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친(世親)의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 제 8권
세친(世親) 보살 지음, 현장(玄奘) 한역.
11. 피과지분(彼果智分) ① 2
▶釋曰:有`無無二爲相者,謂一切法遍計所執性相非有,故非有相,空所顯示圓成實性,其體實有,故非無相.
有爲`無爲無二爲相者,是非有爲自性,非無爲自性義.非業煩惱之所生故,非有爲相;於有爲中,得大自在,數數示現,名有爲相,由此意趣,非無爲相.
▷해석한다; ‘존재(有)와 비존재(無)의 유무(有無) 두 가지가 없는 무이(無二)를 상으로 삼는다’는 것이란,
일체법의 변계소집성의 상은 있는 것이 아닌, 비유(非有)이기 때문에 존재의 유상(有相)이 아니며,
공(空)이 나타내 보이는 원성실성의 그 자체는 진실로 존재하는 실유(實有)인 까닭에 비존재의 무상(無相)이 아닌 것이다.
‘유위법과 무위법의 두 가지의 상이 없음을 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유위법의 자성도 아니고, 무위법의 자성도 아니라는 뜻으로, 업의 번뇌가 생겨나게 하는 바가 아니기 때문에 유위법의 상이 아니며,
유위법 안에서 큰 자재를 얻어서 삭삭(數數, 종종)으로 시현하는 것을 유위법의 상이라 하는, 즉 세간에 나타나서 섭화자재(攝化自在)의 시현이기 때문에 이러한 의취(意趣)에 의거해서 무위법의 상이 아닌 것이다.
異性`一性無二爲相者,所依法身,無差別故,非是異相;無量依止所證得故,非是一相;俱一無故,名無二相.
‘다른 성품의 이성(異性)과 동일 성품의 일성(一性)의 두 가지가 없는 것을 상으로 삼는다’는 것이란,
소의(의지처)인 법신은 차별이 없는 까닭에 이것은 다른 이상(異相)이 아니며,
무량한 의지(依止)가 증득하는 바인 가닭에 이것은 하나의 일상(一相)이 아니며,
함께하거나 하나가 아닌 까닭에 두 가지의 이상(二相)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復以伽他,顯如是義.我執不有故,於中無別依者,謂於世閒,我執力故,有別依身,此中我執,都無有故,無別依身. 若所依身,無有差別, 云何而得許有多佛? 隨前能證別故,施設有異者,由多依身各所證得,故有差別.
또한 가타(伽他, 게송)로써 나타낸 뜻은,
‘아집은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안에 별도의 의지신이 없다’는 것이란, 세간에서는 아집력(我執力) 때문에 별도의 의지신인 의신(依身)이 있지만, 이 가운데에서는 아집은 전혀 없기 때문에 별도의 의지신인 의신(依身)이 없는 것이니,
만약, 의지처인 몸에 차별이 없다면 어떻게 많은 부처님이 계신다고 인정할 수 있겠는가!
‘이전의 증득 주체의 차별에 따르는 것이므로 다름이 있음을 시설한다’는 것은,
많은 의지신에 의거해서 각각 증득하기 때문에 차별이 있다는 것이다.
爲顯此義復說伽他.種姓異故者,謂諸菩薩,種姓差別,有多種故.非虛故者,種姓異故,加行亦異.加行異故,資糧圓滿,亦有多種.由是因緣,若唯一佛,餘者資糧應虛無果.
이러한 뜻을 나타내기 위해서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으니,
‘종성이 다르기 때문’이란, 모든 보살 종성의 차별에 많은 종류가 있기 때문이며,
‘허무가 아니기 때문’이란, 종성이 다르기 때문에 가행 역시도 다르고,
가행이 다른 까닭에 자량의 원만함에도 많은 종류가 있다는 것이니,
이러한 인연에 의거해서, 만약 부처님이 오직 한 분뿐이라면, 다른 이의 자량은 마땅히 허무한 결과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圓滿故者,諸佛具作一切有情利益等事,謂正安立於三乘等.若執如來不安有情置於佛乘,所作佛事,應不圓滿.由此道理,應許多佛.無初故者,如彼生死流轉無初, 諸佛亦爾.若唯有一,卽應有初,是故不一. 無垢依無別者,由佛無垢法界爲依,無差別故,無有多種.故非一非多者,由此道理,顯示諸佛非一多相.
