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經卷第十三 菩薩問明品第十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三藏沙門(삼장사문實叉難陀 (실차난타 

10. 보살문명품(菩薩問明品)  3

 

문수보살이 보수(寶首)보살에게 질문하다.ㅡ 10 가지의 과보를 받는 10 인과(十因果)

爾時(이시) 文殊師利菩薩(문수사리보살) 問(문) 寶首菩薩言(보수보살언)

그 때에 문수사리보살이 보수(寶首)보살에게 물어 말하기를,

 

佛子(불자) 一切衆生(일체중생) 等有四大(등유사대) 無我無我所(무아무아소)

불자여, 일체의 모든 중생들 모두가 같은 사대(四大, 지수화풍)를 가졌으나 '나(我)' 없고 ' 것(我所)' 없거늘, 

云何(운하) 而有受苦受樂(이유수고수락) 

어찌하여 괴로움을 받는 수고(受苦)하고 즐거움을 받는 수락(受樂)하며 

 

端正醜陋(단정추루)  단정하기도 하고 누추하기도 하며

內好外好(내호외호) 안으로 좋기도 하고, 밖으로(환경)이 좋기도 하며,   

少受多受(소수다수) 적게 받기도 하고고 많이 받기도 하며,

或受現報(혹수현보)  혹은 현생에서 과보를 받는 현보(現報)이기도 하고

或受後報(혹수후보) 혹은 후생에서 과보를 받는 후보(後報)이기도 한 것입니까? 

 

然(연) 法界中(법계중) 無美無惡(무미무악)  

그러나 법계 가운데에는 아름다운 것도 없고 추악한 것도 없는 것입니다.

 

삼보(三報) 순현보(順現報)·순생보(順生報)·순후보(順後報)의 세 가지 과보(果報) 이르는 것으로,

순현보(順現報) 또는 현보(現報)는 현재의 생에서 그 과보를 받는것,

순생보(順生報) 또는 생보(生報)는 바로 다음의 생에서 그 과보를 받는 것,

순후보(順後報) 또는 후보(後報)는 그 다음 다음으로 이어지는 후생의 어느 때에 받는 과보로서, 

선악의 업(業)을, 그 업과에 받는 시기에 따라 세 가지로 나눈 삼시업(三時業)과 같은 것입니다.

이승에서 받는 순현업(順現業), 다시 태어나서 받는 순차업(順次業), 세 번째 태어나서 받는 순후업(順後業)을 삼시업이라 하며, 

 

또한 삼시보(三時報)는 선악(善惡)의 행위를 그 결과를 받는 때의 빠르고 늦음에 따라 3종류로 나눈 것으로

① 순현수업(順現受業). 현세에서 업(業)을 짓고, 그 보답을 이 세상에서 받는 것,

② 순차수업(順次受業). 다음 세상에서 보답을 받는 것,

③ 순후수업(順後受業). 다음다음세상(제3生) 이후에 보답을 받는 것을 3업(三業)이라 하기도 합니다. 

 

ㅡ문수사리가 보수(寶首)보살에게 “모든 중생이 다 함께 사대가 있지만 아(我)도 없고 아소(我所)도 없으니 무엇을 말함인가”라고 물은 10 가지 질문은 업의 인과법(因果法)이며, 이하 10행의 게송은 보수보살이 앞의 열 가지 질문에 대해 답한 것으로

처음은 거체(擧體)에 분별이 없음을 밝힌 것이며, 둘째는 업을 받는 좋고 나쁨이 행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임을 밝힌 것이다. 경전에서 자세히 설하고 있는  대의는 체(體)를 요달하면 업이 없어지고 진(眞)을 미혹하면 업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게송의 첫 두 구절은 과보가 행을 말미암아 생김을 찬탄한 것이며,

다음 두 구절은 업의 체(體)가 본래 참이라서 근본적으로 있는 바가 없다는 것이 모든 부처님의 교설임을 찬탄한 것이다.

법을 요달하면 업이 없어서 법과 업이 둘이 아니지만 행으로 말미암아 같지 않은 것이니 경문에서 알 수 있다.

둘째의 보살의 명칭을 해석한다는 것을 설명하면, 이 신위(信位)에서 업이 곧 법체(法體)라는 것을 요달해서 다시 업이 있지 않음을 법보(法寶)라 하는데, 이 법보로써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이 믿음의 첫머리가 되기 때문에 그 명칭이 보수(寶首)이니, 이는 북방(北方)이며 스승의 지위임을 밝힌 것이니, 위의(威儀)의 궤칙으로써 중생을 이롭게 하기 때문에 부처님의 명호가 위의지불(威儀智佛)이며, 세계의 명칭이 첨복화(瞻蔔華)인 것은 이 꽃이 황색으로서 중생을 이롭게 하는 복덕의 색임을 밝힌 것이다.

