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釋初品 十八不共法釋論 第四十一 卷二十六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41. 초품 중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의 뜻을 풀이함 7

 

問曰; 若爾者 佛或時身口業 亦似不隨智慧行。何以故?入外道衆中說法 都無信受者。又復 一時在大衆中說法 現胸臆示尼揵子。

묻나니만약 그러하다면 부처님의 신업과 구업이 간혹  지혜를 따라 행하지 않으신 것이 있을 수 있으니, 왜냐하면 외도들의 대중 속에 들어가서 설법하셨지만 도무지 믿고 받아 들이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며,

어떤 때에는 대중 가운데서 설법하시다가 가슴 드러내어 나형외도 니건자(尼揵子, Nirgrantha)에게 보이신 일도 있으시며, 

 

又復爲人疑不見二相故 在大衆中現舌相 陰藏相。

又復罵諸弟子, “汝狂愚人" 罵提婆達, “汝是狂人 死人 嗽唾人"

嗽 빨아들일 삭, 唾 침 타

 사람들이  가지의 상(相) 보지 못하고 의심하는 까닭에 대중 속에 계실 때에 설상(舌相) 음장상(陰藏相) 나타내 보이기도 하셨으며,

또한 많은 제자들을 몹시 꾸짖으시면서 “너희들은 미치고 어리석은 사람이다 하셨고

제바달다를 몹시 꾸짖으면서 “너는 바로 미친 사람이요 죽은 사람이며 남의 침을 핥은 자= 삭수인(嗽唾人)이다 하셨으며, 

 

佛結戒 八種鉢不應畜 聽比丘用二種鉢, 若瓦 若鐵 而自用石鉢。

부처님께서 계율을 만드시어 여덟 가지의 발우는 갖지 못하게 하셨으니비구에게는 기와와 쇠로   가지 발우만을 사용하도록 하시고서 당신은 스스로 돌로  발우를 쓰셨으며,

 

有時外道難問 佛嘿然不答。又佛處處說有我 處處說無我, 處處說諸法有 處處說諸法無。

어느 외도가 어려운 질문을 하는 데도 부처님께서는 잠자코 계시면서 대답하지 않으셨고

또한 부처님께서는 처처(處處, 곳곳) '나'가 있다고 말씀하기도 하시기도 하셨고

처처에 '나'가 없다고 말씀하시기도 하셨으며

처처에 제법이 있다 말씀하시기도 하셨고

처처에 제법은 없는 것이라 말씀하기도 하셨으니, 

 

如是等身 口業似不隨智慧行, 身口業不離意業 意業亦應 有不隨智慧行 云何言常隨智慧行?

이와 같은 신업과 구업은 지혜에 따라 행하지 않은 불수지혜행(不隨智慧行) 같은 것으로, 신업과 구업이 의업을 여의지 않았고, 의업 역시도 지혜에 따라 행하지 않으신 것 같거늘, 어떻게 항상 지혜에 따라 행한다고 하시는 것입니까?

 

答曰; 是事不然!於是諸事 皆先有智慧 然後諸業隨智慧行。何以故?佛入外道衆中 雖知今世不信不受 以種後世大因緣故。

답하나니그러한 것이 아니 모든 일의 모두에 먼저 지혜가 있었고,  뒤의 모든 업은 지혜에 따라 행하신 것이다왜냐하면부처님께서 외도의 대중 안에 들어가셨을 때에도 비록  세상에서는 믿 받아 들이지도 않을 것을 아셨으나, 후세의  인연을 심어 주고자 하셨기 때문이며, 

 

又復爲止外道謗言, “佛自高憍以是故 自往入其衆中。又外道言, “佛自言 有大悲普濟一切 而但自爲四衆說法 我等亦是出家求道 而不爲說!

