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乘乘品 第十六卷 第四十六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18. 마하연품(摩訶衍品) 풀이함 5

 

問曰:若用有所得集諸善法猶尚爲難,何況用無所得!

묻나니, 설령 얻을 바 있음의 유소득(有所得)으로써 모든 선법(善法)을 쌓는 것도 오히려 어려운 것이거늘, 하물며 얻을 바가 없는 무소득(無所得)이겠습니까?

 

荅曰:若得是無所得智慧,是時能妨善行,或生邪疑;若不得是無所得智慧,是時無所妨,亦不生邪疑!

佛亦不稱著心取相行諸善道。何以故?虛誑住世閒,終歸於盡。

답하나니, 만약 이 무소득(無所得)의 지혜를 얻게 될 때에는 능히 선행(善行)을 방해하고, 혹은 삿된 의심이 생기기도 하지만,

만약 무소득(無所得)의 지혜를 얻지 않을 시에는 방해되는 바도 없을 뿐만 아니라 삿된 의심도 생기지 않는다.

부처님께서도 역시 마음으로 집착하고 상(相)을 취하면서 여러 선도(善道)를 행하는 것을 칭찬하지 않으셨나니,

왜냐하면 거짓된 것으로써 세간에 머무르는 것은 종내에는 진(䀆, 다하는)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若著心修善,破者則易;若著空生悔,還失是道!

譬如火起草中,得水則滅;若水中生火,則無物能滅。

만약 마음으로 집착하는, 착심(著心)으로 선(善)을 닦으면 무너지기 쉬우나,

만약 공에 집착하는, 착공(著空)으로 뉘우침을 내게 되면 도리어 이 도(道)를 상실하게 되나니,

비유하자면, 풀 속에서 불이 일어날 때에는 물을 만나면 곧 꺼지지만, 만약 물속에서 불이 일어나면 끌 수 있는 것이 없는 것과 같이, 

 

初習行著心取相菩薩,修福德,如草生火,易可得滅;

若體得實相菩薩,以大悲心行衆行,難可得破,如水中生火,無能滅者。

처음에 행을 익히면서 마음에 집착하는 착심(着心)하고, 상(相)을 취하는 보살이 복과 덕을 닦는 것은 마치 풀에서 불이 생기면 쉬이 끌 수 있는 것과 같으나,

만약 실상(實相)을 체득한 보살이 대비(大悲)의 마음으로써 여러 행을 행할 때는 깨뜨리기 어려운 것은 마치 물속에서 불이 생기면 끌 수 없는 것과 같으니, 

 

以是故,雖用無所得心行衆行,心亦不弱,不生疑悔。是名略說六波羅蜜義。廣說如“初品”中。

이 때문에 비록 얻을 바가 없는 마음으로써 많은 행을 행한다 하여도, 마음 또한 약하지 않고 의심하거나 후회하지 않나니, 이것을 여섯 바라밀의 이치를 간략하게 말한 것이라 하나니, 자세한 설명은 초품(初品)에서와 같다.

 

一一波羅蜜皆具足。十八空者,六波羅蜜中說般若波羅蜜義,不著諸法。

所以者何?以十八空故。“十八空”論議,如初品中,

佛告舍利弗:“菩薩摩訶薩欲住十八空,當學般若波羅蜜。”彼義,應此中廣說。

각각의 바라밀이 모두 십팔공(十八空)을 두루 갖춘다는 것이란, 육바라밀 가운데에서 반야바라밀의 의(義, 이치)를 말하면서 제법에 집착하지 않나니, 왜냐하면, 십팔공으로써 하기 때문이다.

십팔공에 대한 논의(論議)는 마치 초품(初品) 에서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보살마하살이 십팔공에 머무르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나니, 그 이치를 여기에서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다,

 

問曰:十八空,內空等後皆言“非常非滅故”,此義云何?