황색은 복경(福慶)의 기(氣)로서 안으로 순백의 청정함에 응하나, 밖으로는 황색의 상(相)을 나타내기 때문이며, 여래께서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어서 검은 옷을 입는 것은 북방의 감(坎)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ㅡ보수(寶首) 보살의 게송답(偈頌答)

時(시) 寶首菩薩(보수보살) 以頌答曰(이송답왈)

때에 보수보살이 게송으로 답하였으니, 

 

1. 隨其所行業(수기소행업) 如是果報生(여시과보생) 

作者無所有(작자무소유) 諸佛之所說(제불지소설) 

그들 중생들이 행하는 바의 업을 따라, 그 행한 바와 같은 과보가 생기거니와
짓는 작자(作者) 실체가 없는 무소유(無所有)이니, 이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이라.

 

2.譬如淨明鏡(비여정명경) 隨其所對質(수기소대질) 

現像各不同(현상각부동) 業性亦如是(업성역여시) 

비유하자면, 깨끗하고 거울이 그 앞에서 대질(對質)하는 대상을 따라
그 나타나는 현상(現像)이 각각으로 다른 것과 같이, 업성(業性, 업의 성품) 역시도 그러한 것이라네.

ㅡ무엇이 업을 짓는지 모르지만, 우리 모두 각각으로 업이 달라서 이렇게 얼굴이 각각 다르고, 각자 느끼는 것이 다르고, 마음 씀씀이가 다르고, 각각으로 살아 가는 길이 다르고, 먹는 것도 다 다르고, 소화되는 것도 각각 다른 것이, 업과심심(業果甚深)해서 불가사의한 도리입니다.ㅡ무비스님

 

3. 亦如田種子(역여전종자) 各各不相知(각각불상지) 

自然能出生(자연능출생) 業性亦如是(업성역여시)  

또한 마치 밭에 심은 종자(種子)들이 제각각으로 서로를 알지 못하나, 
자연히 움을 틔우고 싹을 내는 것과 같이, 업성(業性, 업의 성품) 역시도 그러한 것이라네. 

 

4. 又如巧幻師(우여교환사) 在彼四衢道(재피사구도) 

示現衆色相(시현중색상) 業性亦如是(업성역여시) 

 마치 능숙하고 공교로운 교환사(巧幻師, 능숙한 마술사)가 사방으로 통하는거리에서
여러 가지 빛과 모양을 나타내 보이는 것과 같이, 업성(業性, 업의 성품) 역시도 그러한 것이라네. 

 

5. 如機關木人(여기관목인) 能出種種聲(능출종종성) 

彼無我非我(피무아비아) 業性亦如是(업성역여시)  

마치 기관(機關)으로 만든 목인(木人, 허수아비)이 능히 여러 가지로 소리를 내지만
그것은 나(我)도 없고 비아(非我, 나 아님)도 없는 것과 같이 (그냥 나무일 뿐인 것과 같이) 

모든 업성(業性, 업의 성품) 역시도 그러한 것이라네. 

6. 亦如衆鳥類(역여중조류) 從殼而得出(종각이득출) 

音聲各不同(음성각부동) 業性亦如是(업성역여시)  

또한 마치 많은 종류의 온갖 새들 모두가 알의 껍질을 깨고 나왔지만, 
그 내는 음성들은 제각각으로 같지 않은 것과 같이, 모든 업성(業性, 업의 성품) 역시도 그러한 것이라네.  

 

7. 譬如胎藏中(비여태장중) 諸根悉成就(제근실성취) 

體相無來處(체상무래처) 業性亦如是(업성역여시)  

비유하면 태(胎) 속에서 자라는 태아의 제근(諸根, 육근)이 차례로 이루어 지지만, 
그 체상(體相, 신체)은 오는 곳이 없는 것과 같이, 모든 업성(業性, 업의 성품) 역시도 그러한 것이라네.  

 

8. 又如在地獄(우여재지옥) 種種諸苦事(종종제고사) 

彼悉無所從(피실무소종) 業性亦如是(업성역여시)  

또한 마치 지옥에 있는 여러 중생들이 갖가지로 고사(苦事, 고통)을 받으나,

그 고통이 쫓아온 바가 없는 것과 같이, 모든 업성(業性, 업의 성품) 역시도 그러한 것이라네.  

 

9.譬如轉輪王(비여전륜왕) 成就勝七寶(성취승칠보) 

來處不可得(내처불가득) 業性亦如是(업성역여시) 

비유하자면, 전륜성왕이 일곱 가지 보배의 뛰어난 칠보(七寶)를 가지고 있지만
그 온 곳을 구하여도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이, 모든 업성(業性, 업의 성품) 역시도 그러한 것이라네.  