‘원만하기 때문’이란, 모든 부처님께서는 모든 유정의 이익 등을 위한 사업을 지으시는 것이니, 이른바 바르게 삼승(三乘) 등으로 안립하는 것이다.
만약 여래께서 유정을 편안히 불승(佛乘)에 두지 않는다고 국집한다면, 짓는 불사도 마땅히 원만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니, 이러한 도리에 의거해서 마땅히 많은 부처님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시초가 없기 때문’이란, 그 생사유전에 시작이 없는 것과 같이, 모든 부처님 또한 그러하다는 것이며,
만약 오직 한 분의 부처님이라면, 마땅히 그 시초가 있어야 하는 것이므로, 따라서 한 분이 아닌 것이다.
‘번뇌 없는 의지처에는 차별이 없다’는 것은 부처님께서는 번뇌 없는 법계를 의지처로 삼아서 차별이 없는 까닭에 많은 분이 아님을 말하는 것이며,
‘그러므로 하나가 아닌 비일(非一)이고 많은 것도 아닌 비다(非多)라네’란, 이러한 도리에 의거해서 모든 부처님은 하나이거나 많은 다상(多相)이 아님을 나타내는 것이다.
▶論曰:四常住爲相,謂眞如淸淨相故`本願所引故`所應作事無竟期故.
▷논문; 넷째는 상주함을 상으로 삼으니, 진여청정상(眞如淸淨相)이기 때문이고,
본원이 이끄는 바의 본원소인(本願所引)이기 때문이며,
마땅히 지어야 할 소응작사(所應作事)는 마치는 시기가 없기 때문이다.
▶釋曰:由三因緣,顯常住相.眞如淸淨相故者,淸淨眞如體,是常住,顯成佛故,應知如來常住爲相.本願所引故者,謂昔發願常作一切有情利樂,所證佛身,此願所引,由此本願,非空無果,應知如來常住爲相.若謂如來所作一切有情利樂,已究竟者,此義不然,所應作事無竟期故.以於今時,猶有無邊所應作事,一切有情,未涅槃故.由是因緣,應知如來常住爲相. 如是說已,應知諸佛不可思議,由是因緣,不可思議.今當顯示.
▷해석한다; 세 가지 인연에 의거해서 상주상(常住相)을 나타내었으니,
‘진여청정상(眞如淸淨相)이기 때문’이란, 청정한 진여는 그 자체가 상주하는 것이고, 성불을 현현하는 까닭에, 여래는 상주함을 상으로 삼으며,
‘본원이 이끄는 바의 본원소인(本願所引)이기 때문’이란, 옛날에 서원을 일으켜서 항상 모든 유정을 이롭고 안락하게 하고자 하였으니, 증득한 불신은 이 서원이 이끈 것이다. 이 본원은 헛된 결과가 없는 까닭에, 여래는 상주함을 상으로 삼는 것이며,
만약 여래가 짓는 바의, 모든 유정을 이롭고 안락하게 함이 구경에 이르렀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옳지 않은 것이니, 마땅히 지어야 할 바의 사업은 그 끝내는 때가 없기 때문이며,
따라서 현재에도 오히려 마땅히 지어야 할 사업이 있는 것이니, 모든 유정이 아직 열반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연에 의거해서 여래는 상주함을 상으로 삼는 것이라고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말함으로써, 모든 부처님의 불가사의함을 마땅히 알 수 있으니, 이러한 인연에 의거해서 불가사의함을 마땅히 나타내는 것이다.
▶論曰:五不可思議爲相,謂眞如淸淨自內證故`無有世閒喩能喩故`非諸尋思所行處故.
▷논문; 다섯째는 불가사의를 상으로 삼으니, 진여청정으로서 스스로 내면으로 증득하기 때문이고,
세간의 비유로 능히 비유할 수 없기 때문이며, 모든 사유 분별이 작용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釋曰:自內證故者,謂諸如來,自內所證,由此眞如自內證故,非諸尋思所思議處,於諸世閒,亦無與此相似譬喩可喩令知.
