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智度論釋初品 十八不共法釋論 第四十一 卷二十六 

龍樹菩薩造 용수 보살 지음.
後秦龜茲國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41. 초품 중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의 뜻을 풀이함 5

 

念無減 於三世諸法 一切智慧相應故 念滿足無減。

기억에 감소함이 없는 ⑨ 염무감(念無減)이라 함이란, 삼(三)법에서 온갖 지혜와 상응하기 때문에 기억이 만족되어 소멸하지 않는 것이.

 

問曰; 先已說念無失今復說念無減念無失念無減爲一?

爲異?若一 今何以重說?若異 有何差別?

묻나니, 앞에서 이미 기억에 과실이 없는 염무실(念無失)이라 하였여기에서는  기억에 감소함이 없는 염무감(念無減)을 다시 설하시니,

염무감(念無減) 염무실(念無失) 같은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것입니까?

만약 같은 것이라면 무엇 때문에 거듭 말씀하시는 것이며

만약 다른 것이라면 어떠한 차별이 있는 것입니까?

 

答曰; 失念名誤錯, 名不及。失念名威儀俯仰 去來法中失念,

無減名住禪定神通 念過去 現在世通達無㝵。

錯誤착오= 1. 착각으로 인하여 잘못함 2. 부주의로 인하여 생기는 추리상의 오류 3. 주관적인 인식과 객관적인 사실이 일치하지 않는 일. 減 덜 감= 1. 덜다 2. 다하다 3. 줄다 4. 손상하다 5. 지치다. 

失念실념= 1. 기억 속에서 사라짐 2. 정념을 잃음

답하나니, 기억에 대한 과실의 염실(念失)은 착오(錯誤)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고, 

감소의 감(減)이란 미치지 못하는 불급(不及)을 말하는 것이다.

기억에 대한 과실의 실념(失念)은 몸가짐의 위의(威儀)로서, 숙이는 부(俯) 우러르는 앙(仰) 가고 오는 거래(去來)의 법 가운데에서 기억을 상실하는 것이며,

감소함이 없는 무감(無減)이라 함은 선정과 신통에 머물러서 기억이 과거 세상이나 현재의 세상에서 통달하여 막힘이 없는 것이다.

 

問曰; 何以故 念無減獨是佛法?

묻나니, 무엇 때문에 염무감(念無減)이 유독 부처님의 특성의 가르침인 불법(佛法)이 되는 것입니까?

 

答曰; 聲聞 辟支佛 善修四念處故念牢固, 念雖牢固 猶亦減少 㝵不通達。

宿命智力中說, 聲聞 辟支佛 念宿命極多八萬劫 於廣有減"

亦於見諦道中 不能念念分別。

답하나니, 성문과 벽지불도 사념처(四念處)에 잘 머물기 때문에 기억이 견고하기는 하나, 비록 기억이 견고하다 하여도 아직은 조금씩 줄어듦의 장애가 있어서 통달하지는 못하나니,

마치 숙명지력(宿命智力)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성문이나 벽지불은 전생의 숙명(宿命)을 극히 많이 기억할 수 있다 하여도 8만 겁일 뿐이므로, 그 광대함에 있어서는 모자람(減)이 있으며, 또한 견제도(見諦道)에서도 생각생각마다를 분별하지는 못한다고 말한 것과 같은 것이다.

 

佛於念念中 皆分別三相 佛心無有一法 而不念者 以是故 獨佛有念無減。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생각생각하는 가운데에서 세 가지의 삼상(三相)을 분별하시며, 부처님의 마음은 어느 하나의 법도 기억하지 못함이 없나니, 이러함 때문에 유독 부처님만이 염무감(念無減)이라 하는 것이며, 

 

마음의 삼상(三相),
① 전상(轉相), 무명(無明)으로 인하여 전도(轉倒)된 마음 상태에서 일어나는 분별(分別)과 허망(虛妄)한 생각(妄想)으로 일어나는 인식(認識) 주관(主觀)을 말합니다.
② 업상(業相), 무명(無明)으로 인하여 생긴 업(業)으로 인하여 분별(分別)과 허망한 생각(妄想)으로 마음이 동요하는, 아직 주관(主觀)과 객관(客觀)이 형성(形成)되어 있지 않는 마음의 상태(狀態)를 말합니다.
③ 진상(眞相), 진실상(眞實相)이라 하는 것으로 분별(分別)과 허망한 생각(妄想)이 완전히 소멸(消滅)된 본래(本來) 그대로의 마음의 성품(性品)을 관찰하는 청정(淸淨)한 마음의 상태(狀態)를 말합니다.- 불교 아미타불 아미타정토

 

復次 宿命智力 隨念知 佛於是中有力, 聲聞 辟支佛 尚無是念力 何況餘人.

