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釋初品 十八不共法釋論 第四十一 卷二十六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41. 초품 중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의 뜻을 풀이함 9

 

問曰; 侍者羅彌喜迦 須那利羅多 那伽娑婆羅 阿難等 常侍從世尊 執持應器,

何以不憐愍?

묻나니, 시자(侍者)였던 나타(羅陀, Rādha)와 미희가(彌喜迦, Meghika)와 수나찰다라(須那刹羅多, Sunakaṣatra. 선숙善宿)와 나가사바라(那伽裟婆羅, Nāgasamala)와 아난(阿難) 등은 언제나 세존을 시봉하면서 세존의 발우=응기(應器)를 지니고 있었는데 무엇 때문에 가엾이 여기지 않으신 것입니까?

 

나타(羅陀, Rādha)= 사위성에 살던 가난한 바라문이었는데, 사리불에게 출가를 허락받았다고 한다. 

미희가(彌喜迦, Meghika)= 석가족의 왕자였는데, 출가해 부처님의 시자가 되었다.

나가사바라(那伽裟婆羅, Nāgasamala)= 부처님을 시중들던 사람 가운데 하나. 상호(象護) 혹은 용호(龍護) 등으로 의역하기도 한다.

 

答曰; 侍者雖執持佛鉢 以佛威德力故 又恭敬尊重佛故 不覺爲重, 又阿難身力亦大故。

답하나니, 시자가 비록 부처님의 발우를 지니고 있었기는 하나, 그것은 부처님의 위덕(威德)의 힘이었고 또 부처님을 공경하고 존중하였기 때문에 무겁다고 느끼지 않았으며, 또한 아난은 몸과 힘이 크고 세었기 때문이며, 

 

復次 以細石鉢難得故 麤者受垢膩故 不聽用。佛鉢四天王 四山頭自然生故 餘人無此自然鉢, 若求作甚難 多所妨廢 是故不聽。

또한 미세한 돌의 발우는 얻기가 어렵기 때문이요. 거친 돌로 된 것은 때가 끼고 기름때가 묻기 때문에 쓰지 못하게 하신 것이다.

부처님의 발우는 제석천을 호위하는 4명의 호법신이신 사천왕(四天王)의 네 군데 수미산의 정상에서 저절로 생긴 것이기 때문이요. 다른 사람은 이렇게 자연히 생긴 발우가 없었으며, 설령 구하거나 만든다 하여도 매우 어렵고 만드는 과정에서 망가지는 일이 많기 때문이니, 이러함으로 허락하지 않으신 것이다.

 

又欲令 佛與弟子異故 佛用石鉢。又如國王 人所尊重 食器亦異。

有人見佛鉢異 倍加尊重供養 信心淸淨。

또한 부처님과 제자의 사이에서 차이를 두고자 부처님께서는 돌발우를 쓰신 것이니, 마치 국왕은 사람들에게 존중을 받기 때문에 식기(食器) 역시도 다른 것과 같은 것이며,

어떤 사람은 부처님의 발우가 다른 것을 보고 더욱 존중하고 공양하며 신심이 청정해지기 때문이다.

 

問曰; 若鉢應異 衣何以同?

묻나니, 만약 발우가 달라야 한다면 옷은 무엇 때문에 같았던 것입니까?

 

答曰; 佛衣亦異。佛初成道時 知迦葉衣 應佛所著 迦葉衣價直十萬兩金。次後耆域 上佛深摩根羯簸衣 價亦直十萬兩金, 佛勅阿難持此衣 去割截作僧伽梨 作已 佛受著 是爲異。

답하나니, 부처님의 옷도 역시 달랐으니, 부처님께서 처음 도를 이루셨을 때에 마땅히 가섭(迦葉) 존자의 옷을 부처님께서 입어야 하실 것을 아셨나니, 가섭 존자의 옷의 값어치는 10만 냥(萬兩)이나 되었던 것이다.

그 다음에는 기역(耆域, Jīvaka-kumārabhṛta, 지바카로도, 부처님을 돌보던 의사)이 부처님께 심마근갈파(深摩根羯簸)의 옷을 올렸는데 그 값어치도 역시 10만 냥이나 되었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아난 존자에게 명하시어 이 옷을 가지고 가서 낱낱이 자른 뒤에 승가리(僧伽梨, 가사, 겉옷)를 만들게 하셨으며, 이렇게 만든 뒤에야 부처님께서 입으셨나니, 이러함이 다른 것이다.

 

심마근갈파(深摩根羯簸) 아주 가볍고 가는 털로 짠 옷이라 세의(細衣)라 하기도 함.

 

問曰; 佛因是告諸比丘, “從今日 若有比丘 一心求涅槃 背捨世閒者 若欲著 聽著價直十萬兩金衣 亦聽食百味食" 衣異而後聽 鉢獨不聽?

묻나니, 부처님께서는 이로 인하여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되 “오늘부터 만약 비구로서 일심으로 열반을 구하고 세간을 등지거나 버리는 이가 입고 싶다면, 그 값이 10만 냥이 되는 옷을 입는 것도 허락하겠으며, 또한 온갖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허락하노라”고 하셨습니다.

