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經卷第十三 菩薩問明品第十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 三藏沙門(삼장사문) 實叉難陀 譯(실차난타 역)
10. 보살문명품(菩薩問明品) ㅡ 5
ㅡ문수 보살이 근수(勤首)보살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은 하나인데 어째서 번뇌를 끊고 번뇌를 끊지 못하는, 같지 않음이 있는지 질문한 열 가지 질문이다. 근수 보살이 답한 첫 1행의 게송은 듣기를 권유하는 것이요,
다음 1행의 게송은 법을 듣고 부지런히 닦아 나감을 권하는 것이며,
이하 9행은 그 게으름을 질책하는 것이다.
ㅡ명칭이 근수(勤首)인 것은 앞의 목수보살이 복전(福田)의 인과(因果)를 잘 보임으로써 부처님의 명호가 구경지(究竟地)이지만, 이 지위는 반드시 부지런히 행하기 때문에 근수(勤首)라 칭함을 밝힌 것이다.
ㅡ문수보살이 근수(勤首) 보살에게 10 가지 교법이 차별 없음의 십종교법무차별(十種敎法無差別)을 질문하다.
爾時(이시) 文殊師利菩薩(문수사리보살) 問(문) 勤首菩薩言(근수보살언)
그 때에 문수사리 보살이 덕수보살에게 묻기를,
佛子(불자) 佛敎是一(불교시일) 衆生得見(중생득견) 云何(운하) 不卽悉斷(부즉실단)
一切諸煩惱縛(일체제번뇌박) 而得出離(이득출리)
불자여, 부처님 가르침의 교법(敎法)은 하나이거늘, 중생들이 보고는
어찌하여 모든 번뇌의 속박을 즉시에 바로 끊고 벗어나는 출리(出離)를 얻지 못하는 것입니까?
然(연) 其色蘊受蘊想蘊行蘊識蘊(기색온수온상온행온식온)
그러나 색온(色蘊, 육체 또는 물)ㆍ수온(受蘊, 지각 느낌)ㆍ상온(想蘊, 표상 생각)ㆍ
행온(行蘊, 욕구 의지)ㆍ식온(識蘊, 마음 의식)의 오온(五蘊)과
欲界色界無色界(욕계색계무색계) 無明貪愛(무명탐애) 無有差別(무유차별)
욕계(欲界, 욕유)ㆍ색계(色界, 색유)ㆍ무색계(無色界, 무색유)의 삼계(三界)와 무명ㆍ탐애는 차별이 없으니,
是則佛敎(시즉불교) 於諸衆生(어제중생) 或有利益(혹유이익)이며 或無利益(혹무이익)
이것이 곧 부처님의 교법이 여러 중생들에게 이익이 있거나 혹은 이익이 없는 것입니다.”
ㅡ근수(勤首) 보살의 게송답(偈頌答)
時(시) 勤首菩薩(근수보살) 以頌答曰(이송답왈)
때에 보수보살이 게송으로 답하였으니,
1. 佛子善諦聽(불자선체청) 我今如實答(아금여실답) 或有速解脫(혹유속해탈) 或有難出離(혹유난출리)
불자여, 잘 들으소서, 내 이제 사실대로 여실하게 답하리라.
혹 어떤 이는 빠르게 해탈을 얻고, 혹 어떤 이는 난출리(難出離, 벗어나기 어려운)입니다.
2. 若欲求除滅(약욕구제멸) 無量諸過惡(무량제과악) 當於佛法中(당어불법중) 勇猛常精進(용맹상정진)
만약 무량한 허물과 악업을 모두 끊어서 없애기를 구한다면,
마땅히 부처님의 불법(佛法) 가운데에서 언제나 용맹하게 정진해야 하나니,
3.譬如微少火(비여미소화) 樵濕速令滅(초습속영멸) 於佛敎法中(어불교법중) 懈怠者亦然(해태자역연)
비유하자면, 마치 불씨가 미미하여서 적으면 젖은 땔감(쏘시개)으로 빨리 끌 수 있는 것과 같이
부처님 가르침의 교법(佛敎)에서 게으른 해태자(懈怠者) 역시도 그러합니다.
