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 10권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李 通玄 장순용 번역
해월광대명(海月光大明) 보살의 무리와 그 이하의 신(神)과 천(天)이 10주ㆍ10행ㆍ10회향ㆍ10지에서 저마다 각각 10 가지의 부종(部從)이 있어서 모두 40이 되나니,
열 분의 보현 보살인 십보현(十普賢)이 하나의 대중이 되어서 앞에서 말한 40과 합치면 41의 대중이 되고,
아울러 보리수 안의 유광중(流光衆)과 여래가 거처하는 궁전의 대중과 여래 법좌 안의 대중과 시방에서 온 보살 대중과 보살의 모공중(毛孔衆)과 여래 미간의 호상에서 나온 미간호중중(眉間毫中衆)의 대중을 합해서 모두 47의 대중이 된다.
대중을 분류한 뜻은 이와 같으며, 그 속의 의취(義趣)는 본문에 이르면 밝히으니, 보리수 안의 대중과 여래 궁전 안의 대중은 앞에서 이미 풀이한 것이다.
이상으로 초회(初會)의 대중을 분류해서 마치나니, 나머지는 본문을 기다리겠다.
이상은 과행(果行)의 두루함을 총체적으로 칭찬하여 높임으로써 신위(信位)를 성취함을 밝힌, 거과행편주이성신위(擧果行遍周以成信位)인 것이다.
이상의 47개 대중을 열 분의 보현들과 따로 나눈다면 56대중이 되나니, 모든 대중해(大衆海)가 대중위요분(大衆圍繞分)이다.
이 첫 단락의 30행의 경문을 세 단락으로 나눈다면,
*첫째, 처음에는 7행 반의 경문 모두는 보살의 수를 열거하고, 아울러 호칭이 같은 동호보현(同號普賢)보살의 이름을 진술한 것이고,
*둘째, “해월광대명보살” 이하부터 “십불세계미진수”에 이르기까지 한 단락 속에 7행 반의 경문은 명칭이 다른 보살 대중을 진술하고 아울러 이상의 모든 보살의 숫자를 한데 묶은 것이며,
*셋째, “이 모든 보살” 이하부터 “무량한 공덕을 성취하다”에 이르기까지의 15행 반의 경문은, 대중의 근본 수행의 인(因)을 진술하고 아울러 대중의 덕을 찬탄한 것이다.
첫 단락의 7행 반의 경문에서 호칭이 같은 동호보현(同號普賢)을 열거한 것을 그 뜻에 따라 셋으로 나누면,
*첫째는 보살의 명칭에 따른 뜻(義)을 해석하는 것이요,
*둘째는 보살의 호칭이 같은 동호(同號)의 뜻(義)을 해석하는 것이요,
*셋째는 대중이 작위하는 인연을 높이는 것이다.
첫째, 보살의 명칭에 따른 뜻(義)을 해석하는 것이란, 간략하게 보현보살의 호칭 하나만을 해석할 것이니, 나머지는 이에 준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행(行)과 이(理)가 동등하여 중생을 두루 이롭게 하는 것을 보(普)라 하고,
근기를 알아서 세속을 이롭게 하는 것을 현(賢)이라 칭하는 것으로,
보(菩)는 깨달음의 각(覺)을 말하고,
살(薩)은 중생을 말하는 것이니,
중생을 훌륭히 깨우치는 것을 보살이라고 호칭하는 것이니, 자세히는 마하보리살타(摩訶菩提薩埵)라 하며,
범어(梵語)인 마하보리살타를 한역하면 대각중생(大覺衆生)이니, 항상 생사의 바다에서 다함이 없는 중생들을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그 이하의 9 분의 보살을 다 같이 보(普)라고 호칭한 것은 보현보살의 통상적인 호칭이니,
이는 하나하나의 보살에게 모두 열 가지의 덕행(德行)이 있어서, 그 덕으로서 명칭을 삼고 있음을 밝힌 것이다.
