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 釋乘乘品 第十六卷 第四十六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18. 마하연품(摩訶衍品) 풀이함 4

 

問曰:何以故正說六波羅蜜,不多不少?

묻나니, 무엇 때문에 육바라밀을 바르게 설한다면,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은 것입니까?

 

荅曰:佛爲法王,隨衆生可度,或時略說一、二、三、四;或時廣說,如『賢劫經』八萬四千波羅蜜。

답하나니, 부처님을 법왕(法王)이라고 하나니, 중생을 따라 제도하시되 때로는 한 가지ㆍ두 가지ㆍ세 가지ㆍ네 가지 만으로 간략하게 말씀하기도 하셨고, 때로는 자세히 설명하기도 하셨으니, 마치 '현겁경(賢劫經)'의 8만 4천의 바라밀과 같으며, 

 

復次,六道衆生皆受身心苦惱,如地獄衆生拷掠苦,畜生中相殘害苦,餓鬼中飢餓苦,人中求欲

天上離所愛欲時苦,阿修羅道鬪諍苦;菩薩生大悲心,欲滅六道衆生苦故,生六波羅蜜。

以是故說六波羅蜜,不多不少。

또한 육도(六道) 중생들은 모두가 몸과 마음의 고뇌를 받고 있으니,

지옥의 중생은 고문을 받는 고통이 있고, 중생 안에서는 서로 죽이고 해치는 고통이 있고, 아귀 가운데에서는 굶주리는 고통이 있고, 인간 안에서는 욕망을 구하는 고통이 있으며, 천상에서는 애욕을 여읠 때의 고통이 있고, 아수라(阿修羅)의 갈래에서는 싸움을 하는 고통이 있는 것과 같은 것들이다.

보살은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내어서 육도 중생들이 받는 고통을 없애 주고자 육바라밀을 내는 것이기 때문에 육바라밀을 설하면 더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은 것이 되는 것이다.

 

問曰:檀波羅蜜有種種相,此中佛何以但說五相,

所謂“用薩婆若相應心,捨內外物 是福共一切衆生,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用無所得故”?

何以不說“大慈悲心,供養諸佛,及神通、布施”等?

묻나니, 단(檀, 보시)바라밀에는 갖가지의 상(相)이 있거늘, 부처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이 가운데에서 다섯 가지 상(相)을 말씀하신 것입니까?

이른바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써, 안과 밖의 물건들을 버리며, 이 복을 일체 중생들과 함께 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며, 얻을 바 없음의 무소득(無所得)을 쓰기 때문이다.”고 하신 것이 그것입니다.

어찌하여 대자비심(大慈悲心)이나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과 신통이나 보시 등은 말씀하지 않으신 것입니까?

 

荅曰:是五種相中,攝一切布施。“相應薩婆若心布施”者,此緣佛道,依佛道。

“捨內外”者,則捨一切諸煩惱。“共衆生”者,則是大悲心。

“迴向”者,以此布施,但求佛道,不求餘報。

“用無所得故”者,得諸法實相般若波羅蜜氣分故,檀波羅蜜非誑非倒,亦無窮盡。

氣分기분 1. 쾌, 불쾌 등의 감정을 느끼는 상태 2.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분위기

3. 인체의 기운에서 ‘원기’를 혈기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

답하나니, 이 다섯 가지 상(相) 가운데에서 일체의 보시를 다 포섭하나니,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으로 보시한다 는 것이란, 부처님의 불도를 반연하면서 불도에 의지하는 것이고,

안팎의 물건을 버린다 함이란, 일체의 모든 번뇌를 버리는 것이며,

중생과 함께 한다 함이란, 바로 대비심(大悲心)이며, 

회향한다 함이란, 이 보시로써 단지 부처님의 불도만을 구하고 그 밖의 과보를 구하지 않는 것이며,

무소득(無所得)을 쓰기 때문이라 함이란, 제법의 실상(實相)인 반야바라밀의 기분(氣分)을 얻기 때문이니, 

단(보시)바라밀은 속이는 것도 아닌 비광(非誑)이요, 뒤바뀌게 전도된 것도 아닌 비도(非倒)이며, 또한 다함없이 무궁(無窮)한 것도 아닌것이다.

 

問曰:若爾者,則不須五種相,但說“薩婆若相應心”則足!

묻나니, 만약 그러하다면 다섯 가지의 상(相)도 필요 없고 단지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이라고만 하여도 충분할 것입니다.

