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釋初品中 十八不共法釋論 第四十一 卷二十六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41. 초품 중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의 뜻을 풀이함 8
有衆生軟語善教 不入道撿 要須苦切麤教 乃得入法。如良馬見鞭影便去 鈍驢得痛手乃行。亦如有瘡 得軟藥唾吮便差, 有瘡 刀破出其惡肉 塗以惡藥乃愈者。
撿 단속할 검, 검사할 검, 驢 당나귀 려,
어떤 중생은 부드럽고 고운 말로써 잘 가르쳐도 도(道)에 들지 못하고 단속하면서 듣기 싫고 거친 가르침을 써야 비로소 법에 들 수 있는 이가 있나니,
마치 훌륭한 말은 채찍의 그림자만 보아도 가게 되지만, 둔한 나귀는 매를 맞아야 비로소 가게 되는 것과 같으며,
또한 어떤 종기는 순한 약과 침과 주문으로도 곧 낫지만, 어떤 종기는 칼로 그 나쁜 살을 도려내고 독한 약을 발라야 비로소 낫게 되는 것과도 같으며,
復次 苦切語有五種, 一者 但綺語, 二者 惡口亦綺語, 三者 惡口亦綺語 妄語, 四者 惡口亦綺語 妄語 兩舌, 五者 無煩惱心苦切語, 爲教弟子 分別善不善法故 拔衆生 於苦難地故。具四種惡語者 其罪重, 三 二 一 轉轉輕微。
또 듣기 싫은 쓴 말에는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꾸며낸 말의 기어(綺語)이고,
둘째는 거친 욕설의 악구(惡口)와 기어(綺語)를 같이 하는 것이며,
셋째는 악구(惡口)와 기어(綺語)와 거짓말의 망어(妄語)를 같이 하는 것이고,
넷째는 악구(惡口)와 기어(綺語)와 망어(妄語)와 이간하는 말의 양설(兩舌)을 같이 하는 것이고,
다섯째는 번뇌 없는 마음으로 하는 듣기 싫고 따끔한 말의 고체어(苦切語)이니, 제자들에게 착함과 착하지 않음을 분별하도록 가르치기 위함이고 또 중생을 고난(苦難)의 땅에서 구제하기 위해서이다.
위의 네 가지 삿된 말을 한꺼번에 다 하게 되면 그 죄가 중하며, 세 가지 또는 두 가지 또는 한 가지의 순으로 그 죄가 차츰 경미해지게 되는 것이다.
佛弟子白衣得初道 若二道 使令奴婢故 有惡口 非不善道。
부처님의 제자로서 속인= 백의(白衣)이 성문사과의 하나인 예류과의 초도(初道)와 둘째의 성문사과의 하나인 일래과(一來果)의 제이도(第二道)를 얻은 이가 노비(奴婢)를 잘 가르치고자 하는 까닭에 악구(惡口)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불선도(不善道)에 드는 것이 아니다
攝律儀有二種, 若綺語 若惡口 綺語。阿那含 阿羅漢 無煩惱起惡口 但以淨心 須惡言教化故 惡口綺語。阿那含 阿羅漢 尚無煩惱所起 惡口, 何況佛!
율의를 지키는 섭률의(攝律儀)에 두 가지가 있나니, 기어(綺語)와 악구기어(惡口綺語)이다.
아나함(阿那含)과 아라한은 번뇌없이 악구(惡口)를 내뱉기도 하는데, 이는 다만 청정한 마음으로써 거친 말을 써야 교화할 수 있기 때문에 악구(惡口)와 기어(綺語)를 하는 것이니, 이렇게 아나함이나 아라한조차도 번뇌가 없는 악구(惡口)를 하기도 하는데 하물며 부처님이겠는가!
復次 佛若有苦切語 不應疑 不應難 謂佛惡心起苦切語。所以者何?佛惡心久已滅 但以深心念衆生 如慈父教子 雖有苦言 爲成就子故 非是惡心。
또 부처님께서 설령 따끔하고 쓴 고체어(苦切語)를 하셨다 하여도, 부처님께서 악심으로 고체어(苦切語)를 하신 것으로 의심을 하거나 힐난해서도 안 되는 것이니, 왜냐하면 부처님에게서 악심(惡心)은 이미 오래전에 소멸되었기 때문이며,
오직 깊은 마음으로 중생을 생각하실 뿐이니, 이는 마치 인자한 아버지가 아들을 가르치는 것과 같아서 비록 듣기 싫은 말을 한다 하여도 아들을 성취시키기 위한 것일 뿐 나쁜 마음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佛爲菩薩時 三毒未盡 作仙人名羼提 被惡王截其 耳鼻手足 而不生惡心 不出惡言。爾時未得道 尚無惡心, 何況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三毒已盡 於一切衆生大慈悲具足 云何疑佛有惡心苦切語!
