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經卷第一
唐于闐國(당나라 우전국) 三藏沙門(삼장사문) 實叉難陀 譯(실차난타 역)
1. 世主妙嚴品(세주묘엄품) 10
ㅡ십지중(十地衆) 제십지(第十地)의 大自在天王(대자재천왕) ㅡ 법운지(法雲地)
復有無數(부유무수) 大自在天王(대자재천왕) 所謂(소위) 妙焰海天王(묘염해천왕)
自在名稱光天王(자재명칭광천왕) 淸淨功德眼天王(청정공덕안천왕) 可愛樂大慧天王(가애락대혜천왕)
不動光自在天王(부동광자재천왕) 妙莊嚴眼天王(묘장엄안천왕) 善思惟光明天王(선사유광명천왕)
可愛樂大智天王(가애락대지천왕) 普音莊嚴幢天王(보음장엄당천왕)
極精進名稱光天王(극정진명칭광천왕) 如是等(여시등) 而爲上首(이위상수)
不可稱數(불가칭수) 皆勤觀察(개근관찰) 無相之法(무상지법) 所行平等(소행평등)
또한 무수하게 많은 대자재(大自在)천왕들이 있었으니, 이른바 묘한 불꽃 바다의 묘염해(妙焰海) 천왕,
자재한 이름의 광명인 자재명칭광(自在名稱光) 천왕, 깨끗한 공덕의 눈의 청정공덕안(淸淨功德眼) 천왕,
사랑스런 큰 지혜의 가애락대혜(可愛樂大慧) 천왕, 동하지 않는 빛으로 자재한 부동광자재(不動光自在) 천왕,
묘하게 장엄한 눈의 묘장엄안(妙莊嚴眼) 천왕, 생각을 잘하는 광명의 선사유광명(善思惟光明) 천왕,
사랑스런 큰 지혜의 가애락대지(可愛樂大智) 천왕, 넓은 음성으로 장엄한 깃발의 보음장엄당(普音莊嚴幢) 천왕,
끝까지 정진하는 명칭의 광명인 극정진명칭광(極精進名稱光) 천왕 들이었다.
이러한 10 분의 대자재 천왕들이 상수(대표)가 되어 그 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으니,
모두가 무상(無相)의 법을 부지런히 관찰하여서 그 행하는 바가 평등하였다.
ㅡ통현장자; 대자재천왕은 제10 법운지(法雲地)를 밝히며, 지도론에서 “제9천(天) 외에 따로 10지 보살의 하늘은 마혜수라천이라 하며, 팔비삼목(八臂三目), 팔이 여덟 개이고, 눈이 셋, 흰 소를 타고 일념으로 삼천대천세계의 빗방울의 수까지 아는 천왕이다.
다섯 정거천(淨居天)을 지나서 십주보살(十住菩薩)이 머무는 곳의 이름도 정거(淨居)이며, 대자재천왕(大自在天王)이라고 한다.
덕(德) 중에 삼계의 정상(頂上)이며 무상법(無相法)을 초월하지 아니함이 없지만, 이상(離相)을 구하는 것이 아니므로 소행(所行)이 평등하다.
이상으로 신(神)과 천(天)의 지위는 다만 중생을 이롭게 하기위해 사(事)에 의탁해서 법을 나타냄으로써 이해하기 쉽도록 한 것이다. 예컨대 여래께서 진실로 우왕(牛王)·용왕(龍王)이 아니면서도 의탁해서 나타낸 것은 이해시키기 위한 것이다.
보현보살 한 분만이 홀로 10법에 들어간 것은, 하나가 곧 일체임을 밝히며, 하나와 많음이 자재하고 늦고 빠름이 자유로움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보현의 대중 중의 정덕묘광(淨德妙光) 보살은 문수사리의 다른 칭호이다.
문수사리는 한역하면 묘덕(妙德)이며, 또 법화경 내의 과거 호칭은 묘광(妙光)이다.
덕으로 광명을 삼아서 능히 어둠을 타파해 밝음의 명(明)을 발하기 때문이다.
ㅡ무상지법(無相之法), 차별하는 상이 없는 무상의 도리를 잘 관찰하면 결국은 소행(所行)이 평등(平等)한데, 차별을 보니까 소행(所行)이 평등(平等)하지 못하고 차별하게 됩니다.
무상(無相)의 도리, 모두가 각각 차별한 형상으로, 눈 앞에 드러난 차별상을 가지고 있으나, 그 내면은 전부 무상(無相)하고 평등해서, 마치 물결이 바람을 따라 각양각색으로 파도를 치지만 잦아들면 전부 동일한 물인 것과 같습니다.