또한 숙명지력(宿命智力)에서는 기억을 따라 알고 부처님은 이 가운데에서 힘이 있으시나, 성문이나 벽지불들은 이러한 기억의 힘이 없거늘 하물며 그 밖의 사람들이겠는가!

 

復次 佛以一切智 無㝵解脫守護念 是故無減。如是等因緣故 佛念無減。

또한 부처님께서는 일체지와 무애해탈(無礙解脫)로써 기억을 지키고 계시니, 이러한 때문에 감소함이 없으며, 이와 같은 등의 인연들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염무감(念無減)이신 것이다.

 

慧無減者 佛得一切智慧 故慧無減。三世智慧無㝵 故慧無減。

復次 十力 四無所畏 四無㝵智成就 故慧無減。

지혜에 감소함이 없는 ⑩ 혜무감(慧無減)이라 함은, 부처님께서는 일체지혜(一切智慧)를 얻으셨기 때문에 지혜에 감소함이 없으시고, 삼세(三世)의 장애가 없기 때문에 지혜에 감소함이 없으시며, 

또한, 십력(十力)과 사무소외(四無所畏) 사무애지(四無礙智)를 성취하신 까닭에 혜무감(慧無減)이라 하는 것이다.

 

復次 譬如 酥油豐饒 燈炷淸淨 光明亦盛, 佛亦如是 三昧王等

諸三昧禪定油 念無減淸淨炷 是因緣故 慧光明無量無減。

蘇油소유= 1. 우유로 만든, 버터 모양의 기름 2. 소마나의 꽃의 즙에서 빼낸 향유

또한 비유하자면, 마치 소유(蘇油)가 넉넉히 있는 등불의 심지는 깨끗한 빛을 비출 뿐만 아니라 잘 타오르는 것처럼, 부처님께서도 역시 그러하셔서, 삼매왕(三昧王) 삼매 등 모든 삼매와 선정의 기름으로 된 기억은 감소함이 없고 심지도 청정하니, 이러한 인연 때문에 지혜의 광명은 한량없고 감소함이 없는 혜무감(慧無減)이라 하며, 

 

復次 從初發心 無量阿僧祇劫 集一切智慧故, 深心爲法故 頭目髓腦 悉捨內外所有而布施, 入火投山 剝皮釘身 如是等無苦不受 一心爲集智慧故 慧無減。

또한 처음 초발심에서부터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 온갖 지혜를 쌓았기 때문이며, 깊은 마음으로 법을 위하여 머리와 눈과 골수와 뇌와 안팎으로 가진 물건을 보시하였으며, 불에 들어가고 산에서 몸을 던지며 가죽이 벗기어지고 몸에 못이 박히는 등과 같은 고통을 고통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채 일심으로 지혜를 쌓았기 때문에 혜무감(慧無減)이며,

 

復次 佛智慧以一切功德 持戒 禪定等助成故 慧無減。

復次 世世求一切經書 世俗法佛法 麤細 善不善 悉皆學知故 慧無減。

또한 부처님의 지혜는 일체의 공덕과 지계와 선정 등으로 이루어진 까닭에 혜무감(慧無減)이며,

또한 세세에서마다 온갖 경서(經書)를 구하여 세속의 법에서나 불법에서, 거칠고 세밀함과, 착하고 착하지 않음을 모두 다 배워서 아시기 때문에 혜무감(慧無減)이며,

 

復次 從十方無量諸佛所 聞法讀誦 思惟修習 問難故 慧無減。

復次 爲一切衆生故 爲增益一切善法故 破一切處無明故 慧無減。

또한 시방의 무량한 모든 부처님으로부터 법을 듣는= 문법(聞法)과 읽고 외우는 독송(讀誦)하고, 사유하여 닦아 익혔으므로 질문에 어려움이 없기 때문에 혜무감(慧無減)이라 하며,