4. 如鑽燧求火(여찬수구화) 未出而數息(미출이삭식) 火勢隨止滅(화세수지멸) 懈怠者亦然(해태자역연)
마치 나무를 비벼서 불을 구할 때, 불이 일어나기도 전에 자주 쉰다면
불 기운도 따라서 멈추어 멸하는 것과 같이, 게으른 해태자(懈怠者) 역시도 그러합니다.
5. 如人持日珠(여인지일주) 不以物承影(불이물승영) 火終不可得(화종불가득) 懈怠者亦然(해태자역연)
마치 어떤 사람이 일주(日珠, 돋보기 구슬, 햇빛을 모으는 구슬)를 들고 솜털로써 햇빛을 받지 않으면
끝내 불을 얻지 못하는 것과 같이, 게으른 해태자(懈怠者) 역시도 그러합니다.
6. 譬如赫日照(비여혁일조) 孩稚閉其目(해치폐기목) 怪言何不覩(괴언하부도) 懈怠者亦然(해태자역연)
비유하자면 마치 햇빛이 밝게 비추일 때, 해치(孩稚, 어린아이)가 스스로의 눈을 가리우고서
햇빛이 보이지 않는다고 괴언(怪言, 괴이한 말)을 말하는 것과 같이, 게으른 해태자(懈怠者) 역시도 그러합니다.
7. 如人無手足(여인무수족) 欲以芒草箭(욕이망초전) 遍射破大地(변사파대지) 懈怠者亦然(해태자역연)
마치 손과 발이 없는 사람이 억새풀로 만든 화살을 쏘아서 대지를 두루 깨트리고자 하는 것과 같이
게으른 해태자(懈怠者) 역시도 그러합니다.
8. 如以一毛端(여이일모단) 而取大海水(이취대해수) 欲令盡乾竭(욕령진건갈) 懈怠者亦然(해태자역연)
또한 마치 일모단(一毛, 한 터럭의 끝)으로, 대해의 바닷물을 찍어 내어서
대해의 물을 모두 말리고자 하는 것과 같이, 게으른 해태자(懈怠者) 역시도 그러합니다.
9. 又如劫火起(우여겁화기) 欲以少水滅(욕이소수멸) 於佛敎法中(어불교법중) 懈怠者亦然(해태자역연)
비유자면, 겁화(劫火)가 일어났을 때, 작은 물을 끼얹어서 끄고자 하는 것과 같이,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교법 가운데에서, 게으른 해태자(懈怠者) 역시도 그러합니다.
10. 如有見虛空(여유견허공) 端居不搖動(단거불요동)
而言普騰躡(이언보등섭) 懈怠者亦然(해태자역연) 오를 등騰ㆍ밟을 섭躡.
또한 마치 어떤 이가 허공을 보면서 단정히 앉아서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모든 하늘을 밟고 올라 갔다고 말하는 것과 같이, 게으른 해태자(懈怠者) 역시도 그러합니다.
ㅡ문수보살이 법수(法首)보살에게 10 가지의 십종수번뇌(十種隨煩惱)를 질문하다.
ㅡ문수 보살이 법수(法首) 보살에게 “부처님께서 설한 바와 같이 어떤 중생이 올바른 법을 받아 지니면 능히 일체 번뇌를 다 끊을텐데 어찌하여 올바른 법을 받아 지니면서도 끊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라고 질문한 것과
그 가운데 11 가지 질문에 법수보살이 답한, 10행의 게송에서 첫 한 구절은 듣기를 권한 것이며,
다음 한 구절은 능히 질문함을 찬탄한 것이며,
다음 두 구절은 많이 들은 자가 수행하지 않음을 질책한 것이며,
이하 9행의 게송은 1행이 하나의 게송인데 많이 들으면서도 마음이 정일(精一)하지 못해서 능히 번뇌를 끊지 못함을 질책한 것이다.
