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經卷第十三 菩薩問明品第十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三藏沙門(삼장사문實叉難陀 (실차난타 

10. 보살문명품(菩薩問明品)  6

 

문수보살이 지수(智首)보살에게 10 가지 수행의 십종무량(十種修行)을 질문하다. 

ㅡ문수보살이 지수(智首)보살에게 “여래께서는 오직  가지의 일법으로 출리(出離)를 얻었으며, 또한 불법 속에서는 지혜를 으뜸으로 삼는데, 어찌하여 보시 등을 찬탄하신 것입니까”라고 묻는 열 가지 질문의 대의는 10바라밀과 4무량심이 궁극적으로 체(體)가 없거늘 어찌하여 반드시 써야 하는가를 밝힌 것이다.

지수보살이 답한 뜻은 모든 조도법(助道法)으로 근기에 따라 병을 없애는 것이니, 

만약 배우고 닦지 않으면 무성(無性)의 보리를 성취하지 못하는 것이다. 

게송에서 분명히 비유와 정황을 들어 설했으니   있으니, 병이 있으면 반드시 법에 의거해서 즉시 다스리는 것으로, 마치 길을 가로막은 흙덩이를 없애면 길 자체에 장애가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자기의 병이 이미 없어지면 또한 남에게도 복용하라고 주는 것이니, 약과 약방문은 끝내 버릴 것이 없는 것이다.

명칭이 지수(智首)인 것은 지혜가 능히 근기를 알아 방편으로 법약(法藥)을 베풀면서도 4섭법과 4무량심과 10바라밀과 37조보리분법(助菩提分法)으로 병(病)이 두드러진 곳을 따라 복용케함으로써 보리의 작위 없는 성품을 발휘해 점점 근본해 의지케 하는 것을 지수(智首)라 칭한 것이니, 이는 하방(下方)세계로서, 보시와 지계(持戒)와 인욕과 정진과 선정 등의 10바라밀문으로써 대지처럼 능히 일체의 순백 청정한 법을 일으킴을 밝힌 것이다. 

 

爾時(이시) 文殊師利菩薩(문수사리보살) 問(문)首菩薩言(지수보살언) 

그 때에 문수사리 보살이 지수보살에게 물어 말하기를, 

佛子(불자) 於佛法中(어불법중) 智爲上首(지위상수) 如來가 何故로 或爲衆生(혹위중생) 

“불자여, 불법 가운데에서는 지혜가 으뜸이거늘, 어떠한 연고로 여래께서는 중생을 위하여

ㅡ만약 편벽하게 이(理)만 닦으면 곧 고요함에 정체되고,

만약 변벽되게 지혜(智慧)만 닦으면 곧 자비가 없게 되며,

만약 편벽되게 자비(慈悲)만 닦으면 곧 오염의 습기인 염습(染習)이 증대되고,

만약 대염원만 닦으면 곧 유위(有爲)의 정(情)이 일어나나니,

보살은 이러한 온갖 중행(衆行)을 버리지 않고, 또한 그러함에 머물지도 않고, 법성(法性)으로 균등히 융화하여야 처소를 얻을 수 있으리라. 선정과 지혜의 힘으로 머물지도 않고, 법성으로 균등히 융화하여야 처소를 얻을 것이니, 선정과 지혜의 힘으로 잘 관찰할 것이지, 정(情)에 매달린 짐작으로 일체의 온갖 어리석음과 애착을 키워서는 안 되는 것이다.ㅡ이통현(李通玄)장자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9권 6

 

讚歎布施(찬탄보시) 혹 보시를 찬탄하기도 하시고, 

或讚持戒(혹찬지계) 혹은 계행의 지계를 찬탄하기도 하시고  

或讚堪忍(혹찬감인) 혹은 감인(堪忍)하여 인욕하는 것을 찬탄하기도 하시고 

或讚精進(혹찬정진) 혹은 정진을 찬탄하기도 하시고

或讚禪定(혹찬선정) 혹은 선정을 찬탄하기도 하시고

或讚智慧(혹찬지혜) 혹은 지혜를 찬탄하기도 하시고

或復讚歎慈悲喜捨(혹부찬탄자비희사) 혹은 또 자(慈)무량심, 비(悲)무량심, 희(喜)무량심, 사(捨)무량심의 사무량심(四無量心)을 찬탄하기도 하시는 것입니까? 

而終無有唯以一法(이종무유유이일법) 而得出離(이득출리) 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성아뇩다라삼먁삼보리자) 

종내에는 오로지 일법(一法)만으로 출리(出離)를 얻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한 이가 없다는 것입니까?