또한 일체 중생을 위하여 일체의 선법(善法)을 더욱 늘어나게 하여 일체처의 무명(無明)을 깨뜨리신 까닭에 혜무감(慧無減)이라 하며,

 

復次 是智慧 實知諸法相 不生不滅 不淨不垢 無作無行, 不分別是智非智 知諸法一等 淸淨如虛空 無染無著, 不以二法故 得不二入法相 不二入法相 無量無邊, 以是故 慧無減。如是等種種因緣 慧無減。

또한, 이러한 지혜로써 제법의 실상(實相)이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이며, 깨끗하지도 않고 더럽지도 않은 불구불정(不淨不垢)이며, 현상과 작용이 없는 무작(無作)이며, 행하는 것도 없는 무행(無行)임을 진실하게 아셨으며,

지혜와 지혜가 아니라는 것을 분별하지 않으시니, 제법은 하나같이 동등하고 청정하여 마치 허공과 같음을 아셔서, 물 듦도 없고 집착함이 없는 무염무착(無染無著)이며,

두개의 실상(法)이라는 이법(二法)이 아닌 까닭에 이원성이 아님을 깨달아 법상(法相)을 얻으셨으니, 이원성이 아니므로 법상(法相)에 들어감이 무량하고 무변하니, 이러함으로 인하여 혜무감(慧無減)이시니,

이와 같은 등의 갖가지 인연으로 혜무감(慧無減)이신 것이다.

 

“解脫無減”者 解脫有二種, 有爲解脫 無爲解脫。有爲解脫 名無漏智慧相應解脫, 無爲解脫 名一切煩惱習都盡無餘。佛於二解脫無減。何以故, 聲聞 辟支佛 智慧不大利故 煩惱不悉盡故 智慧有減, 佛智慧第一利故 煩惱習永盡無餘故 解脫無減。

해탈에 감소함이 없는 ⑪ 해탈무감(解脫無減)이라 함이란, 해탈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유위해탈(有爲解脫)과 무위해탈(無爲解脫)이라.

유위해탈(有爲解脫)은 무루(無漏)의 지혜와 상응하는 해탈이요

무위해탈(無爲解脫)은 일체의 번뇌와 습기가 모두 다하여 남음이 없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이 두 가지의 해탈에서 감소됨이 없으시니,

왜냐하면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혜는 크게 날카롭지 않아서 번뇌가 다하지 않았기에 지혜에 감소함이 있지만,

부처님의 지혜는 예리하기가 으뜸이요, 번뇌와 습기가 영원히 다하여 남음이 없기 때문에 해탈무감(解脫無減)이며,

 

復次 如“漏盡力”中說 佛與聲聞解脫有差別。佛得漏盡力故 解脫無減, 二乘無力故有減。

또한, 업이 상속되는= 누진력(漏盡力)을 설명함에서 설한 바와 같이, 부처님과 성문의 해탈에는 차이가 있으니, 부처님께서는 누진력을 얻으셨기 때문에 해탈에 감소함이 없지만, 이승(二乘)에게는 그러한 힘이 없기 때문에 감소함이 있는 것이다.

 

悉知方便 壞因緣 果報相續 是名漏盡力= 방편으로 인연이 파괴되어도 과보가 상속되는 것을 잘 아시는 것을 일컬어 누진력(漏盡力)이라 하며, -대지도론(大智度論) 제24권 3

 

“解脫知見無減”者 佛於諸解脫中 智慧無量無邊淸淨故 名解脫知見無減。

해탈에 대하여 알아서 느끼는 ⑫ 해탈지견무감(解脫知見無減)이란, 부처님께서는 모든 해탈 중에서 지혜가 무량하고 그지없이 청정하기 때문에 해탈지견에 감소함이 없는 것이다.

 

問曰; 佛一切法中無減 何以故 但六事中無減?

묻나니, 부처님께서는 일체의 법에서 무감(無減)이시거늘, 무엇 때문에 다만 욕무감(欲無減) 정진무감(精進無減) 염무감(念無減) 혜무감(慧無減) 해탈무감(解脫無減) 해탈지견무감(解脫知見無減)의 육사(六事)에서만 감소함이 없다고 하시는 것입니까?