부처님께서 아직 삼독(三毒)을 다하지 못한 보살로써 찬제(羼提, 인욕)라는 이름의 선인(仙人)으로 계실 때에, 악왕(惡王, 폭군)에게 자신의 귀와 코와 손발을 잘리면서도 악심을 일으키거나 거친 말을 하지 않았으니, 아직 도를 얻지 못한 때 였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악심(惡心)이 없었거니와, 하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시고 삼독이 이미 다하여 온갖 중생에 대한 대 자비를 구족하신 뒤의 부처님께서 악심(惡心)으로 듣기 싫은 고체어(苦切語)를 하셨다고 의심하겠는가!
復次 佛若言“狂愚人” 是軟語 實語。所以者何?三毒發故 名爲狂愚。亦以善事利益而不肯受 不解佛心 不受佛語 是爲狂愚。
또한 부처님께서 만약 미치고 어리석은 광우인(狂愚人)이라 하셨다 하여도 그것은 부드러운 말씀이요 진실한 말씀이다.
왜냐하면, 삼독(三毒)이 일어났기에 미치고 어리석게 되기 때문이며, 또한 착한 일로써 이익되게 하심에도 받으려 하지 않고, 부처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부처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그러함은 미치고 어리석은 것이기 때문이며,
復次 佛內常行無我智慧 外常觀諸法空 如是者云何有惡口?
是衆生不解佛心故 求佛語短,
또한 부처님께서는 안으로는 항상 무아(無我) 지혜를 행하시고, 밖으로는 항상 제법의 공함을 관하시니, 이러한 분에게 어찌 나쁜 말씀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 중생은 부처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처님 말씀에 대한 단점을 찾을 뿐이다.
若衆生解佛 以深心憐愍者 假令教入大火 卽時歡樂而入, 如人熱悶時入淸涼池 何況但語而不受?衆生爲惡魔覆故 不知佛以深心念之 是故不受佛語.
以是故 佛言汝是狂愚人。
만약 중생이 부처님께서 깊은 마음으로 가엾고 안스럽게 여기심을 이해할 수 있다면, 가령 큰 불 속에 들어가라고 가르친다 하여도 즉시 즐거워하면서 들어가리니, 마치 사람이 덥고 답답할 때에는 맑고 시원한 못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것이라. 그런데 어떻게 하시는 말씀을 받아 들이지 않겠는가?
중생은 악마에게 가려졌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깊은 마음으로써 그들을 생각하심을 모르고 있으며, 그 때문에 부처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너희들은 바로 미치고 어리석은 광우인(狂愚人)이다”고 하신 것이며,
復次 有人得苦切語 便歡喜言, “親愛我故如是言!” 以是故 佛言“狂愚人”。
또한 어떤 사람은 따끔한 고체어(苦切語)를 들어도 이내 기뻐하면서 말하기를 “친히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러한 말씀을 하시는구나”라고 하나니, 이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광우인(狂愚人)이다”고 하신 것이다.
佛語提婆達, “汝狂人 死人 嗽唾人"
“狂人”者 以提婆達罪重 當入阿鼻地獄 故三種苦切語。
부처님께서 제바달(提婆達)에게 “너는 미친 광인(狂人)이요, 죽은 사인(死人)이며, 침을 삼킨 삭타인(嗽唾人)이다”고 하신 것은, 광인(狂人)이라 하신 것은 제바달다는 죄가 중하여 장차 아비지옥(阿鼻地獄)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니, 이러한 이유로 세 가지의 듣기 싫은 말씀을 하신 것이다.
“死人”者 似人而不能集諸善法故 亦以提婆達剃頭法服 似如聖人 內無慧命 故名死人。
사인(死人)이라 하신 것은 사람인 것 같으나, 모든 착한 선법(善法)을 쌓지 못하기 때문이요, 또한 제바달다는 머리를 깎고 법복(法服)을 입어서 성인과 같으면서도 안으로는 혜명(慧命)이 없었기 때문에 사인(死人)이라고 하신 것이다.