 

10.又如諸世界(우여제세계) 大火所燒然(대화소소연) 

此火無來處(차화무래처) 業性亦如是(업성역여시)  

또한 마치 온 시방의 여러 세계에 대화(大火)가 일어나서 타게 될지라도
그 대화(大火)가 온 곳이 없는 것과 같이, 모든 업성(業性, 업의 성품) 역시도 그러한 것이라네.  

ㅡ하루 24시간 중에 무엇인가 업을 짓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누워 자면 자는 업이요. 앉아 있으면 앉아 있는 업이요. 산책을 하면 산책 하는 업이요. 경을 보면 경을 보는 업이고, 불공하면 불공하는 업이고, 기도하면 기도하는 업이고, 24시간 중에 우리는 무슨 없이든 지으면서 살아야 되는데, 부처님말씀을 공부하는 업을 지으라는 것입니다. ㅡ무비스님

 

업(業), 업보(業報), 업력(業力), 응보(應報), 카르마는 인과의 개념으로, 본래 행위를 뜻하는 말로서 인과(因果)의 연쇄관계에 놓이는 것이며 단독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의 행위는 그 이전의 행위의 결과로 생기는 것이며, 그것은 또한 미래의 행위에 대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거기에는 과거 · 현재 · 미래와 같이 잠재적으로 지속하는 일종의 상응하는 전생의 행위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 업 사상은 초월적인 힘이 감득(感得)되어 있으며 흔히 시간(時間: Kala) · 천명(天命: Daiva) · 천성(天性: Svalhava) 등의 말로 표현되고 있다.

 

몸(身) · 입(口) · 뜻(意)으로 짓는 말과 동작과 생각, 그리고 그 인과를 의미하며, 업은 짓는다는 뜻이며, 

정신으로 생각하는 작용인 의념(意念)이 뜻을 결정하고 선악을 짓게 하여서 업이 생기는 것으로,

의업은 사업(思業)과 사이업(思已業)으로 나누어진다. 사업은 뜻으로 활동하는 정신 내부의 의업이며, 사이업은 한번 뜻을 결정한 뒤 외부에 표현되는 신업(身業)과 구업(口業), 곧 신 · 구 · 의 3업(三業)이라 한다.
또 몸과 입으로 외부로 나타나 표현되는 표업(表業)이 있으며, 그 표업이 끝난 뒤에 밖으로는 표출되지 않아도 선업이나 악업을 상속하는 것을 무표업(無表業)이라 한다.

그리고 업은 선업 · 악업으로 분류되어서, 십선업(十善業) · 십악업(十惡業)이 되며, 악업만을 단순히 업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업에는 인(因, 원인)의 면과 과보(果報, 결과)라는 양면이 있는데 업인(業因)이 되는 행위로서는 
신체에 의한 행위의 신업(身業), 언어에 의한 행위로서의 구업(口業), 마음의 작용 사념(思念)의 의업(意業)의 삼업(三業)으로 나뉘어 지면, 삼업으로 이루어진 행위 중에 선악의 모든 업이 포함된다
과보(果報) 면에서,

공업(共業)은 재해나 사회발전 등과 같이 공통으로 함께 받는 인과이며,

불공업(不共業), 개인적으로 병이나서 받는 고통이나, 개인적인 즐거움 등으로 아무도 대신 할 수 없는 인과이며

이와 같이 업에는 개인적인 것이면서 동시에 사화적이고 역사적인 작용이 있다

정업(定業)이란 과거세의 업에 의해서 금세에서 받아얄 과보가 정해진 것이며, 

부정업(不定業)이란 과거세의 업으로 받아야할 과보가 아직 정해지지 않는 것이며, 

무기업(無記業)은 선악(善惡) 고락(苦樂) 등의 구별이 되지 않은 것을 말한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란 스스로 행한 행위의 과보를 스스로 받는 것으로,

법구경에서, '스스로 악을 행하면 스스로 더러워지고, 스스로 악을 행하지 않으면 스스로 청정해지나니
사람은 각자 스스로가 청정하여지기도 하고 스스로 부정(不淨)하여지기도 한다'고 하였다.

과거세에서부터 쌓아온 업(業)으로 인하여 개인의 능력이나 용모가 각자가 다른 차별상은 숙업(宿業)이라 하며, 
이 숙업은 운명론과는 다른 것으로, 숙업은 자신의 업인(業因)에 의해서 받는 것이다.

과거세에서부터 쌓아온 숙업에 의해 현재의 우리들은 여러 가지로 구속되어 있지만, 자신의 의지와 행동, 즉 신구의 삼업으로 미래의 과보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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