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 4권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李 通玄 장순용 번역

 

또 권교(방편의 가르침)에서 10지를 설할 때에는 타방(地方)에서 온 부처님과 법을 설하는 자가 이름이 같지가 않으며,

또 한편 이름이 같은 부처님께서 증명하고 성취시켜서 인과가 같다는 것을 나타내지도 않는다.

이러한 의미 때문에 권교(방편의 가르침)의 지위와 교문(敎門)은 모두 작은 근기의 중생을 제접해서 방편을 시설하고 있으니,

모든 지혜 있는 사람은 이러한 가운데에 빠지지 말고 마땅히 승진(昇進)을 기뻐해야 한다.

 
이러한 까닭으로, 화엄경에서는 오위십지(五位十地)의 법문시(法門時)를 설하고 있으니,

즉 10주(住)에서 법혜(法慧)보살이 선정에 들어 10주 법문을 설하고자 할 때에, 시방의 천불세계(千佛世界) 밖에서 천불세계 미진수(微塵數)의 이름이 같은 동명법혜불(同名法慧佛)께서 손으로 법혜보살의 정수리를 문지르고,

어업(語業)으로 찬탄하며, 법혜 보살에게 10지력(十智力)을 주어서 13 가지로 가지(加持)를 하고,

 

10행(十行位)에서는 공덕림(功德林)보살이 선정에 들어 시방의 만불세계(萬佛世界) 밖에서 만불세계 미진수의 부처님께서 오시는데, 모두 이름이 공덕림으로서 역시 13 가지로 공덕림보살에게 가지(加持)를 하고,

  

10회향(十迴向)을 설할 때에는 시방의 백만불세계(百萬佛世界) 밖에서 백만불세계 미진수의 부처님께서 오시는데, 한결같이 이름이 금강당(金剛幢)으로서 역시 13 가지로 금강당보상에게 가지(加持)를 하며,

10지(十地)도 역시 마찬가지이니,

이와 같이 부처님과 보살의 이름이 같은 것은 인과가 같음(因果同)을 밝히는 것이니,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겠다.

 

십지론(十地論)은 천친(天親)보살의 저술로 십지경(十地境)을 주석한 것이다.

십지경은 화엄경 속의 십지품이니, 뜻을 해의(解義)는 3승(三乘)과 1승(一乘)의 뜻에 통하고 있으나,

이해하는 자는 다분히 3승(三乘)의 뜻만 이해할 뿐 1승(一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가 많았으니, 그 이유는 1승(一乘)의 도리는 정해(情解)로는 미칠 수 없기 때문이다.

설사 정(情)으로 이해하는 자가 있을지라도 의심의 그물이 걷히지 않았으며, 또한 부처님의 말씀만 믿기 때문에 스스로 의심이 끊어지 않은 것이다. 오직 오래도록 사념이 없는 무사(無思)이며, 고통을 싫어하지 않는 불염고자(不厭苦者)와 고요함(寂)에 걸리지 않아서 불체적자(不滯寂者)와 상(常)ㆍ낙(樂)ㆍ아(我)ㆍ정(淨)을 깨달은 자라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섯 가지의 오종10지(五種十地)에서 세 가지 방편의 삼종권(三種權)이요,

나머지 두 가지 10지(十地)는 실교(實敎)이니, 이러한 때문에 영락경에서는 “옛 부처님의 도법(道法)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이 10지(十地)가 있는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3승권교(三乘權教)의 10지(十地)가 비록 이름은 같을지라도 시설하고 있는 방편으로 중생을 인도하는 실천과 이해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 상황의 당처(當處)에서는 충분히 설했지만, 이름이 같은 부처님께서 다 같이 그 믿음을 인(印)쳐서 인과가 계증(契證)되는 것은 여전히 성취하지 못하는 것이다.

