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5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通玄 장순용 번역

 

이 화엄경의 가르침에서는 10주ㆍ10행ㆍ10회향ㆍ10지의 각 지위마다 불과(佛果)가 있고,

또 이 지위의 보살이 뛰어난 덕을 세워서 항상 생사에 처하면서도 맹세코 일체의 무진(無盡)한 중생들을 제도하고자 하는 서원의 지혜와 두려움이 없음을 당(幢)이라 하는 것이니, 

그러함으로 무명이 지혜가 되는 것을 요달하게 되는 까닭에 기뻐하거나 싫어함이 있는 자는 불가(不可)한 것이다.

 

또한 보시바라밀을 행할 때, 구걸하는 자가 온갖 재보를 구걸할지라도 가진 것과 함께 몸이나 목숨까지도 다 베풀어 주며,

세상에서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베풀어 주면서도 환희하며, 마음이 흔들려서 기울어지지 않는 마음을 당(幢)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니, 당(幢)이란 기울어지 않고 요동하지 않는, 불경동(不傾動)이라는 뜻이다.


보시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법의 보시의 법시(法施)이고, 다른 하나는 사물을 보시하는 사시(事施)이다.

법 보시의 법시(法施)라는 것은 법을 사람들에게 베풀면서도,

아소(我所, 나의 것)라는 생각이 없어서 일체에 무념(無念)인 것을 법시(法施)라 하며,

사물을 보시하는 사시(事施)라는 것은, 몸과 목숨과 재보 등의 사물들을 중생들에게 주면서도 아끼지 않는 것이니,

이 10향위(十向位)의 보살은 이러한 법시와 사시의 두 종류의 보시를 평상시에도 게으름 없이 행하나니,

그 자세한 내용은 10향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어째서 유래한 국토의 명칭을 묘(妙)라 하는 것인가?

이 10회향 보살의 지혜와 묘용이 자재로워서 유(有)와 무(無)를 비롯한 모든 견량(見量)과

한계의 허물에 걸리지 않는 것을 국(國, 국토)라고 명명한 것을 밝히는 까닭이다.

 

어째서 본래 섬기고 있는 본소사불(本所事佛)의 이름이 모두 같은 당(幢)으로, 자기와 더불어 호칭이 같은 것인가?

이 10회향의 보살이 이미 묘용을 성취해서 부처님의 묘용과 더불어 이(理)와 사(事), 인(因)과 과(果)의 당위(當位, 해당되는 지위)의 바탕(體)이 동등함이, 앞의 10주와 10행의 당위(當位)에서 섬기고 있는 부처와 더불어 인(因)과 과(果)의 바탕이 같아서 각 지위마다 그러함을 밝히고 있는 까닭이다.


그때 금강당(金剛幢)보살이 부처님의 신력(神力)을 받들어 보살의 지광삼매(智光三昧)에 들고,

그 삼매에 완전히 들어서는 시방으로 각각 십만불찰미진수(十萬佛刹微塵數) 세계를 지난 곳에 있는 십만 불찰미진수의 동일하게  금강당(金剛幢)이라 칭하는 모든 부처님들이 금강당 보살 앞에 나타나서, 전과 같이 13 가지로 금강당보살에게 가지하였다.

 

부처님의 신력을 받았다는, 승불신력(承佛神力)이라는 것은 지존께서 덕을 추대한 것으로서 스승과 제자가 서로 공경하는 것이며, 

지광삼매(智光三昧)에 들었다는 것에서 ㅡ 삼매(三昧)란 등인(等引)이라 이름하는 것으로 ― 이 지광 삼매에 들어서 무량한 가르침의 광명을 이끌어 내는 것이니,

근본지(根本智)로서 광명의 체(體)를 삼고, 차별지(差別智)로서 가르침의 광명을 삼아서 근기를 따라 이익을 주는 것이니

지혜가 능히 어둠을 타파할 수 있는 것이다.