 

ㅡ지수(智首) 보살의 게송답(偈頌答)

時(시) 智首菩薩(지수보살) 以頌答曰(이송답왈)

그 때에 보수보살이 게송으로 답하였으니, 

 

1. 佛子甚希有(불자심희유)  能知衆生心(능지중생심) 如仁所問義(여인소문의) 諦聽我今說(제청아금설) 

불자여, 능히 중생들의 마음을 아시나니, 매우 희유하십니다.  
어지신 인자(仁者)시여, 물은 바의 그 뜻을 이제 설명하오니 잘 들으소서.  

 

2. 過去未來世(과거미래세)와 現在諸導師(현재제도사) 無有說一法(무유설일법) 而得於道者(이득어도자) 

지나간 과거세(過去世)나 오는 미래세(未來世)와 지금의 현재세(現在世)에 계시는 모든 도사들께서
법(一法)을 설하시어, 그 일법만으로 보리의 도를 얻는다고 말한 이는 없습니다. 

 

3. 佛知衆生心(불지중생심) 性分各不同(성분각부동) 隨其所應度(수기소응도) 如是而說法(여시이설법) 

부처님께서는 중생의 마음과 성품이 제각각으로 다르므로,

그들이 응(應)하는 바를 따라 제도할  있다는 것을 아셨으므로, 이러하게 설법하신 것이니, 

 

4. 慳者爲讚施(간자위찬시) 毁禁者讚戒(훼금자찬계) 多瞋爲讚忍(다진위찬인) 

好懈讚精進(호해찬정진) 慳 아낄 간

인색하게 아끼는 간자(慳者)에게는 보시(보시 바라밀)를 찬탄하시고,

금계(禁戒)를 깨뜨리는 자에게는 계행(지계 바라밀)을 찬탄하시고,

화를 자 내는 진심이 많은 이에게는 인욕(인욕 바라밀)을 찬탄하시고,

으름을 좋아하는 이에게는 정진(정진 바라밀)을 찬탄하셨습니다.

 

5. 亂意讚禪定(난의찬선정) 愚癡讚智慧(우치찬지혜) 不仁讚慈愍(불인찬자민) 怒害讚大悲(노해찬대비) 

마음이 산란하여 어지러운 사람에게는 선정(선 바라밀)을 찬탄하시고,

어리석어서 우치(愚癡)한 이에게는 지혜(지혜 바라밀)를 찬탄하시며
인자하지 못하고 악한 이에게는 사랑과 연의 자민(慈愍, 자무량심)을 찬탄하시고,

분노하여서 남을 해치는 원해(怒害)한 사람에게는 대비(비무량심)를 찬탄하셨습니다.

 

6. 憂慼爲讚喜(우척위찬희) 曲心讚歎捨(곡심찬탄사) 如是次第修(여시차제수) 漸具諸佛法(점구제불법) 

근심이 많아서 얼굴이 찌그러져 있는 우척(憂慼)한 이에게는 환희(희 무량심)을 찬탄하시고,

마음이 굽어서 심곡(曲心)한 사람에게는 버림의 사(捨, 사무량심)를 찬탄하시며,  
이와 같이 (6 바라밀과 사무량심을) 차례로 닦아 나아간다면, 부처님의 모든 불법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7. 如先立基堵(여선립기도) 而後造宮室(이후조궁실) 施戒亦復然(시계역부연) 菩薩衆行本(보살중행본) 

이는 마치 기도(基堵, 기초와 담장)를 먼저 닦은 후에야 좋은 궁전 지을  있는 것과 같이
보시와 계행들도 그러한 것으로, 모든 보살들의 중행(衆行)의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8. 譬如建城郭(비여건성곽) 爲護諸人衆(위호제인중) 忍進亦如是(인진역여시) 防護諸菩薩(방호제보살) 

비유하자면, 성곽을 쌓아 세우는 것은 모든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과 같이, 
인욕(바라밀)이나 정진(바라밀)도 그와 같아서 보살들을 방호(防護, 막아서 보호하다)하기 위한 것입니다.

9. 譬如大力王(비여대력왕) 率土咸戴仰(솔토함대앙) 定慧亦如是(정혜역여시)

菩薩所依賴(보살소의뢰) 率 거느릴 솔, 우두머리 수, 비율 률

비유하자면  위력이 있는 임금을, 그 다스리는 천하가 우러러 받드는 것과 같이
선정이나 지혜도 그과 같아서, 보살들의 소의뢰(所依賴, 의지처)가 되는 것입니다.

