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 10권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李 通玄 장순용 번역
제10권 앞에서 “열 분의 보현들” 이하 “다섯 번째 삼십삼천왕부터 대자재천왕의 대중”에 이르기까지 그 지위에 따라 다섯 가지로 나눈 것 중 두 번째의 해월광 등 명칭이 다른 대중을 해석한다는 것의 뜻이 무엇인가?
이 7행 반의 경문을 뜻에 따라 넷으로 나면,
*첫째는 보살 대중의 뜻을 진술하는 것이며,
*둘째는 보살의 명호를 해석하는 것이며,
*셋째는 대중의 수를 매듭짓는 것이며,
*넷째는 덕(德)을 찬탄하는 것이다.
*첫째, 보살 대중의 뜻을 진술하는 것이란, 이 10 개의 이름이 다른, 10이명(十異名)으로 대중들의 명칭이 각각 다른 것은, 초발심주(初發心住)를 나타낸 것이다.
호칭이 같은 뜻은 앞의 단락에서 이미 다 해석하였지만, 이 한 단락의 명칭이 다른 의취(意趣)는 저 보현행으로 세속에 들어가 중생을 이롭게 할 때의 그 행의 차이에 따라 명칭도 차이가 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이는 보(普)로써 두루 달리해야지 명칭도 보(普)가 되는 것을 밝힌 것이며,
대중의 뜻도 세속에 들어가 중생을 이롭게 할 때, 중생을 교화함으로써 그 중생으로 하여금 자신의 법을 얻게 한다는 것을 밝힌 것이기 때문에 지위에 의탁하여 10주의 초심에서 한 번에 당장 고법(古法)을 타게(乘) 됨으로써 옛 자취의 고적(古迹)에서 옮기지 않음을 드러낸 까닭에 구도(舊道)와 다름이 없다는 것을 밝힌 것이니, 마치 대왕의길에는 고금이 함께 동행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예전의 고법(古法)으로 세속에 들어가 중생을 이롭게 할 때, 미혹된 무리들을 깨우치게 하기 위하여 이 고법(古法)을 배우게 했으며, 이 때문에 불과위(佛果位) 중의 이명(異名)의 보현대중으로 지위에 의탁해서 10주 초심을 이룬 것이니,
이는 나중의 깨달음이 옛 자취에서 옮기지 않음을 드러낸 것이다.
또 앞에서 여래께서 정각을 성취한 불과(佛果)와 보현행과(普賢行果)는 고금의 모든 부처님께서 항상 타신 승상도(乘常道)임을 밝힌 것이니, 이는 소신(所信)의 문을 밝힌 것이다.
또 세속에 들어가 중생을 이롭게 하는 명칭이 다른 대중의 이명중(異名衆)은 교화를 받는 중생이 도에 들어가는 초심에서 자기의 자법(自法)과 같아서 옛 자취의 고적(古迹)에서 옮기지 않은 것을 밝힌 것이다.
나중에 발심한 사람(士)은 각각이 자심(自心)의 정혜(定慧, 선정과 지혜)의 힘으로 비추어 보면 볼 수 있을 것이지만,
정(情)으로써 믿는 자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니, 오직 스스로 선근을 오래 심은 사람만이 분명히 듣고서 미혹하지 않을 것이다.
설사 3승근(三乘根, 삼승의 근기)의 종성이 육통(六通) 보살이라 할지라도 오히려 스스로 회의(懷疑)하지만,
범부들 중 1승근(一乘根, 일승의 근기)의 성품은 범부들 속에 있으면서도 믿고 들어가나니, 아래의 경문에서 분명하다.
'3승의 종성(種性)은 근기가 낮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근성(根性, 근기의 성품)에 따라 “이 사바세계는 5탁(濁)이 있어서 더러운 예토(穢土)이고, 정토는 타방(他方)에 있다”고 설하였으며,
ㅡ5탁(濁), 사바세계에 있는 다섯 가지 더러움.
첫째 겁탁(劫濁):사람의 수명이 감소함에 따라 기근이나 질병, 전쟁이 일어나 시대가 혼탁해지는 것,
둘째 견탁(見濁):말법 시대에 삿된 소견이나 사상이 일어나 넘쳐 흐르는 것,
셋째 번뇌탁(煩惱濁):사람의 마음이 번뇌에 가득차서 흐려짐,
넷째 중생탁(衆生濁):사람들이 악행만을 일삼고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다섯째 명탁(命濁):인간의 수명이 차례로 감소하는 것.
