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 5권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李 通玄 장순용 번역
3. 교의의 차별을 밝힘③
시방 부처님의 명칭이 같은 동명(同名)인 것은 이 10주(十住)의 법이 성인 지위의 법류(法流)를 증득해서 이미 법계의 대해(大海)에 들어가 부처님의 성위(聖位)와 같은 지혜인 까닭에,
그러므로 부처님과 법혜보살의 명칭이 같은 동명(同名)인 것은 법이 같음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또한 10주(十住) 법문이 인과(因果)가 같은 까닭에 부처님 지위는 과덕(果德)이 되고 보살은 인(因)이 된다고 밝힌 것이다.
이와 같이 인(因)과 과(果)의 바탕(體)이 다르지 않기 때문에 명칭이 같은 동명(同名)인 것이다.
이 10주(十住)의 법문을 설할 때에는 수미산의 정상에 올랐는데,
법문 속의 여섯 품(品) 경전은 다 같이 10주(十住) 법문의 행상(行相)을 성취하고 있는 것이니,
첫째는 승수미산정품(昇須彌山頂品)이요,
둘째는 게찬품(偈讚品)이요,
셋째는 십주품(十住品)이요,
넷째는 범행품(梵行品)이요,
다섯째는 초발심공덕품(初發心功德品)이요,
여섯째는 명법품(明法品)이 그러한 것이다.
이러한 육품(六品) 경전의 이해와 실천 법문에 의거해서 배우고 닦아서, 깨달아 들어가면,
반드시 10주(十住) 법문을 성취해서 부처님의 종성(種性)에 머무르고,
여래의 집안에 태어나서 부처님의 참다운 자식인 진불자(眞佛子)가 될 수 있으니,
이는 초지(初地) 보살이라야 비로소 불가(佛家)에 태어나고,
또는 10주(十住) · 10행(十行) · 10회향(十迴向)의 세 현인(賢人), 즉 3현(三賢) 보살이 서원(誓願)으로써 성불한다고 설하는 권교(權敎, 방침의 가르침)와는 다른 것이다.
이 화엄경은 곧바른 직론(直論)으로, 실제를 증명하는 지위의 실증위(實證位)를 논하지 않고, 서원을 논하지는 않으니,
이는 화엄경의 교문(敎門)이 일시(一時)이자, 일제(一際)이자, 일법계(一法界)라서,
다른 생각의 이념(異念)이 없고, 먼저와 나중의 전후(前後)라는 정견(情見)이 끊어진,
범부와 성인이 동일한 성품의 법성일성(凡聖一性)이라서, 정견(情見)의 속박을 논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각도 없고 작위도 없는 무념무작(無念無作) 법계의 법문을 비추어 보면 반드시 볼 수 있게 되지만,
혹시라도 정견(情見)을 세우게 된다면 믿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설령 믿음을 내는 생신자(生信者)일지라도 부처님의 말씀만을 믿기 때문에 자기의 견해가 아닌 것이니,
만약 자기의 견해라면, 정(情)이 끊어지고 상념이 없어짐으로써 마음과 이치가 부합하여 심여이합(心與理合)하고
지혜와 경계가 그윽히 합쳐져 일체의 모든 경계의 성(性)과 상(相)을 통째로 거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렇지 못하다면, 마음은 늘 피차(彼此, 너와 나, 이것과 저것)로 나누어져서 시비(是非)가 다투어 일어날 것이니, 더럽다거나 청정하다고 분별하는 것을 어찌 쉴 수 있겠는가?
만약 성품에 부합해서 정(情)이 없어진다면, 법계중현(法界重玄)의 문을 저절로 요달하게 되어서,
하나(一)와 많음(多), 순수(純)와 잡됨(雜)이 자유롭게 수용하여서, 총(總)과 별(別)의 문이 원융자재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중생을 이롭게 하는 법으로 모든 근기의 제근(諸根)들을 잘 요달하게 될 것이니,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따라 모두가 다 이익을 얻게하고, 공경히 받들어 다가오는 모든 이들을 벗할 수 있는 것이다.
야마천궁에 올라서 십행품(十行品)을 설하고, 아울러 여래께서 두 발에서 백천 가지의 묘한 색의 광명을 놓는 것은 공(空)을 의지하여 행(行)을 건립해야 비로소 이(理)와 사(事)가 자재하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니,
이는 10주(十住)의 지위에서는 법신의 본지(本智)를 증명하는 것이고,
10행(十行)의 지위에서는 법신의 금본지(根本智)의 무애(無礙)하면서도 만행(萬行)을 행하는, 그 행들 역시도 무애(無礙)함을 밝힌 것이다.
만약 법신의 본지(本智)를 보지 못한다면, 행하고 있는 만행이 모두 인천(人天)의 인과(因果)에 속하는 것으로, 그 모두가 유루(有漏)로 생멸하는 복이 되는 것이다.
법신의 자지혜(自智慧)로 모든 미혹을 다스리고, 만행의 자비로 중생을 제도하면서도 법신지신(法身智身)이 모든 미혹을 다스리고, 만행의 자비로 중생을 제도하면서도 법신지신(法身智身)이 작위 업는 대자비에 맡겨져서 단박으로 일시에 바로 작용하는 것이니,
비록 권교에서는 7지(七地)에서 자비가 증대하고, 8지(八地)에서 지혜가 증대하는 행상(行相)을 기탁하고 있지만,
이 화엄법계문은 10주(十住)의 초위(初位)에서 모든 지위를 총괄하고 있기 때문에, 10주(十住) 초문(初門)의 지위가 불과(佛果)와 동일하여 일법계(一法界)의 체용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한 지위의 일위(一位) 속에 10바라밀의 모든 십법(十法)을 갖추고 있으니, 제법중현문(諸法重玄門)으로 비추어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모두는 여래장신(如來藏身)인 보현보살의 세계해선(世界海㳬) 법문이라서,
마치 해와 달이 비추어 주어도 장님이 보지 못하는 것은 해나 달의 잘못이 아닌 것과 같은 것이니,
마땅히 스스로 질책하고 몸소 덕을 닦아서 깊은 공경심을 가지고 선정과 지혜의 정혜(定慧)로써 관해야 하리라.