의복이 달랐으나 그 후에 모두에게 허락하셨으나, 왜 발우만은 유독 허락하지 않았던 것입니까?

 

答曰; 我先已說石鉢因緣 今當更說。佛鉢不從人受。佛初得道 欲食時須器 四天王知佛心念 持四鉢上佛, 三世諸佛法 皆應四天王上鉢。爾時未有衆僧 云何言聽?後若聽 無人與石鉢, 又閻浮提不好石鉢 故無人與。

답하나니, 내가 앞에서 이미 돌발우에 대한 인연을 설명하였으나, 이제 다시 더 설명하겠다. 부처님의 발우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것이 아니다. 부처님께서 처음 도를 얻으신 뒤에 공양을 하시고자 하실 때에 그릇이 필요하시자 사천왕(四天王)이 부처님의 생각을 알고는 (네 개의 수미산 산정으로부터의) 네 개의 발우를 가지고 와서 부처님께 올렸던 것이다.

사천왕은 응당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에게 발우를 올리도록 되어 있었으나, 그 때에는 아직 승가=중승(衆僧)이 구성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허락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후에 설령 허락한다 하여도 사람으로서 그러한 돌발우를 주는 이도 없었으며, 더욱이 염부제(閻浮提)에서는 돌발우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주는 사람도 없었던 것이다.

 

復次 佛說比丘 常應覆功德 若受石鉢 人謂從天龍邊得。

若令人作 其工旣難 又恐人言, “此比丘欲與佛齊功"

또한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항상 공덕을 감추어야 한다”고 하셨으니, 만일 돌발우를 갖고 다닌다면 사람들이 말하기를 “하늘이나 용에게서 얻은 것이다”고 할 것이며, 만일 사람으로 하여금 만들게 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 만드는 것이 대단히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또한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 비구는 부처님의 공덕과 근사하게 보이려고 한다”고 할 것을 염려한 때문이다.

 

所以聽衣者 若有人言, “佛在僧中 受檀越好衣獨著 而不聽比丘" 是故佛聽著。比丘亦自無著者 以施者難有 著者難得故。若不淸淨比丘 人所不與, 淸淨比丘 少欲知足故不著。佛斷人疑 故聽著衣, 鉢中無望 是故不聽。

옷을 허락하신 까닭은 혹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부처님은 승가(僧伽) 안에 계시면서 단월(檀越, 시주 또는 보시를 하는 이)이 주는 좋은 옷을 받아서 혼자만 입으시면서 비구들에게는 허락하지 않으신다”고 할 것이니, 이러한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좋은 옷을 입는 것을 허락 하셨으나, 비구나 부처님 스스로도 입지 않으셨던 것은 보시하는 이가 드물었고 입고자 하는 이 또한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청정하지 않은 비구라면 사람들이 주지도 않을 것이며, 청정한 비구라면 욕망이 적으며, 만족함을 알기 때문에 입고자 하지 않는 것이나, 부처님께서는 사람들의 의혹을 끊기 위하여 그러한 옷을 입을 수 있다고 허락하시었으나, 발우에 있어서는 바라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허락하지 않으신 것이다.

 

問曰; 如經中說“佛金剛身 不恃仰食”, 何以畜鉢?

묻나니, 경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부처님의 금강신(金剛身)은 앙식(仰食, 음식)에 의지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무엇 때문에 발우를 가지신 것입니까?

 

答曰; 佛法有二道, 一者 聲聞道, 二者 佛道。

聲聞法中 佛隨人法有所食噉, 摩訶衍法中 方便爲人故 現有所噉 其實不食。

답하나니, 부처님의 법에는 두 가지의 도(道)가 있으니, 첫째는 성문의 가르침인 성문도(聲聞道)이고, 둘째는 불도(佛道)이다.

성문도(聲聞道)에서는 부처님께서 중생들의 법을 따르기에 음식을 드시는 것이고, 마하연(摩訶衍, 대승)의 법에서는 방편으로 중생들을 위하여 드시는 바를 나타내시지만 실은 드시지 않는 것이다.

 

問曰; 云何是方便?

묻나니, 어떠한 어떤 것을 방편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까?

 

答曰; 佛欲度人 示行人法。若不爾者 人以佛非人 我等云何能行其法?

답하나니, 부처님께서는 사람들을 제도하시기 위하여, 사람들의 법도인 인법(人法)을 행하여 보이시는 것이라. 만약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부처님은 사람이 아닌데 우리들이 어떻게 그의 법을 따라 행할 수 있겠는가”라고 할 것이며,

 

復次 有人因布施得度 爲是人故 佛受其食 便作是念, “我食得助益佛身" 心大歡喜。以歡喜故 信受佛語。如大國主 臣下請食 王雖不須 爲攝彼人故 多少爲食 令其歡喜。如是等因緣 佛現受食。

또한 어떤 사람은 보시로 인하여 제도될 수 있으므로 그러한 사람을 위하여 짐짓 부처님께서는 그들의 음식을 받으시는 것이니, 그 사람이 바로 생각하기를 “나의 음식으로 부처님의 몸을 돕고 이롭게 하였구나”라고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게 될 것이며, 기뻐하기 때문에 부처님의 말을 믿고 받아 들이게 되는 것이다.