 

荅曰:此事可爾!但以衆生不知云何應薩婆若心布施義故,是故以四事分別其義。

답하나니, 그럴 수 있으나, 단지 중생들이 '어떻게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의 응살바야심(應薩婆若心)으로 보시하는가?'에 대한 이치를 모르기 때문에 다른 네 가지로써 그 이치를 분별하여 주는 것일 뿐이다.

 

“應薩婆若心”者,以菩薩心求佛薩婆若,作緣、作念、繫心。持是布施,欲得薩婆若果,

不求今世因緣、名聞、恩分等。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의 응살바야심(應薩婆若心)이란, 보살의 마음으로써 부처님의 살바야를 구하면서 반연을 짓고, 염(念)을 지으며, 마음을 매어서 보시를 지니면서 살바야의 과보를 얻고자 하는 것이나,

이 세상의 인연(因緣)과 명문(名聞)과 은분(恩分) 등을 구하는 것이 아니며, 

 

亦不求後世轉輪聖王、天王富貴處;爲度衆生故,不求涅槃,但欲具一切智等諸佛法,

爲盡一切衆生苦故,是名“應薩婆若心”。

또한 후세에서 전륜성왕이나 천상의 왕이나 부귀를 누리는 것을 구하지도 않으며,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열반도 구하지 않으며,

단지 일체지(一切智) 등의 모든 불법을 갖추고자, 일체 중생의 고통을 다하게 하기 위할 뿐이니,

이것을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의 응살바야심(應薩婆若心)이라 하는 것이며, 

 

“內外物”者,內名頭、腦、骨、髓、血、肉等,難捨故在初說;

外物者,國土、妻子、七寶、飮食等。

안팎의 물건인 내외물(內外物)이라 함이란, 안(內)으로는 머리ㆍ뇌ㆍ골수ㆍ피 및 살 등을 말하는 것이어서 버리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초설(初說)하는 것이며,

바깥 물건의 외물(外物)이라 함이란, 국토(國土)와 처자(妻子)와 칠보(寶)와 음식 등이며, 

 

“共一切衆生”者,是布施福德果報,與一切衆生共用;譬如大家種穀,與人共食。

菩薩福德果報,一切衆生皆來依附;譬如好菓樹,衆鳥歸集。

“迴向”者,是福德邊,不求餘報,但求阿耨多羅三藐三菩提。

일체 중생들과 함께 한다는 공일체중생(共一切衆生)이라 함이란, 일체 중생들과 함께 이용하는 것이니,

비유하자면, 마치 큰 집에서 곡식을 심어서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먹는 것과 같은 것으로,

보살의 복덕의 과보는 일체 중생들이 모두 와서 의지하고 따르는 것이니, 마치 좋은 과일나무에 뭇 새들이 날아 와 모이는 것과 같은 것이며, 

회향(迴向)한다는 것이란, 이 복덕의 끝에서 다른 과보를 구하지 않고 단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만을 구한다는 것이다.

 

問曰:先言“應薩婆若心”,後言“迴向”,有何等異?

묻나니, 앞에서는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의 응살바야심(應薩婆若心)”이라 말씀하셨으나, 나중에는 “회향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떠한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曰:“應薩婆若心”,爲起諸福德因緣;“迴向”者,不求餘報,但求佛道。

답하나니,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의 응살바야심(應薩婆若心)”은 모든 복덕의 인연을 일으키기 위한 것이요

“회향한다.”고 함이란, 그 밖의 다른 과보는 구하지 않고 단지 부처님 불도만을 구할 뿐인 것이며, 

 

復次,“薩婆若相應心”,爲應阿耨多羅三藐三菩提故施;如先義說:

“薩婆若爲主,一切功德皆爲薩婆若。”

또한 살바야에 상응한 마음의 응살바야심(應薩婆若心)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상응하기 때문이요,

시(施, 보시)는 앞의 뜻에서 설명한 것과 같나니, 살바야(일체지)를 주(主)로 삼아서 모든 공덕이 살바야를 위하게 되는 것이다.

 

讚佛智慧有二種:一者、無上正智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二者、一切種智名“薩婆若”。

부처님의 지혜를 찬탄하는 찬불지혜(讚佛智慧)에는 두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위없는 바른 지혜의 무상정지(無上正智)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하며

둘째는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살바야라 하는 것이다.

 

“用無所得”者,以般若波羅蜜心布施,順諸法實相而不虛誑。如是等說檀波羅蜜義。

얻을 바 없음의 무소득(無所得)을 쓴다는 것이란, 반야바라밀의 마음으로써 보시하고 제법의 실상(實相)을 따르면서 거짓되지 않는 것이니, 이와 같은 등으로 단바라밀의 이치를 설명하는 것이다.