묻나니, 십팔공 중의 내공(內空) 등의 끝에서 모두 “항상한 것도 아니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라는 비상비멸고(非常非滅故)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荅曰:若人不習此空,必墮二邊,若常、若滅。所以者何?若諸法實有,則無滅義,墮常中。

如人出一舍入一舍,眼雖不見,不名爲無。

답하나니, 만약 사람이 이 공(空)을 익히지 않는다면, 반드시 항상하다는 상(常)이거나 멸한다는 멸(滅)의 두 치우침인 이변(二邊)에 떨어지게 되나니,

왜냐하면 만약 제법이 실제로 존재하는 실유(實有)하는 것이라면 곧 소멸한다는 이치가 없으므로 항상하다는 상(常, 상견)에 떨어지기 때문이니, 마치 사람이 이 집에서 나와서 다른 집으로 들어갔을 때에, 비록 눈으로는 보지 않았을지라도 그 사람이 없다고는 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諸法亦爾,從未來世入現在世,現在世入過去世,如是則不滅。行者以有爲患,用空破有;

心復貴空,著於空者,則墮斷滅。以是故,行是空以破有,亦不著空;離是二邊,以中道行。

제법 또한 그러한 것으로, 미래세(未來世)로부터 현세(現世)로 들어오고

현세(現世)로부터 과거세(過去世)로 들어가나니, 이러함은 곧 소멸하지 않는 불멸(不滅)이라 수행하는 이는 존재한다는 유(有)를 우환으로 삼기에, 공(空)으로써 존재한다는 유(有)를 깨뜨리게 되지만,

마음이 다시 공(空)을 귀히 여기어 공(空)에 집착하게 되면 단멸(斷滅, 단멸견)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므로

이 공을 행(空)하면서 존재한다는 유(有)를 깨뜨리되 또한 공(空)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이 두 치우친 이변(二邊)을 여의게 되어서 중도(中道)를 행하게 되는 것이다.

 

是十八空,以大悲心爲度衆生,是故十八空後皆言非常非滅,是名摩訶衍。

若異此者,則是戲論狂人,於佛法中空無所得;如人於珍寶聚中取水精珠,眼見雖好,價無所直。

이 십팔공은 대비심(大悲心)으로써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십팔공 뒤에는 모두 “항상한 것도 사라지는 것도 아니라는 비상비멸고(非常非滅故).”라고 말하는 것이니, 이것을 마하연(摩訶衍)이라 하는 것이나,

만약 이와 다르다면 그것은 희론(戲論)이요 광인(狂人)인 것이다.

부처님 불법 가운데에서는 공(空)이어서 무소득(無所得)인 것은, 마치 사람이 진기한 보배를 쌓아 놓은 가운데에서 수정주(水精珠)를 취한다면 비록 눈으로 보기에는 좋을지라도 그 값어치가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問曰:若十八空已攝諸空,何以更說四空?

묻나니, 만약 십팔공이 이미 모든 공(空)을 다 포섭하는 것이라면,

무엇 때문에 다시 법법상공(法法相空), 무법무법상공(無法無法相空), 자법자법상공(自法自法相空), 타법타법상공(他法他法相空)의 사공(四空)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사공(四空)= ① 법법상공(法法相空), 법상공; 색(色)의 속박을 싫어하여 벗어나려고, 색의 상(想)을 버리고,
무한한 허공관을 하는 선정(禪定). - 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

② 무법무법상공(無法無法相空), 무법공;  내식(內識)이 광대무변 하다고 관하는 선정. - 식무변처정(識無邊處定)

③ 자법자법상공(自法自法相空), 자법공;  식(識)인 상(想)을 버리고, 심무소유(心無所有)를 관하는 선정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

④ 타법타법상공(他法他法相空), 타법공; 식(識)인 상(想)을 버리고, 심무소유(心無所有)를 관하는 선정. -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

 

荅曰:十八空中,現空盡攝。諸佛有二種說法:或初略後廣,或初廣後略。

답하나니, 십팔공 가운데에서 공(空)를 남김없이 다 포섭한다는 것을 나타내었다.