如死人種種莊嚴 轉轉爛壞 終不可令活。提婆達亦如是 佛日日種種教化 惡心轉劇 惡不善法日日轉增 乃至作三逆罪 以是故 名爲死人。
마치 죽은 시체와 같으니, 갖가지로 장엄하여 꾸며도 갈수록 점차 문드러지고 무너져 끝내 살아나지 않게 되는 것과 같이, 제바달도 역시 그와 같아서 부처님께서 날마다 갖가지로 교화하시는데도 악심(惡心)은 갈수록 심해지고, 삿되고 착하지 못한 법은 날마다 더욱 늘어나 역죄(逆罪)를 짓기에 이르렀나니, 이 때문에 사인(死人)이라고 하신 것이다.
제바달다 (提婆達多)= 데바닷타(Devadatta, 提婆達多·提婆·調婆達·調達) 뜻은 하늘이 내려주다(天授)·하늘의 뜨거움(天熱).제천(諸天)은 그가 훗날 3역(逆)의 죄를 범할 것을 예지하고 있었는데, 마음에 뜨거운 번뇌를 일으키는 극악한 자의 모습을 나타냈으므로, 그를 '하늘의 뜨거움(天熱)'이란 뜻을 지닌 이름으로 명명했다고 한다.
다문제일(多聞第一)로 유명했던 아난(阿難)의 형이라는 설이 일반적이다.
7세기에 인도를 방문한 현장(玄奘)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제6권에는 데바닷타가 산 채로 지옥에 빠져 들어갔다는 구멍이 실제로 인도에 남아 있었다는 것, 또 벵골 지방에서 후기까지 데바닷타파의 교단이 존재하고 있었고, 세 가람을 중시하며 우유나 타락죽 같은 것은 입에도 대지 말라는 데바닷타의 유훈을 준수하였으며, 과거 7불 가운데서도 유독 석가모니만을 제외한 현겁삼불(賢劫三佛)을 신봉하고 있었던 것, 등이 기록되어 있다. 현장보다 앞서 서역을 방문했던 승려 법현(法顯)도, 5세기에 네팔 국경 근처에서 데바닷타파의 교단과 만난 사실을 《불국기(佛國記)》에 적고 있다. 이들 기술로부터 데바닷타파는 석가모니를 부처로서 인정하지 않고 다소 대립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는 데바닷타가 역죄를 범하는 모습과 함께 그의 최후에 대해서도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소위 '세 가지 역죄'를 저지르고, 데바닷타는 자신의 손톱에 독을 묻혀 그것으로 석가모니를 죽이려 했지만, 그 순간 땅속에서 화염의 폭풍이 일어 그를 지옥으로 끌어 내렸다. 폭풍에 휘말리는 찰나에 그는 후회하며 "나무불(南無佛)"이라 외쳤지만 그마저도 소용없었고 지옥의 가장 최하층인 아비지옥(阿鼻地獄)에 떨어졌다. 현재도 그는 현겁 중에는 아비지옥에서 고통받고 있지만, 그 뒤 사천왕(四天王)으로 태어나고 몇 번의 환생을 거듭하여 다시 천상에 차차 올라가, 마지막에는 인간계(人間界)에 태어나고 지옥으로 떨어질 때 외쳤던 '나무(南無)'의 외침대로 벽지불(辟支佛, 연각緣覺)이 된다.
또한 《법화경(法華經)》 제파달다품(提婆達多品) 제12에서는 데바닷타가 사실은 석가모니의 전세불에게 《법화경》을 가르친 무비선인(無比仙人)이었으며, 그 선업(善業)으로 비록 지금은 지옥에 떨어져 있지만 오랜 시간을 거친 뒤에는 천왕여래(天王如來)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 위키
“嗽唾人”者 提婆達貪利養故 化作天身小兒 在阿闍貰王抱中
王嗚其口與唾令嗽 以是故 名嗽唾人。
침을 삼킨 삭타인(嗽唾人)이라 함은, 제바달이 명예와 이익을 탐하여 몸을 변화시켜, 하늘 사람의 어린아이가 되어서 아사세왕(阿闍世王)의 품안에 안겼는데, 왕은 그 아이가 울자 입에다 침을 넣어 주면서 빨아들이게 하였기 때문에 삭타인(嗽唾人)이라 하는 것이다.
