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현(李通玄) 장자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제1권

新華嚴經論 卷第一 長者 李 通玄 장순용 번역

 

1.교리에 의거해 종지를 나눔을 밝힘 ①

 

여래(如來)께서 도를 성취하셨을 때에는 체(體)가 참 근원의 진원(眞源)에 응하였다.

그래서 이(理)와 사(事)의 두 문에 일(一)과 다(多)가 서로 사무치고, 지혜와 경계가 완전히 고요하여졌으니, 어떠한 법(法)인들 보편적인 아니겠는가?

다만 근기(根器)의 차별에 따라 궤의(軌儀)가 달라지므로 시교(始敎)ㆍ종교(終敎)ㆍ점교(漸敎)ㆍ돈교(頓敎)로서 근기의 차이에 따라 적절히 법을 시설한 것이니,

대승과 소승이 완전히 다르고,

시기의 나눔인 시분(時分)과 인과(因果)에 늦고 빠름이 있으며,

화불(化佛, 화신불)과 본신(本身, 비로자나 법신불)을 표현하는 언어가 각각 차이가 있으며,

국토의 청정과 오염, 확장과 감소가 같지 않은 것이다.

이와 같이 지위(地位)와 인과(因果)는 저절로 분수에 따르고 있으니, 그런데도 처음 배우는 무리들은 이 가르침의 자취를 알지 못하고 방편에 집착해서 실제를 이루고자하는 집권성실(執權成實)하니, 바로 이러한 미혹 때문에 수행에 진척이 없는 것이니, 만약 일체의 종지(宗)를 다 열거해서 그 손익을 비교하지 않는다면, 그 미혹과 장애를 끝내버리질 못할 것이다.

이제 대략 열 가지의 법(法)으로 나누어 설명하여서 그 길을 밝히겠으니, 배우는 자로 하여금 종지를 알게 하여서 방편을 실제로 옮겨서 나아가게 하는 천권취실(遷權就實)하게 하여서, 수행의 장애를 없애어 조속히 보리(菩提)를 증득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첫째, '소승계경(小乘戒經)'은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의 정견(情見)에 따라 존재를 인정하는 *정유(情有)를 위한 것으로 종지(宗旨)를 삼고,

둘째, '보살계(菩薩戒)'는 정유와 참 진(眞)을 함께 보이는 것으로 종지를 삼으며,

셋째, '반야교(般若敎)'는 공(空)을 설하여 실(實)을 드러내는 것으로 종지를 삼고,

넷째, '해심밀경(海深密經)'은 공도 아닌 불공(不空)이요, 유도 아닌 불유(不有)로서 종지를 삼고, 

다섯째, '능가경(楞伽經)'은 *5법(五法)ㆍ*3자성(三自性)ㆍ*8식(八識)ㆍ*2무아(二無我)로 종지를 삼고, 

여섯째, '유마경(維摩經)'은 청정과 오염, 두 가지 관점(見)을 융화시켜 부사의(不思議) 경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종지를 삼고,

일곱째, '법화경(法華經)'은 방편을 이해해서 진실로 나아가는, 회권취실(會權就實)로서 종지를 삼고,

여덟째, '대집경(大集經)'은 정법(正法)을 수호하는 것으로 종지를 삼고,

아홉째, '열반경(涅槃經)'은 불성(佛性)을 밝히는 것으로 종지를 삼고,

열째는 '대방광불화엄경'이니, 이 경전은 일체 모든 부처님의 근본적인 지혜와 자비를 이름붙인 것이다. 인과가 원만하고 일(一)과 다(多)가 서로 사무쳐서 법계의 이(理)와 사(事)가 자유로이 연기(緣起)하는 장애 없는 불승(佛乘)으로 종지를 삼는다.

ㅡ정유(情有);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의 정견(情見)에 따라 존재를 인정하는 것. 실제로는 공(空)이다.
ㅡ5법(五法); 첫째는 상(相)으로서 삼라만상의 유위법이 저마다 인연으로부터 발생하여 갖가지 형상을 드러내는 것,

둘째는 명(名)으로서 인연을 의거해 상(相)을 부르면서 하나하나의 이름을 낳는 것이니, 대체로 상은 표현 대상이 되고 이름은 표현 주체가 되는데, 이 양자는 범부의 유루심(有漏心)으로부터 나와서 변화하는 소변(所變)의 경계이다.

셋째는 분별 혹은 망상으로 이는 소변의 두 상(相)을 분별하는 능동적 변화의 마음으로,

이상의 세 가지는 유루시의 능변(能變)과 소변이다.