모든 부처님은 두 가지의 설법이 있나니, 처음에는 략(略, 간략)하게 하고, 뒤에서 광(廣, 자세히)하시기도 하며

혹은 처음에는 광(廣, 자세히)하고 뒤에는 략(略, 간략)하기도 하시는 것이라.

 

初略後廣,爲解義故。初廣後略,爲易持故。或爲後會衆生略說其要,或以偈頌。

今佛前廣說十八空,後略說四空相。

처음에 략(略, 간략)하게 말씀하시고 뒤에 광(廣, 자세히)는 자세히 말씀하시는 것은 그 뜻을 이해시키기 위해서요

처음에 광(廣, 자세히) 설명하시고 뒤에 략(略, 간략)하게 설명하신 것은 지니기 쉽게 하기 위한 것이라.

혹은 뒤에 모인 중생들을 위하여 략(略, 간략)하게 그 요점을 말씀하기도 하셨고

혹은 게송으로써 말씀하기도 하셨나니,

지금 부처님께서는 앞에서 십팔공을 광(廣, 자세히) 말씀하셨으므로,

뒤에 이 네 가지의 사공상(四空相)을 략(略, 간략)하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法法相空”者,一切法中,法相不可得;如色中,色相不可得。

復次,法中不生法故,名爲“法法空”

“無法無法空”者,無爲法名“無法”。何以故?相不可得故。

법은 법의 상이 공하다는 법법상공(法法相空)이라 함이란, 일체법 가운데에서 법의 법상(法相)을 얻을 수 없음이 마치 물질(色) 가운데에서 색상(色相)을 얻을 수 없는 것과 같으며, 또한 법 가운데에서는 법을 내지 않기 때문에 법은 법이라 공한 것이라 하는 것이며, 

없는 무법은 무법으로서 공하다는 무법무법공(無法無法空)이라 함이란, 무위법(無爲法)을 없는 무법이라 하나니, 왜냐하면 그 상(相)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問曰:佛以三相說無爲法,云何言“無相”?

묻나니, 부처님께서는 무생(無生) 무주(無住) 무멸(無滅)의 삼상(三相)으로서 무위법을 말씀하셨거늘,

어찌하여 무상(無相)이라 하시는 것입니까?

 

荅曰:不然!破生故言“無生”,破住故言“無住”,破滅故言“無滅”,

皆從生、住、滅邊有此名,更無別無生、無滅法。是名“無法無法空”。

是義,如“無爲空”中說。

답하나니, 그렇지 않다. 나는 생(生)을 깨뜨리는 까닭에 “남이 없는 무생(無生)이다.” 하고,

머무르는 주(住)를 깨뜨리는 까닭에 “머무름이 없는 무주(無住)다.” 하며,

없어지는 멸(滅)을 깨뜨리는 까닭에 “없어지지 않는 무멸(無滅)이다.” 하나니,

모두가 나고 머무르고 없어지는 생주멸(生住滅)의 편에서 이러한 이름이 있을 뿐, 다시 다른 것은 없는 것이라.

나는 것도 없는 무생(無生)이고, 없어지는 것도 없는 무멸법(無滅法)이 바로 무법이며 공한, 무법무법공(無法無法空)이라 하나니, 이 뜻은 무위공(無爲空)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自法自法空”者,“自法”名諸法自性。自性有二種:一者、如世閒法,地堅性等;

二者、聖人知如、法性、實際。此法空。所以者何?不由智見知故 有二性空,如先說。

스스로의 법은 스스로 공하다는 자법자법공(自法自法空)이라 함이란, 제법은 제법 스스로의 성품인 자성(自性)을 말하며, 제법 스스로의 성품인 자성(自性)에는 두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마치 세간법에서 지(地, 땅)은 단단한 성품의 견성(堅性)이라고 하는 것 등과 같으며,

