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친(世親)의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 제 8권
세친(世親) 보살 지음, 현장(玄奘) 한역.
10. 과단분(果斷分) 1
▶論曰:如是已說,增上慧殊勝. 彼果斷殊勝,云何可見! 斷,謂菩薩無住涅槃,以捨雜染,不捨生死,二所依止,轉依爲相.此中生死,謂依他起性雜染分.涅槃,謂依他起性淸淨分.二所依止,謂通二分依他起性.轉依,謂卽依他起性,對治起時,轉捨雜染分`轉得淸淨分.
▷논문; 이상과 같이 매우 높은 지혜인 증상혜(增上慧)의 수승(殊勝)에 관하여 설명하였다.
그 증과의 단멸인 과단(果斷)의 수승함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단(斷)은 이른바 보살의 무주열반으로서, 잡염을 버리고 생사를 버리지 않는 것으로, 두 가지의 의지처의 전의(轉依)로써 상을 삼는 것이다.
이 가운데, 생사는 의타기성의 잡염분이며, 열반은 의타기성의 청정분을 말하는 것이며,
두 가지의 소의(의지처)란, 이러한 두 가지에 통하는 의타기성을 말하는 것이다.
전의(轉依)는 의타기성의 다스림의 대치(對治)가 일어날 때, 잡염분을 전환하여 버리고 청정분을 그 전환으로 얻는 것이다.
ㅡ증과인 단멸인 과단(果斷)의 뛰어난 상, 즉 구경위(究竟位)에서 전의(轉依)에 의해 대열반과 대보리를 성취함에 관하여 설명하는 가운에에서 우선 전의(轉依)에 대한 내용이다.
전의(轉依, āśraya-parivṛtti)는 ‘의지처인 소의(所依)를 전환시켜서 얻어진 것’이라는 뜻으로, 여기서의 소의(의지처)는 제8식을 기반으로 하는 8식을 가리킨다. 전환은 전사전득(轉捨轉得), 즉 번뇌장ㆍ소지장의 종자를 전사하고, 보리와 열반을 전득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므로, 따라서 전의는 소의(所依)인 자기 존재의 기체(基體)를 허망된 상태(변계소집성)에서 진실한 상태(원성실성)로 변혁시키는 과정, 또는 그 과정의 결과로 증득된 보리와 열반을 가리킨다.
▶釋曰:無住涅槃,以捨雜染,不捨生死,二所依止轉依,爲相者,謂住此轉依時,不容煩惱`不捨生死,是此轉依相.何者生死?謂依他起雜染性分.何者涅槃?謂依他起淸淨性分.何者依止?謂通二分所依自性.何者轉依?謂卽此性對治生時,捨雜染分`得淸淨分.
▷해석한다; ‘무주열반으로서 잡염을 버리고 생사를 버리지 않으며, 두 가지의 의지처의 전의(轉依)로써 상을 삼는다’는 것이란, 이 전의(轉依)에 안주할 때에는 번뇌를 용인하지 않고 생사를 버리지 않으니, 이것이 전의의 상이다.
무엇이 생사(生死)인가? 의타기성의 잡염성의 부분을 말하는 것이며,
무엇이 열반(涅槃)인가? 의타기성의 청정성의 부분을 말하는 것이며,
무엇이 의지(依止)인가? 이른바 두 부분에 통하는 소의(所依, 의지처)의 자성이며,
무엇이 전의(轉依)인가? 곧 이 자성, 즉 의타기자성의 대치(對治)가 생겨날 때 잡염분을 버리고 청정분을 얻는 것이다.
