成唯識論 卷第一 

護法等菩薩造 호법(護法 지음

三藏法師 玄奘  詔譯 현장(玄奘한역

성유식론(成唯識論제 6 2

 

云何無貪?於有、有具無著爲性,對治貪著,作善爲業。

무엇이 무탐(無貪, alobha)심소’인가? 윤회의 삶인 유(有, 삼유三有 또는 삼계三界의 과보)와 그 원인인 유구(有具, 윤회의 삶의 원인因)에착하지 않음을 체성(體)으로 삼고, 탐착을 다스려서 선을 행함을 업(業)으로 삼는다.

 

무탐(無貪, alobha)심소는 애착심을 없애는 심리작용이며, 여기에는 5취온(取)뿐만 아니라 열반에 대한 애착심을 버리는 것도 포함된다. 왜냐하면 열반에 집착하면, 그 집착이 원인이 되어 3계 윤회의 과보가 따라오기 때문이다.

 

云何無瞋?於苦、苦具無恚爲性,對治瞋、恚,作善爲業。善心起時,隨緣何境,皆於有等,無著無恚,觀有等立,非要緣彼。如前慚、愧,觀善、惡立。故此二種俱遍善心。

무엇이 ‘무진(無瞋, adveṣa)심소’인가? 고통(苦)과 고통의 원인인 고구(苦具)에 대해서 성내지 않음을 체성(體)으로 삼고, 성냄을 다스려서 선을 행함을 업(業)으로 삼는다. 

착한 심왕의 선심(善心)이 일어날 때에는, 어떤 대상을 반연하여도 모두 윤회의 삶(有) 등에 탐착하거나 성내는 일이 없으며, 윤회의 삶(有)의 원인인 유구(有具)ㆍ고통(苦)ㆍ고통의 원인인 고구(苦具) 등에 관대(觀待)로써 상대해서 건립하는 즉, 탐(貪)심소를 윤회의 삶(有)과 그 원인인 유구(有具)에 관대(觀待)하고,

진(瞋)심소를 고통(苦)과 고통의 원인인 고구(苦具)에 관대하여 둘의 별상(別相)을 건립하는 것이나 반드시 무탐(無貪)심소가 유(有)와 유구(有俱)를 반연하고, 무진(無瞋)심소가 고(苦)와 고구(苦俱)를 반연하는 것만은 아니다.

앞에서 참(慚)ㆍ괴(愧) 심소를 선ㆍ악에 상대해서 건립한 것과 같은 것으로,

따라서 무탐(無貪) 무진(無瞋), 심소 모두 착한 마음의 선심(善心)에 두루하는 것이다.

 

무진(無瞋, adveṣa)심소는 성냄을 없애는 심리작용으로, 고고(苦苦)ㆍ괴고(壞苦)ㆍ행고(行苦)의 삼고(三苦)뿐만 아니라 또한 고구(苦具)에 대해서도 성내는 마음이 없어야 한다. 열반을 추구하다가 뜻대로 증득하지 못하면 성내는 마음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고(苦)와 고구(苦具)에 대해 성내지 않음을 통해, 진(瞋, 瞋恚, 恚)을 대치하여 선(善)을 행하게 함으로써악행(惡行)에 빠지지 않게 하는 의지처가 된다.

 

云何無癡?於諸理事明解爲性,對治愚癡,作善爲業。

무엇이 무치(無癡, amoha)심소’인가? 모든 본체의 이(理)와 현상의 사(事)를 명료하게 이해함을 체성(體)으로 삼고, 우치를 다스려서 선을 행함을 업(業)으로 삼는다.

 

무치(無癡, amoha)심소는 모든 사리(事理)를 밝게 이해하는 능력의 심리작용으로, 치(癡, 우치愚癡)를 대치하여 선(善)을 행하게 한다.

 

有義無癡卽慧爲性,'集論'說此報、教、證智,決擇爲體。

제1사(第一師)의 주장으로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무치(無癡)심소는 혜(慧)를 체성(體)으로 한다고 하였으니, 

'대승아비달마집론' 제 1권에서 말하기를 “이것은 과보(報)ㆍ가르침(敎)ㆍ증득(證)ㆍ지혜(智)를 결택함을 자체로 한다”고 하였다.