 

광명(光明)이란 바로 가르침이니, 즉 가르침으로 능히 미혹을 타파하는 까닭이며,

분명한 이해를 발생시켜 일체 중생의 지혜의 태양을 열어주는 까닭이며,

중생으로 하여금 먹구름이 드리운 어두운 밤에 헤매이지 않게 하는 까닭이며,

장님이 눈을 뜨게 되고, 귀머거리가 들을 수 있게 되는  까닭이며,

능히 삿된 오만의 산을 모두 무너뜨릴 수 있는 까닭이니, 가르침의 광명의 교광(教光)은 이와 같이 불가사의한 것이다.

 

앞의 10행위(十行位)에서는 공덕림(功德林) 보살이 선사유삼매(善思惟三昧)에 들었으나,

이 10회향위(十迴向位)에서는 금강당(金剛幢) 보살이 지광삼매(智光三昧)에 든 것은,

5위(五位)의 단계가 차례로 확장되어 가는 순서의 행상(行相)을 밝힌 것이다.

 

10행위(十行位)는 처음으로 훌륭하게 사유함을 밝힌 것이며

10회향위(十迴向位)에서는 묘용이 자재해서 가르침의 광명이 멀리 비추는 것을 밝힌 것이며,

10행위(十行位)에선 만불찰미진수 세계를 지나서 만불찰미진수의 부처님께서 오시나,

10회향위(十迴向位)에서는 십만불찰미진수 세계를 지나서 십만불찰미진수세계의 부처님들께서 오신 것은

5위(五位)의 단계대로 확장되고 승진하여 나아가는 수행의 진수문(進修門)을 밝힌 것이다.

 

모든 정(情)을 잊고, 선정과 지혜의 정혜문(定慧門)으로써 겹겹이 겹쳐서 다함이 없는 현묘한 이(理)와 사(事)에 들어가서 비추어 보면 미혹이 풀릴 수 있는 것이지만, 억지나 짐작으로 증상만(增上慢)을 일으켜서는 안 되는 것이다.

 

열세 종류의 13가지(十三加持)는 말로써 훌륭하다고 칭찬하는 언찬(讚歎)과

손으로 정수리를 어루만지는 수마정(手摩頂)과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금강당보살에게 열 가지 지혜의 10종지(十種智)를 주는 것과

이 땅의 여래가 광명을 그 몸에 비추어 광조(光照)하는 것이니,

 

말로써 찬탄하는 언찬(讚歎)은 법을 설하는 설자(說者)와 설한 그 법이 잘못 됨이 없다는 것을 밝힌 것이며,

손으로 정수리를 어루만지는 수마정(手摩頂)은 법을 설한 설자와 부처님의 지혜가 서로 미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며,

10종지(十種智)를 준 것은 법을 설한 설자와 부처님의 지혜가 같음을 밝히는 것이며,

이 땅의 여래가 광명을 그 몸에 비추어 광조(光照)한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합치함을 밝히기 위한 광명인 것이며, 

아울러 광명으로 촉감을 깨우치는 각촉(覺觸)으로 설법(說法)을 허락한다는 것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13 종류의 13가지(十三加持)라는 것은, 후세 사람들의 의심을 끊고 법을 성취해서 믿음을 내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그 실체를 논한다면, 모든 부처님께서 각 지위의 행문(行門)을 따르면서도 근본 지위의 법에 의거해 명호(名號)를 세웠으며,

몸을 나타내어서 중생과 함께 법의 궤칙(軌則)을 지어서, 그 중생으로 하여금 본받아 배워서 깨달아 들어갈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부처님께서 가르침을 세워 입교(立教)하신 것은, 배우는 자는 결코 허망하지 않음을 터득하는 까닭에 명호가 같은 동명(同名)인 것이니, 자세한 내용은 10주와 10행에서 모두 해석해 놓았다.

 

이 10회향위(十迴向位)에서는 승도솔천궁품(昇兜率天宮品)과 도솔천궁게찬품(兜率天宮偈讚品)과 십회향품(十廻向品)이 있으며, 이러한 세 품의 경전의 일위십회향법문(一位十廻向法門, 하나의 지위가 10회향 법문을 내포한다는 뜻)의 법 작용의 궤칙을 이루고 있으니, 배우는 자는 이에 의거해서 법칙을 성취하는 것이다.