▶論曰:又此轉依,略有六種:一損力益能轉,謂由勝解力,聞熏習住故,及由有羞恥,令諸煩惱,少分現行,不現行故;
二通達轉,謂諸菩薩,已入大地,於眞實非眞實`顯現不顯現現前住故,乃至六地;
▷논문; 또한 이 전의(轉依)에 대략 여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세력을 감소시키고 능력을 증성하게 하는, 자량위와 가행위에서의 수행의 힘인 손력익능정(損力益能轉)이니, 이른바 뛰어나게 이해하는 힘의 문훈습(聞勳習)에 안주하기 때문이고, 수치심이 있어서 모든 번뇌를 조금만 현행시키거나 혹은 현행시키지 않게 하기 때문이며,
둘째는 통달의 전의의 통달전(通達轉, 통달위)이니, 모든 보살은 이미 10지 중의 초지(初地)의 큰 지위에 올라서 진실ㆍ진실이 아닌 것에 대해서 현현하거나 현현하지 않고 현전에 머물기 때문이니, 나아가 제6지에 이르기까지이다.
三修習轉,謂猶有障,一切相不顯現`眞實顯現故,乃至十地;四果圓滿轉,謂永無障,一切相不顯現`最淸淨眞實顯現,於一切相,得自在故;五下劣轉,謂聲聞等,唯能通達補特伽羅空無我性,一向背生死`一向捨生死故;六廣大轉,謂諸菩薩,兼通達法空無我性,卽於生死見爲寂靜,雖斷雜染,而不捨故.
셋째는 수습의 전의인 수습전(修習轉, 수습위)이니, 아직 장애가 있으며, 모든 차별상이 현현하지 않고 진실만이 현현하는 까닭이니, 나아가 제10지에 이르기까지이며,
넷째는 증과가 원만한 전의인 관원만전(果圓滿轉, 구경위)이니, 장애가 영원히 없고, 모든 차별상이 현현하지 않으며, 가장 청정한 진실만이 현현하여 모든 차별상에 대해서 자재를 얻는 까닭이며,
다섯째는 낮고 열등한 전의의 하열전(下劣轉, 이승의 지위)이니, 성문등은 오직 능히 보특가라의 공(空)ㆍ무아성(無我性)에 통달할 뿐이며, 한결같이 생사를 등지고 한결같이 생사를 버리는 까닭이며,
여섯째는 광대한 전의인 광대전(廣大轉, 대승의 지위)이니, 모든 보살은 보특가라의 공ㆍ무아성과 아울러서 법공ㆍ무아성에 통달하여서, 곧 생사를 보아 적정으로 삼고, 잡염을 단멸하지만 버리지는 않는 까닭이다.
若諸菩薩,住下劣轉,有何過失?不顧一切有情利益安樂事故`違越一切菩薩法故`與下劣乘同解脫故,是爲過失.若諸菩薩,住廣大轉,有何功德?生死法中,以自轉依爲所依止,得自在故,於一切趣示現一切有情之身,於最勝生及三乘中,種種調伏,方便善巧,安立所化諸有情故,是爲功德.
만약 보살이 낮고 열등한 전의의 하열전(下劣轉, 이승의 지위)에 머문다면 어떠한 과실이 있게 되는 것인가?
모든 유정을 이롭게 하고 안락하게 하는 사업을 돌아보지 않게 되며,
모든 보살법에 위배되며, 낮고 열등한 교법의 수행자와 해탈을 같이하는 등의 이러한 과실이 있게 되는 것이다.
만약 보살이 광대한 전의인 광대전(廣大轉, 대승의 지위)에 안주한다면 어떠한 공덕이 있게 되는 것인가?
생사의 법 가운데 스스로의 전의를 소의(의지처)로 삼아서 자재를 얻는 까닭에, 일체의 윤회세계인 일체취(一切趣)에서 모든 유정의 몸을 시현하여 가장 뛰어난 생과 삼승(三乘)에 있어서 조복하는 갖가지 훌륭한 선교방편으로써 교화하여, 모든 유정을 안립하게 하나니, 이러한 공덕이 있게 되는 것이다.