▷해석한다; ‘스스로 내면에서 증득하기 때문’이란, 이른바 모든 여래께서 스스로 내면으로 증득하는 바로서, 이 진여는 스스로 내면에서 증득함에 의거하는 까닭에 모든 사유 분별로 사량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나,
일체 세간에서 역시 이와 비슷한 비유로써 비유하고는 있지만, 알게 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論曰:復次云何,如是法身,最初證得?謂緣摠相大乘法境,無分別智,及後得智,五相善修,於一切地,善集資糧,金剛喩定,破滅微細難破障故,此定無閒離一切障.故得轉依.
▷논문; 또한 이와 같은 법신을 어떻게 최초로 증득하는가?
총체적인 총상(摠相)의 대승법의 경계를 반연하는 무분별지와 후득지를 전의(轉依)ㆍ백법(白法)ㆍ무이(無二)ㆍ상주(常住)ㆍ불가사의(不可思議)의 오상(五相)에 의해 잘 닦고, 모든 지위에서 자량을 잘 쌓고, 금강유정(金剛喩定, 선정)에 의해 미세하여 부수기 어려운 장애를 없앰으로써, 이 선정 다음 찰나에 모든 장애를 여의게 되는 것이니, 그리하여 전의를 증득하는 것이다.
금강유정(金剛喩定)은 금강에 비유되는 선정으로, 성문이나 보살이 수도가 완성될 무렵 최후로 번뇌를 끊을 때 생기는 선정이다. 이로 인하여, 성문은 아라한과를, 보살은 불과를 얻는 것이다.
▶釋曰:今次應說法身證得.最初證得者,顯此法身非所生起,體無爲故.若所生起,應是無常.
▷해석한다; 다음으로 마땅히 법신을 증득함을 말하는 것이니,
‘최초로 증득한다’는 것은, 이 법신은 생기하는 것이 아님을 나타내는 것이니, 자체가 무위(無爲)이기 때문이다.
만약 생기하는 것이라면 마땅히 무상한 것이어야 하는 것이다.
ㅡ최초에 증득한다는 것은 시간에 기준한 최초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법신의 자체에 기준해서 무위이기 때문에 무시법이(無始法爾)의 증득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金剛喩定者,此三摩地,譬如金剛,能破微細難破障故.故得轉依者,由金剛喩三摩地故,能證轉依,逮得法身.
‘금강유정(金剛喩定)’이란, 비유하자면 이 삼마지는 금강과 같고 미세하여서 부수기 어려운 장애를 능히 부수기 때문이며,
‘전의를 증득한다’는 것은, 금강유정의 삼마지에 의거함으로써 능히 전의를 증득하고, 법신을 체득하는 것을 말한다.
▶論曰:復次法身,由幾自在,而得自在?略由五種:一由佛土自身相好無邊音聲無見頂相自在,由轉色薀依故;
二由無罪無量廣大樂住自在,由轉受薀依故;三由辯說一切名身`句身`文身自在,由轉想薀依故;
四由現化變易引攝大衆引攝白法自在,由轉行薀依故;五由圓鏡`平等`觀察`成所作智自在,由轉識薀依故.
▷논문; 또한 법신은 몇 가지의 자재에 의거해서 자재를 얻는 것인가? 대략 다섯 가지에 의거하나니,
첫째는 불토(佛土)ㆍ자신(自身)ㆍ상호(相好)ㆍ가없는 무변음성(無邊音聲)ㆍ정수리를 볼 수 없는 광대한 모습의 무견정상(無見頂相)의 자재에 의거하며, 물질의 요소인 색온(色蘊)의 의지처를 전환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죄가 없는 무죄(無罪)이며 무량한 광대락(廣大樂)에 안주하는 자재에 의거하나니,
감수작용의 수온(受蘊)의 의지처를 전환한 까닭이다.
셋째는 모든 명칭의 명신(名身)ㆍ문구의 구신(句身)ㆍ글자의 무신(文身)을 잘 말하는 자재에 의거하나니, 표상작용의 상온(想蘊)의 의지처를 전환하기 때문이다.