 
*여섯째(교의(敎義)의 차별을 설명하는 10법 의리(義理) 가운데 다섯 번째인 각 지위에서 행하는 행상의 다름을 밝힌 것에서 여섯 가지 수레를 설명하는 것 중에 여섯 번째), 단박에 불성을 증명하는 이지(理智)와 만행(萬行)의 원융한 문을 밝힌다는 것은 다음과 같으니,

화엄경의 제1회(第一會) 여래현상품(如來現相品)에서는 여래께서 이빨 사이에서 치간광명(齒間放光)을 놓고,

또 미간(眉間)으로부터 과덕(果德)의 광명을 놓으며,

또 보현보살을 삼매에 들게 하여서 세계성퓌품(世界成就品)과 화장세계품(華藏世界品)과 비로자나품(毘盧遮那品)을 설하게 함으로써 모든 부처님의 과법(果法)을 설하여, 사랑하고 즐기는 애락(愛樂)의 마음을 내게 하는 것이니, 
이미 사랑하고 즐기는 애락(愛樂)의 마음을 내게 하였다면, 제2회에선 문수사리로 하여금 여래명호품(如來名號品)과 사성제품(四聖諦品)을 설하게 하고, 두 족륜(足輪) 밑에서 광명을 놓아 그 광명이 10불찰(佛刹) 미진수세계를 지나서 제각각 십 불찰미진수보살이 모두 와서 모이고, 또 광명각품(光明覺品과 보살문명품(菩薩問明品)과 정행품(淨行品)과 현수품(賢首品)을 설해서 10신(十信)의 문을 성취하는 것이다.

 

양족륜(兩足輪) 아래로부터의 광명은 가장 아래인 최하(最下)가 되는 것이니, 이는 믿음에 드는 첫머리에서 믿음을 인(因)으로 삼음으로써 믿음이 최하가 된다는 것을 밝히고 있는 것이니, 

이것은 바로 여래 미간의 과광(果光)이 방출되어 들어간 때문이다.
앞의 여래현상품에서 여래께서 미간에서 광명을 놓아 두 족륜 속으로 들어가게 한 것은 부처님의 과덕(果德)을 들어 신위(信位)를 이룸으로써, 모든 배우는 자로 하여금 과법(果法)을 믿어서 초증(初證)을 이루게 하여서 10신(十信)의 문에 들어가게 함을 밝히려고 한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시방에서 각각 십 불찰미진수의 10수(十首) 보살들이 모두 십색세계(十色世界)의 10지(十智)여래의 처소로부터 와서 10신(十信)을 도에 들어가는 시초로 삼는 것이다. 그래서 모여 온 보살들의 이름이 수(首)가 되는 것이다.


십색세계(十色世界)란 10신(十信) 보살이 실답게 증득하지 못하는 것이니, 즉 범부가 비록 과덕(果德)의 부처님 경계를 믿긴 하지만, 여전히 색진(色塵)을 벗어나지 못해서 색(色)으로 국토를 삼음을 밝힌 것이다.


10주(十住) 보살은 이(理)와 사(事)가 원만하고 뚜렷해서 화(華)로써 국토를 삼으니, 이는 처음 범부의 지위에서부터 이(理)와 사(事)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10행(十行) 보살은 간택(簡擇)을 통달해서 깨달음의 지혜인 각혜(覺慧)가 원만하고 뚜렷하므로 혜(慧)로써 국토를 삼으며, 


10회향(十廻向)과 10지(十地) 보살은 묘용(妙用)이 자재하기 때문에 묘(妙)로써 국토를 삼는 것이니, 이는 해당되는 지위의 법문의 처소로부터 와서 법으로 국토를 삼는 것이지, 4대(四大)인 땅ㆍ물ㆍ불ㆍ바람의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니, 성스러운 지혜에 들어간 자는 이미 이러한 장애를 벗어난 것이다.

 

10신(十信)의 지위에 있는 보살은 모두 10지불(十智佛)의 처소에서 온 것이니, 이른바 부동지불(不動智佛)ㆍ무애지불(無碍智佛)ㆍ해탈지불(解脫智佛)과 같은 10지불(十智佛)은 지혜가 과덕(果德)이 되고 있다.