이상으로 동명(同名)보살 10 분, 이명(異名)보살 10 분과 39衆(중)의 390명으로 총 410 분으로 법회 청중의 소개를 하였습니다.
大經(대경)의 화엄경이라서 법회청중도 많지만 그 한분, 한분이 의미하는 바도 매우 큽니다.
經題(경제, 경의 제목)의 해석;
위대하고ㆍ바르고ㆍ광대한 부처님의 세계를 보살의 다양한 실천의 꽃으로 보아서, 6바라밀과 화엄경의 10바라밀로 화엄경을 해석하신 화엄조사(華嚴祖師)로는 두순, 지현, 현수법장 등등이지만, 강원에서 교재로 쓰는 것은 청량국사소초(淸凉國師疎抄)와 세속의 통현장자의 두 해석이며, 이 두 해석이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습니다.
ㅡ통현장자의 경제(經題) 해석;
大(대)= 무방의(無方義), 방향이 없다는 뜻으로, 어느 지방이나 어디에도 초월한다는 것이다.
方(방)= 법칙(法則)의 뜻으로, 정확하게 법칙대로, 원리와 원칙대로라는 것을 뜻하고,
廣(광)= 이지변주의(理智遍周義), 이치와 지혜가 두루 하여서 유형무형의 삼라만상의 모든 존재의 이치인 이(理)를 체득해서
우리의 인격이 되는 지(智, 지혜)의 광대(廣)해서, 존재 원리를 이해하는 그 지혜가 미치지 않는 데가 없는 주변(周遍)이며,
佛(불)= 지체무의주의(智體無依住義) 지혜의 체(體)= 부처(佛)= 사람, 이치에 대한 깨달음을 인격화해서 지혜의 체가 된 지체(智 體)는 의지하여 머묾이 없고, 어디에도 국한되지 않고 제한이 없는 부처님, 불자(佛者)의 지자재의(智自在義), 지혜가 자유자재 한 것이다.
華(화)= 변법계무진행(遍法界無盡行), 일체의 법계에 다함이 없는 행= 보살의 다양한 실천의 꽃= 육도만행, 십도만행의 아름다운 보살행이 온 우주에 미치는 것이 화(華)의 뜻이다.
嚴(엄)= 시장식의(是莊飾義), 그러한 것으로 장엄하였다, 즉 아름다운 보살행으로써 이 세상을 장엄했다는 뜻이 엄(嚴)이다.
ㅡ戒還(계환)스님의 해석; 능엄경소, 법화경 등을 해석하신 분으로 선사이면서도 경전해석을 많이 하신 분입니다.
대방광불(大方廣佛)은 표본지야(標本智也), 본래의 지혜, 우리 사람이 본래로 갖추고 있는 지혜인 본지(本智)이다.
이는 배워서 얻어지는 것이 아닌, 우리의 근본 마음에 본래로 가지고 있는 것으로 그 지혜를 두드려 깨우는 것이 화엄경 공부이다.
화엄경(華嚴經)이라는 것은 전묘행야(詮妙行也),
전(詮)= 설명하는 것으로, 화엄경(華嚴經)이란
아름다운 행위의 묘행(妙行)을 설명하는 것이고,
평등불성(平等佛性)으로 누구에게나 다 평등하게 있는 부처의 성품인 본지(本智)를 설명하는 것이고
본진덕용야(本眞德用也), 본래 진실한 덕의 작용인 묘행(妙行), 즉 보살행을 아주 잘 하는 묘행은 우리 본래의 진실한 덕의 작용으로서, 어디서 배우거나 가져온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으로, 이러한 공부를 통해서, 잠자고 있는 것을 눈뜨게 하여서 활동하기 시작하는, 그것이 묘행(妙行)이라는 것을 전(詮)= 설명하는 것이다.
*大(대)는 언체극무외(言體極無外);
언(言), 말하기를 체극무외(體極無外), 체(體)가 지극해서 바깥이 없다. 즉 지금 이 법당이 크다고 하지만 바깥이 있고, 또 지구도 크지만 그 밖이 있고, 태양계도 역시 바깥이 있습니다. 수 억만 광년의 거대한 우주를 구획을 지을지라도 수 억만 광년도 불교의 이치에 견주면 작은 것으로, 대(大)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끝없이 모두 아우르고 있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꼼지락 꼼지락하는 작은 벌레들도 모두 영을 가지고 있는 준동함령(蠢動含靈)이고, 어질고 어리석은 사람의 현우(賢愚)가 개소예유(皆所預有)하는 것으로, 모두가 대(大)에 다 포함되는 것이다. 즉 가지고 다니는 이 책이 대(大), 대방광불(大放光佛)의 대(大)가 아닌, 그 자체가 대(大)방광불화엄경이고, 이 우주가 그대로 대방방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다.