ㅡ명칭이 법수(法首)인 것은 서북방의 술(戌)과 해(亥) 사이가 되는 것이니, 이는 미혹의 긴 밤 속에서도 능히 정법(正法)으로 자신을 이익되게 하고 남을 이익되게 하여 게으름 없이 오로지 구하는 것을 법수라 칭함을 밝힌 것이다.
ㅡ수번뇌(隨煩惱)는 수혹(隨惑)이라고도 하며, 세 가지 뜻이 있다.
첫 번째는 근본번뇌(根本煩惱)를 따라 일어나는 2차적인 번뇌라는 뜻으로, 이 경우의 수번뇌를 근본번뇌와 구분하여 지말번뇌(枝末煩惱) 또는 지말혹(枝末惑)이라고도 한다.
두 번째는 마음(心, citta)을 따라 일어나서 유정을 괴롭고 혼란스럽게 뇌란(惱亂)하게 하는 마음작용, 즉 근본번뇌라는 뜻이다.
세 번째는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의미를 통칭하는 것으로, 이 경우의 수번뇌는 곧 일체(一切)의 번뇌 즉 모든 번뇌를 말하며, 이 경우 수번뇌는 번뇌의 여러 다른 이름 가운데 하나이다.
20종의 수번뇌(유가행식)
소수번뇌심소(小隨煩惱心所)의 10가지 모두: 분(忿) · 한(恨) · 부(覆) · 뇌(惱) · 질(嫉) · 간(慳) · 광(誑) · 첨(諂) · 해(害) · 교(憍)
중수번뇌심소(中隨煩惱心所)의 2가지 모두: 무참(無慚) · 무괴(無愧)
대수번뇌심소(大隨煩惱心所)의 8가지 모두: 도거(掉擧) · 혼침(惛沈) · 불신(不信) · 해태(懈怠) · 방일(放逸) · 실념(失念) · 산란(散亂) · 부정지(不正知) ㅡ위키
爾時(이시) 文殊師利菩薩(문수사리보살) 問(문) 法首菩薩言(법수보살언)
그 때에 문수사리 보살이 법수보살에게 물어 말하기를,
佛子(불자) 如佛所說(여불소설) 若有衆生(약유중생) 受持正法(수지정법) 悉能除斷(실능제단)
一切煩惱(일체번뇌) 何故(하고) 復有受持正法(부유수지정법) 而不斷者(이부단자)
불자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만약 어떤 중생이 바른 정법(正法)을 받아 지니면
능히 일체의 모든 번뇌를 끊을 수 있거늘,
무슨 연고로 바른 정법을 받아 지니고서도 끊지 못하는 부단자(不斷者)가 있는 것입니까?
隨貪瞋癡(수탐진치)
탐욕을 따르는 수탐(隨貪)과 화내는 마음을 따른 수진(隨瞋)과 어리석음을 따르는 수치(隨癡)와
隨慢(수만) 隨覆(수부) 隨忿(수분)
업신여기는 교만심을 따르는 수만(隨慢)과 자기의 허물 덮어 버리는 수부(覆)와 분노심을 따르는 수분(隨忿)과
隨恨(수한) 隨嫉(수질) 隨慳(수간)
한탄하는 마음을 따르는 수한(隨恨)과 질투하는 마음을 따르는 수질(隨嫉)과 아끼는 마음을 따르는 수간(隨慳)과
隨誑(수광) 隨諂(수첨) 勢力所轉(세력소전) 無有離心(무유이심)
속이는 마음을 따르는 수광(隨誑)과, 아첨하는 마음을 따른 수첨(隨諂)의 세력에 지배되어서 그러한 마음을 여의지 못하나니,
能受持法(능수지법) 何故(하고) 復於心行之內(부어심행지내) 起諸煩惱(기제번뇌)
능히 바른 정법을 받아 지니면서도 어떠한 연고로
다시 심행(心行, 마음이 행하는 바, 생각)에 여러 번뇌를 일으키는 것입니까?
