ 제13권. 화엄경(華嚴經) 9. 광명각품(光明覺品) 1
따라서 이 10신위(信位) 속에서 생멸심(生滅心)으로 십색(十色)의 세계와 십지(十智)의 여래를 믿는 것을 제외한, 10주ㆍ10행ㆍ10회향ㆍ10지, 등각의 11지에 이르러서는 모두 50개의 인과(因果)가 있는데,
이 모두는 보현행으로 인(因)을 삼고 여래 법신의 이지성(理智性)으로 과(果)를 삼는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서로 사무치면서 상호간에 자량이 되어 발(發)하는데, 이 두 종류의 인과가 5위 속에서 100중(重)의 부처님의 인과를 공유하며,
전체적으로는 5위상에서 각각 5중(重)의 인(因)과 5중의 과(果)를 취해서 모두 110중의 인과가 된다.
가령 10주위(十住位)의 부처님의 인과라는 것은 바로 인다라화(因陀羅華)세계와 파두마화(波頭摩花)세계와 보화(寶華)세계이며, 부처님의 호칭은 수특월불(殊特月佛)과 무진월불(無盡月拂)과 부동월불(不動月拂)이다.
이와 같은 열 가지 꽃의 세계와 열 가지 호칭이 같은 월불(月拂)로서 불과를 삼고,
법혜(法慧)보살 등 열 명의 ‘혜(慧)’의 보살로서 보현행을 수행하는 인(因)을 삼으니,
이 10주에서 방편삼매에 들어가는 힘을 통해 법신의 오묘한 묘혜(妙慧)를 참되게 증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세계의 이름이 꽃이니 이는 이 꽃이 피어서 열매(果)를 나타내기 때문이며,
나타낸 불과를 모두 월(月)‘이라고 호칭한 것은 10주에서 처음으로 법신(法身)을 봄으로써 오묘한 묘혜(妙慧)가 현전하여 번뇌의 열이 없어지면서 부처님의 법신을 얻게 되는 것으로, 그 청량함이 달과 같음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견도(見道)를 하고 미혹을 없앤 곳으로써 세계로 삼는 것이다.
인다라화(因陀羅花)는 한역하면 능주화(能主花)인데, 초발심주에서 불가(佛家)에 태어나 능히 중생의 법을 시설하는 주체가 되는 것을 밝힌 것이다.
파두마화(波頭摩花)는 적련화(赤蓮花)인데, 치지주(治地住)에서 닦아 나아가는 것이 뛰어나서 꽃을 활짝 피우는 것이 볼 만하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총체적으로 지위에 따라 도에 들어가는 곳의 인과를 부처님과 국토세계와 보살의 명칭으로 삼은 것이니,
모두가 외적인 것이 아니라, 모두가 스스로의 자행(自行)으로 행한 것을 밝힌 것이다.
10행위(位)에서는 열 가지 십혜(十慧)의 세계와 열분의 부처님 호칭이 모두 같은 ‘안(眼)’이 되는 것으로써 불과(佛果)를 삼고 있으며, 공덕림 등의 10림(林) 보살로서 그 행(行)을 행하는 인(因)을 삼으며,
다음의 10회향과 10지는 경전에서 알 수 있으니 그 지위에 이르면 밝히겠다.
대강의 요지를 말한다면, 해당되는 지위의 10불(十佛)을 근본 지위의 과(果)로 삼고,
해당되는 지위의 10보살을 해당되는 지위의 수행하는 인(因)으로 삼고 있으니,
이와 같이 초회(初會)에서는 여래를 5위에 해당되는 과(果)로 삼고,
보현보살 및 온갖 신천(神天)들을 5위 수행의 인(因)으로 삼는다.
또 보현보살과 모든 신천(神天)들은 비로자나의 근본지를 수행을 일으키는 근본인(根本因)으로 삼고 있으며,
자기 수행의 몸을 부처님의 차별지(差別智)의 과(果)로 삼고 있다.
불성의 지과(智果)를 인(因)으로 삼는 것은 현재 닦는 몸 그대로가 이지(理智)의 성과(性果)가 되기 때문에 서로 인과와 체용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천(神天)이 덕을 찬탄한 것 중에서는 먼저 부처님의 덕을 찬탄하고 나서, 그 다음 자기와 부처님이 지혜가 같고 덕이 같음을 찬탄한 것이니,
이것이 법계에 들어가는 양식이 됨으로써 모든 배우는 자로 하여금 미혹하면 그대로 범부(凡夫)요,
깨치면 그대로 부처이기에 지혜와 자비를 통해 나란히 나아가게 한 것이다.