십지품(十地品)을 설할 때에는 어찌하여 차례대로 도솔천으로부터 다음의 화락천에 오르지 않고, 화락천을 초월해서 타화자재천으로 올라 간 것인가?

이는 10지(十地) 보살 법문의 공덕이 광박(廣博, 넓고 깊은)하여서 경계를 포섭하는 것이 그 이전을 초월하는 까닭에 순서적인 단계에 의거하지 않는다는 것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또한 10지(十地)의 묘용(妙用)은 일정하게 정해진 방위가 없으며, 공을 쌓는 것도 자유롭고, 설하는 곳도 자유로움이, 저 타화자재천이 칭명(稱名)을 자유롭게 하는 것과 같음을 밝히는 때문이다.

 

또 10지보살이 이(理)에 부합하고 성품을 체득해서 그 자체는 무심할 뿐, 스스로는 마음의 변화가 없으나,

중생으로 인한 대자비와 지혜를 일으키나니,

이와 같이 타자(他者)를 말미암아 조화를 일으키는 까닭에 타화자재천으로써 덕을 나타내는 것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타화자재천에서 10지(十地)를 설한 것이니,

째는 공(功)이 전보다 뛰어나게 높은 것을 밝히는 까닭에 단계를 초월하는 것이요,

둘째는 자유롭게 중생을 교화하는 것을 나타내는 까닭에 이 타화자재천에서 10지(十地)를 설하는 것이다.


보현의 등각위(等覺位)는 제3선(禪)에서 8선천(八禪天)의 대중들과 집회를 갖고 불화삼매(佛華三昧)에 들어 백만억의 게송을 설하니, 이 회상의 문장은 너무나 광대해서 세상에 전할 수 없기에 이처럼 간격을 초월한 지위가 전보다 갑절이 되는 것이다.

 

불화(佛華)란 부처님의 행, 즉 불행(佛行)을 말하며, 불행삼매(佛行三昧)에 드는 것은 바로 보현의 법계행(法界行)이다.


10신ㆍ10주ㆍ10행ㆍ10회향 4 지위 속의 보살은 무슨 이유로 단만 열 개의 보살의 같은 이름만 들고,

이 10지위 속에서는 37 개 보살의 같은 이름을 들어서 장(藏)으로 삼으며,

 

해탈월(解脫月)보살은 혼자서만 월(月)로 명칭하는 것인가?

38보살 중에서 37보살이 같은 이름으로 장(藏)이 된 것은 37조도행문(助道行門)을 나타낸 것이고,

해탈월보살 한 분은 37조도행문 중에서 조보리분(助菩提分)의 청량한 과(果)를 나타낸 것이며,

또 모든 보살과 더불어 법을 청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이 일부의 가르침에서 각각의 보살이 불과(佛果)와 공(功)이 같아서 시방에서 온 부처님과 선정에 들어간 보살의 이름이 같은 것은 해당되는 지위 안에서 보살이 증득해 들어가는, 증입(證入)과 부처님의 지위가 동등해서 인(因)과 과(果)가 서로 비슷한 것을 나타냄으로써 귀감을 이루게 한 것이다.

 

그러나 6위(六位)와 5위(五位)에서의 등급은 단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동(同)과 별(別)의 뜻의 영향이 서로 들쑥날쑥해서 순수할(純) 수도 있고, 섞일(雜) 수도 있고,

같을(同) 수도 있고, 다를(別) 수도 있고, 성취할(成) 수도 있고, 파괴할(壞) 수도 있으니,

이 여섯 가지 육상(六相)의 총(總)ㆍ별(別)ㆍ동(同)ㆍ이(異)ㆍ성(成)ㆍ괴(壞)ㆍ문(門)에 준하면 볼 수 있을 것이다.