(정법을 따라 참선하고, 기도하고, 염불하고, 공부하는데 어찌하여 아직도 마음속에서는 이러한 십종의 수번뇌가 일어나는 것입니까?)
ㅡ번뇌(煩惱)란, 그 본질적 성질이 부적정(不寂靜: 고요하지 않음)인 마음작용들을 말한다. 번뇌의 본질적인 작용은 번뇌가 일어나게 되면, 그 번뇌를 대치(對治)하지 않는 한, 그 자체의 본질적인 성질에 근거하여 그 번뇌가 일으키는 부적정한 영향력[行] 즉 부적정한 업이 몸과 마음에 상속되어 전전(展轉)하게 하는 것이다. 달리 말해, 필연적으로, 번뇌로 인해 업이, 특히 악업이 발생하고, 업으로 인해 괴로운 상태[苦]에 처하게 된다. 불교에서는 이와 같이 번뇌[惑]가 일어나 몸과 말과 마음으로 악한 행위[身口意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묶이게 되고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고 말하는데, 이것을 전통적인 용어로 혹업고(惑業苦)의 3도(三道)라고 한다. 그리고 12연기의 유전연기(流轉緣起)는 무명으로 대표되는 번뇌[惑]에서 업으로 업에서 고로 이어지는 혹업고의 연기관계를 보다 자세히 밝힌 것이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이런 고통의 생사윤회[苦]의 원인이 되는 번뇌[集]를 반야 즉 무루의 지혜로 끊어 안온한 적정(寂靜)의 상태인 해탈 또는 열반의 상태[滅]에 이르는 것[道]을 수행의 1차적인 목적으로 삼는다. 그리고 이것이 곧 불교의 근본적인 가르침 또는 진리인 고집멸도의 4성제(四聖諦)이다.
번뇌(煩惱)의 어원을 통해 살펴본다면, 산스크리트어 kleśa 또는 팔리어 kilesa를 번역한 말이다. 따라서 이를 음역하여 번뇌를 길례사(吉隸舍)라고도 표현한다. 산스크리트어 kleśa는 '괴롭히다'라는 뜻의 동사 kliś에서 파생되었다.
팔리어 kilesa는 '물들이다, 더럽히다'라는 뜻의 동사 kilissati에서 파생된 것으로, 괴롭힘의 뜻 보다는 염오(染污)의 뜻이 강하다.
부파불교 설일체유부의 논서인 《입아비달마론》 제1권에서는 "몸과 마음의 상속[身心相續: 5온의 상속]을 번란(煩亂: 번거롭게 어지럽힘)시키고 핍뇌(逼惱: 괴롭혀 고뇌케 함)하기 때문에 번뇌(煩惱)라고 이름한다"고 진술하고 있다.
혜원(523~592)은 《대승의장》 제5권에서 번뇌(煩惱)는 노란(勞亂) 즉 고단하게 하고 어지럽히는 뜻이라고 말하고 있다.
원효(617~686)는 《이장의》에서 번뇌장(煩惱障)에 대해 설명하면서 "번뇌장은 탐(貪) · 진(瞋) 등의 혹(惑)으로, [몸과 마음을] 번로(煩勞: 번거롭고 힘들게 함)하게 함을 그 본질적 성질로 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이 진술에 이어서, "[이들 혹(惑)들이] 마땅한 때에 일어나 현행하여 몸과 마음을 번란(煩亂: 번거롭게 어지럽힘)시키기 때문에 번뇌라고 이름한다"고 말하고 있다 -- 위키백과
ㅡ법수(法首) 보살의 게송답(偈頌答)
時(시) 法首菩薩(법수보살) 以頌答曰(이송답왈)
때에 법수보살이 게송으로 답하였으니,
1.佛子善諦聽(불자선제청) 所問如實義(소문여실의) 非但以多聞(비단이다문) 能入如來法(능입여래법)
불자여, 자세하게 잘 들으소서, 당신께서 물으신 바는 사실과 같은 여실의(如實義)이오니
다만 많이 듣는 다문(多聞)만으로는 여래법(如來法) 가운데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법문을 많이 듣고 경전을 많이 보면서, 또한 실제적인 수행으로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2.如人水所漂(여인수소표) 懼溺而渴死(구익이갈사) 於法不修行(어법불수행) 多聞亦如是(다문역여시)
마치 어떤 사람이 물에서 표류하면서, 빠질까 두려워서 목말라 죽게 되는 것과 같이
불법을 수행하지 않으면서 그저 많이 듣는, 다문(多聞)만 하는 것 역시도 그러한 것입니다.