따라서 10신(十信)의 지위에서는 과(果)로써 믿음(信)을 삼기 때문에 믿음(信)이 과(果)로부터 와서 그 과(果)로 인(因)을 삼는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만약 과(果)로써 믿음(信)을 심지 않으면, 곧 믿을 바가 없기 때문에 믿음도 의지할 곳이 없게 되는 것이다.

 

무슨 이유로 문수사리가 상수(上首)가 되었는가?

문수사리는 계몽(啓蒙)의 주재자이기 때문이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는 다 문수사리의 오묘한 공덕으로 신심(信心)을 발하는 근원으로 삼음으로써 ,법신의 근본지(根本智)를 발휘하고 있으니, 따라서 항상 문수사리를 과(果) 이전의 믿음(信)으로 삼는 것이며,

보현으로 차별지(差別智)를 밝히는 것은 과(果) 이후의 행(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선재동자가 처음 문수를 친견하여서 신문(信門, 믿음의 문)으로 삼았으며,

나중에 미륵을 친견해서 불위(佛位)로 삼고,

또 그 뒤에 자신의 몸이 보현의 몸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는 것은 바로 불과(佛果) 이후의 행(行)인 것이다.

  
문수는 소남(小男)이 되고 보현은 장자(長子)가 되니, 이 두 성인이 합체(合體)한 것을 부처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문수는 법신의 오묘한 지혜의 묘혜(妙慧)가 되고,

보현은 만행의 위엄 있는 위덕(威德)이 되기 때문에, 이 체(體)와 용(用)이 자재한 것을 부처라고 이름하는 것이며,

문수를 소남(小男)이라 한 것은 믿음이 법신의 근본지혜를 증명하면서 처음 생기기 때문이니, 처음으로 본지법신(本智法身)을 증명함으로써 불가(佛家)에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보현을 장자(長子)라고 한 것은 근본지(根本智)에 의거해 행(行)을 일으켜 차별지(差別智)를 행하면서 불가의 법(法)에 있는 모든 바라밀(波羅蜜)을 다스려 일마다 자재한 제사자재(諸事自在)이기 때문이다.

항상 행문(行門)으로 불가의 법(法)을 건립하고 불가의 일(事)를 다스리나,

다만 경전 중에서 문수를 문답의 주체로 삼은 것은 다분히 법신불성(法身佛性)의 문을 밝히기 위한 것이요,

보현을 문답의 주체로 삼은 것은 다분히 그 행(行)을 논하기 위해 보현으로 나타낸 것이다.

 
또 문수가 사자(獅子)를 타는 것은 처음으로 법신불성(法身佛性)의 근본지(根本智)가 미혹을 끊는 준마임을 증득한 것을 밝히기 위한 것이고,

보현이 향상왕(香象王)을 타는 것은 행(行)에 질서가 있어서 위덕(威德)이 되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또 문수가 항상 동방의 금색세계에 있는 부동지불(不動智佛)의 처소에 거처하는 것은, 금(金)이 백색이 되어서 더러움을 벗어날 수 있음을 밝히기 위한 것이니, 금색(金色)은 법신(法身)을 나타내는 것이며, 부동지(不動智)는 법성신(法性身)의 근본지(根本智)에 의거해서 지혜의 작용을 일으키면서도 움직임이 없는 부동(不動)인 것이다.

 

보현보살이 항상 동방에 있는 보위덕상왕불(寶威德上王佛)의 처소에서 거처하는 것은 만행(萬行)이 보배가 되어서 그 만행(萬行) 때문에 위덕을 성취하는 것을 밝히기 위한 것이니,

만약 행(行)을 갖춘 구행자(具行者)라면, 법보신(法寶身)으로써 자재롭기 때문에 위덕(威德)이 두려움 없이 자유로워서 왕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행을 갖추지 못한 불구행자(不具行者)라면, 모두 두려워하는 것이 있어서 설사 높은 지위에 머물게 될지라도 왕이 되지는 못하는 것은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와 함께 동방에 있는 것은 법신(法身)과 지신(智身), 이(理)와 사(事), 체(體)와 용(用)이 본래 스스로 하나이지 둘이 아닌 무이(無二)이기 때문이며, 