무착(無着, Asaga) '대승아비달마집론'에서의 본문의 내용을  제자인 사자각(獅子覺, Buddhasiha) 해석한 문장으로, ()ㆍ교()ㆍ증()ㆍ지() 순서대로 생득혜(生得慧)ㆍ문혜(聞慧)ㆍ사혜(思慧)ㆍ수혜(修慧) 배대한 것이다.

 

生得、聞、思、修所生慧,如次皆是決擇性故。此雖卽慧,爲顯善品有勝功能,如煩惱見,故復別說。

생득(生得)의 지혜ㆍ문혜(聞慧)ㆍ사혜(思慧)ㆍ수혜(修慧)에 순차적으로 같다고 말하며, 모두 결택의 속성이기 때문이며, 이것은 지혜이지만 선품(善品)에 뛰어난 능력인 공능(功能)이 있음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니, 번뇌심소 중의 여러 견해(見)와 같기 때문에 다시 별도로 설명할 것이다.

여섯 가지 번뇌심소 중에서 악견(惡見) 별도로 유신견(有身見)ㆍ변견(邊見)ㆍ사견(邪見)ㆍ견취견(見取見)ㆍ계금취견(戒禁取見) 다섯 가지로 구분하여 별도로 말하는 것과 같이 이것도 역시 그러하다는 뜻이다.

 

有義無癡非卽是慧,別有自性正對無明,如無貪、瞋善根攝故。論說大悲無瞋、癡攝非根攝故。若彼無癡以慧爲性,大悲如力等應慧等根攝。

제2사(第二師)가 주장하는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으니, 무치(無癡)심소가  혜(慧)인 것이 아니고 별도의 자성이 있어야 하는 것으로, 바로 무명에 상대하여 무탐ㆍ무진 심소처럼 선근에 포함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논서, '유가사지론' 제57권에서 말하기를 “큰 자비는 무진ㆍ무치 심소에 포함되고, 22근(根)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기 때문이니,  

만약  논서에서 무치심소는 혜(慧)를 체성으로 한다고 말한다면, 대비(大悲)는 여래의 18불공법(不共法) 중의 10력(力) 등과 같이 혜근(慧根) 등의 22근(根)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又若無癡無別自性,如不害等應非實物,便違論說十一善中三世俗有,餘皆是實。

또한 만약 무치(無癡)심소에는 별도의 체성이 없다고 말한다면, 불해(不害)심소 등과 같이 자체(體)가 있는 실물(實物)이 아니어야 할 것이니, 만약 그러하다면, 논서에서 “열한 가지 선의 심소 중에서 불방일(不放逸)ㆍ행사(行捨)ㆍ불해(不害) 심소의 셋은 세속유(世俗有)가 되고, 나머지는 모두 참으로 존재하는 실(實)이다”라고, '유가사지론' 제55권에서 말한 것에 위배되는 것이다.

나머지 여덟 가지 중에 무치(無癡)심소가 있는데, 논서에서 이것은 참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然'集論'說慧爲體者,擧彼因果顯此自性,如以忍樂表信自體,理必應爾。

그런데 '대승아비달마집론' 제 1권에서 무치(無癡)의 원인과 결과는 과보(報)ㆍ가르침(敎)ㆍ증득(證)ㆍ지혜(智)의 사혜(四慧) 자체(體)로 삼는다고 말한 것은, 무치의 원인과 결과를 들어서 이 무치의 자성(자체분)을 나타낸 것이다.

승해(勝解)심소로서 신(信)심소의 원인으로서의 인(忍)과 욕(欲)심소로서 신심소의 결과인 낙(樂)으로써의 신(信)심소의 자체(體)를 나타내는 것과 같이 이치가 반드시 그러해야 하는 것이다.

