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9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通玄 장순용 번역

 

네 종류의 인과(因果)인, 사종인(四種因)의 두 번째, 만행의 인과인 만행인(萬行因)이란,

여래의 자행(自行)인 보현행(普賢行)으로 인(因)을 삼아서 초래한 보수(寶樹)가 줄지어 항렬(樹行)하여서 금지(金地, 금강지)를 장엄한 것이 시방에 두루한 것으로, 의과(依果)가 되는 것이다.

 

경전에서 “이 도량의 모든 장엄구(莊嚴具)로 하여금 나무 속에 상(像)을 나타내게 했다”고 한 것은,

각(覺)과 행(行)의 체(體)가 두루 사무침을 밝힌 것으로, 이는 모두 나무의 장엄을 진술한 것인데, 나중에 따로 보리수 하나를 듦으로써 모든 나무가 그렇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 보리수에 열 가지의  10종의과(十種依果)가 있는 것은,

항상 금강지를 정보(正報)로 삼고, 그 위의 장엄으로 의보(依報)를 삼으며,

또 여래의 몸으로 정보(正報)를 삼고 금강지와 지상의 일체 장엄으로 의보(依報)를 삼고 있는 것이지만,

나무는 어래의 행(行)으로 인(因)을 삼아서 그 행으로 인한 과보를 초래한 것이므로 나무가 의보(依報)가 되는 것이다.


또 그 나무는 금강(金剛)으로 몸(身)이 된 것은 금강이 정보(正報)가 되고, 줄기와 가지와 잎과 꽃과 열매가 의보(依報)가 된다.

그리하여 행(行)의 나무와 법(法)의 꽃과 지혜의 열매와 자비의 잎이 10바라밀이 되어서 줄기와 가지를 삼고,

법신(法身)으로 줄기(莖)를 삼아서 10행(十行)을 따라 그 과보가 열 가지의 십종의과(十種依果)의 장엄을 얻음을 밝힌 것이다.

 
이러한 십종의과(十種依果)의 장엄이란 무엇인가?
*첫째로 '금강으로 나무의 몸이 되었다는 금강위수신(金剛爲樹身)'이란 것은, 법성으로 단행(檀行)의 체(體)를 삼기 때문에 초래한 금강수신(金剛樹身)의 의과(依果)니, 이는 일체의 행이 법성(法性)으로부터 생겼음을 밝히는 것이라서 금강으로 삼은 것이다.

“나무가 높게 드러났다는 수고현(樹高顯)”이라고 말한 것은 그 아래의 '십지품'에서 “10지 보살의 행 중에서 의과(依果)가 초래한 나무 둥치의 둘레가 10만 삼천대천세계이며, 높이가 백만 삼천대천세계이다”라고 한 것이니, 저 10지 보살의 행 중의 의과(依果)도 오히려 이러하거늘 하물며 여래이시겠는가!

 

*둘째로 '유리(琉璃)로 줄기를 삼은 유리위간(琉璃爲幹)'이란 것은, 가지가 생긴 위쪽이 줄기가 되고 그 밑에 가지나 잔가지가 없는 곳이 나무의 몸이 되는 것이니, 스스로가 행한 청정한 계율로서 인(因)을 삼기 때문에 외적(外的)으로는 유리가 나무의 줄기가 되는 것을 초래한다고 밝히고 있는 것이니, 곧바로 나온 것이 줄기가 되고, 곁에 나온 것은 가지가 되고, 가지 위에 난 것이 잔가지가 되니, 만행이 흐름을 따르면서도 청정한 계율을 체(體)로 삼기 때문에 오염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모두가 법성신(法性身)이 흐름을 따르면서도 오염이나 청정이 없는 행과(行果)로서 초래된 과보의 상(相)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셋째로 '온갖 오묘한 갖가지 보배로 가지와 잔가지를 삼아서 그 줄기를 장엄한' 것은, 순수하거나 잡된 온갖 만행이 연(緣)을 대하여 인(忍)을 이루어서 능히 자타(自他)를 이롭게 하도록 초래한 인과의 의과(依果)임을 밝힌 것이다.