또 문수가 동북방에 있는 청량산(淸凉山)에 거처한다는 것은 간괘(艮卦)가 동북방을 주재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니,

간(艮)은 소남이 되고 동몽(童蒙)이 되니, 문수가 항상 범부를 교화하고 계몽해서 견성하게 하고, 아울러 근본지(根本智)의 첫머리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보현과 함께 동방에 있는 것은 동방은 묘위(卯位)이고, 묘(卯)는 진괘(震卦)로서 진(震)은 장남이 되는 것이고,

또 해가 동방에서 뜨고, 봄볕은 싹을 틔워 만물을 생장시키고 골고루 다 비추니, 이는 이(理)와 지(智)가 서로 사무치면서 그 바탕이 하나인 체일(體一)일 뿐 둘이 아닌 무이(無二)임을 나타내는 것이니,

근본지(根本智)와 차별지(差別智)가 다르지 않으며, 체(體)와 용(用)으로 만행을 낳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子)는 불위(佛位)가 되고, 축(丑)은 10신(十信)이 되고, 인(寅)은 10주(十住)가 되고, 묘(卯)는 10행(十行)이 되고, 진(辰)은 10회향(十迴向)이 되고, 사(巳)는 10지(十地)가 되고, 오(午)는 등각(等覺)이 되고,

미(未)는 밝음(明)을 감추고서 세속에 들어가 세속과 함께 하면서 미혹을 교화하는 것이 되고,

신(申)ㆍ유(酉)ㆍ술(戌)ㆍ해(亥)는 교화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이와 같이 법을 세운 것이니, 법이 응당 그러한 것이다.

 

역괘(易卦)에서는 감(坎)이 군주가 되고, 이(离)가 신하가 되고, 진(震)이 상상(上相)이 되고, 유(酉)가 상장(上將)이 되고, 동(東)은 청룡이 되고, 서(西)는 백호가 되고, 전(前)은 주작(朱雀)이 되고, 후(後)는 현무(玄武)가 된다.

청룡(靑龍)은 길한 경사로움이 되고, 백호(白虎)는 흉한 해로움이 되고, 주작(朱雀)은 그 밝음이 되고, 현무(玄武)는 그 어둠이 된다.

ㅡ朱雀(주작) 1. 남쪽 방위를 지키는 신령으로 여겨진 짐승

2. 이십팔수 가운데 남쪽을 지키는 일곱 별을 통틀어 이르는말

玄武(현무) 1. 북쪽 방위의 물 기운을 맡은 태음신을 상징하는 상상의 짐승

2. 북쪽 일곱 별인 두, 우, 여, 허, 위, 실, 벽을 통틀어 이르는 말

  
따라서 여래는 감(坎)을 다스려 밝음을 발하고,

보현은 지혜의 재상이 되어서 만행을 주재하며,

관음(觀音)은 대자비의 으뜸이 되어서 흉하고 위급함을 다스리는 상장(上將)이 되고,

문수는 몽매함을 깨우치는 으뜸이 되어서 항상 믿음을 제접하는 스승이 되나니,

서로 융화하고 사무침으로써 불가(佛家)의 법을 유지하는데, 모두 중생을 중도(中道)에 머물게 하고, 온화한 성품에 처하게 하며, 지혜와 자비로써 사물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몸은 모두 금색(金色)이고, 눈과 머리카락은 감청색(紺靑色)이며,

바탕이 흰 체백(體白)이고, 모습은 황색의 상황(相黃)이라서 진(眞)에 응하는 화기(和氣)가 되는 것이니,

모두 형상이 없는 무형(無形)으로 형(形)을 이루고, 빛깔 없는 무색(無色)으로 색을 이루는 것이다.

 

만약 체용으로써 한다면, 하나하나의 보살이 모두 지혜와 공덕의 무변하게 갖추고 있고,

법칙으로써 한다면 항상 문수를 믿음의 시초로 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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