 외도가 비방하며 “부처는 스스로 교만하다 비방하게 될 것을 막기 위한 까닭에 스스로 그들의 대중 속에 들어가신 것이며,

다시 외도들이 비방하기를 “부처는 스스로  자비로 두루 온갖 중생을 제도하고자 한다고 하면서도 다만 자기의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의 사부대중= 사중(四衆)을 위해서만 설법할 뿐이며, 우리들 역시도 출가해서 도를 구하고 있거늘 우리들을 위해서는 설법하지 않는다 할 것 막기 위해서이며, 

 

又如此經 佛往外道衆中說法 不言不信受。佛遙見外道大會 高聲論議 欲至餘處 迴往趣之。論議師輩遙見佛來 自語其衆, 汝等皆嘿!佛是樂寂靜人 見汝等靜嘿 或能來此" 衆卽嘿然。

또한  경(經)에서처럼 부처님께서 외도의 대중 속으로 가서 설법하셨으나, 믿고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니,

부처님께서 멀리서 외도들이 큰 모임을 열고는 큰 소리로 논의(論議)하는 것을 보시고 다른 곳으로 돌아 가시려 하다가 되돌아와서 그곳으로 나아가자, 논의사(論議師)들이 멀리서 부처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스스로의 대중들에게 말하기를 “그대들은 모두 잠자코 있으라부처는 고요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대들이 조용히 한다  이곳으로 올지도 모른다 하였으므로 대중들이 잠자코 있었던 것이다.

 

佛入其衆 說婆羅門三諦 外道衆皆嘿然。佛作是念, "狂人輩皆爲惡魔所覆, 是法微妙 乃至無有一人試作弟子者" 作是念已 從坐而去。是人魔蔽得離 便自念, 我等得聞妙法, 云何不以自利?卽皆往詣佛所 爲佛弟子 得道離苦?

부처님께서 대중에게로 가셔서 탐(貪, sattva)ㆍ우(憂, jajas)ㆍ암 또는 부정(闇, 否定, tamas)의 세 가지 바라문의 진리= 바라문삼제(婆羅門三諦, Guna) 말씀하셨으나, 외도들 모두가 잠자코 있었으므로 

부처님께서는 “미친 사람들과 같은 그대들은 악마에 가리워져 있구나 법은 미묘하거늘 어느  사람도 시험 삼아 제자로 삼아 볼 이 없구나라고 생각하셨으며, 이렇게 생각하신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셨다

그 때에 사람들은 악마의 가림에서 벗어나게 되어서  생각하기를 “우리들은 묘한 법을 얻어 들었거늘 어떻게 스스로의 이익을 도모하지 않겠는가라고 하면서 모두가 부처님께로 와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고 도를 얻어서 괴로움을 여의게 되었던 것이다.

 

復次 外道弟子難其師故 不敢到佛所 是故佛自入其衆中。衆得聞法 信受堅固 不復難師 得爲弟子 或得道迹。如是等 有種種智慧因緣 是故往入外道衆。

또한 외도의 제자들은 그들의 스승을 어려워하였기 때문에 감히 부처님께로 올 수 없었으므로 부처님께서 스스로 그 대중 속으로 들어가셨으니, 그 대중들이 법을 얻어 듣고는 믿게 되었고, 그 믿음이 견고하여져서 다시는 그들의 스승을 어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서 혹은 성인의 도(道)에 머무는 도적(道跡)을 얻게 되었으니,

이러한 등의 갖가지 지혜로운 인연이 있었나니, 이러한 때문에 외도의 대중 안으로 들어가신 것이다. 