 

問曰:尸羅波羅蜜則摠一切戒法,譬如大海摠攝衆流;所謂不飮酒、不過中食、

不杖加衆生等,是事十善中不攝,何以但說十善?

묻나니, 시라(尸羅, 지계)바라밀은 일체의 계법(戒法)을 한데 모은 것으로, 마치 큰 바다가 뭇 흐름을 모두 받아들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른바 술을 마시지 않는 불음주(不飮酒)와 정오가 지나면 먹지 않는 불과중식(不過中食)과 몽둥이로 중생을 때리지 않는 불장가중생(不杖加衆生) 등의 이러함들은 10선(十善) 가운데에 속하지 않는 것인데,

어찌하여 단지 10선(十善)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荅曰:佛摠相說六波羅蜜,十善爲摠相戒,別相有無量戒。

답하나니, 부처님께서는 전체의 총상(總相)으로 육바라밀을 말씀하시듯이,

십선(十善)은 전체가 한데 모인 계율의 총상계(總相戒)요, 각각의 별상(別相)에는 무량한 계율이 있는 것이다.

 

不飮酒、不過中食,入不貪中;杖不加衆生等,入不瞋中;餘道隨義相從。

戒名身業、口業,七善道所攝。

술을 마시지 않는 불음주(不飮酒)와 정오가 지나 먹지 않는 불과중식(不過中食)은 탐하지 않는 불탐(不貪)에 들어가고,

몽둥이로 중생을 때리지 않는 불장가중생(不杖加衆生) 등은 성내지 않는 불진(不瞋)에 들어가나니,

그 밖의 것은 이치에 따라 서로 상종(相從)하는 것이며, 

계(戒)는 신업(身業)과 구업(口業)이라 하며, 칠선도(七善道)에 속하는 것이다.

 

 칠선도(七善道)= ①시절선도(時節善道) ②의선도(義善道) ③어선도(語善道) ④독일선도(獨一善道) ⑤원만구족선도(圓滿具足善道) ⑥청정조유선도(淸淨調柔善道) ⑦범행자비선도(梵行慈悲善道)
십계(十戒)= ①불살생(不殺生) ②불투도(不偸盜) ③불사음(不邪淫) ④불망어(不妄語) ⑤불고주(不酤酒-술 팔지 말 것) ⑥불설사중과계(不說四衆過戒-사부대중의 허물을 말하지 말 것) ⑦자찬훼타계(自讚毁他戒-자기를 칭찬하고 타인을 욕하고 비방하지 말 것) ⑧간석가훼계(慳惜加毁戒-인색하여 보시하지 않거나 남의 훼방을 말 것) ⑨진심불수회계(瞋心不受悔戒-진심을 풀지 않고 남의 참회를 받아들이지 않는 짓을 말 것) ⑩방삼보계(謗三寶戒-삼보를 비방하지 말 것)
정공계(定共戒)= 선정에 들어 스스로 악을 여의고자 마음을 한곳에 집중시켜 산란하지 않게 함으로써 저절로 허물이나 악을 방지하게 되는 것.

 

十善道及初後,如發心欲殺,是時作方便 惡口、鞭打、繫縛、斫刺,乃至垂死,皆屬於初;

死後剝皮、食噉、割截、歡喜,皆名後;奪命是本體;

此三事和合,摠名殺不善道。以是故知說十善道則攝一切戒。

십선도(十善道)는 초(初, 처음)부터 후(後, 끝)까지를 말하는 것으로,

죽이려는 마음을 내었을 때에 방편을 써서 거친 말을 하고, 매로 때리며, 몸을 묶고 찌르고, 베고 하다가 죽기에 이르게 되는, 그 모두는 초(初, 처음)에 속하는 것이요

죽은 뒤에 가죽을 벗기고 살을 먹고 끊고 베면서 좋아하는 것은 모두가 후(後, 끝)의 일이라.

목숨을 빼앗는 그것이 바로 본체(本體)이므로, 이 세 가지가 화합된 것을 통틀어서 목숨을 죽이는 착하지 않는 살불선도(殺不善道)라 하는 때문에 십선도(十善道)를 말하게 되면 곧 일체의 계율이 다 포섭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며, 

 

復次,是菩薩生慈悲心,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布施利益衆生,隨其所須,皆給與之;

持戒不惱衆生,不加諸苦,常施無畏。十善業道爲根本,餘者是不惱衆生遠因緣。

戒律爲今世取涅槃故。

또한 이 보살은 자비심(慈悲心)을 내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일으켜, 보시하여 중생을 이롭게 하고, 그들의 구하는 바에 따라 모두를 다 베풀어 주며,

계율을 지니어서 중생들을 괴롭히지 않으며, 일체의 고통을 가하지 않으며, 항상 두려움을 주지 않는 무외시(無畏施)를 베푸는 것은 십선업도(十善業道)의 근본이며,

그 밖의 것은 바로 중생을 괴롭히지 않게 하는 먼 인연의 원인연(遠因緣)이니, 계율은 이 세상에서 열반을 취하기 위한 것이다.