넷째는 올바른 지혜로서 무루심에 섞여 있는 일체의 망상이니,

이상의 네 가지는 유위법의 유루와 무루이다.

다섯째는 여여(如如)이니, 앞에서 말한 올바른 지혜에 의해 증득한 진여(眞如)이니, 이치 그대로인 지혜에 의거해서 증득한 진여이기 때문에 여여(如如)라고 한 것이니, 이는 무위법이다.
ㅡ3자성(三自性);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과 의타기성(依他起性)과 원성실성(圓成實性)으로,

앞의 둘은 거짓된 것이며, 원성실성(圓成實性)은 참된 것이다.
8식(八識);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6식(識)과 말나식(末那識)과 아뢰야식(阿賴耶識)이다.
ㅡ2무아(二無我); 인무아(人無我)와 법무아(法無我).

범부는 인체가 5온(蘊)이 임시로 화합한 것임을 알지 못하고 실제 스스로 주재하고 존재하는 인체가 있다고 고집하는 것을 인아(人我)라고 하는 데, 이 5온의 화합을 깨달아서 실제로 인체가 없다고 요달하는 것을 인무아라고 한다. 이는 소승의 관법으로서 번뇌의 장애를 끊고 열반을 얻는 것이다.

또한 모든 베법이 실체가 있다고 고집하는 것을 법아(法我)라고 하는데, 모든 법이 인연으로부터 생기는 것을 법무아라고 한다. 이는 대보살의 관법으로, 아는 바의 장애를 끊고 보리를 얻는 것이다.

소승은 인무아만 깨닫고 보살은 두 가지의 무아 모두를 깨닫는다.

 

지금까지 말한 구분법은 모두 옛 대덕(大德)들이 세운 종지(終旨)를 이어받은 것으로, 설사 늘어나고 줄어든 것이 일정하지 않다 할지라도 이는 견해가 저마다 다르기 때문일 뿐, 대의(大義)와 명목(名目)은 대체로 비슷하다.

(서역(西域)과 우리나라의 대덕들이 제각기 세운 종지의 가르침은 나중에 다시 밝히겠다.)

 

첫째, '소승계경'은 정유(情有, 중생)를 위한 것으로 종지를 삼는다는 것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으니,

이는 여래는 처음에는 범부의 업을 짓는 곳인 조업처(造業處)를 위해 설법한 까닭에 이러한 행동은 반드시 해야 하고, 저러한 행동은 결코 하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지고, 또 버리는 자는 선(善)하고, 버리지 못하는 자는 선하지 못하다고 가르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가르침의 방법은 여전히 실유(實有)를 위한 것이 아니다.

이 정유(情有, 중생)한 가르침은 범속한 정유의 허망한 곳에서 온갖 악이 연루되는 것을 잡아내어서 이를 교리로써 다스려 인간계와 천상계에 태어나도록 하는 것이기 이 때문에 계서(戒序)에서는, “만약 천상계와 인간계 속에 태어나길 바라는 자는 항상 *계족(戒足, 계를 지킴)을 수호하면서 훼손시키지를 말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중생이 유위(有爲)로서 업(業)을 지은 것은 허망하여 실답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법신(法身)과 지신(智身)을 얻지 못하는 것이니, 따라서 실유(實有)의 종지가 되지 못하고 정유(情有)를 위한 종지밖에 되지 못하는 것이니, 이것이 소승법의 가르침인 것이다.

 

하지만 '화엄경'의 지계(持戒)는 그렇지가 않으니 '범행품(梵行品)'에서 다음과 같이 설한 것과 같다.

“몸이 바로 범행(梵行)인가? 아니면 신업(身業, 몸의 행위)의 걷고(行)ㆍ머물고(住), 앉고(座), 눕는(臥) 네 가지 행동거지인 4위의(四威儀)에서부터 불ㆍ법ㆍ승ㆍ10중(十衆, 열 가지 대계 大戒)ㆍ*7차(七遮, 7역죄 七逆罪)ㆍ*화상(和尙)ㆍ갈마(羯摩, 계를 받을 때의 작법 作法)ㆍ*단두(檀頭) 등이 모두 범행인가?

이렇게 자세히 관(觀)해도 범행을 구하는 자를 끝내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청정한 범행이 된다고 칭하는 것이다.”