혹은 “이곳은 예토(穢土)요 위쪽으로 제4선(第四禪)의 이상에 따로 보살의 정토(淨土)가 있다”고 말씀하셨으며,
혹은 “불과는 아승기겁 뒤에나 비로소 성취한다”고 하시면서도 “정토와 예토가 용납하니 티끌이 법계를 포함하고 범성(凡聖, 범속함과 성스러움)이 함께 머무름에 있어서 서로 장애가 없다”는 등의 가르침은 설하지 않았다.
3승(三乘) 등의 가르침은 방편에 집착해서 실(實)을 이루는 것이라서 법계 1승의 문을 믿기 어렵기 때문에 가전(仮詮, 임시로 가설한 표현)과 가교(仮敎, 임시 방편의 가르침)와 가관(仮觀, 임시적이 관법)을 배워서 조잡한 현행무명(現行無明)의 집착을 타파하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한 푼의 조잡한 추바라밀문(麤波羅蜜門)을 행하여서 세 종류의 의생신(意生身)을 얻으며,
모든 불국토가 자(自)과 타(他)가 있고, 청정함(淨)과 더러움(穢)이 있다고 하여서, 정토를 좋아하고 예토는 싫어하며,
아울러 청정한 행 및 온갖 가진여관(仮眞如觀)과 공관(空觀) 등을 닦아서 한 푼의 신통을 얻어서, 그 과보가 모든 천(天)보다 뛰어나고 신통도 뛰어나지만,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강하여서 다시는 나쁜 나라인 예토에는 태어나지 않으며, 본원력(本願力)으로써 부처님께서 성도한 곳에 잠시 왔다가 다시 되돌아 가는 것이다.
저 3승의 가르침에서는 이런 일을 다분히 많이 설하고 있으니, 마음을 돌이키지 못하는 자는 항상 이러할 것이다.
권교(權敎, 방편의 가르침)를 배우는 자는 근기가 낮기 때문에 이 1승(一乘)의 가르침을 듣지 못하며,
들을지라도 믿지 못할 것이니, 경전의 문장에서 충분히 설하고 있다.
유마경과 법화경에서도 이러함을 타파하기 위해서 한 푼 정도는 간략히 설하고 있지만 충분히 논하지는 못하였다.
따라서 교리를 배우는 자는 어느 한 문의 일문(一門)에만 치우쳐 익히지 말 것이며, 모든 경전의 의취를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니, 대체로 한 평생 도를 배우는데 듣는 지혜의 문혜(聞慧)가 묘하지 못하고 자세하지 못한 까닭에 오히려 진종(眞宗, 참된 종지)을 비방하게 되는 것이니, 만약 자세히 설한다면 구구하게 할 말이 많을 것이나 지금은 간략하게 요점만 말한 것이다.
이상으로 명칭이 다른 보살 이명보살(異名菩薩) 대중의 의취의 진술을 마친다.
둘째, 보살의 명칭을 해석하는 것은, 이 10개의 보살 명칭에서 1개가 10주위(十住位) 중에서 하나의 바라밀을 통칭하는 것이니, 하나하나 속에 10을 갖추어서 행(行)에 따라 명칭을 성취하기 때문에, 이 10분의 보살이 행하는 10개의 바라밀은 저마다 5위 중에 있는 보살의 통상적인 행(行)인 것이다.
또 5위(五位)의 행을 따라 10주에서 10을 갖추고, 10행에서 10을 갖추고, 10회향에서 10을 갖추고, 10지에서 110을 갖추고, 11지에 10을 갖추어서 모두 100이 되는 것이니, 이는 하나의 바라밀 속에 10이 있고, 10 속에 백이 있음을 밝힌 것이다.
또 10주 가운데에서 그 하나하나의 주(住) 속에 10을 갖추어서 10주 안에 백을 갖추고,
5위가 다 그러함으로써 전부 5백 개의 바라밀문이 되는 것이니,
이와 같이 그 행(行)의 지위에 따라 명목(名目)과 감응하는 과(果)가 저마다 다르지만,
전체적인 지위는 모두 이 10개의 보살 명호에 해당되는 것이다.
무슨 이유로 해월광대명(海月光大明) 보살마하살이라 호칭한 것인가?
법행(法行)이 가없이 무변(無邊)하니, 대자비로 널리 이롭게 하는 것이 바다와 같아서 이익을 받은 중생으로 하여금 견성해서 청량하게 하는 것을 월광(月光)이라 호칭하며,
청량함을 얻은 뒤에는 지혜가 비추지 않음이 없는 것을 대명(大明)이라 호칭하며,
일체 세계에서 크게 중생을 개우치기 때문에 마하보리살타(摩訶菩提薩埵)라고 호칭한 것이니,
마하는 대(大, 크다)라는 뜻이며, 보리는 한역하면 대각(大覺)이며, 살타(薩埵)는 한역하면 중생이니,
중생의 생사를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자세히 말하면 마하보리살타이고, 줄여서 말하면 보살이며, 범어로는 마하보리살타이니, 한역하면 대각도심중생(大覺道心衆生)이다.