 

婬欲雖不惱衆生,心繫縛故爲大罪;以是故,戒律中婬欲爲初。

白衣,不殺戒在前,爲求福德故。

菩薩不求今世涅槃,於無量世中往返生死,修諸功德。十善道爲舊戒,餘律儀爲客。

음욕(淫慾)은 비록 중생을 괴롭히지 않는다 할지라도 마음을 얽어매기 때문에 큰 죄가 되는 때문에 계율 가운데에서는 음욕을 첫째로 삼는 것이며,

속인이 살생하지 않는 불살계(不殺戒)를 앞에 두게 하는 것은 복덕을 구하기 때문이며, 

보살은 이 세상에서의 열반은 구하지 않고 무량한 세상 동안 나고 죽으면서 모든 공덕을 쌓나니,

십선도는 구계(舊戒)로써 주(主)를 삼고 그 밖의 율의(律儀)는 객(客)으로 삼으며, 

 

復次,若佛出好世,則無此戒律;如釋迦文佛,雖在惡世,十二年中亦無此戒,以是故知是客。

또한 만약 부처님께서 좋은 세상에 출현하시면 이러한 계율이 없으니,

마치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비록 나쁜 세상에 계셨을지라도, 12년 동안은 역시 이러한 계율이 없었던 것과 같으므로 이것이 객(客)인 것을 아는 것이다.

 

復次,有二種戒:有佛時,或有、或無;十善,有佛、無佛常有。

또한 두 가지의 계율이 있으니, 부처님이 계실 때, 혹은 계시기도 하고, 혹은 안 계시기도 하지만 10선(十善)만은 부처님이 계시거나 계시지 않거나 간에 언제나 있는 것이며, 

 

復次,戒律中戒,雖復細微,懺則淸淨;犯十善戒,雖復懺悔,三惡道罪不除。

如比丘殺畜生,雖復得悔,罪報猶不除。如是等種種因緣故,但說十善業道。

亦自行,亦敎他人,名爲尸羅波羅蜜。

또한 계율 가운데에서, 계율이 비록 미세하다 하여서 참회(懺悔)하면 곧 청정하게도 되지만,

십선계(十善戒)를 범하면 비록 참회하여도 3악도(三惡道)의 죄는 제거되지 않으니,

마치 비구가 짐승을 죽인 뒤에 비록 참회할지라도 그 죄보(罪報)는 여전히 제거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은 등의 갖가지의 인연 때문에 단지 열 가지의 착한 선업(善業)의 도(道)만을 설명하며,

또한 스스로가 행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도 행하게 하는 것을 시라(지계)바라밀이라 하는 것이다.

 

十善道:七事是戒,三爲守護故,通名爲尸羅波羅蜜。餘波羅蜜亦如是,隨義分別;

如初品中“六波羅蜜”論議廣說。

십선도(十善道)에서 몸의 3업(業)인 살생하지 않는 것ㆍ훔치지 않는 것ㆍ삿된 음행을 하지 않는 것과 입의 4업인 망령된 말을 하지 않는 것ㆍ술 마시지 않는 것ㆍ이간질 하지 않는 것ㆍ꾸밈말 하지 않는 것의 칠사(七事)는 계율이요,

재물을 탐하지 않는 것ㆍ성내지 않는 것ㆍ3보를 비방하지 않는 세 가지의 삼업(三業)은 수호로 삼는 까닭이니,

이를 통틀어서 시라(지계)바라밀이라 하며,

그 밖의 나머지 바라밀 또한 그와 같으므로 그 이치에 따라 분별할 것이니, 초품(初品) 중 육바라밀(六波羅密)의 논의(論意)에서 널리 설명한 것과 같은 것이다.

 

是經名『般若波羅蜜』,般若波羅蜜名捨離相;以是故,一切法中皆用無所得故。

이 경은 '반야바라밀경(般若波羅密經)'이라.

반야바라밀이란 버리고 여의는 사리상(捨離相)이라 하나니,

이 때문에 일체법 가운데에서 모두 얻을 바가 없음의 무소득(無所得)을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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