 

이처럼 청정행(淸淨行)을 하는 자를 불성계(佛性戒)를 지녔다고 칭하는데, 바로 부처님의 법신(法身)을 얻기 때문이요, 나아가 처음 발심할 때 문득 정각(正覺)을 성취함으로써 불성계를 지니기 때문에 불(佛)과 그 체(體)를 같이 하고, 이(理)와 사(事)가 평등하여 일체가 온통 진법계(眞法界)인 것이다.

이같은 지계(持戒)를 하는 이는 자기 스스로는 계(戒)를 지니고 있는 자로 보지 않으며, 타자를 계를 파괴하는 자로도 보지 않는다. 따라서 범부의 행도 아니요, 성현의 행도 아니기 때문에 자신이 보리심을 발하는 것을 보지 못하며 (보지 않는 것이며),

모든 부처님께서 등정각(等正覺)을 이루는 것도 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조금이라도 얻는 바가 있다면, 정행(淨行)이라고 칭하지 못하는 것이다.

반드시 알아야 할 점은 성계(性戒)가 바로 법신(法身)이라는 것이다.

법신이란 바로 여래의 지혜이며, 여래의 지혜는 곧 정각(正覺)이기 때문에 취하고 버림이 있는 소승과는 같지 않은 것이다.

ㅡ계족(戒足); 계(戒)에 의거해 피안으로 가기 때문에 충족시킨다는 뜻의 족(足)을 붙여서 계족이라고 한 것이다.
ㅡ7차(七遮) 일곱 가지 하지 말아야 할 죄로서 7역죄(逆罪)라고도 한다.

첫째 아버지를 죽이는 것, 둘째 어머니를 죽이는 것, 셋째 화상(和尙)을 죽이는 것,

넷째 아사리(阿闍梨, 가르쳐 주는 스승)를 죽이는 것,

다섯째 갈마사(羯磨師, 학덕과 법랍을 갖춘 스님)를 파괴하는 것,

여섯째 10지(地)의 성인을 죽이는 것, 일곱째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내게 하는 것,

이러한 죄를 지은 자는 '범망경'에서 보살계를 받지 못하게 차단시키기 때문에 7차라 한 것이다.
ㅡ화상(和尙); 스승의 능력이 법신(法身)을 생장시켜 공덕의 재보를 내고 지혜의 명(命)을 기르기 때문에 역생(力生)이라고 번역한다. 요즘은 덕이 높은 승려를 가리킨다.
ㅡ단두(檀頭); 계를 일러주는 장소로 단(壇)을 만들어 놓기 때문에 계단이라고 한다.

 

둘째, '범망경(梵網經)'의 보살계는 정유(情有)와 참(眞)을 함께 보이는 것으로 종지를 삼는다는 것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으니,

이는 여래가 범부 중에서도 즐거이 자비를 행하고 흔쾌히 불과(佛果)를 구하는데, 대심중생(大心衆生)을 위해 비로자나가 법신이 되고 천백억(千百億)이 화신(化身)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단박에 지말(枝末)을 인식해서 근원으로 돌아가게 했기 때문에 경전에서도 “이같은 천백억이 제각기 미진수(微塵數)의 중생을 제접(提接)해서 다 함게 나의 처소에 이른다”고 하셨으며,

또 “불계(佛戒)를 받은 사람은 곧바로 모든 부처의 지위에 들어가서 그 지위가 대각(大覺)과 같아지나니, 이러한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불자(佛子)들이다”라고 설한 것이다.

즉 성계(性戒)가 되기 때문에 진종(眞宗)이 되는 것이니, 이는 바로 대심중생을 위해서 법신의 성계를 단박에 보이신 것이고, 근기가 낮은 이를 위해서는 점진적인 과정을 얻게 한 것이니, 하나의 가르침으로 두 근기 모두에 응한 것이다.

“이와 같은 천백억이 제각각 미진수의 중생을 제접해서 다 함께 나의 처소에 이른다”고 하신 것은,

방편을 버리고 실제로 나아갈 것을 밝힌 것으로, 이는 실유의 가르침이다.

이 '범망경'의 가르침은 방편과 실제를 한께 보인 것이기 때문에 “인(因, 앞)도 무상(無常)이고 과(果, 뒤)도 무상(無常)이라서, 오직 인간계와 천상계에만 태어난다”는 소승과는 같지 않은 것이다.

그러하 이렇게 실유의 종지를 세우긴 하였지만, '화엄경'의 비로자나가 설하신 것과는 같지 않다.