스스로 도를 깨달아서 생사를 버리지 않고서도 중생을 크게 깨닫게 하기 때문이며, 또한 중생의 생사가 보살의 보리이기 때문이니, 이는 법계의 일진(一眞, 하나의 참됨)에는 다른 상(相)이 없음을 밝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은 단(檀)바라밀을 주(主)로 삼고 나머지 아홉 보살의 명호로 반(伴)을 삼는 것이니,
이는 법계로써 대보시의 문을 행하여서 바다와 같이 널리 구제하고 남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 월광이 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니,
번뇌열(煩惱熱)을 없애어서 청량함을 얻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명호 자체가 바로 행하는 행(行)이니, 곧 10개의 보살 호칭이 이 10주위 중의 초발심주 위에서 10바라밀의 주(主)와 반(伴)의 만행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래 문장에서 10주품 내의 보살이 본래 섬기고 있는 부처님의 이름의 뒷글자를 월(月)이라고 호칭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 10주위 중 10 분의 부처님의 이름의 뒷글자가 모두 똑같이 월(月)이라 호칭한 것이 이 법을 본받은 것이다.
다음은 계(戒)바라밀 중에서 보살의 호칭이 운음해광무구장(雲音海光無垢藏)보살마하살인 것은,
성계(性戒, 성품의 계율)의 대자비로 법음(法音)을 널리 비내리듯 하기 때문에 운음(雲音)이라 밝힌 것이며,
성계(性戒)에 오염이 없음이 마치 큰 바다가 죽은 시체를 묵혀두지 않는 것과 같기 때문에 법계무성(法界無性)으로 계(戒)를 삼아서 법마다 청정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 바다의 광대함과 같음을 밝힌 것이며,
광(光)이란 성계(性戒)의 체(體)를 밝힌 것이니, 마음과 경계 모두가 진(眞)이라는 것을 광이라 이름붙인 것이며,
또한 청정한 지혜로써 항상 세속을 비추는 것을 광이라 이름한 것이며,
무구(無垢)라 함은 법성에 오염이 없는 것이며,
장(藏)이란 것은 법계의 성품이 항상 만상(萬像)을 내포하여 법마다 청정하지 않음이 없는 것을 밝힌 것이니, 이는 일진(一眞)이기 때문에 총(總)과 별(別) 모두가 참된 것이라서 더러움과 청정함이 없음을 밝힌 것이다.
그러므로 호칭이 운음해광무구장인 것이며, 보살의 뜻은 앞에서 해설하였다.
다음 인(忍)바라밀 중에서 보살의 호칭이 공덕보계지생(功德寶髻智生)인 것은
법인(法忍)으로 그 몸을 장엄하기 때문에 공덕보계(功德寶髺)라 호칭한 것인,
보계(寶髺)란 머리 위의 장식이니, 보살이 발심할 때 인(忍)이 상수(上首)가 되기 때문에, 보배로 그 정수리를 장엄한 것을 밝힌 것이다.
지생(智生)이란 능히 참을 수 있기 때문에 지혜가 생기는 것이며, 보살의 뜻은 앞에서 해석하였으며,
이러한 것들은 인(忍)이 화만(華鬘, 머리 위에 장식하는 꽃)의 뜻이 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다음 정진(精進)바라밀 중에서 보살의 호칭이 공덕자재왕대광(功德自在王大光)인 것은,
부지런한 행(行)으로 중생에게 이익을 주어 많은 공덕을 쌓음으로써 행하는 만행(萬行)이 남을 이롭게 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자재로움이 왕과 같음을 밝힌 것이니,
대광(大光)이란 보조(普照, 널리 비춤)이니, 생사의 바다 가운데에서 항상 지혜의 광명으로 중생을 이익되게 하되, 게으름이 없고 아울러 중생을 깨닫게 하기 때문에 대광(大光)이라 호칭한 것이며, 보살의 뜻은 앞에서 해석하였다.