 

10. 亦如轉輪王(역여전륜왕) 能與一切樂(능여일체락) 四等亦如是(사등역여시) 與諸菩薩樂(여제보살락) 

또한 마치 전륜성왕이 능히 일체에게 여러 가지 즐거움을 줄 수 잇는 것과 같이
자무량심ㆍ비무량심ㆍ희무량심ㆍ사무량심의 사무량심(四無量心)도 그와 같아서

보살들에게 즐거움 주는 것입니다.

 

ㅡ문수(文殊) 보살이 현수(賢首) 보살에게 종종부동(種種不同)을 묻다

ㅡ이 10행의 게송 중 첫 두 행은 법왕(法王)이 오직 일법(一法)이며 일신(一身)이며 일지(一智)임을 찬탄한 것이며,

이하 8행의 게송의 네 가지 대의(大意)는,

첫째. 차별적인 불국토가 근본 회향심으로 인(因)해 성취된 것임을 찬탄한 것이니, 회향심으로 근기에 나아가 사물을 이롭게 함으로써 몸(身)과 땅(土)과 교의(敎義)가 모두 근기에 따름을 밝히 것이며, 

둘째. 모든 부처님의 자기 과보의 경계는 행인(行因)으로 보는 것이 아님을 밝힌 것이며, 

셋째. 중생의 차별적인 일이 모두 중생의 심행(心行)의 차이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에 자기 마음을 따라 다름을 보는 것일 뿐, 부처님이 다른 것이 아님을 밝힌 것이며, 

넷째. 부처님의 신력(神力)으로 능히 근기에 나아가 법을 나타냄을 밝힌 것이다.

ㅡ명칭이 현수(賢首)인 것은 이 열 가지 심심(信心)을 얻으니 부처님의 과덕(果德)이 자기 마음과 더불어 일체(一體)라는 것을 믿음으로써 의심이 걸린 곳과 막히고 통한 곳을 잘 알아서 그 현위(賢位)에 들어가기 때문에 현수라 칭함을 밝힌 것이다.

이는 상방(上方)의 지위이며, 그 뜻은 이 신위(信位)에서 마음의 지혜와 경계가 다 허공 같아서 포함하지 않는 바가 없으니, 이와 같이 방해나 장애가 없는 것이 바로 현인(賢仁)의 덕이기 때문에 현수라 칭하는 것이다.

 

爾時(이시) 文殊師利菩薩(문수사리보살) 問(문)首菩薩言(현수보살언) 

그 때에 문수사리 보살이 현수보살에게 물어 말하기를, 

佛子(불자) 諸佛世尊(제불세존) 唯以一道(유이일도) 而得出離(이득출리) 云何今見(운하금견)

一切佛土(일체불토) 所有衆事(소유중사) 種種不同(종종부동) 

 “불자여,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오직 일도(一道)로서 출리(出離, 벗어남)을 얻으셨거늘, 

지금 보니 어찌하여 일체의 모든 불토(佛土)에 있는 모든 일들이 종종부동(種種不同)하여 제각각 같지 않은 것입니까?

所謂世界(소위세계) 衆生界(중생계) 說法(설법) 調伏(조복) 壽量(수량) 光明(광명)  

神通(신통) 衆會(중회) 敎儀(교의) 法住(법주) 各有差別(각유차별) 無有不具(무유불구)

一切佛法(일체불법) 而成(이성) 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아뇩다라삼먁삼보리자) 

말하자면, 세계와 중생계(衆生界, 중생들)과 설법과 조복함과 수량(壽量, 수명)과 광명과 신통과

중회(衆會, 대중의 모임)와 교의(敎儀, 가르치는 의식)와 법주(法住, 불법에 머무름)이 각각 차별하며,

일체의 모든 불법을 갖추지 않고서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는 이가 없는 것입니까?

 

時(시) 賢首菩薩(현수보살) 以頌答曰(이송답왈)

때에 보수보살이 게송으로 답하였으니, 

 

1. 文殊法常爾(문수법상이) 法王唯一法(법왕유일법) 一切無碍人(일체무애인) 一道出生死(일도출생사) 

문수여, 법이 항상 그러한 것이라, 법왕께서는 오직 일법(一法)이실 뿐이니
일체에 걸림이 없는 무애인(無碍人)께서는 일도(一道)로서 생사를 벗어나셨습니다.