“이 '범망경'은 화신(化身)이 교화하는 방향에 따라 본신(本身)에 이른 것으로, 천백억의 화신이 저마다 자기가 교화하는 국토로부터 노사나불의 본신(本身)에 이르기 때문에 보신과 화신이 둘이 됨으로써 지혜와 경계가 함께 소멸하지 못하고 이(理)와 사(事)가 나란히 드러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원교의 종지는 단번에 갑자기 본신 법계(本身法界)의 대지보신(大智報身, 대지혜의 보신)을 보여서 인(因)과 과(果), 이(理)와 사(事)가 드러나며,

또 '화엄경'에서의 세계의 양(量)은 '범망경'에서의 연화(蓮花)의 형량(形量)과는 같지 않으니, 그 넓고 좁은 광협(廣狹)이 완전히 다른 것이니, 자세한 것은 앞으로의 경문에서 설하고 있다.

 

셋째, '반야교'는 공(空)을 설해서 실(實)을 드러내는 것으로 종지를 삼는다는 것은,

여래가 처음에는 인간계와 천상계의 범부들을 위해 2승(乘)의 가르침을 설하셨으나, 이(理)와 사(事)를 모두 실답다고 집착하는 장애에서 벗어날 줄 모르기 때문에 공(空)의 가르침을 설해서 집착을 깨뜨리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반야경'에서는 열여덟 가지 *18공법(十八空法)을 설하면서, “세간과 삼보(三寶)와 4제(諦)와 삼세(三世) 등의 일체 모두가 공(空)이며, 공 역시 공이다”라고 한 것이다.

자세한 것은 경전에서 설명한 대로이니, 말하자면, 무명(無明)과 온갖 장애의 업(業)을 텅 비워버린다는 것이니, 무명이 몽땅 소진(盡)하고 업장(業障)이 다 없어지면 자성 그 자체가 열반이라는 자성열반(自性涅槃)이 자연히 드러나는데, 이는 진유(眞有)가 되는 것이지 공종(空宗)이라고 칭할 수는 없다.

하지만 비록 진유가 될지라도 말씀하신 교문(敎門)이 이루어지고(자성열반) 무너짐(18공법)이 많기 때문에 여전히 원만하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화엄경'은 실다운 과보인 *상호(相好)의 장엄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능히 허망할 수도 있고, 능히 실다울 수도 있다.

'화엄경'의 부(部)와 품(品) 속에서는 열 분의 보살들이 위아래로 저절로 서로 연관되어서 공(空)과 유(有)의 법이 홀로 행하여 지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보현 보살과 문수 보살이 위 아래에서 서로 참여하는, 이(理)와 사(事)가 서로 사무쳐서 상호간에 서로 비추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황엄경의 한부한부의 경전이 품마다 서로 사무치고 구절마다 서로 참여해서 한 품 안에 40품의 경전이 같이 들어가고, 말 한 마디 안에서 10만 개의 게송을 다 지휘하고 있으니, 하나가 이루어지면 곧 일체가 이루어지고, 하나가 무너지면 곧 일체가 무너지게 되나니, 이 모든 것은 성품(性)이 제등(齊等, 균등)하고 때(時)가 제등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동등하고 한결같은 까닭에 법을 설하는 것도 제등한 것이니, 이 제등성(齊等性)]으로 인하여 지금 당장의 성불(成佛)이 삼세의 부처님과 다 함께 성불하는 것이 되며, 삼세가 없어지는 것이 되며, 때가 없어지는 것이 되는 것이니,

이는 “이루어지고 파괴되는 것이 때를 달리하기 때문에 인(因)과 과(果)가 선후가 있다”고 하는 '반야교'의 가르침과는 다른 것이다.

ㅡ18공법(十八空法); 대지도론에서 공(空)을 열여덟 가지 관점에서 관찰한 것.

내공(內空)ㆍ외공(外空)ㆍ내외공(內外空)ㆍ공공(空空)ㆍ대공(大空)ㆍ제일의공(第一義空)ㆍ유위공(有爲空)ㆍ무위공(無爲空)ㆍ필경공(畢竟空)ㆍ무시공(無始空)ㆍ산공(散空)ㆍ성공(性空)ㆍ자성공(自性空)ㆍ제법공(諸法空)ㆍ불가득공(不可得空)ㆍ무법공(無法空)ㆍ유법공(有法空)ㆍ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

ㅡ상호(相好); 부처님의 몸에 갖춰진 뛰어난 특징. 상(相)은 커다란 특징이고 호(好)는 미세한 특징이다. 부처님의 몸에는 서른두 가지 상[三十二相]과 여든 가지호의 80종호(八十種好)가 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