 

復次 薩遮祇尼揵子 銅絡腹 自誓言, “無有人得我難而不流汗破壞者!大象乃至樹木瓦石 聞我難聲 亦皆流汗" 作是誓已 來至佛所 與佛論議。佛質問之 皆不能得答 汗流淹地 擧體如漬。鍱 쇳조각 섭, 쇳조각 엽

또 나형외도인 살차기니건자(薩遮祇尼揵子, Mahāsatya-nirgrantha)는 구리조각= 동섭(銅鍱)을 배에 감고 스스로 맹세하면서 “어떤 사람도 나의 어려운 질문을 듣게 되면 진땀을 흘리며 무너지지 않을 이는 없으리라. 큰 코끼리나 나무나 기와나 돌조차도 내가 질문하는 소리를 듣게 되면 역시 모두가 땀을 흘릴 것이다”고 하였으며, 이러한 맹세를 한 뒤에 부처님께로 찾아 와서 부처님과 논의를 하고자 하였으나, 부처님께서 그에게 질문을 하자 전혀 대답을 하지 못한 채 땀을 뻘뻘 흘리어 땅이 흥건하고 온몸이 흠뻑 젖은 듯하였다.

 

佛告尼揵, “汝先誓言 無有聞我難者 而不流汗 汝今汗流淹地, 汝試觀佛 見有汗相不?” 佛時脫鬱多羅僧示之言, “汗在何處?”

부처님께서는 니건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앞에 맹세하기를 ‘나의 어려운 질문을 들은 이로서 땀을 흘리지 않을 이가 없으리라’고 하였는데, 네가 지금 땀을 흘려 땅을 흥건하게 적시고 있으니, 너는 시험 삼아서라도 부처를 살펴 보라. 부처에게 땀을 흘리는 모습이 있는가?”

그리고는 부처님께서는 울다라승(鬱多羅僧 uttarāsanga, 상의)을 벗어 그에게 보여주시며 “땀을 흘린 흔적이 어디에 있는가?”라고 하신 것이다. 

復次 有人言, “或有頭汗身不汗者 佛頭雖不汗 身必有汗" 以是故 佛脫鬱多羅僧示其身, 因是外道大得信向 皆入佛法中。是智慧因緣身業隨行。

또한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머리에 땀이 나고 몸에는 땀이 나지 않는 이도 있으니, 부처님은 비록 머리에서는 땀이 나지 않는다 하여도 몸에는 반드시 땀이 났을 것이다”고 하였으니,

이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울다라승을 벗어 그 몸을 보여주셨던 것이니, 이로 인하여 외도들이 큰 믿음을 얻게 되어 모두가 불법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으니, 이렇게 지혜의 인연으로 인하여 신업을 행하신 것이다.

 

“佛現舌相 陰藏相”者 有人疑佛身二相 而是人應得道 疑故不得 以是故現二相。出舌覆面 舌雖大 還入口中而亦無妨 見者疑斷。

부처님께서 설상(舌相)과 음장상(陰藏相)을 나타내 보이셨다 함이란,

어떤 사람이 부처님 몸의 이상(二相)을 의심하였는데, 그 사람은 도를 얻어야 할 사람인데도 그 의심 때문에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 그 때문에 두 몸매를 나타내 보이신 것이니, 

혀를 내어서 얼굴을 덮으며, 혀가 그렇게 크나 도로 입안으로 들어가서 아무런 지장이 없는 것을 본 이들이 의심을 끊게 되는 것이며,

 

有人見出舌相 若生輕慢心 出舌如小兒相。見還入口 說法無妨 便起恭敬 嘆未曾有!

또한 어떤 사람은 혀가 나온 것을 보면 경망한 마음을 내나니, 혀를 내민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 같으나 다시 도로 입으로 들어가 설법하는 데에 지장이 없음을 보면 곧 공경하는 마음을 내게 되어서 전에 없던 미증유(未曾有)의 일이라고 찬탄하기도 하며, 

 

有人疑佛陰藏不現 爾時世尊 化作寶象寶馬 指示之言, “陰藏相不現 正如是"

또 어떤 사람이 부처님의 음장(陰藏)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의심하였으므로, 그 때에 세존께서는 보배 코끼리와 보배 말을 화작(化作)으로 만들어 내어 그것들을 가리키며 말씀하시기를 “음장의 몸매가 나타나지 않음이 실로 이와 같으니라”고 하신 것이며, 

 

有人言, “佛出陰藏相 但示一人 斷其疑故"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부처님께서는 음장의 몸매를 다만 한 사람에게만 보여도 그 의심을 끊게 되기 때문이다”고 하며, 

 

論議師輩言, “佛大慈悲心 若有人見佛陰藏相 能集善根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及能大歡喜信敬心生者 皆令得見 斷其疑心, 除是 皆不得見!”