마치 대국의 왕이 신하에게 음식을 대접할 때에, 비록 왕은 음식을 먹을 필요가 없을지라도, 그 사람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부러 다소의 음식을 함께 들어서 그 신하로 하여금 기뻐하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은 등의 인연으로 부처님께서는 음식 드시는 것을 나타내 보이시는 것이다.

 

問曰; 若佛不食 所受者在何處?

묻나니, 만약 부처님께서 드시지 않으신면 그 받으신 음식은 어떻게 하신 것입니까?

 

答曰; 佛事不可思議 不應致問!復次 有人得佛食而度者 有聞聲 見色 觸身 聞香而得度。須食得度者 佛以食與之。如『密迹金剛經』說, “佛以食著口中 有天求佛道者 持至十方施之。

답하나니, 부처님께서 하신 일이라 불가사의 한 것이니 질문할 거리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어떤 사람은 부처님께서 음식을 드시게 함으로써 제도될 이가 있고, 그 말씀하시는 것을 듣거나 빛깔을 보거나 몸을 대하거나 향기를 맡음으로써 제도될 이도 있지만, 음식을 드시게 함으로써 제도될 이라면, 부처님께서는 음식을 드시는 것으로, 마치 『밀적금강경(密迹金剛經)』에서, “부처님께서 밥을 입안에 넣으시면 부처님 도를 구하는 하늘(천신)이 있다가, 그 음식을 가지고 시방으로 가서 그들에게 베풀어 준다”고 한 것과 같다.

 

問曰; 若爾者 今僧中說 佛食無有衆生能食者 此義云何?

묻나니, 만일 그렇다면 염승(念僧) 가운데서 “부처님께서 드신 음식은 어떤 중생이라도 먹을 수 있는 이가 없다”고 하셨는데, 그 이치는 어떻게 된 것입니까?

 

答曰; 佛不與者 無有能食, 今佛施之 是故得食。何以知之?佛食馬麥時 以食與阿難, 又沙門二十億耳以好羹上佛 佛以殘羹與頻婆娑羅王。以是故 知佛受已 與則得食 不與則不能消。

답하나니, 부처님께서 주시지 않은 것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이요, 여기에서는 부처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찌하여 알 수 있는가? 부처님께서 말이 먹는 보리= 마맥(馬麥)을 잡수실 때에 그것을 아난에게 주셨고, 또 사문 이십억이(二十億耳)가 맛있는 국을 부처님께 올리자 부처님께서 그 남은 국을 빈바사라왕(頻婆娑羅王)에게 주셨다. 이 때문에 부처님께서 받으신 뒤에 주시는 것이면 먹을 수 있는 것이고, 주시지 않는 것이면 소화시킬 수 없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復次 爲佛設食 佛未食者 人不能消, 已食殘者 佛與能消。以是故 雖實不食 爲度人故 現受食 畜鉢。

또한 부처님을 위하여 마련된 음식으로 부처님께서 아직 잡수시지 않은 것이라면 사람으로서는 소화시킬 수 없는 것이며, 이미 드시고 남은 것을 부처님께서 주신 것이라면 소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비록 실제로는 잡수시지 않으시나, 사람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음식을 받기도 하고 드시는 것을 보이시기 위하여 발우를 가지신 것이다.

 

“佛不答十四難”者 佛有四種答, 一者 定答, 二者 分別義答, 三者 反問答, 四者 置答。此十四難 法應置答。

부처님께서는 14가지의 난문(難問)에 대하여 대답하지 않으신 것은, 부처님께서 대답하여 주심에 네 가지의 형태가 있으니,

첫째는 정(正)해진 답이고,

둘째는 그 정의를 분별하여 주시는 분별의답(分別義答)이며,

셋째는 되물어서 답을 일깨워 주시는 반문답(反問答)이며,

넷째는 대답하시지 않는 치답(置答)이라.

이 14가지의 난문(難問)은 그대로 두고 대답하지 않아야 할 치답(置答)인 것이다.

 

又復若有所利益事則答, 外道所問 不爲涅槃 增長疑惑 故以置答。

知必有所益者 分別爲答, 必無所益 置而不答。以是因緣故知 佛是一切智人。

또한 만일 이익되는 것이라면 곧 대답을 하시지만, 외도들이 묻는 것은 열반을 위해서도 아니고 의혹만 더욱 자라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치답(置答)을 하신 것이다.

반드시 이익됨을 아시면 분별하여 대답하시되, 그 이익이 없는 것이면 내버려 두고 대답하지 않으셨으니,

이러한 인연으로서도 부처님께서는 바로 일체지(一切智)를 지니신 분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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