 
*넷째로 보배 잎사귀가 울창해서 마치 구름과 같이 그늘을 드리우닌 잔가지를 장엄한 것에서,

울창함의 부소(扶疏)는 그늘진 곳이니, 정진바라밀의 자리이타(自利利他)하는 교행(敎行)의 법문으로 보호하는 것이 처소를 얻어서, 간소하지도 않고 번잡하지도 않고, 중도에 맞는 까닭에 외적으로는 의과(依果)가 나뭇잎으로 장엄하여 중생을 가려주는 처소를 얻음을 초래한 것임을 밝힌 것이다.


*다섯째로 보배꽃의 보화(寶華)의 여러 가지 색의 가지들이 그림자를 넓게 펼쳐서 보배 나무를 장엄한 것은,

여래께서 무량한 삼매의 방편으로 흐름을 따라 중생을 이롭게 하는데, 일체 중생들에게 영응(影應, 그림자가 따라다니듯이 감응하는 것)하는 행으로 종류를 따라 형태를 나타냄으로써, 외적으로는 그 꽃으로 보배 나무의 장엄을 초래함을 밝힌 것이며,

또한 삼매가 능히 지혜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에 과보로 얻은 의과(依果)가 꽃으로 장엄되어 있음을 밝힌 것이다.


*여섯째로 마니로 과(果)를 삼아 꽃(華) 사이에 늘어 놓은 것은, 선정의 꽃으로 능히 지혜의 열매를 맺히게 하여서 적용(寂用)이 자재함을 밝힌 것으로, 광휘를 머금고 불꽃을 발한 것은 지혜가 능히 자타(自他)를 비추기 때문에 초래한 의과(依果)로서 꽃과 열매로서 장엄된 것이다.

 

*일곱째로 나무가 광엄(光嚴)을 내는 것은, 방편바라밀이 대비심으로 전(纏, 속박)에 처함을 밝힌 것이니,

일을 같이 하는, 동사(同事)의 방편으로 어두움을 깨뜨리기 때문에 초래한 의과(依果)로서 나무가 광엄을 내는 것이다.


*여덟째로 광명이 마니를 내는 광출마니(光出摩尼)란 것은 제8의 원(願)바라밀로 지혜를 일으킴에 자재함으로써 초래한 과(果)임을 밝힌 것이다.


*아홉째로 마니 보배 안에 있는 모든 보살이 동시에 출현한 것은, 제9의 역(力) 바리밀이 무공(無功)의 지신(智身, 지혜의 몸)으로 응신(應身)을 나타내어서 연(緣)을 따라 중생을 이롭게 하기 때문에 9지(九地) 보살이 대법사가 되어서 초래한 의보(依報)와 정보(正報)의 본말(本末, 처음과 끝)이 서로 같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행(行)의 과(果)로써 능히 나무의 과보를 초래하여 나무에서 보살 대중을 내는 것은 본래의 행인 본행(本行)을 밝힌 것이니, 의보와 정보가 서로 사무치면서 총(總)과 별(別)의 갖춤을 밝힌 것이다.

본래의 행인 만행(萬行)의 과보로 나무의 장엄을 얻어서, 나무에서 보살이 출현함을 밝힌 것은 인과(因果)가 사무침을 밝힌 것이며, 마니 보배 속에서 보살신운(菩薩身雲)이 출현함을 밝힌 것은 8지(八地)의 무공(無功)의 청정한 지혜로 9지(九地)에서 행을 내어 가르침을 시설해서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므로 보살은 행(行)이요, 나무는 행의 과보로 얻은 것이며, 역시 수중(樹中)에서 보살행을 나타낸 것이다.

 
*열째로 보리수가 항상 오묘한 소리를 내면서 설법으로 장엄한 것은 여래의 10주(十住)와 10지(十地) 등의 지(智)바라밀이 대법운(大法雲)으로 법우(法雨)를 내리기 때문에 초래한 의과(依果)임을 밝힌 것이다.