 

以貪、瞋、癡六識相應,正煩惱攝,起惡勝故,立不善根。斷彼必由通、別對治。通唯善慧,別卽三根。由此無癡必應別有。

무탐(無貪)ㆍ무진(無瞋)ㆍ무치(無癡)의 심소는 6식(六識)과 상응하고, 바로 번뇌에 포함되며, 악을 일으킴이 뛰어나기 때문에 불선근(不善根)으로 건립하며, 그것을 단멸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공통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의 다스림에 의하는 것으로,

공통적이라는 것은 오직 선(善)의 혜(慧)이며,

개별적인 것이라는 것은 탐 진 치의 삼근(三根)이므로 무치심소는 반드시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어야 하는 것이다.

 

勤謂精進,於善惡品修斷事中,勇悍爲性,對治懈怠,滿善爲業。勇表勝進,簡諸染法。悍表精純,簡淨無記,卽顯精進唯善性攝。

‘근(勤, vīrya)심소’는 정진을 말하며, 선품(善品)을 닦고 악품(惡品)을 끊는 대해서 용맹스럽고 굳세게 함을 체성(體)으로 삼으며, 게으름을 다스려서 착한 일을 원만하게 이루는 것을 업(業)으로 삼는다. 

용맹스럽다는 것은 정진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모든 잡염법을 가려내는 것이며,

굳세다는 것은 지극히 순수한 것을 나타내어 청정 무구성을 가려내는 것이니, 정진은 곧 오직 착한 성품의 선품(善品)에만 포함됨을 나타낸다.

 

근(勤, vīrya)심소는 ‘정진’의 심리작용으로서, 용맹스럽게 선행을 닦고 악행을 끊게 한다. 해태(懈怠)심소를 다스린다.

 

此相差別略有五種,所謂被甲、加行、無下、無退、無足,卽經所說有勢、有勤、有勇、堅猛、不捨善軛,如次應知。

이 상(相)의 차이에는 대략 5 종류가 있으니  맹렬함을 일으키는 피갑(被甲, 유세有勢)ㆍ가행(加行, 유근有勤)ㆍ낮추지 않음의 무하(無下, 유용有勇)ㆍ물러나지 않음의 무퇴(無退, 견맹堅猛)ㆍ만족하지 않음의 무족(無足, 불사선액不捨善軛)이다. 

경전에서 말씀하신, 세력이 있음의 유세(有勢)ㆍ정진함의 유근(有勤)ㆍ용감함의 유용(有勇)ㆍ견고하고 용맹함의 견맹(堅猛)ㆍ선의 멍에를 버리지 않는 불사선액(不捨善軛)이니, 마땅히 순차적으로 알아야 하는 것이다.

 

*피갑(被甲)은 맹렬하고 날카롭게 즐거운 욕구를 일으키는 것을 말하며, 경전에는 세력이 있는 유세(有勢)라고 이름하며, 갑옷[甲]을 입고[被] 군대가 진(陣)을 친 곳에 들어갈 때 두려워하지 않고 큰 위세가 있는 것과 같음을 일컫는 것이다.

*가행(加行)은 견고하고 용감한 방편을 일으키는 것을 말하며, 경전에는 정진함의 유근(有勤)이라 이름하였으며, 마음을 견고하게 해서 스스로 책려(策勵)하는 것을 일컫는다.

*낮추지 않음의 무하(無下)는 증득해야 할 것에 대해서 스스로를 경멸하지 않고, 역시 법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말하며, 경전에는 용감함의 유용(有勇)이라 하였다.

*물러나지 않음의 무퇴(無退)란 추위나 배고픔 등의 고통을 능히 인내로써 받아들이고, 열등한 선(善)에 대해서 혐오(嫌惡)나 만족함을 일으키지 않으며, 다음 단계의 뛰어난 공덕 등을 기쁘게 구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경전에는 견고하고 용맹의 견맹(堅猛)이라 하였다.

*만족하지 않음의 무족(無足)은 이후에 점차 4성제를 관찰하는 제관(諦觀) 등의 뛰어난 도(道)에 들어가는 것을 말하며, 경전에는 선(善)의 멍에를 버리지 않는 불사선액(不捨善軛)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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