▶釋曰:又此轉依,略有六種.損力益能轉者,謂損減阿賴耶識中,煩惱熏習力故`增益彼對治功能故,得此轉依.謂由勝解力,聞熏習住故者,謂住勝解行地,安立聞熏習力故,得此轉依.及由有慚羞等者,於此位中,若煩惱現行,卽深羞恥,或少分現行`或全不現行.
▷해석한다; 또한 이 전의(轉依)에 대략 여섯 가지가 있으니,
‘세력을 감소시키고 능력을 증성하게 하는 손력익능정(損力益能轉)’란, 아뢰야식 안의 번뇌의 훈습력을 감소시키고, 그 다스림의 대치 능력을 증성시킴으로써 이 전의를 얻게 되는 것이며,
‘이른바 뛰어나게 이해하는 힘의 문훈습(聞熏習)에 안주하기 때문’이란, 승해행지(勝解行地)에 안주하여 문훈습의 세력을 안립함으로써 이 전의를 얻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수치심이 있어서’한, 이 지위에서 만약 번뇌가 현행한다면, 곧 깊이 부끄럽게 여겨서 혹 조금만 현행하게 하거나 혹은 전부를 현행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通達轉者,謂入地時,所得轉依.於眞實非眞實等者,謂此轉依,乃至六地,或時爲眞實顯現因,或時出觀爲非眞實顯現因.
‘통달의 전의의 통달전(通達轉, 통달위)’란 10 지위, 특히 초지에 들어갈 때 얻는 전의이며,
‘진실과 진실이 아닌 것에 대해서’ 등이란, 이 전의는 나아가 제6지에 이르기까지로서, 어느 때는 진실이 현현하는 원인이 되고, 어느 때에는 관찰에서 나와서 진실이 아닌 것이 현현하는 원인이 된다.
ㅡ이 관(觀)에 들어갈 때는 진실이 현현하지만, 관에서 나올 때는 산란된 마음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허망된 것이 현현한다고 하는 것이다.
修習轉,謂猶有障者,由所知障,說名有障.一切相不顯現等者,謂此轉依,乃至十地,一切有相,不復顯現,唯有無相,眞實顯現.
‘수습의 전의인 수습전(修習轉, 수습위)는 아직 장애가 있다’는 것이란, 소지장에 의거해서 장애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며,
‘모든 차별상이 현현하지 않고’ 등은, 이 전의는 나아가 제10지에 이르기까지로서, 모든 존재의 유상(有相)이 다시 현현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오직 무상(無相)의 진실이 현현함이 있을 뿐인 것이다.
果圓滿轉,謂永無障者,由無一切障,說名無障.一切相不顯現者,無一切障故.最淸淨眞實顯現者,卽由此故.於一切相,得自在者,由此爲依,得相自在,隨其所欲,利樂有情.下劣轉,謂聲聞等,等者等取獨覺,唯能通達一空無我,不能利他,故是下劣.
‘증과가 원만한 전의인 광대전(廣大轉, 대승의 지위)은 영원히 장애가 없다’는 것이란, 일체의 모든 장애가 없기 때문에 장애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며,
‘모든 차별상이 현현하지 않는다’는 것이란, 일체의 모든 장애가 없기 때문이며,
‘가장 청정한 진실만이 현현한다’는 것은, 곧 이것에 의거하기 때문인 것이며,
‘모든 차별상에 대해서 자재를 얻는다’는 것은, 이것을 의지로 삼아서 차별상에 자재를 얻음으로써 그 원하는 바를 따라 유정을 이롭게 하고 안락하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낮고 열등한 전의의 하열전(下劣轉, 이승의 지위)은, 성문등을 말한다’에서, 등(等)은 독각을 같이 취한다는 뜻으로, 오직 능히 하나의 공ㆍ무아에 통달할 뿐, 즉 이승은 아공만을 통달할 뿐 아직 법공은 통달하지 못하므로, 남을 이롭게 할 수 없는 까닭에, 이것은 낮고 열등한 것이다.