네 종류의 인과(因果) 중 세 번째, 대자비의 인과를 밝히는 대비인과(大悲因果)란,

여래의 대자비로 인(因)을 삼고 여래의 거처인 궁전으로 의과(依果)를 삼은 것으로,

이러함에는 5 가지의 오종덕(五種德)이 있어서 함께 성취하였으니,

*첫째 여래의 대자비의 함육덕(含育德)으로 궁(宮)을 이룬 것이며,

*둘째 올바른 장지(正智)로 중생을 이롭게 하는 덕으로 전(殿)을 이룬 것이며,

*셋째 지혜로써 관조하여 자타(自他)를 이롭게 하는 덕으로 능히 누(樓)를 이룬 것이며,

*넷째 대지혜로 중생의 근기를 알아서 가르침을 시설하여 중생을 이롭게 하는 덕으로 능히 각(閣)을 이룬 것이며,

*다섯째 대자비의 크나큰 염원으로 널리 중생을 이롭게 하는 덕을 통해 그 과보로 궁전누각(宮殿樓閣)이 시방에 두루함을 얻은 것이다.

 
또한 10바라밀(十波羅蜜)의 행이 대자비를 따라 다시 열 가지의 십종의과(十種依果)를 이루고 있으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법신(法身)을 따르고 만행(萬行)을 따르고 대자비(大慈悲)를 따르고 대지(大智)를 따라서 초래한 의과(依果)가 저마다 스스로 구분되어서 서로 장애되지 않는 것이,

마치 대지가 온갖 풀과 나무를 생육하면서도 땅은 하나뿐이라서 만상이 같지 않은 것과 같으며,

또 물이 생장의 바탕이 되는 비유를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10바라밀은 이치가 오직 하나의 성품인 일성(一性)일 뿐이면서도 그 법신과 만행과 대자비와 대지혜를 따라서 과보가 스스로 다르기 때문에, 저 법신과 대염원과 대자비와 대지혜와 10바라밀을 하나라도 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설사 8지까지 이르더라도 그 공(功)이 아직 순수하하게 성숙하지 못한 까닭에 하나라도 폐하면 일체가 이루어지지 못하나니,

부처님의 불보리(佛菩提)를 배우고자 하는 이는 이렇게 융화하여야 되는 것으로, 일행(一行)만을 닦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만약 편벽하게 이(理)만 닦으면 곧 고요함에 정체되고,

만약 변벽되게 지혜만 닦으면 곧 자비가 없게 되며,

만약 편벽되게 자비만 닦으면 곧 오염의 습기인 염습(染習)이 증대되고,

만약 대염원만 닦으면 곧 유위(有爲)의 정(情)이 일어나나니,

보살은 이러한 온갖 중행(衆行)을 버리지 않고, 또한 그러함에 머물지도 않고, 법성으로 균등히 융화하여야 처소를 얻을 수 있으리라.

선정과 지혜의 힘으로 머물지도 않고, 법성으로 균등히 융화해야 처소를 얻을 것이니, 선정과 지혜의 힘으로 잘 관찰할 것이지, 정(情)에 매달린 짐작으로 일체의 온갖 어리석음과 애착을 키워서는 안 되는 것이다.

  
열 가지 행으로 열 가지 십종의과(十種依果)의 장엄을 삼은 것이란 다음과 같으니, 
*첫째로 시방에 있는 일체의 모든 부처님의 평등한 법성(法性)의 무착(無著)한 대자대비심으로 단(檀)바라밀을 행하여서 초래한 의과(依果)가 온갖 색깔의 마니(摩尼)를 모은 것이니, 이는 대자비의 지위에서 만행이 오염되기도 하고 청정하기도 하면서 한 가지 색깔이 아니기 때문에, 초래한 의과(依果)도 한 색깔이 아닌 것으로 궁전을 장엄한 것이다.


*둘째로 법성(法性) 자체의 청정하고 작위 없는 무표계(無表戒)의 체(體)로써 대자비행을 따라 중생을 수호하는 것을 행화(行華)라고 이름붙이니, 능히 자타(自他)의 과(果)를 감응하기 때문에 초래한 보화(寶華)의 과보로 궁전을 장엄한 것이다. 


*셋째로 인(忍)바라밀로 세상에 처하면서 범부를 제도하고 칭찬이나 비방에도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초래한 보화(寶華)의 과보로 궁전을 장엄한 것이다.