*方(방)= 언상동법계(言相同法界), 그 모습이 법계와 같음을 말한 것이니, 불교에서 제일 큰 것을 법계라고 하는데, 법(法)이라는 것은 진리이고, 이치라서 유형무형의 그 어느것도 이치없는 것이 없으므로 법계(法界)라 하는 것으로, 흔히 우리가 세계라고 말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표현입니다.
方(방)은 방정평등불천부동(正平等不遷不動),
방정(方正), 반듯하고 평등해서 불천부동(不遷不動), 옮기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는 것이 방(方)으로, 있는 그대로 완전무결한 존재이고 생긴 그대로의 옮겨가지 않는 불천(不遷)이고 동요하지 않는 부동(不動)이다.
*광(廣)= 언용등태허(言用等太虛), 그 작용이 태허(太虛), 큰 허공과 같이 주변함용무소지애(周遍含容無所窒礙), 두루두루 모두를 다 포함하고 용납하면서도 서로 막히고 장애 되는 바가 없으니, 비좁거나 서로 부딪히면 광(廣)이 될 수 없습니다.
*佛(불)= 즉본지지과호(卽本地之果號), 본래의 지혜인 본지(本地)를 밖으로 표현하여 하나의 결과로 나타났을 때, 그것을 이름해서 부처라고 한다. 본래 우리가 부처이면서도 부처임을 확인해야 하는 과정이 있어서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인 것입니다.
확신이 있으면 인가받고 검증할 것이 없는 것과 같이, 내가 갖고 있는 것이 고려청자임이 분명하면 남한테 보여서 굳이 검증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상식적인 입장과 교리적인 입장에서 부처는, 우리가 갖추고 있는 본래의 부처를 밖으로 확인했을 때, 결과로써의 이름을 부처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華(화)= 만행지인(萬行之因), 육도만행, 십도만행, 모든 보살의 만행에 대한 대과언화(對果言華), 즉 어떤 결과를 화(華)라 말한다.
*嚴(엄)= 이시인화(以是因華) 장엄불과(莊嚴佛果).
씨앗이 되는 꽃의 인화(因華)로써 불과를 장엄하는 것이다. 제대로 장엄 하려면 철저하게 확인을 해서 부처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을 장엄불과(莊嚴佛果)라 할 수 있다.
청량국사 대방광불화엄경 해석;
題稱(제칭), 제목으로써 말하기를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라는 것은 卽無盡修多羅之總名(즉무진수다라지총명), 다 함이 없는 경전인 수다라(修多羅)에 대한 총체적인 이름을 대방광불화엄경이라고 한다. 즉 무진수다라(無盡修多羅)의 총명(總名)이라 할 수 있는 8만 대장경 전체를 아울러서 한 마디로 요약하면 대방광불화엄경이라 말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大(대)는 널리 무제(無際), 즉 바깥이 없는 무외(無外)와 한계가 없는 무제(無際)를 겸한다.
方(방)은 바른 이치를 스스로 유지하고 있는 것을 방(方)이라 한다.
廣(광)은 본체에 딱 맞게 합해지는 칭합(稱合)해서 두루할 때, 즉 제대로 광(廣)이 되려면, 내가 우주화 되면 소소하게 너ㆍ나ㆍ네 편ㆍ내편 등과 같이 마음속에 찌꺼기를 가진다는 것이 부끄럽기 그지없다는 것입니다.
佛(불은 현묘(玄妙)한 것을 깨닫는 것, 현묘(玄妙)한 도리를 깨닫는 것이다.
華(화)는 공덕만행(功德萬行)의 보살행을 비유한 것이다.
嚴(엄)은 그 사람의 인격을 장엄한다, 꾸민다는 것으로 인격이 제대로 되었다면 식법성인(飾法成人), 법을 장식해서 사람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성인(成人), 즉 그 인격이 제대로 이루어진 사람이다. 부단히 이런 저런 배울 수 있는 인연을 따라 배워서 지금 이만치라도 인격이 되는 그것이 식법성인(飾法成人)인 것으로, 식법(飾法)=법을 꾸며서 성인(成人)=사람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經(경)이라 하는 것은 주무갈지용천(注無竭之涌泉)= 다 하지 않는, 마르지 않는 샘물같이 끊임없는 것으로, 불교 경전이라는 것은 우리의 지식이 마르지 않도록 끊임없이 물을 대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관현응지묘의(貫玄凝之妙義)라. 현응(玄凝)= 아주 깊고 오묘한 뜻을 꿰뚫어 관통하고 있다, 즉 이 꽃을 그냥 흩어 놓으면 아무 의미가 없지만 적재적소에 적당하게 제대로 알맞게 잘 꽃아서 모양을 갖추게 된다.