問曰; 提婆達得禪定 已離欲, 云何復嗽他唾?
묻나니, 제바달다는 선정(禪定)을 얻어서 이미 오욕(五欲)을 여의었는데, 어찌하여 남의 침을 빨아들이게 되었던 것입니까?
答曰; 是人惡心亦深 其根亦利, 離欲故能變化 嗽唾時便失 利根故求時便得 以是故 名嗽唾人。狂義如先說。
답하나니, 이 사람은 악심(惡心) 또한 깊었고, 그 근기도 영리하였으며, 욕망을 여의였기 때문에 변화를 할 수 있었으나, 침을 빨아들였을 때에는 곧 영리한 근기를 상실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영리한 근기 때문에 구하는 것을 곧 얻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삭타인(嗽唾人)이라 하신 것이며, 미치광이의 광우인(狂愚人)의 뜻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復次 以提婆達白佛, “佛已老矣 常樂閑靜 可入林中以禪自娛 僧可付我”
佛言, “舍利弗 目揵連等有大智慧 善軟淸淨人 尚不令僧屬 何況汝狂人 死人 嗽唾人" 如是等因緣故 佛於諸法雖無所著 而爲教化故 現苦切語。
또한 제바달다는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부처님께서는 이미 늙으셨습니다. 언제나 고요한 데를 좋아하시니 숲 속으로 들어가셔서 스스로 선정이나 즐기시고, 승가(僧伽)는 저에게 맡기십시오”라고 하였으나,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사리불이나 목건련 등의 큰 지혜가 있고 착하고 부드럽고 청정한 사람들에게조차도 오히려 승가를 맡기지 않는데 하물며 너 같은 광인(狂人)이요 사인(死人)이며 삭타인(嗽唾人)이겠느냐”고 하셨다.
이와 같은 등의 인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제법에서 비록 집착함이 없으셨으나, 교화하기 위하여 짐짓 따끔한 고체어(苦切語)를 하신 것이다.
“佛不聽比丘用八種鉢”者 金銀等寶鉢 以寶物人貪故 難得故, 貪著故 不聽畜此寶物 乃至不得手擧, 名寶亦不得畜 若作淨施得用 價不貴故。木鉢受垢膩 不淨故不聽畜。三種鉢無如是事。膩 기름 니, 기름질 니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여덟 가지의 발우는 쓰지 못하게 하신 것이란, 금과 은 등으로 만든 보배의 발우는 보물이라 사람들이 탐욕을 내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얻기도 어려운 때문이며, 또한 탐착하게 되기 때문에 이러한 보물을 가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으며,
또한 이름 있고 값진 보물들은 손으로 들지도 못하게 하시고, 설령 청정한 정시(淨施)라 하여도 지니지 못하게 하셨나니, 값진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나무로 만든 발우는 때가 끼고 기름때가 묻어 깨끗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지지 못하게 하셨으나, 구리, 쇠, 돌로 만든 세 가지의 발우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問曰; 瓦 鐵鉢 皆亦受垢膩 與木鉢無異 何以聽畜?
瓦 기와 와= 1. 기와 2. 질그릇 3. 실패 4. 방패의 등 5. 구운 토기(土器)의 총칭
묻나니, 토기 발우나 쇠 발우도 역시 모두 기름 때가 묻게 되는 것으로, 나무발우와 다름이 없는 것이거늘, 무엇 때문에 지니게 하신 것입니까?
答曰; 瓦 鐵鉢 不熏亦不聽 以熏不受垢膩故。石有麤細 細者亦不受垢膩故 世尊自畜。所以不聽比丘畜者 以其重故, 佛乳哺力勝一萬白香象 是故不以爲重, 慈愍諸比丘故不聽。
답하나니, 토기 발우나 쇠 발우도 굽지 않은 것은 역시 허락하지 않으셨다. 구워서 만든 것은 기름때가 묻지 않기 때문이며,
돌에는 거친 것과 미세한 것이 있으니, 미세한 것은 역시 때가 끼거나 기름때가 묻지 않으므로 세존께서도 스스로 지니셨으나, 비구에게 돌발우를 갖지 못하게 한 까닭은 그것이 무거웠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젖 먹을 때의 힘으로도 1만 마리의 흰 향상(香象)을 이겨낼 수 있었기 때문에 무겁다고 여기지 않으셨으나, 그런 힘이 없는 비구들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셔서 허락하지 않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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