다음 선(禪)바라밀 중에서 선용맹연화계(善勇猛蓮華髻)보살이라 호칭한 것은, 법계가 선(禪)의 체(體)가 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범부의 지위에서부터 믿는 마음을 일으킨 뒤에 증득해 들어간 최초에서 사념 없는 일념으로 단박에 모든 상념을 초월하여서 참지혜의 진지(眞智)에 그윽히 합일하여 명회(冥會)]하기 때문에 용맹이라 한 것이며,
지혜가 능히 세속을 요달하여 세상에 처해서도 오염되지 않기 때문에 연화(蓮華)라고 호칭하는 것이며,
계(髺)란 이 지위의 보살이 법을 나타내는데 연화로써 정수리에 관을 쓰는 것을 밝힌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선(禪)의 체(體)가 세상에 처해서도 그대로 참(眞)이라서 고요함과 시끄러움에도 오염되지 않는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다음 반야(般若)바라밀 속에서 보지운일당(普智雲日幢)보살이라고 호칭한 것은,
여섯 번째인 지혜가 구름과 같아서 법우(法雨)를 내리기 때문에 지혜의 광명인 혜광(慧光)이 어둠을 타파하는 것을 일(日)이라 이름한 것이며,
삿됨(邪)을 꺾고 바름(正)을 나타내는 것을 당(幢)이라 호칭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다음 방편(方便)바라밀에서 대정진금강제(大精進金剛臍)보살이라고 호칭한 것은,
제7주(第七住)와 제7행(第七行)과 제7회향(第七迴向)과 제7지(第七地)의 5위(五位) 중에서 이 제7위(第七位)는 모두 자비를 닦는 지위라서 그 참된 이치로 오염과 청정을 원만하게 융화시키는 까닭에 방편이라 이름한 것임을 밝힌 것이니,
그 아래에서 10지 중 제7지 보살이 비유하기를 “가령 한 나라가 순전히 청정하기만 하고 한 나라가 순전히 더럽기만 한다면, 이 청정함과 더러움에 대한 일은 완전히 알기가 어려운 것과 같다”고 하였다.
그리고 저 선재동자가 제7주 중에서 휴사우바이(休捨優婆夷, 한역하면 만원 滿願)를 친견한 것은 이 제7주의 지위에서 깊고도 두터운 대자비를 성취함으로써 일체 중생의 염원을 만족하게 하는 것을 밝힌 것이다.
또 선재에게 말하기를 “나에게 8만 4천 나유타의 동행하는 권속이 있는데 항상 이 정원에 거처한다”고 한 것이니, 이 뜻은 각 지위의 지위 중에서 제7 방편바라밀로 대자비의 지위를 이룬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8만 4천 나유타의 동행하는 권속이라고 말한 것은 8만 4천이 되는 일체 모든 진로(塵勞, 번뇌)의 문에 내가 다 동행함으로써 항상 생사를 원림(園林, 정원, 동산)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보살은 바로 이 10주위 중 초발심주(初發心住)의 1주(一住) 안에 있는 열 개의 바라밀 중, 제7 바라밀이란 것을 밝힌 것이지 제7주 중의 제7 바라밀이 아니다.
10주 중에는 10 개의 제7 방편바라밀이 있는데, 하나하나의 주(住)에는 각각 저마다의 방편을 통해 그 자비와 지혜의 만행을 원만히 융화하고 있으며, 나머지 바라밀도 마찬가지라서 10주 중의 하나하나의 각 주가 10을 갖추고 10행ㆍ10회향ㆍ10지ㆍ11지도 모두 그러하다.
그러므로 이 10 보살의 명호가 또한 초발심주의 제1주 안에 있는 10바라밀 중 제7 방편문을 원만히 융화한 것이며,
또 1주(住) 가운데 자비와 지혜의 주(主)와 반(伴)인 10바라밀을 원만히 융화한 것이니,
이는 대자비가 견고해서 생사에 처해서도 게으름이 없는 것을 대정진이라 부르고 ,
남의 견고한 더러움을 파괴하는 것을 금강이라 호칭하며,
세속에 처해 번뇌를 같이하면서도 중도를 훼손시키지 않는 것을 제(臍, 배꼽)라고 말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제(臍)라는 것은 자비와 지혜의 중간에 처함을 밝힌 것이니, 부처님께서 생을 받는 수생광(受生光)을 놓는 것이 제륜(臍輪)에 있는 것은 자비와 지혜의 중간을 나타낸 것이니, 자세한 뜻은 앞으로 밝히겠다.
보살에 대해서는 앞에서 해설하였으며, 이러한 것은 10주위 중 초발심주 안의 제7방편바라밀이며, 또한 1주(住) 안에 있는 10바라밀의 주(主)와 반(伴)을 밝힌 것이니, 치지주(治地住, 항상 공관(空觀)을 닦아 마음 바탕을 청정하게 다스리는 지위)와
수행주(修行住, 10주의 하나. 온갖 선과 행을 닦는 지위) 같은 10주에서 각각 스스로 10바라밀을 갖추어서 주(主)와 반(伴)이 원만히 융화함으로써 1주에 10을 갖추고 10주에 백을 갖추며, 5위도 마찬가지라서 모두 5백이 되고 나아가 다함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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