여섯 가지 육상(六相)은 총문(總門)ㆍ별문(別門)ㆍ동문(同門)ㆍ이문(異門)ㆍ성문(成門)ㆍ괴문(壞門)이니,

이 여섯 가지 육상(六相) 문의 뜻은 하나의 문 속에 여섯이 구족되어 있으나 서로 순(純)과 잡(雜)이 되기 때문에, 어느 하나도 없앨 수 없는 것이다.

 

10중현(重玄)의 뜻도 마찬가지다. 이에 대한 글의 복잡함은 별본(別本)에 나와 있으니, 다만 영향을 준 것으로 참고하라.

 

그러나 10지의 법은 별문(別門) 중 등급을 세운 곳에서 그 행상을 설하고 있으니, 이 10지위는 중도불과(中道佛果)의 궁극에 대한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이전의 지위에서는 무릎 위에서 광명을 놓았지만,

이 10지위에서는 여래의 미간에서 청정한 광명을 내니, 그 이름이 보살력염명(菩薩力焰明)으로서 백천(百千) 아승기 광명으로 권속을 삼는다.

 

미간(眉間)의 광명이란 것은 중도 불과의 궁극이란 뜻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 미간의 광명이 첫 회상(會上)의 여래현상품에서부터 여래께서 미간에서 과덕(果德)의 광명을 놓아 발 밑의 족륜(足輪) 속에 들어가는 것은 과(果)로써 인(因)을 이루는 것을 밝혀, 보현보살로 하여금 부처님의 과덕을 보이게 해서 믿고 즐기게 하려는 것이고,

 
이미 믿고 즐기게 되었다면, 이내 신문(信門)을 설하나니,

광명각품(光明覺品)에서는 두 발 밑의 양족하륜(兩足下輪)으로부터 처음 미간에서 들어온 과덕의 광명을 방출함으로써 금색세계의 부동지불(不動智佛)을 비추어 신위(信位)를 이루고 있다.

다음 단계로 십주품을 설하고자 할 때에는 수미산 정상에 올라가 게찬품(偈讚品)에서 여래의 양족지단(兩足指端, 두 발가락 끝)으로 광명을 놓고 있으며, 

그 다음 단계로 십행품을 설하고자 할 때는 게찬품속에서 여래의 양족상(兩足上, 두 발 위)로부터 광명을 놓고,

그 다음 단계로 십회향품을 설하고자 할 때에는 여래의 슬상(膝上, 무릎 위)에서 광명을 놓고 있다.

그리고 지금 10지 법문을 설할 때에는 초회(初會)에서 미간으로 중도 불과의 광명을 놓아 끝마쳤다가 다시 시작해서 과(果)의 궁극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나 3승(三乘)의 10지(十地)는 이와는 달리, 행상(行相)이 전혀 같지 않아서 10지 보살이 도(道)를 보는 것이 여전히 분명치 못한 것이다.


초회에서 여래께서 미간으로 불과의 광명을 놓은 것을 일체보살지광명보조요(一切菩薩智光明普照曜十方藏)이라 이름하니, 이 광명이 보살을 부처님의 과덕의 문으로 들게 하기 때문이다.

즉 과(果)의 광명을 놓아 과(果)에 들게 함으로써 인과(因果)의 수행이 서로 같은 것이니, 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그때 세존께서는 일체의 보살 대중으로 하여금 여래의 가없는 경계의 신통력을 얻게 하기 위해 미간에서 광명을 놓으시니,

그 이름을 일체보살지광명조조요시방장이라고 하는데, 그 모양은 마치 보색등운(寶色燈雲)과 같다.”


이 광명의 이름이 보조요시방장(普照曜十方藏)이 된 것은 바로 이 10지의 장(藏)이 하나하나의 지위 안에서 다 법계(法界)와 허공계(虛空界)에 두루하고 있는 복과 지혜와 대자비의 장(藏)이란 것을 비추기 때문이다.

 

이제 이 10지는 바로 초회의 여래께서 보살로 하여금 성취한 문을 끝내게 하고 나서 다시 시작하도록 하는 것이니, 그래서 미간에서 광명을 놓는 것이 닮은 것이며, 광명을 놓은 곳도 닮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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