넷째는 현화(現化)ㆍ변이(變易)ㆍ대중을 포섭하는 섭대중(攝大衆)ㆍ청정법을 포섭하는 섭백법(攝白法)의 자재에 의거하나니, 결합작용의 행온(行蘊)의 의지처를 전환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대원경지(大圓鏡智)ㆍ평등성지(平等性智)ㆍ묘관찰지(妙觀察智)ㆍ성소작지(成所作智)의 자재에 의거하나니, 식별작용의 식온(識蘊)의 의지처를 전환하기 때문이다.
▶釋曰:今次應顯法身自在,由轉色等五薀依故,得五自在.此中由轉色薀依故,證得示現佛土自在,由此示現金銀等寶淨妙佛國,亦得示現隨其所欲自身自在.由此示現大集會中,隨諸有情勝解所樂種種色身,又隨所樂能現種種相好自在,又現無邊音聲自在,又現無見頂相自在.
▷해석한다; 다음으로 마땅히 법신의 자재를 나타낸 것이니, 물질의 요소인 색온(色蘊) 등의 5온의 의지처를 전환함으로써 다섯 가지 자재를 얻는 것이다.
이 중에서 물질의 요소인 색온(色蘊) 등의 의지처를 전환함으로써 불국토를 시현하는 자재를 증득하나니, 이로 인하여 금ㆍ은 등의 보석으로 청정하게 장엄된 불국토를 시현하고, 또한 원하는 바를 따라 자신을 시현하는 자재를 얻으며,
이로 인하여 큰 법회 중에서 모든 유정들의 승해(勝解)가 즐기는 바를 따라 갖가지 색신을 시현하며,
또한 즐기는 바를 따라 능히 갖가지 상호의 자재함이 나타내고, 또한 가없는 음성의 자재함이 나타나며,
또한 그 정수리를 볼 수 없는 무견정상(無見頂相)의 자재함이 나타나는 것이다.
由轉受薀依故,得無罪無量廣大樂住自在,謂得自在能住無罪無量廣大樂住.應知此中,由衆多故,說名無量,普超一切三界樂故,說名廣大樂住自在.由轉想薀依故,得於名身`句身`文身辯說自在,以能取相,故名爲想,由名身等,能取其相,轉染想薀,還得如是淸淨想薀.
“감수작용의 수온(受蘊)의 의지처를 전환함으로써 죄가 없는 무죄(無罪, 번뇌가 없음)이며, 무량하고 광대한 즐거움에 안주함의 자재를 얻는다”는 것은, 이른바 자재를 얻어서 능히 죄가 없고 무량하고 광대한 즐거움에 안주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니, 이 중에서 많은 것에 의거하기 때문에 무량하다고 말하는 것임을 알아야 하며,
널리 삼계의 모든 즐거움을 초월하기 때문에 ‘광대한 즐거움에 안주함의 자재’이라 하는 것이다.
‘표상작용의 상온(想蘊)의 의지처를 전환함으로써 명칭ㆍ문구ㆍ글자에 대해서 훌륭하게 말하는 자재를 얻는다’는 것이란, 인식주체의 능취상(能取相)이기 때문에 표상작용의 상(想)이라 이름하는 것이며, 명칭 등으로 인하여 능히 그 상을 취하는 것이다.
잡염된 표상작용의 염상온(染想薀)을 전환해서 이와 같은 청정한 표상작용의 청정상온(淸淨想薀)을 증득하는 것이다.
由轉行薀依故,得現化變易引攝大衆引攝白法自在.應知此中,隨其所欲,示現所作,故名現化,改轉地等,令成金等,故名變易,如意所樂能引天龍`藥叉等衆,應知說名,引攝大衆,隨意所樂,引諸白法,令現在前,應知說名,引攝白法.