가령 선재동자의 10행(十行)의 초위(初位)에서 환희행(歡喜行) 선지식이 거처하는 나라의 이름이 삼안(三眼)인 것은,
10행 보살이 거처하는 세계의 이름이 친혜(親慧)세계나 보혜(寶惠)세계 등의 10혜(惠) 세계가 되는 것과 같으며,
3안(三眼)이라는 것은
첫째는 마하반햐(摩訶般若)이며, 둘째는 해탈이며, 셋째는 법신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지안(智眼)과 혜안(慧眼)과 법안(法眼)으로 3안을 삼기도 하기 때문에,
세간의 품(品)이라는 글자와도 같은 것이며, 마혜수라천왕 얼굴에 있는 3개의 눈과도 같은 것이다.
일체 불법이 이 대지대혜(大智大慧)의 법신을 여의지 않기 때문에 이 10혜(十慧) 세계의 뜻이 이 3안(三眼)에 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재의 10행 중에서 처음 선지식의 나라 이름이 3안(三眼)이고, 비구의 이름이 선견(善見)인 것은
바로 10행(十行)에서 부처님의 호칭이 상주안불(常住眼佛)이고 무승안불(無勝眼佛)인 것과 같으며,
이름이 선견(善見)이 된 것은 3안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10행에서는 지안(智眼)으로 중생의 근기를 알아서 행을 같이 하기 때문에 부처님의 호칭이 안(眼)이 되는 것이며
선지식의 명칭이 선견(善見)인 것이다.
눈과 머릿가 감청색(紺靑色)이고, 피부가 금색(金色)이고, 원만한 광명이 일심(一尋)으로써, 상호(相好)가 부처님과 같은 것은 10행 에서 행하는 3안의 행이 인과(因果) 그대로 부처님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숲 속에서 경행(經行)하는 것은 만행의 빽빽한 숲의 조림(稠林)으로 중생들을 감싸서 그늘을 드리움을 밝힌 것이며,
또한 10행위 중 보살의 호칭이 공덕림(功德林)ㆍ혜림(慧林)ㆍ승림(勝林) 등의 10림(林) 보살인 것과 같은 것이다.
선재동자의 10행 중의 지식(知識)이 바로 비구인 것으로, 숲 속의 경행을 10행을 행하는 행처(行處)로 삼은 것은, 아래 문장에서 공덕림보살 등 10림 보살이 행할 바를 삼은 것과 같은 것이며,
지금 이 초회(初會) 속에서 주가신(主稼神)을 불과(佛果)의 10행으로 삼은 것은 중생을 자량(資粮)으로 하여 부처님 지위에 들게 하기 때문이며,
견도(見道)보살을 자량으로 하여 대자비를 오래 기르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회상(會上)에서 불과의 5위(位)와 제2회ㆍ제3회 이후의 모든 보살들이 닦아 나아가는 5위와
선재동자가 행을 보인 5위의 전후가 서로 사무치고, 체세(體勢)가 서로 닮은 것은 모두 불과와 보현행의 과(果)가 체용(體用)이 서로 자량으로 하고 처음과 끝이 다르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
이러한 뜻이 있기 때문에 5위에서 50종(五十種)의 자량(資糧)과 50종의 불과(佛果)가 서로 주(主)와 반(伴)이 되고, 또 서로 인(因)과 과(果)가 되고, 또 서로 체(體)와 용(用)이 됨으로써, 여래 이지(理智)의 성품으로 항상 보현행을 자량으로 하여 오염이 없도록 하고, 보현행으로 항상 여래의 성과(性果)를 자량으로 하여 원만한 자비의 지혜를 얻게 하는 것이다.
만약 어느 한 쪽이라도 폐(廢)한다면 일체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니, 그렇게 되면 어느 행문(行門)이라도 바로 인천(人天)의 인과인 것이며, 설령 세간을 벗어난다 할지라도 성문의 이승과 촐세간의 정토 보살과 미혹에 머룰러서 중생을 윤택하게 하는 등이니,
이는 법 그대로인 이지(理智)와 세간에서든 출세간에서든 대자비의 동정(動靜)과 염정(染淨)에서 자재롭게 원융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10행(十行)과 불과(佛果)가 자량으로 하는 것은 마치 황과(黃瓜, 노란 참외)가 꽃과 열매가 동시에 나면서, 꽃과 열매가 서로 자량으로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 이는 작위가 없는 무작공덕(無作功德)으로 자재함을 삼는 것이니,
법 그대로인 이지(理智)의 행이 두루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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