여래장신(如來藏身)이란 것은 곧 법신(法身)이니,
모든 복과 지혜가 그 속에 갈무리하고 있기 때문에 장(藏)이라고 칭하는 것이나,
만약 법신(法身)을 보지 못한다면, 일체의 복과 지혜와 대자대비의 모두를 갖추지 못한다면, 그 모두가 생멸(生滅)에 속하는 것이다.
세계해선(世界海㳬)이라는 것은 자비의 지혜로 근기를 관찰해서 구석구석, 속속들이 세속에 사무침으로써, 몸(身)과 국토(土)와 업(業)이 거듭거듭 하는 것과, 중생이 거듭거듭 하는 것과, 모든 업이 다른 것을 대자비로 널리 구원하여서, 그 근기(根器)를 구별하지 않고 구원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라서 해선(海㳬)이라 칭하는 것인데, 선(㳬)은 바닷물의 조류가 매우 강하게 순환한다 뜻의 회류(回流)를 말하는 것이다.
이는 불과(佛果)의 지위에 있는 보살이 하나의 일법계(一法界)의 문에 들어갈 때에, 거듭거듭하는 중생의 근기와 업을 남김없이 포섭하는 까닭에 세상을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 없이 영원히 생사대해(生死大海)의 소용돌이 속에서 있는 것을 형용한 것이다.
이 10행문(十行門)은 보현행과 같고,
앞에서 말한 10주문(十住門)은 문수사리의 법신근본무상지혜(法身根本無相智慧)와 같은 것이니,
이 두 분은 체(體)를 같이하면서 서로 주(主)와 반(伴)이 되어서, 그 중간에 작위 없는 지혜의 무작지(無作智)가 바로 불과(佛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 문수 보현, 세 분의 체(體)가 동일한 것을 5위(五位)에 의탁함으로써 범부의 미혹을 제접하는 것이다.
만약 어떤 범부가 10신(十信)의 지위를 성취한 신만(信滿)으로 발심한다면, 10주(十住)의 초위에서 3신(三身)을 다 같이 얻을 수 있으니, 문수는 부처님의 법신(法身)이요, 보현은 부처님의 행신(行身)이며, 작위없는 지혜의 무작과(無作果)는 부처님의 보신(報身)인 것이다.
항상 문수의 법신(法身)의 상이 없는 오묘한 지혜의 무상묘혜(無相妙慧)로써 선도하나니,
설(說)할 때에는 먼저와 나중이 있을지라도, 중득할 때는 3신(三身)이 일시(一時)인 것이다.
이는 법이 마땅히 그러한 것이라서 하나도 없앨 수 없는 것으로,
만약 문수를 없애고 보현만을 남겨둔다면 온갖 행문(行門)이 유루(有漏)에 속하게 되고,
만약 보현을 없애고 문수만을 남겨둔다면 증득한 적정(寂定)이 2승(二乘)이 되고,
만약 부처님을 없애고 문수와 보현만을 남겨둔다면 부처님은 바로 깨달음(覺)이니, 깨닫는 각자(無覺)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세 분 중에서 어느 한 분도 뺄 수 없는 것이니,
만약 한 분이라도 빼 버린다면, 셋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3승(三乘)의 권교(방편의 가르침)에서는 이 세 분이 시종일관 거리가 있어서 교문(敎門)이 실답지 못한 것으로, 즉 화신(化身)이 방편으로 작은 근기의 소근(小根)들을 따라 간략하게 방편을 시설하여서 근기의 성숙을 기다려서 점차 실(實)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법화경과 열반경은 모두 점진적으로 실교(實敎)에 나아가게 하는 것이지만,
이 화엄경은 10주(十住)의 초위(初位)에서 10행(十行)ㆍ10회향(十迴向)ㆍ10지(十地)ㆍ등각위(等覺位)의 전부를 끝까지 모두 얻어서, 서로 관통함으로써, 하나의 지위인 1위(一位) 가운데에 오십 가지의 오십법문(五十法門)이 서로 사무쳐서 호상철(互相徹)하는 것이다.
따라서 낱낱의 지위인, 일일위(一一位) 가운데에는 이천오백 가지의 총(總)과 이천오백 가지의 별(別)의 뜻이 모두 나타나고 있으며, 나아가 다함이 없는 무진(無盡)의 모든 지위를 닦아 나아가는 행상(行相)의 단계가 점진적 과정을 없애지 않으면서도 일시(一時)이고, 일시를 없애지 않으면서도 점진적 과정인 것이다.
'화엄경(華嚴經)'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이통현(李通玄)장자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5권 2 (0) | 2026.01.03 |
|---|---|
| 화엄경(華嚴經) 제8권. 화장세계품(華藏世界品) ① 4 (1) | 2026.01.02 |
| 화엄경(華嚴經) 제8권. 화장세계품(華藏世界品) ① 3 (1) | 2026.01.01 |
| 화엄경(華嚴經) 제8권. 화장세계품(華藏世界品) ① 2 (0) | 2025.12.31 |
| 이통현(李通玄)장자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4권 6 (1) | 2025.12.3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