즉 덕행이 원만하니 시종일관 십(十)을 갖추어서 하나하나의 보살의 행을 따른 호칭이 무진(無盡)하여 다함이 없음을 나타낸 것이며, 다함 없는 무진행(無盡行)을 행하는 까닭에 단지 그 명칭의 뜻으로만 스스로의 행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며,
나머지는 이에 준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니, 총체적으로는 10바라밀로써 체(體)를 삼는 것이다.
*둘째, 보살의 호칭이 같은 동호(同號)의 뜻(義)을 해석하자면,
열 개의 십보(十普)의 뜻이 일인(一人)의 보(普)이니, 낱낱의 각 보살이 열 개의 십보(十普)보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니, 일체의 보살이 모두 그러한 것이다.
하명(下名, 이름의 뒷글자)이 다른 것은 하나하나의 일일보(一一普)가 능히 전체적으로 볼 때에는 별개이기 때문이니,
보(普)의 뜻이 성취한 것임을 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총체적으로는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다 함께 동행하는 공행(共行)이라서 다시 고금이 없는 것이니,
마치 대왕의 길에서 그 자취를 밟아 나아가는 자는 옳고, 그렇게 가지 않는 자는 어쩔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일념에 선(善)을 따라서 약간이라도 견성(見性)을 한다면,
지혜가 현전하여서 총체적으로는 부처님께서 정각하신 근본지(根本智)를 여의지 않으며, 보현행을 여의지도 않으니,
저 보현행의 일념 속에 조금이라도 선심(善心)이 있다면 모두 이 법의 흐름 속으로 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그 아래의 경문에서는 “여래의 명호와 설한 법문을 듣는다면, 듣고 나서 이를 믿지 않는다 할지라도 오히려 궁극적으로는 금강지(金剛智)의 경지에 이른다”고 설하였거늘, 하물며 믿고 수행하는 생신수행자(生信修行者)이겠는가!
*셋째, 대중이 작위하는 인연을 칭찬하여 높이는 것은,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해서 나타내신 의보(依報)와 정보(正報), 그리고 보현보살 대중들의 바다 같은 대집회의 뜻이 중생으로 하여금 과(果)를 보고 믿음을 내어서 수행하게 하는 것임을 밝힌 것이니,
이것은 과(果)를 들어 수행을 권함으로써 믿음을 내게 하는 거과권수생신분(擧果勸修生信分)인 것이다.
여래는 시방의 모든 부처님들께서 정각한 근본지(根本智)의 과(果)요,
열 분의 보현은 시방 모든 부처님의 차별행(差別行)의 과(果)이니,
이러한 근본지(根本智)의 과(果)와 차별행(差別行)의 과(果)의 두 법에서 인과의 보득(報得, 과보로 얻음)을 칭찬하여 높임으로써 중생으로 하여금 기꺼이 믿고 수행에 들게 하는 것이다.
이는 삼전법륜(三轉法輪, 유마경에 “법륜을 대천세계에 세 번 굴리니, 그 법륜이 본래 항상 청정하다”라는 구절) 중의
첫째는 시상(示相, 상을 보임)이니, 8상성도(八相成道)가 그것이며,
둘째는 권수(勸修, 수행을 권하는 것)이니 과(果)를 관찰해 인(因)을 앎으로써, 인천(人天) 등에게 수행하도록 궈하는 것이며,
셋째는 증동(證同, 동일함을 깨닫는 것)이니, “내가 너희들과 더불어 이와 같은 3승ㆍ1승 등의 증득을 같이 하였다”고 한 것이다.
이제 이 1승 중에서 불승(佛乘)의 근본지(根本智)의 과(果)와
보현의 법계에 두루한 편법계행과(遍法界行果)로써 권유해 대심중생으로 하여금 믿음을 내어서 수행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바로 5위 중 11지 보현의 등각위문(等覺位門)인 것이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들께서 성불을 마치고도 행(行)을 쉬지 않는 것은, 처음 보리심을 발한자가 그 행을 쉬지 않는 것과 같아서, 지금 이 지위로써 믿음의 신문(信門)을 삼는 것이다.