둘째는 성인은 여(如)ㆍ법성(法性)ㆍ실제(實際)를 알지만 이 법도 공하나니, 왜냐하면 지견(智見)으로 말미암아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두 성품이 공한 이성공(二性空)은 마치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명견(明見):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밝은 눈을 가진 사람
지견(智見): 지혜로운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
식견(識見): 학식과 견문으로 사물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 즉,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사물을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
통찰력(洞察力):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
안목(眼目): 사물을 보는 눈

고견(高見): 지식이나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내리는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명철한 의견 - makeit25.com

 

問曰:如、法性、實際,無爲法中已攝,何以復更說?

묻나니, 여(如)ㆍ법성(法性)ㆍ실제(實際)는 무위법에 이미 포섭되거늘 무엇 때문에 다시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荅曰:觀時分別,說五衆實相:法性、如、實際;又非空智慧觀故 令空性自爾。

답하나니, 관찰할 때에 분별하면서 오중(오온)의 실상(實相)인 법성(法性)과 여(如)와 실제(實際)를 말하는 것이며,

또한 공의 지혜로 관(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성(空性)으로 하여금 스스로 그러하게 하는 것이다.

 

問曰:如色,是自法;識,爲他法。

此中何以說“如、法性、實際,有佛、無佛常住,過是名爲他法空”?

묻나니, 마치 물질(色)과 같은 것이 스스로의 법인 자법(自法)이요, 분별(識)은 다른 법의 타법(他法)이 되거늘,

여기에서는 무엇 때문에 “여ㆍ법성ㆍ실제는 부처님이 계시거나 계시지 않거나 간에 항상 있는 것이며, 이것을 넘어가는 다른 법의 타법공(他法空)이다.”라 하시는 것입니까?

 

荅曰:有人未善斷見結故,處處生著。是人聞是如、法性、實際,謂“過是已,更有餘法”;

以是故說“過如、法性、實際亦空”。

답하나니, 어떤 사람은 아직 견결(見結)을 잘 끊지 못한 까닭에 곳곳에서 집착하게 되나니,

이 사람은 이 여ㆍ법성ㆍ실제를 듣고 “이것을 지나서도 다시 그 밖의 다른 법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여와 법성과 실제를 지나서도 역시 공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견결(見結)= 애결(愛結) · 에결(恚結) · 만결(慢結) · 무명결(無明結) · 견결(見結) · 취결(取結) · 의결(疑結) · 질결(嫉結) · 간결(慳結)의 9결(九結) 가운데 하나이다.
아비달마품류족론 제1권에 따르면, 견결(見結)은 유신견(有身見) · 변집견(邊執見) · 사견(邪見)의 3견(三見)을 말한다.

대승아비달마집론 제4권과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6권에 따르면, 견결(見結)은 살가야견(薩迦耶見) · 변집견(邊執見) · 사견(邪見)의 3견(三見)을 말한다.

마음이 견결 즉 살가야견 · 변집견 · 사견의 3견의 어느 하나 혹은 다수에 의해 묶이게 되면, 마음은 삿된 출리 즉 그릇된 출리를 바른 출리(出離: 해탈에 도달한 상태, 고통 · 번뇌 · 윤회로부터 벗어난 상태)라고 망녕되이 계탁하여 추구하고 그 사출리에 대해 망녕되이 심하게 집착하는 상태 즉 망집착(妄執著)의 상태가 된다. 사출리에 대해 망집착하기 때문에 불선을 널리 행하고 갖가지 선을 행하지 않게 된다. 불선은 행하고 선은 행하지 않기 때문에 미래세의 고(苦)를 불러들이고 그 고(苦)와 상응하게 된다. 한편, 출리는 출요(出要)라고도 하며, 이 두 낱말은 벗어난 상태를 뜻하기도 하지만 벗어나는 방법을 뜻하기도 한다.- 위키

 

大智度論卷第四十六終 대지도론 46권을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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