 

대승의 십팔불공법

① 신무실(身無失) ② 구무실(口無失) ③ 염무실(念無失) ④ 무이상(無異想) ⑤ 무부정심(無不定心) ⑥ 무불지기사심(無不知己捨心) ⑦ 욕무감(欲無減) ⑧ 정진무감(精進無減) ⑨ 염무감(念無減) ⑩ 혜무감(慧無減) ⑪ 해탈무감(解脫無減) ⑫ 해탈지견무감(解脫知見無減) ⑬ 일체신업수지혜행(一切身業隨智慧行) ⑭ 일체구업수지혜행(一切口業隨智慧行) ⑮ 일체의업수지혜행(一切意業隨智慧行) ⑯ 지혜지과거세무애무장(智慧知過去世無碍無障) ⑰ 지혜지미래세무애무장(智慧知未來世無碍無障) ⑱ 지혜지현재세무애무장(智慧知現在世無碍無障)

 

答曰; 一切自利他利中 四事能具足, “欲” 求一切善法之根本, “精進” 能行,

“念”能守護 如守門人 善者聽入 惡者遮, “慧” 照一切法門 斷一切煩惱。

用是四法 事得成辦。

답하나니,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는 일체의 일에서 네 가지를 능히 갖추게 되나니,

하고자는 욕(欲)은 일체의 선법(善法)을 구하는 근본이 되고,

정진(精進)은 (선법을) 능히 잘 행하는 것이며,

기억하는 염(念)은 (선법을) 잘 수호하는 것이니,

마치 문지기가 착한 이를 청하여 들여보내고 나쁜 이를 막아내는 것과 같다.

지혜 혜(慧)는 일체법의 문을 비추어 일체의 번뇌를 끊게 하는 것이라.

이러한 욕(欲) 정진(精進) 염(念) 혜(慧)의 네 가지의 법으로서야 일을 잘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이다.

 

是四法果報有二種, 一者 解脫, 二者 解脫知見。“解脫”義如先說。

욕(欲) 정진(精進) 염(念) 혜(慧) 네 가지 법(法)의 과보(果報)에는 두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해탈(解脫)이고, 둘째는 해탈지견(解脫知見)이다.

해탈의 뜻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으며, 

 

“解脫知見”者 固是解脫知見 知是二種解脫相, 有爲無爲解脫。知諸解脫相 所謂時解脫 不時解脫 慧解脫 俱解脫 壞解脫 不壞解脫 八解脫 不可思議解脫 無解脫等。分別諸解脫相 牢固 不牢固 是名解脫知見無減。

해탈지견(解脫知見)이라 함이란, 해탈지견으로써 이 두 가지 해탈의 상(相)인, 유위(有爲)의 해탈과 무위(無爲)의 해탈을 분명히 아는 것이니, 

이른바 시해탈(時解脫)과 불시해탈(不時解脫)과 혜해탈(慧解脫)과 구해탈(俱解脫)과 괴해탈(壞解脫)과 불괴해탈(不壞解脫)과 8해탈(解脫)과 불가사의해탈(不可思議解脫)과 무애해탈(無礙解脫) 등이다.

모든 해탈의 상(相)에서 견고하고 견고하지 않음을 분별하는 것을 해탈지견에 감소함이 없는 해탈지견무감(解脫知見無減)이라 하는 것이니, 

 

如“念佛”中 佛成就五無學衆, 解脫知見衆 此中應廣說。

마치 염불(念佛)을 통하여 부처님께서 계율ㆍ 선정ㆍ지혜ㆍ해탈ㆍ해탈지견의 오무학중(五無學衆)을 성취함을 설명한 것과 같나니, 해탈지견은 이 가운데서 마땅히 자세히 설명할 것이니라.

 

念僧者 是佛弟子衆 戒衆具足 禪定衆 智慧衆 解脫衆 解脫知見衆具足, 
염승(念僧)이란 곧 부처님 제자들의 계율의 구족함과 선정ㆍ지혜ㆍ해탈ㆍ해탈지견을 구족함을 염하는 것이다. - 대지도론(大智度論) 제22권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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