 

2. 一切諸佛身(일체제불신) 唯是一法身(유시일법신) 一心一智慧(일심일지혜) 力無畏亦然(역무외역연) 

일체의 모든 불신(佛身)들은 오직 하나인 일법신(一法身)이실 뿐이며,
일심(一心)으로 마음도 하나이고, 일지혜(一智慧)로서 지혜도 하나이시며,

두려움이 없으심(십력)도 역시 그러하십니다.

ㅡ일체 모든 부처님의 몸이 오직 하나의 일법신이라는 것은, 그대로 진리의 몸이라는 뜻으로, 산천초목 천지만물이 전부 일법신(一法身)이고, 그대로가 법신 비로자나불이라는 뜻입니다.  

 

3.如本趣菩提(여본취보리)에 所有廻向心(소유회향심) 得如是刹土(득여시찰토) 衆會及說法(중회급설법) 

마치 처음(本)에 보리를 향하여 나아가실 때에 가지셨던 회향심(廻向心)과 같이

(근본보리에 회향하는 마음을 가지신 것과 같이)  
이러한 찰토(刹土, 세계)와 대중 모임의 중회(衆會)와 설법하심을 얻게 되었습니다.

 

4.一切諸佛刹(일체제불찰) 莊嚴悉圓滿(장엄실원만) 隨衆生行異(수중생행이) 如是見不同(여시견부동) 

일체의 모든 부처님들의 불찰(佛刹, 부처님 세계)의 장엄이 모두 원만하지만
중생에 따라 행(行)이 다르나니, 그와 같이 보는 것 또한 같지 않은 것입니다.

ㅡ깨달음의 안목으로 보면 어느 지역ㆍ어느 국토ㆍ어느 나라 할 것 없이, 모두 장엄이 그대로 원만한 상태인데, 우리의 좁은 소견으로 내 입장에 맞춘 잣대로 재니까, 부족한 것 투성이고, 불만스러운 것 투성이고, 나와 맞지 않은 것은 중생들, 즉 우리들의 소견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 지역이나 국토, 기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ㅡ무비스님

 

5. 佛刹與佛身(불찰여불신) 衆會及言說(중회급언설) 如是諸佛法(여시제불법) 衆生莫能見(중생막능견) 

불찰(佛刹, 부처님 세계)과 불신(佛身)과 대중 모임의 중회(衆會)와 말씀하시는,
이러한 모든 불법(佛法)들을 중생들은 능히 아무도 불 수가 없으니, 

 

6. 其心已淸淨(기심이청정) 諸願皆具足(제원개구족) 如是明達人(여시명달인) 於此乃能覩(어차내능도) 

 마음이 이미 청정하였으며, 모든 원을 모두  구족하여서
이러하게 밝게 아는 명달인(明達人)이라야 이러한 것을 능히 보게 되는 것입니다.

 

7. 隨衆生心樂(수중생심락) 及以業果力(급이업과력) 如是見差別(여시견차별) 此佛威神故(차불위신고) 

중생들이 마음으로 즐거워하는 바와, 그러함으로서 지은 업(業)과 과보를 받는 힘에 따라
그러한 차별함이 있음을 보게 되나니, 이는 부처님의 위신력 때문입니다.

 

8. 佛刹無分別(불찰무분별) 無憎無有愛(무증무유애) 但隨衆生心(단수중생심) 

如是見有殊(여시견유수) 殊 다를 수 

불찰(佛刹, 부처님 세계)은 분별이 없고, 미워함도 없는 무증(無憎)이며, 사랑함도 없는 무유애(無有愛)이건만
다만 중생들의 마음을 따라, 그와 같이 다르다고 보는 것입니다.

9. 以是於世界(이시어세계) 所見各差別(소견각차별) 非一切如來(비일체여래)

大仙之過咎(대선지과구) 咎 허물 구

그러므로 세계를 보는 소견이 각각으로 차별한 것이니, 

(소견이나 견해가 다른 것으로, 이는 틀리거나 옳지 않은 것이 아니며) 
그렇게 다른 견해는 일체의 여래나 대선(大仙, 선인)의 허물이 아닙니다.

(우리 참마음의 허물도 아니고, 부처님의 허물도 아니고, 보살의 허물도 아닌,

우리가 개인적으로 떠올리는 그 생각들이 문제인 것입니다)

10. 一切諸世界(일체제세계) 所應受化者(소응수화자) 常見人中雄(상견인중웅) 諸佛法如是(제불법여시) 

일체의 모든 세계에서 마땅히 교화를 받을 만한 사람이라면, 
항상 사람 가운데에서 영웅인 인중웅(人中雄)을 볼 수 있을 것이니,

모든 부처님의 불 역시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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