廣大轉,謂諸菩薩等者,由竝通達二空無我,安住此中,捨諸雜染`不捨生死,兼利自他,故是廣大.住下劣轉,有何過失等者,不顧有情,越菩薩法,下劣乘同,是爲過失.住廣大轉,有何功德等者,以自轉依,爲所依止,於一切法,得自在故,於一切趣,示現一切同分之身,於最勝生,乃三乘中,種種調伏,方便巧智,安立所化難調有情,是爲功德.此中意取世閒,富貴爲最勝生.
‘광대한 전의인 광대전(廣大轉, 대승의 지위)은 모든 보살을 말한다’ 등이란, 공ㆍ무아의 두 가지에 아울러 통달하여 이 가운데에 안주하고, 모든 잡염을 버리고 생사를 버리지 않는 것이며, 자신과 남을 이롭게 하기 때문에, 이것은 광대한 것이며,
‘낮고 열등한 전의의 하열전(下劣轉, 이승의 지위)에 머물면 어떠한 과실이 있게 되는가?’ 등은, 유정을 돌아보지 않고, 보살법을 넘어가며, 낮고 열등한 교법의 수행자와 동등하게 되는 것이니, 이러한 것이 과실이 되며,
‘광대한 전의인 광대전(廣大轉, 대승의 지위)에 안주한다면 어떠한 공덕이 있는가?’ 등은, 자신의 전의를 소의(의지처)로 삼고 일체법에 대해서 자재를 얻은 까닭에, 모든 윤회세계인 일체취(一切趣)에서 모두와 같은 신체를 시현하고, 가장 뛰어난 생과 삼승에 있어서 조복하는 갖가지의 훌륭한 선교방편의 지혜로써 교화하는 바, 조복하기 어려운 유정을 안립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공덕이 되는 것이며, 여기서의 의취(意取)는 세간의 부귀를 취하여 가장 뛰어난 생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ㅡ세간의 과보로서는 가장 뛰어난 생을 얻고, 출세간의 과보로서는 삼승도(三乘道)에 의지해서 교화하여 증과를 얻게 한다는 뜻이다.
▶論曰:此中有多頌:
▷논문; 이러함에 대하여 여러 게송이 있으니,
“諸凡夫覆眞, 一向顯虛妄, 諸菩薩捨妄, 一向顯眞實.
모든 범부는 진실을 덮어서 한결같이 허망을 현현하나,
모든 보살은 허망을 버리고 한결같이 진실을 현현한다네.
應知顯不顯, 眞義非眞義, 轉依卽解脫, 隨欲自在行.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현현하고 현현하지 않음이란,
진실한 대상인 진의(眞義)와 진실한 대상이 아닌 비진의(非眞義)를 말한다는 것을!
전의(轉依)함이란 곧 해탈하는 것이니, 원하는 바를 따라 자재하게 행하는 것이라네.
於生死涅槃, 若起平等智, 爾時由此證, 生死卽涅槃.
생사와 열반에 대해서 평등지(平等智)를 일으킨다면,
그 때에는 이에 의거해서 생사가 곧 열반임을 깨닫게 된다네.
由,是於生死, 非捨非不捨, 亦卽於涅槃, 非得非不得.”
이로 인하여 생사에 대해서 버리지 않고 버리지 않음도 아닌 것이니,
역시 열반에 대해서도 증득함도 아니고 증득하지 않음도 아니라네.
▶釋曰:爲顯轉依,故說多頌.如諸凡夫,由無明故,覆障眞實,顯一切種所有虛妄.如是聖者,無明斷故,捨離虛妄,顯一切種,所有眞實.由此道理,應知顯不顯眞義非眞義者,遍計所執非眞不轉,圓成實相眞義轉故.言轉依者,此卽轉依,於此位中,眞義現行,非眞實義不現行故.卽解脫者,卽此轉依解脫相應.隨欲自在行者,謂此解脫,隨其所欲,自在而行,非如聲聞所得解脫,猶如斬首,畢竟安住般涅槃故.