섭무변지해회(攝無邊之海會), 끝없는 바다와 같은 법회를 다 포섭하고 있고,
작종고지상규(作終古之常規), 까마득한 옛날부터 끝없는 미래에 이르기까지 영원한 규칙, 법칙으로서의 경전이다.
大(대)는 체가 크다는 체대(體大)요,
方(방)은 상(相), 현상이 크다는 상대(相大)이고,
光(광)은 작용이 크다는 것이고,
佛(불)이라는 것은 그 결과가 크다는 것이고,
華(화)는 원인이 크다는 것이고,
嚴(엄)은 그 지혜가 크다는 것이고,
經(경)은 그 가르침이 크다는 것이다.
즉(則) 칠자(七字)가 모두 큰 개대(皆大)로서, 이 대방광불화엄경이라 하는 7문자 모두가 크다는 의미이다.
鏡虛(경허)스님의 해석; 경허스님으로 인해서 한국불교가 다시 일어나게 된 희대의 뛰어난 강사로서, 어느 날 사람 죽은 것을 보고 발심을 해서, 선정에 들어서 크게 도를 이뤄서 한국불교를 다시 일으키고 1939년에 열반하셨습니다. 경허스님은 화엄대가였습니다. 경허스님이 어느 해 오대산 월정사에서 화엄경을 설법할 때, 한암스님이 거기서 공부를 했고, 만공스님ㆍ수월스님ㆍ혜월스님. 전부 경허스님 제자입니다. 한암스님에게서 탄허스님이 공부를 하셨고, 저(무비스님)는 탄허스님 밑에서 화엄경뿐만이 아니라 다른 것도 공부를 했지만, 화엄경을 특별히 공부를 했고, 탄허스님이 화엄경을 편찬하실 때 그 원고 교정에서부터 출판해서 그 출판 기념으로 1987년 월정사에서 화엄산림을 두 달 동안, 하루에 10시간씩 집중적으로 한 적이 있었습니다.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통현장자나 계환스님이나 청량스님 같이 판에 박힌 교과서적으로 말하지 않고, 경허스님다운 어디에도 걸릴 것 없이 툭 터진 안목으로 화엄경 제목을 해석하셨습니다.
大(대)라! 대들보도 대(大)요, 댓돌도 대(大)요, 가사도 대(大)요, 세숫대야도 대(大)요, 담뱃대도 대(大)니라!
方(방)이라! 큰방도 방(方)이요, 지대방도 방(方)이요, 질방도 방(方)이요, 동서남북 사방도 방(方)이니라.
廣(광)이라! 쌀광도 광(廣)이요, 찬광도 광(廣)이요, 연장광도 광(廣)이요, 광장도 광(廣)이니라!
佛(불)이라! 등잔불도 불(佛)이요, 모닥불도 불(佛)이요, 촛불도 불(佛)이요, 화롯불도 불(佛)이요, 번갯불도 불(佛)이요, 이불도 불(佛)이요, 횃불도 불(佛)이니라.
華(화)라! 매화도 화(華)요, 국화도 화(華)요, 탱화도 화(華)요, 화병도 화(華)요, 화살도 화(華)요, 화엄경도 화(華)니라.
嚴(엄)이라! 엄마도 엄(嚴)이요, 엄살도 엄(嚴)이요, 엄명도 엄(嚴)이요, 엄정함도 엄(嚴)이요, 화엄도 엄(嚴)이니라.
經(경)이라! 면경도 경(經)이요, 구경도 경(經)이요, 풍경도 경(經)이요, 인경도 경(經)이요, 안경도 경(經)이니라.
이것은 수덕사에서 간행한 경허집(鏡虛集)에 있는 내용입니다.
대방광불화엄경을 얼마나 시원스럽게 해석을 했습니까? 이것은 천하에 경허스님 아니면 아무도 이렇게 해석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가장 빛나는 해석이 아닐까? 누가 이렇게 대담하게, 파격적으로, 정말 화엄경의 본의에 맞게 이렇게 해석할 수가 있겠는가? 저는 이 내용을 처음에 접하고 너무 환희에 들떴어요. 그 동안 ‘화엄경이 뭔가?’ ‘화엄경이 뭔가?’ 하고 참 정말 오랜 세월 화엄경을 읽으면서 고심을 많이 했지만, 아! 이것을 보고는 마음이 툭~ 터져버렸어요. 이 제목 하나보고... 이런 것을 우리가 자꾸 접하고, 이러한 의미인 화엄경을 우리가 마음속에 자꾸 새기고 사유하고 읽고 함으로 해서, 우리 인격도 화엄의 宗旨(종지)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지 않겠나? 생각합니다.ㅡ무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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