‘결합작용의 행온(行蘊)의 의지처를 전환함으로써 현화(現化)ㆍ변이ㆍ대중을 포섭함ㆍ청정법을 포섭함의 자재를 얻는다’는 것이란, 이 중에서 그 원하는 바를 따라, 해야 할 바를 시현하기 때문에 ‘현화(現化)’라 부르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땅 등을 고쳐 바꾸어서 금 등을 이루기 때문에 ‘변이’라 이름하며,
마음이 즐겨하는 그대로 능히 천(天)ㆍ용ㆍ야차 등의 대중을 이끄는 것을 ‘대중을 포섭하는 섭대중(攝大衆)’이라 하며,
마음에 즐거워하는 바를 따라 모든 청정법을 이끌어서 현재 앞에 두는 것을 ‘청정법을 포섭하는 섭백법(攝白法)’이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由轉識薀依故,得大圓鏡智`平等性智`妙觀察智`成所作智.此中大圓鏡智者,謂無忘失法,所知境界,雖不現前,亦能記了,如善習誦書論光明.平等性智者,謂先通達眞法界時,得諸有情平等心等,應知此中究竟淸淨.妙觀察智者,謂如藏主如其所欲,隨於何等陁羅尼門`三摩地門,作意思惟,卽得自在無㝵智轉.成所作智者,謂能示現從睹史多天宮而沒乃至涅槃,種種佛事,皆得自在.
‘식별작용의 식온(識蘊)의 의지처를 전환함으로써 대원경지ㆍ평등성지ㆍ묘관찰지ㆍ성소작지를 얻는다’는 것에서,
대원경지는 잃어버림이 없는 무망실(無忘失)의 법으로서, 알아야 할 경계가 현전하지 않을지라도 능히 아는 것이니, 책을 잘 익히고 독송하는 이는, 그 책을 대하지 않을지라도 이미 밝게 아는 것과 같으며,
평등성지는 먼저 진정한 법계에 통달할 때 모든 유정의 평등한 마음을 증득하는 것이니, 이 가운데 궁극적으로 청정함을 아는 것이며,
묘관찰지는 창고의 주인이 그 안에 저장된 물건들을 어느 때라도 자유롭게 얻을 수 있과 같이, 그 원하는 바대로 어떠한 다라니문ㆍ삼마지문을 따라 작의하고 사유할지라도, 시기와 법에 자재하고 걸림이 없는 지혜가 전전함을 얻는 것이며,
성소작지는 능히 도솔천궁에서 생을 마침에서부터 열반에 이르기까지에서 시현하는 갖가지의 불사(佛事)에 모두 자재함을 얻는 것이다.
▶論曰:復次法身,由幾種處?應知依止,略由三處:一由種種佛住依止.此中有二頌:
▷논문; 또한 법신은 몇 가지 처소에 의해서 마땅히 의지가 되는 것으로 알아야 하는가?
대략 세 가지 처소에 의해서이니, 첫째는 부처님의 갖가지 안주의 의지처가 되는 까닭이니,
이러함에 두 개의 게송이 있다.
“諸佛證得五性喜, 皆由等證自界故, 離喜都由不證此, 故求喜者應等證.
모든 부처님께서는 다섯 가지 기쁜 성품의 오성희(五性喜)를 증득하셨으니,
모두 평등하게 스스로의 세계를 증득함에 의한 것이라네.
환희를 여의는 것 모두는 이것을 증득하지 못한 까닭이라.
그러므로 기쁨을 구하는 이는 마땅히 평등하게 증득해야 하리.
由能無量及事成, 法味義德俱圓滿, 得喜最勝無過失, 諸佛見常無盡故.”
작용의 힘인 공능(功能)이 무량함과, 그리고 사업의 성취와 법미(法味)와
이익과 덕이 의덕(義德)이 원만하게 함께하기 때문이니,
가장 뛰어난 환희로서 과실이 없으시니,
모든 부처님께서는 항상 다하지 않는 무진(無盡)을 보시기 때문이라네.
二由種種受用身依止,但爲成熟諸菩薩故;三由種種變化身依止,多爲成熟聲聞等故.
둘째는 갖가지 수용신이 의지하기 때문이니, 다만 모든 보살을 성숙시키기 위한 것이며,
셋째는 갖가지 변화신이 의지하기 때문이니, 수많은 성문등을 성숙시키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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