만약 이렇지 않다면 무엇으로 믿음으로 들어가는 신입(信入)으로 삼을 것인가?
그러므로 불과(佛果) 후의 보현행은 순전히 이타적(利他的)인 것이요,
초발심 이후의 보현행은 자리이타(自利利他)의 행인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 초회의 대중과 아울러 부처님의 행위가 이같은 것은, 과(果)를 들어 수행을 권함으로써 기꺼이 믿음을 내어서 수행에 들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경문의 대의(大意)가 이같은 것이다.
이와 같이 구과(舊果)를 가져다가 초심(初心)에게 권하는 것과 향하(向下)의 해월광대명보살과 모든 신(神)과 천(天)들은 바로 믿고 깨달아 들어가서 10주와 10지를 수행하여 나아가서 점점 발전하는 인과(因果)를 밝히고 있으니,
이는 지위에 따라 그에 맞는 인과(因果)를 세워서 나중에 배우는 자로 하여금 그 양식을 보고 기꺼이 믿고 의심이 없게 하기 위해서 지위에 따라 들어가는 것이 각각 다르게 한 것임을 밝힌 것이니, 만약 이러하지 않다면 하나의 일법(一法)에만 걸려 있어서 지혜가 증대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상의 한 단락은 부처의 성도를 불성도(佛成道)를 처음 보는 것과 아울러 불과(佛果)의 5위 보살 대중이 법에 들어가 시현(示現)함을 보고서 들어가는 것이니, 이는 바로 부처님의 아는 바와 같아서 부처님과 더불어 지견이 제등(齊等)하여지는 것이다.
만약 다른 부처님만 그럴 수 있고 초심 보살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믿는다면,
이는 자기의 마음과 자기의 몸이 불대지(佛大智)이며 불경계(佛境界)이며, 부처님의 불법신(佛法身)이며, 보현행을 감당해서 행하는 자라는 것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제2회(會)광명각품 이후부터 일체처가 금색(金色) 세계이며 보색(寶色) 세계인 것은,
바로 자기 마음의 법성이 금색(金色)의 오염이 없는 순백의 청정함이라서 거처하는 세계가 된다는 것을 밝힌 것이며,
부동지불(不動智佛)은 자기 마음의 자심(自心)이 자체성 없는 무성(無性)이라는 이(理, 이치) 가운데에서 분별 없는 지혜가 본래 무동(無動)이라는 것이며,
상수(上首, 대표) 보살인 문수사리는 자기 마음의 자심(自心)이 자체성이 없는 무성(無性) 가운데에서 능히 훌륭하게 잘 간택하고 묘하게 분별하는 분별혜(分別慧)라는 것을 밝힌 것이며,
각수(覺首)보살은 자기 마음의 자심(自心)이 이렇게 진실한 믿음의 으뜸인 진신수(眞信首)이며,
목수(目首)보살은 바로 자기 마음의 자심(自心)이 분명하게 보고 믿을 수 있는 마음의 신심심경(信心心境)이며,
마음과 경계가 모두 부처인 것은 해문국(海門國, 선재동자가 만난 53명의 선지식 중 해운 海雲 비구가 머무는 곳)의 법에서 널리 자타가 부처를 갖추고 있다는 자타구불(自他俱佛)이라고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니,
경의 본문에서 자세히 밝히고 있다.
이는 이 몸이 부처라는 신시시불(身是佛是)이요
이 마음이 부처를 짓는 시심작불(是心作佛)이니, 마음 밖에서 부처를 보는 것을 신심(信心)이라 이름하지 못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이상으로 대중위요분(大衆圍遶分) 가운데에서 호칭이 같은 동호중(同號衆)에 대한 해석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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