  

셋째로 인(忍)바라밀로 세상에 처하면서 범부를 제도하고 칭찬이나 비방에도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외적으로 초래한 의과도 온갖 보배가 광명을 유출하고 그 광명이 깃발로 변화하는 것이니, 깃발이란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면서도 원수를 이긴다는 뜻으로, 칭찬이나 비방의 원수를 이기기 때문이다.


*넷째로 정진바라밀로 대자비행을 따름으로써 외적으로 초래한 의과(依果)도 끝이 없는 보살과 도량의 모든 중회(衆會)로 궁전을 장엄해서, 모두 그곳에 모이는 것이다.

 

*다섯째로 선(禪)바라밀로 대자비행을 따름으로써 외적으로 초래한 의과(依果)도 보살이 광명을 나타낸 것이니, 선정으로 능히 대자비의 지혜 광명을 발하기 때문이다.

 

*여섯째로 혜(慧)바라밀로 대자비행을 따름으로써 외적으로 초래한 의과(依果)도 부사의한 마니보왕(摩尼寶王)으로 그 그물이 됨을 얻는 것인, 그리하여 혜(慧)가 능히 간택함으로써 제법의 그물을 성취하기 때문에 불가사의한 음성의 보배 그물로써 궁전을 장엄하게 되는 것이다.

 
*일곱째로 방편(方便)바라밀로 능히 대자비를 따라서 오염과 청정의 흐름을 따르는 행을 같이 함으로써 외적으로 초래한 의과(依果)도 자재로운 신통의 능력으로 모든 경계가 모두 그 속에서 나옴을 얻는 것이니, 이는 여래께서 법의 의지하거나 머묾이 없는 무의주지혜(無依住智慧)의 문으로 대자비 방편의 행을 성취하는 것을 인(因)으로 삼기 때문에 초래한 신력(神力)으로 궁전을 장엄함을 밝힌 것이니, 7지(地)의 지위에서 행하는 방편행으로 대자비의 문을 이루는 것과 같다.

 
경전에서는 비유하기를 “마치 한 나라가 순전히 더럽기만 하고  한 나라는 순전히 청정하기만 하다면, 이 두 나라의 일은 완전히 알기가 어려운 것과 같다”고 하였으니, 이는 7지 보살이 대자비 방편의 만행을 성취함으로써 오염과 청정의 두 견해를 끊기도 어렵고 성취하기도 어려움을 밝힌 것이다. 이 자비문으로 중생을 이롭게 교화함에 있어서 쉬지 않기 때문이다.

 
*여덟째로 원(願)바라밀을 통해 외적으로 초래한 의과(依果)도 중생이 거처하는 집이 궁전에 나타나는 것이니, 이는 여래의 대염원이 중생들에게 응하는 것으로서 인(因)을 삼으면서 초래한 의과(依果)가 이렇게 나타남을 밝힌 것이며, 아울러 이 속에서 지혜와 자비가 원만하게 청정함을 밝히는 것이다.

 
*아홉째로 여래가 역(力)바라밀의 문으로 대자비행을 따름으로써 대법사가 되신 까닭에 모든 부처님의 신력(神力)으로 가피(加被)를 받은 것으로써 궁전을 장엄하여 의과(依果)로 삼은 것이다.


*열째로 여래가 지(智)바라밀을 행하는 것으로 인(因)을 삼아서 외적으로 일념 사이에 궁전이 시방 법계를 신력(神力)으로 다 포함한 것을 초래함이니, 이는 지혜가 자비의 작용을 따라서 널리 덮고 있음을 밝힌 것이다.


이상으로 열 가지의 십종행(十種行)으로 궁전을 장엄한 것은 모두가 여래의 대자비행을 따르면서 초래한 의과(依果)이기 때문에 문장이 서로 연관되면서 서로 융화하고 의존하는 것이다.

이는 일행(一行)과 일체행(一切行)이 서로 사무치기 때문에 일체의 과보가 인(因) 없이 얻을 수 없음을 밝힌 것이니,

다만 지혜로써 세세하게 사유하여 보면 본래 인과의 안팎이 같을 것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