3. 如人設美饍(여인설미선) 自餓而不食(자아이불식) 於法不修行(어법불수행) 多聞亦如是(다문역여시)
마치 어떤 사람이 미선(美饍, 맛난 음식)들을 차려 놓고서도 스스로는 굶으면서 먹지 않는 것과 같이
불법을 수행하지 않으면서 그저 많이 듣는, 다문(多聞)만 하는 것 역시도 그러한 것입니다.
4. 如人善方藥(여인선방약) 自疾이 不能救(자질불능구) 於法不修行(어법불수행) 多聞亦如是(다문역여시)
마치 어떤 약의 처방전을 잘 아는 어떤 사람이 자기 스스로의 병은 고치지 못하는 것과 같이
불법을 수행하지 않으면서 그저 많이 듣는, 다문(多聞)만 하는 것 역시도 그러한 것입니다.
5. 如人數他寶(여인수타보) 自無半錢分(자무반전분) 於法不修行(어법불수행) 多聞亦如是(다문역여시)
마치 어떤 사람이 남의 보물을 많이 세어 주지만, 자기의 몫은 반푼도 없는 것과 같이
(은행원이 하루 종일 남의 돈을 세지만, 자기 돈은 한 푼도 없는 것과 같이)
불법을 수행하지 않으면서 그저 많이 듣는, 다문(多聞)만 하는 것 역시도 그러한 것입니다.
6. 如有生王宮(여유생왕궁) 而受餒與寒(이수뇌여한)
於法不修行(어법불수행) 多聞亦如是(다문역여시) 餒 주릴 뇌
마치 왕궁에 태어난 이가 배가 굶주리고 추위를 느끼는 것과 같이
불법을 수행하지 않으면서 그저 많이 듣는, 다문(多聞)만 하는 것 역시도 그러한 것입니다.
7. 如聾奏音樂(여롱주음악) 悅彼不自聞인달(열피부자문)
於法不修行(어법불수행) 多聞亦如是(다문역여시) 聾 귀머거리 롱
마치 귀머거리가 음악을 연주하여서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지만, 그 자신은 듣지 못하는 것과 같이,
불법을 수행하지 않으면서 그저 많이 듣는, 다문(多聞)만 하는 것 역시도 그러한 것입니다.
8. 如盲繢衆像(여맹훼중상) 示彼不自見인달(시피부자견)
於法不修行(어법불수행) 多聞亦如是(다문역여시) 그림 그릴 수 繢, 수놓을 수 繢
마치 소경이 여러 가지의 모양을 그려내어 수를 놓아서 다른 이들이 보게 하지만,
그 스스로는 보지 못하는 것과 같이, 불법을 수행하지 않으면서
그저 많이 듣는, 다문(多聞)만 하는 것 역시도 그러한 것입니다.
9. 譬如海船師(비여해선사) 而於海中死(이어해중사) 於法不修行(어법불수행) 多聞亦如是(다문역여시)
비유하자면, 마치 바다의 선해사(海船師, 뱃사공)들이 바다에서 죽게 되는 것과 같이
불법을 수행하지 않으면서 그저 많이 듣는, 다문(多聞)만 하는 것 역시도 그러한 것입니다.
10. 如在四衢道(여재사구도) 廣說衆好事(광설중호사) 內自無實德(내자무실덕) 不行亦如是(불행역여시)
마치 어떤 사람이 사거리에서 여러 가지 좋은 일들을 말하지만
자기 스스로에게는 실다운 공덕이 없는 것과 같이 수행하지 않음 역시도 그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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