논의사(論議師)들은 말하기를 “부처님께서는 크게 자비하신지라 만약 누구 한 사람이라도 부처님의 음장의 몸매를 보게 되면 선근(善根)을 잘 쌓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키고, 크게 환희하며 믿고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킬 수 있다면 모두 볼 수 있게 하여 그들의 의심을 끊게 하셨으니, 그러한 이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볼 수가 없었다”고 하며, 

 

佛以大悲爲度衆生故 從三種覆出 暫現如電光, 是衆生見已 信佛有大悲心 實於戒法不取不著。如是等因緣故 現二相 非戲非無羞。

부처님께서는 대비(大悲)로써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세 가지로 가리워진 삼종복출(三種覆出)한 것을 잠시 동안 드러내시기를 마치 번갯불과 같이 하셨나니, 이 중생들이 보고 나서는 부처님께는 실로 대비심이 있음을 믿게 되어 부처님께서 계법(戒法)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으니, 

이와 같은 등의 인연 때문에 이상(二相)을 나타내셨나니, 그것은 장난도 아니요 부끄러움이 없어서도 아니다.

 

계(戒)를 계법(戒法)ㆍ계체(戒體)ㆍ계행(戒行)ㆍ계상(戒相)의 네 가지로 설명하는데,

계법(戒法)은 부처님이 제정한 법이고,

계체(戒體)는 계(戒)를 일러주는 작법에 의하여 마음에 받아들인 법체로서 방비(防非)ㆍ지악(止惡)하는 작용이 있는 것을 말하고,

계행(戒行)은 이 계체를 낱낱이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이며,

계상(戒相)은 그 행(行)에 따른 여러 가지 차별상(差別相)을 말한다.

부처님께서 계(戒)를 제정하신 이유는 미리 잘못을 막고(방비, 防非)ㆍ악업을 그치게(지악, 止惡)하기 위함이다. 이와 같은 계(戒)를 잘 지키는 수행자는 삿된 것에 마음에 흐트러짐이 없음으로 해서 올바른 주의로 정(定)에 들고, 올바른 정(定)에 의해 궁극의 혜(慧)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열반을 구하는 수행자는 계(戒)로써 모든 행(行)을 하고, 그 행(行)으로 중생과 차별되는 수행의 과(果)를 얻는다.
수행자는 계행(戒行)의 대지에 인(因)을 심고, 선정(禪定)의 연(緣)으로 수행하여, 지혜(智慧)의 과(果)를 증득하는 것이다.- 불교신문

 

佛苦切語諸比丘 汝“狂愚人”者 苦切語有二種, 一者 垢心瞋罵, 二者 憐愍衆生 欲化故。離欲人 無有垢心瞋罵 何況佛!佛憐愍化故 有苦切語, 

부처님께서 듣기 싫은 쓴 말씀= 고체어(苦切語)로 여러 비구들에게 “너희들은 미치고 어리석은 사람이다”고 하신 것에서, 듣기 싫은 쓴 말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때 낀 마음의 구심(垢心)으로 화를 내면서 욕하는 것이고, 둘째는 중생을 가엾이 여기면서 교화하기 위하여 하시는 말씀이다.

탐욕을 여읜 이욕인(離欲人)조차도 구심(垢心)으로 화를 내면서 욕을 함이 없는데 하물며 부처님이겠는가! 부처님께서는 가엾이 여기면서 교화하시고자 하시는 까닭에 듣기 싫은 쓴 말을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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