▷해석한다; 전의를 나타내기 위해서 많은 게송을 말한 것으로, 모든 범부는 무명으로 인하여 진실을 장애로 덮어서 갖가지의 일체 모든 허망을 현현하나,
성자는 무명을 끊음으로써 허망을 여의고 모든 종류의 진실을 현현하나니, 이러한 도리에 의거해서
‘마땅히 알지니 현현과 현현하지 않음은 진정한 대상인 진의(眞義)와 진정한 대상이 아닌 비진의(非眞義)라네’란, 변계소집성은 진실이 아닌 것으로서 전전하지 않고, 원성실상은 진정한 대상으로서 전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며,
‘전의(轉依)한다’는 것은, 이 계위에 진실한 대상인 진의(眞義)의 현행으로 전의하는 것이고, 진실하지 않은 대상인 비진의(非眞義)는 현행하지 않는 것이며,
‘곧 해탈이니’는 이 전의가 해탈과 상응한다는 것을 말하며,
‘원하는 바를 따라 자재하게 행한다’는 것이란, 이 해탈은 그 원하는 바를 따라 자재하게 행하는 것이나, 성문이 증득한 해탈은 마치 머리를 자른 것과 같이, 궁극적으로 반열반에 안주하지 않기 때문이다.
於生死涅槃,若起平等智等者,謂於生死,及於涅槃,起平等智,由此二種無別性故,卽於此時,是爾時義.又此二種,云何平等?以諸雜染,名爲生死,卽雜染法,無我之性,名爲涅槃.菩薩通達諸法無我,平等智生,見彼諸法,皆無自性,諸有生死,卽是涅槃,以於其中,見極寂靜,卽涅槃故.
‘생사와 열반에 대해서 평등지(平等智)를 일으키면’ 등은 생사에 대해서도, 열반에 대해서도 평등한 지혜를 일으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이 두 가지는 차별의 성품이 없기 때문이다.
곧 이 때에 있어서의 어차시(於此時)'란, ‘그때’의 뜻이며,
또한 이 두 가지는 어떻게 평등한 것인가? 모든 잡염법을 생사라 이름하고, 잡염법에 상즉하는 무아성(無我性)을 열반이라 하는 것이니, 보살은 제법의 무아에 통달하여 평등지를 일으켜서, 모든 제법이 다 무자성(無自性)이라는 것을 보는 것이니,
모든 존재의 생사는 곧 열반이니, 그 생사 안에서 지극한 적정, 곧 열반을 보기 때문이다.
若如是知,復何所得?由是於生死,非捨非不捨等者,諸有生死,卽是涅槃,是故不捨,卽是無別,有可捨義.卽於其中,見無性故,離諸雜染,名非不捨.旣得如是,亦卽於涅槃,非得非不得.離生死外,無別涅槃,而可證得,故名非得.復於其中,見寂靜故,雖無性別,而證涅槃,名非不得.
만약 이렇게 안다며, 무슨 소득이 있는 것인가?
‘이로 인하여 생사에 대해서 버리지도 않고, 버리지 않음도 아니네’ 등이란,
모든 존재의 생사가 곧 열반이므로 버리지 않는, 곧 별도로 버려야 할 의미가 없는 까닭이며, 그 가운데에 무자성을 보기 때문이니, 모든 잡염을 여의는 것을 버리지 않음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미 이와 같은 것을 증득한다면, 역시 열반에 대해서도 증득함도 아니고 증득하지 않음도 아닌 것이니,
생사를 여의고 외부에 별도의 열반으로서 증득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증득함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다시 그 가운데에서 적정을 보기 때문에, 비록 무성(無性)으로서 별도의 것은 없지만 열반을 증득하나니, 이것을 증득하지 않음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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